하수도의 마법사(1)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서재 겸 사무실에 들어서자, 낯익은 차향이 그를 반겼다.
시에나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찻잎을 덜어내고 주전자에 담아 우려냈다.
“낮은 거리의 사냥꾼이라니. 그건 또 뭐요?”
“몰랐어? 그쪽한테 붙은 이명이잖아.”
댈런은 고개를 저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쪽이 낮은 거리랑 뒷골목을 쏘다니면서 현상범을 때려잡고 있잖아. 남들은 더럽고 위험하다며 피하는 곳을 들쑤시고 다니니까, 별명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지.”
지난 일주일간 댈런은 까마귀 둥지를 매일같이 드나들었다.
멸망을 대비하는 건 대비하는 거고, 당장 돈이 필요한 건 변하지 않았으니까.
시에나는 그에게 매번 비슷한 의뢰를 쥐어주었다. 현상금이 걸린 사람들, 혹은 짐승들을 잡는 것.
다행히 일거리가 떨어지는 날은 없었다.
팔시온은 인구 수백만이 넘어가는 거대도시.
깊은 뒷골목과 낮은 거리에는 온갖 기괴한 일들, 사소한 사건사고들이 끊이지 않고 쏟아졌다.
같은 현상금 의뢰라도 목표는 다양했다.
살인마나 강도 등의 잡범을 잡는 날도 있었고, 난폭한 들개 무리나 거대해진 시궁쥐 같은 짐승을 사냥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댈런은 턱을 긁적였다.
“나 말고도 현상금 사냥꾼은 많을 텐데?”
달그락.
시에나가 탁자 위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찻물 위로 민들레 꽃잎 하나가 동동 떠다녔다.
“그쪽 덩치가 눈에 띈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보지?”
“···그거야 뭐.”
하긴 2미터가 넘는 근육질 사내가 흔치는 않겠지.
현상금 사냥꾼들도 굳이 뒷골목이나 낮은 거리 쪽을 골라서 다니진 않기도 하고.
“걱정 마. 그렇게 멀리 퍼진 소문은 아니니까. 기껏해야 나 같은 정보상 몇 명 정도만 알고 있을 거야.”
적어도 아직까지는. 차를 홀짝인 그녀가 덧붙였다.
댈런은 그런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역시 여우라니까.
“내가 그런 소문을 반기지 않는다고 생각하나?”
“···음, 글쎄. 그냥 짐작이야. 북쪽에서 온 전사들은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명성은 때로 싸움에 방해가 될 때도 있으니까.”
모르는 척 둘러대는 실력까지 아주 일품이다.
예비 동료가 능력있는 게 기분 나쁠 일은 아니지. 댈런은 낮게 웃으며 주제를 넘겼다.
“그래서 지명의뢰는 무슨 이야기요?”
“아 그거.”
시에나는 책상 밑 서랍에서 의뢰서 몇 장을 꺼냈다. 그리고 책상 위에 하나씩 잘 보이게 펼쳐두었다.
이건 지난 일주일간 그녀가 댈런에게 의뢰를 준 방식이었다. 후보군을 몇 개 보여주고, 그 중에서 고르게 하는 것.
다짜고짜 의뢰 하나를 지정해줬던 처음과는 달라진 부분이 많았다. 그만큼 신뢰도가 조금은 쌓였다는 이야기겠지.
시에나는 가장 끝에 놓인 의뢰서를 댈런에게 건넸다.
“이거야. 당신 앞으로 온 지명의뢰.”
댈런은 그녀가 건넨 의뢰서를 들여다봤다.
“마탑?”
“응. 순은 구역의 엘가이아 마탑에서 당신을 찾았어.”
이건 또 무슨 일이람.
이 세계에서 마법사는 고급 인력이다. 제대로 된 마법사는 비단 전투뿐 아니라 어디에서든지 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댈런 역시 마법사 캐릭터를 키울 적에는, 성주의 자문인이나 왕실의 공인 마법사로 돈과 명성을 한 손에 움켜쥐었을 정도였다.
‘그런다고 멸망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런 마법사들이 모인 단체가 바로 마탑.
수많은 마탑들이 순은 구역에 있는 걸 보면 그 위상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에 반해 청동 구역에 있는 건, 마탑 연합이 세워둔 지부 건물 하나뿐이니까.
“정확히는 엘가이아 마탑 전체의 입장은 아니고, 한 원로 마법사가 보낸 의뢰야. 어쨌든 인장은 마탑의 것이니까, 보수금을 떼어먹히거나 할 일은 없는 거지.”
“보수금이 문제가 아닐 텐데. 마탑이 내 이름은 어떻게 안 거요?”
엘가이아 마탑이라면 댈런도 잘 아는 바다. 순은 거리의 마탑들 중에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마탑.
이제 막 활동하기 시작한 댈런의 이름이, 자연스레 그들의 귀에까지 들어갔을 확률은 0에 가깝다.
“당신이 의뢰를 처리한 고객들 중에 당신을 추천한 사람이 있었나 봐. 이름이 알려지는 게 싫더라도 이 부분은 어쩔 수 없어.”
“흠.”
“고객 입장에서 적어도 누가 의뢰를 완수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잖아?”
그건 그렇지. 그래도 의문은 하나 남아있었다.
“내가 의뢰를 받은 이들 중에 그 정도로 고위급 인사가 있나?”
댈런은 지금까지 받은 의뢰서들을 되새겨봤다. 하지만 곧 의미없는 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런 뒷골목 브로커에게 의뢰하면서, 자신의 실명을 공개하는 이가 어디 흔하겠는가.
그렇기에 시에나의 답변은 의외였다.
“추측가는 사람은 하나 있어. 청동 경비단 침묵중대장.”
“···거물이군.”
그 사람 정도라면 순은 구역의 마탑과도 연이 닿았을 수 있지. 가능하다면 아군으로 영입하고 싶을 정도로 능력있는 사람이니까.
댈런은 찻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키곤 물었다.
“그래서 의뢰의 내용이 뭐요?”
힘을 가진 이들과 연을 맺는 건, 언제나 양날의 검과도 같다.
그것도 아직까지 그들과 대등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 입장이라면 더더욱.
그렇기에 그런 이들에게 의뢰를 받는 건 언제나 신중해야 했다.
시에나는 차를 홀짝이며 말했다.
“원로 마법사의 하나뿐인 제자가 실종된 모양이야. 이름은 토미 발렌티노. 도시 밑 하수도에서 실종됐고, 보수금은 1플로린이야. 제자의 흔적만이라도 찾아오면 보수금을 내주고, 만약 숨이 붙어 있는 채로 데려오면 두 배를 주겠다고 했어.”
“나쁘지 않군.”
실종자 수색에 보수금이 무려 금화. 거기다 반드시 살려서 데려와야 한다는 조건도 없다.
누군가와 대놓고 척을 질 법한 의뢰도 아니고, 오히려 원로 마법사에게 빚을 지울 수 있는 기회였다.
‘마법사들의 문화에서, 직계 제자는 스승에게 자식과 같은 존재로 여겨지지.’
하나뿐인 자식을 구해준 그에게, 원로 마법사는 상당히 큰 마음의 빚을 안게 될 터.
그리고 그건 곧 마탑에게 빚을 지우는 것과 동일했다.
‘마법사들의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 오면 분명히 덕을 보겠군.’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댈런은 의뢰서를 바로 품속에 넣었다.
“받겠소. 하수도라니 퀴퀴한 산책 한 번 하고 오지.”
“말만 들으면 무슨 용이라도 사냥할 전사라니까.”
“용살자 정도면 나쁘지 않은 별명이군. 낮은 거리의 사냥꾼보다는 마음에 드는데.”
“···하여간.”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대는 시에나. 댈런은 낮게 웃으며 일어났다.
“실력 좋은 길잡이나 하나 붙여주시오. 길 잃은 어린애 꼴이 나기는 싫으니.”
“걱정 마. 바로 불러줄 테니까.”
댈런은 문을 나서며 말했다.
“한 잔 하면서 기다리지.”
***
수백만 명이 거주하는 미궁도시 팔시온.
이 거대도시의 하수도는 도시가 시작될 때 만들어져, 오랜 시간을 확장되고 증축되어왔다.
도시의 성장에 따라 수백 년의 세월을 그렇게 뻗어나간 하수도는, 수많은 통로와 샛길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미궁이나 다름없었다.
언젠가부터는 마물들까지 기어들어와 활개를 치고, 그 탓에 청동 경비단마저도 순찰을 피하는 장소.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은, 뒷골목에마저 발붙일 곳 없는 악마 숭배자나 극악무도한 범죄자뿐이었다.
“···그런 마경이 바로 제 일터란 말이죠.”
엣헴, 하고 헛기침을 하는 모습에 댈런은 실소를 흘렸다.
“직업에 애착이 많은 모양이오.”
“그럼요! 도시의 가장 근간이 되는 게 뭐겠어요? 발전한 하수 시설이야말로 이 거대한 인구밀집지역의 기반이자 상징 아닐까요? 그런 곳을 관리하는 저는 도시의 근간을 책임지는 사람인 거죠!”
“······.”
세상에 살다보니 하수도 청소부가 직업적인 자부심을 드러내는 것도 보는군.
수 년간 이 게임을 파고들면서도 보지 못했던 진귀한 광경에, 댈런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위험하다는 생각은 안 드시오?”
하수도 청소부는 도시에 고용된 공무원으로, 주기적으로 하수도를 점검하고 유수가 막히지 않도록 청소하는 이들.
마물이 서식하고 범죄자들의 피난처가 되는 하수도를 제집처럼 드나들어야 하는 게 그들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이 마경을 거침없이 다닐 정도로 무력이 강한 사람들이냐면, 그것도 아니다.
이 세계에서도 공무원은 박봉이었기 때문에.
“위험하죠! 하지만 고생 끝에 보상이 따르는 거랍니다. 젊을 때 고생은 천금을 주고도 못 산다는 말도 있잖아요?”
글쎄. 그게 여기 쓰는 말이 맞을까.
고개를 절레절레 젓긴 했지만, 사실 크게 상관은 없었다.
댈런에게 필요한 건 길잡이였고, 그녀가 유능한 길잡이라는 것 하나는 확실했으니까.
낮은 거리를 지나, 미로 같은 하수도의 상층부에 이르기까지.
이 기운 넘치는 청소부는 그 머나먼 여정을 길 한 번 잃지 않고 최적의 루트로 안내했다.
“이 일 시작한 지는 오래 되었소?”
“이제 3년 쯤 됐어요.”
“오래 일했군.”
보통 1년을 못 넘기고 죽거나 다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뒷말은 삼켰다.
어쨌건 이 위험한 일을 3년 동안이나 했다면, 이보다 좋은 길잡이를 찾기도 힘들겠지.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이해가 갔다.
동시에, 댈런은 이런 탁월한 길잡이를 구한 시에나의 유능함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생각보다 이쪽 바닥을 잘 아시는 것 같네요.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댈런.”
“전 페니요.”
그녀는 싱긋 웃었다.
“동전 부를 때 그 페니 맞아요.”
“······잘 부탁하오.”
“저도요.”
페니는 다시 안내에 집중했다.
깊이 들어갈수록 발밑의 물은 더 깊어졌다. 처음에는 찰박거리는 웅덩이 수준이던 게, 이제는 발목 언저리에서 찰랑거렸다.
벽에는 누런 이끼가 가득하고, 천장에서는 물이 똑똑 떨어진다. 거기다 하수도 특유의 악취까지 코를 찔렀다.
감각이 예민한 댈런에게는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어느 순간 페니가 멈춰섰다.
“지도에 표시된 건 이쯤이에요.”
“이 근방에서 실종됐다는 소리군.”
“네.”
화륵.
댈런은 횃불로 주변을 비춰봤다.
야간 시야로 횃불의 도움이 필요없는 그였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숙련도가 높지 않아 횃불이 있으면 좀 더 나았다.
‘실종자는 엘가이아 마탑 출신. 당연히 대지술사겠지.’
마탑의 제자, 그것도 원로 마법사의 직계 제자라면 일신의 무력 역시 만만치 않다.
그런 마법사를 납치할 정도라면, 흔한 연쇄살인범 정도로는 어림도 없는 일.
‘아마 그 놈이겠지.’
사실 댈런은 의뢰를 받을 때부터 납치범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었다.
그가 망설임 없이 의뢰를 수락한 건 그런 이유도 한 몫 했다.
‘괴인을 만들어냈던 가면 쓴 사교도들. 그중에서도 가장 골치아픈 놈들 중 하나.’
완전히 성장한 뒤에는, 가히 일인군단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괴두.
하지만 지금은 놈의 저력이 완성될 시점이 아니다. 앞으로 1년. 혹은 2년.
놈이 청동 구역을 집어삼킬 재앙이 되기까지는 그 정도의 유예가 남아있었다.
‘그러니 지금 철저하게 밟아놓는 게 미래를 위한 길이다.’
댈런은 생각을 정리하고는, 차분히 감각을 확장시켰다.
‘실종자는 대지술사. 지하의 하수도는 대지술사에게 극도로 유리한 환경이다. 설령 기습당했다 하더라도, 쉽게 당하지는 않았을 거야.’
분명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을 터.
그리고 대지술사의 전투 현장은 추적하기가 무척 쉬웠다.
그들이 싸우는 방식을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땅을 늪처럼 바꿔 적들의 발을 묶고, 지하에서 바위를 꺼내 포탄처럼 쏘아낸다. 고위 마법사는 아예 일대를 갈아엎는 수준이었다.
찰박.
잠재워뒀던 예민한 감각이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댈런은 초인적인 오감에 의존해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예상대로 얼마 가지 않아 전투의 흔적들이 하나씩 나타났다.
굴러다니는 벽돌, 무너진 천장, 말라붙은 마물의 검은 핏자국.
그가 발걸음을 멈춘 건, 통로와 통로가 만나는 한 교차로였다.
스르릉-
댈런은 검을 뽑아 물 밑을 휘저었다. 이내 들어올린 검끝에 얇은 사슬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페니가 동그래진 눈으로 물었다.
“그게 뭐죠?”
“1회성 방어 주문이 걸린 목걸이요. 마탑에서 호신용으로 파는 물건이지. 학도들에게는 무료로 하나씩 지급된다고 알고 있소.”
댈런은 목걸이를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여기 작은 수정의 불이 꺼졌다는 건, 저장해둔 주문이 소진됐다는 소리요.”
“그렇다는 건······.”
“여기가 마법사의 종착지였다는 이야기지.”
전투의 흔적은 명백했다.
마법사는 이곳에서 기습당했고, 분전했지만 한계를 맞았다.
댈런은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는 시각보다 다른 감각이 더 효율적이었다.
피부가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을 느낀다.
하수도의 악취 속에 섞인 이끼의 미묘한 잡내가 코를 찔렀다.
벽면 속에서 벌레들이 기어다니는 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극대화된 감각들이 받아들이는 자극을, 초인적인 지능 수치가 잘게 부수고 뒤섞어 정보로 치환해냈다.
“······.”
그리고 어느 순간, 그의 감각 끄트머리에 무언가가 걸려들었다.
“페니.”
“네?”
“싸움은 잘 하시오?”
댈런은 눈을 떴다. 등 뒤에서 방패를 끌러 왼손으로 들었다.
고개를 돌린 그는 통로 저편의 어둠 속을 응시했다.
뒤쪽. 그들이 지나온 길이었다.
“어···제 몸 지킬 정도는 될 걸요? 나름 3년차 하수도 청소부라니까요?”
“다행이군.”
지그시 어둠 속을 노려보자, 초인의 경계에 다다른 시야가 하수도의 어둠을 뚫고 어렴풋한 꿈틀거림을 포착했다.
큼직한 눈과 커다란 입이 달린 양서류의 머리.
푸르죽죽한 피부는 매끈하고, 젓가락처럼 얇은 팔다리는 큼직한 머리와 비대칭을 이룬다.
“잠시 뒤로 물러나 있으시오. 금방 끝낼 테니.”
댈런의 시선을 느낀 놈이, 커다란 눈을 뒤룩뒤룩 굴려 그를 마주봤다. 큼직한 입이 열렸다.
우루루룩!
그건 사냥을 시작하는 울음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