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밤(5)
꾸드드득!
우득! 우드득!
근육이 경련한다.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마치 독립적인 자아를 가진 것마냥 꿈틀거렸다.
피부를 찢고 나올 듯하다가, 다음 순간에는 내장을 압박하며 쥐어짠다.
댈런은 이를 악물었다.
치이이익!
왈칵 치솟는 핏물에, 코와 입에서 주전자마냥 김이 확 뿜어져나왔다.
눈앞이 새하얘졌다가, 다시 까맣게 암전되기를 몇 번.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여기서 밀리면 죽는다.’
죽고 싶지 않았다.
살려고 여태껏 발버둥쳐왔다.
살기 위해 돈을 벌고 의뢰를 수행했으며.
살기 위해 바위도 부술 주먹과 세 치 혀를 놀려, 멸망을 향해 다가가는 세계의 흐름을 뒤틀었다.
설령 죽더라도 악마와 피터지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해야지, 이렇게 시체 하나 날름 먹고 몸이 터져 뒈질 순 없었다.
“······!”
우드드드득!
경련하는 근육을 의지로 찍어누른다.
안에서부터 무너지는 몸을 부여잡는다.
내장을 압박하는 근육을 주변의 다른 근육으로 밀어내고, 피부를 찢고 튀어나오려는 근섬유를 곁에 있던 근섬유로 붙잡는다.
‘체력이 초인의 경지에 완전히 접어들기만 했어도······.’
그런 아쉬움이 스쳐지나가지만, 때늦은 후회는 필요없었다.
체력과 용혈은 나름대로 충분히 버텨주고 있었다.
남은 건 어떻게든 이 불균형을 진정시키기 위해, 남은 능력치를 모두 끌어모아 사력을 다하는 일뿐.
초인적인 감각과 지능으로 몸 안을 관조한다.
마력의 바람을 끌어와 근섬유를 붙잡고, 그동안 몸을 써온 기량을 총동원해 근육을 이완시켰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득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끼고.
“···허억.”
정신을 차려보니, 낯익은 산골 오두막 앞이었다.
***
휘이이이―
칼바람이 찢어진 갑옷 속을 파고든다. 발목까지 쌓인 눈이 가죽신 터진 맨발에 밟혀 뽀드득거렸다.
“······.”
댈런은 당혹감을 가라앉히고,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등 뒤로는 몇 걸음만 가면 깎아지듯한 절벽이 있었다. 정면으로는 오두막과 그 뒷마당이었다.
댈런은 천천히 걸었다.
뽀드득.
뒷마당의 정경을 보니, 어느 사냥꾼의 오두막 같았다.
가죽 건조대. 장작 패는 도끼와 그 곁의 눈 덮인 장작더미.
작은 동물을 해체할 수 있는 낮고 넓은 탁자와 그 위의 사냥칼, 그리고 손도끼까지.
스윽.
댈런은 손도끼를 가만히 집어들었다.
손끝에 착 달라붙는 익숙한 감각.
그가 지난 몇 년 동안 사용해왔던, 그리고 얼마 전에 하수도에서 기어이 부숴먹었던 낡은 손도끼였다.
‘···스타팅 포인트군.’
게임이 시작하는 장소인, 산골의 어느 낡은 오두막.
이곳은 댈런이 이 세상에 떨어져, 처음 눈을 뜬 장소였다.
댈런은 턱을 긁적였다. 그는 분명 방금까지 대사도를 죽이고 시체를 회수하고 있었다. 왜 이곳에 떨어진 거지?
꿈인가? 아니면 시체 먹고 뒈져서 그대로 회귀?
턱을 긁적이던 댈런은 문득 감각을 확장시켰다. 그리고 돌아가는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이건 또 뭔···분신술이냐.’
그의 몸이 두 개였다.
하나는 시체를 회수한 직후의 모습 그대로, 폭증한 근력 수치와 이를 잠재우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는 육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 설산 오두막에 떨어진 몸뚱이.
마치 가위에 눌린 듯, 저쪽의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둘 모두 그의 육신이었다.
그의 초인적인 감각도 어느 한 쪽이 환상이다 말해주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다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 건, 이곳에서 무언가를 해결해야 그의 원래 육신 또한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는 사실.
“···후우.”
댈런은 한숨을 내쉬었다. 따뜻한 김이 시야를 훑고 지나간다.
자, 그래서 이제 어쩌라는 걸까.
고개를 들어보니 오두막 창문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원래라면 그가 이 땅에 떨어졌을 때, 오두막은 버려진 상태였어야 한다.
불은 전부 꺼져 있고, 사람이 떠난 지 한참 되어 냉기만이 남아있어야 할 오두막.
그게 스타팅 포인트 ‘버려진 오두막’의 기본 세팅이었으니까.
그래서일까.
창문 너머로 넘실거리는 이질적인 빛이, 마치 그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끼이익―
댈런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건조하고 따뜻한 공기가 그의 피부에 부딪혔다.
오두막 안은 예전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손때를 탄 나무 가구들. 구석의 작은 벽난로와 침대.
다만 달라진 게 하나 있다면, 침대 곁에 놓인 책상과 의자였다.
“······.”
현대식으로 마감된 까만 책상. 푹신하게 등허리와 머리를 받쳐주는 게이머용 의자.
그리고 그 아래 윙윙거리며 돌아가고 있는 최신형 컴퓨터와, 테이블 위의 모니터.
모니터 안에는 덩치 큰 야만전사 캐릭터가 서 있었다.
넓고 어두운 공동 안에, 홀로 우두커니 서 있는 야만전사.
한쪽 구석에 띄워둔 상태창에서 30이라는 근력 수치가 깜빡거리며 빛나는 중이었고, 하단의 알림창에 한 줄 메시지가 올라와 있었다.
[단일 능력치가 최초로 30을 달성했습니다. 캐릭터가 작은 영역을 이뤘습니다.]
그 순간 문득 느껴지는 기척에, 댈런은 뒤를 돌아봤다.
[에이, 썩을. 왜 배달이 한 시간이나 걸려.]
거기에는 추리닝 차림의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주말이라 씻지 않아 새집처럼 떡진 머리칼. 마찬가지로 주말이라 까슬하게 턱선을 뒤덮은 수염.
한 손에 캔맥주 네 개들이 묶음을 들고, 방금 배달받은 치킨을 다른 손에 든 남자.
그건 게임이 취미였던 회사원이자, 과거의 자신이었다.
[일시정지도 없는 거지 같은 게임이라니, 쯧쯧.]
남자는 혀를 차며 자연스럽게 댈런을 지나쳤다.
테이블 위에 캔맥주와 치킨을 올려놓고, 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몸을 묻는다.
남자가 마우스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게임을 다시 플레이했다.
한 손으로는 편하게 치킨을 뜯고 맥주를 마시며, 건성건성 몹을 죽이고 경험치를 쌓았다.
[다 식었네. 쩝쩝. 다음 퀘스트가 뭐였지?]
“······.”
딸깍거리는 마우스와 다채로이 빛나는 모니터를 보며, 댈런의 머릿속 한켠에 아스라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었다.
죽어간 그의 캐릭터들. 그가 죽인 NPC들.
어쩔 수 없이 멸망한 세계와 그가 포기한 세계들.
아니, 애당초 클리어할 생각조차 없던 회차들.
악의 축에 가담한 회차들은, 그저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수단이었다.
전여자친구와 헤어졌던 날에는, 악룡의 수하로 들어가 온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기도 했었다.
까득.
저도 모르게 악문 이가 거칠게 부딪힌다.
원인 모를 죄악감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수천만, 수억의 생명이 그의 손끝에서 스러진 것만 같은 기분.
그저 데이터 쪼가리인 줄 알았다는 항변은, 살아 숨쉬는 세계를 겪어온 경험 앞에서 한없이 작아져 구석으로 밀려났다.
네가 지금껏 살아온 세계를 부정할 수 있나?
없다면, 네가 지금껏 죽여온 세계는? 그 주민들은?
그저 재미를 위해, 네 손으로 직접 죽인 영웅들은?
댈런은 문득 자신이 입술을 꽉 깨물고 있음을 알아챘다.
주륵.
찢어진 입술 아래로, 턱선을 타고 흐르는 선혈.
치이이······.
그리고 억센 치악력과 용혈의 재생 인자로, 아물고 찢어지길 반복하는 입술.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눈앞에 어른거리자, 댈런은 문득 정신이 들었다.
모니터 앞에 앉은 남자의 모습.
그건 그의 과거이자, 그를 집어삼킬 듯 다가오는 죄책감의 실체였다.
그 앞에서.
“후우.”
댈런은 마침내 깊은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가 말했다.
“어쩌라고.”
그때나 지금이나, 난 살려고 발버둥친 죄밖에 없는데.
그리고 지금도 뒈질 생각은 없어, 씹새야.
픽!
모니터가 꺼졌다.
그리고 눈앞이 암전됐다.
***
“······시발.”
댈런은 눈을 떴다.
약간 어질어질한 게, 에버랜드에서 롤러코스터를 한 세 번쯤 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지금의 육신이라면 세 번이 아니라 삼백 번을 타도 별다른 감흥이 없을 것이다.
애당초 20대 초반 이후로는 가본 적도 없었으니, 기억의 왜곡일지도 몰랐고.
철퍽.
발밑에 악마의 피와 살점이 밟혔다. 댈런은 문득 시야가 좀 더 밝아진 걸 느꼈다.
뭐지? 시체 회수할 때 감각 능력치가 올라가지는 않았는데.
‘상태창.’
자연스레 상태창을 띄우고 나니, 그제야 변화가 한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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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댈런
레벨 : 9
[근력 : 30] [기량 : 16] [체력 : 16]
[감각 : 17] [지능 : 19] [마력 : 14]
스킬 : 데하만의 갑주격투(D), 야간 시야(E), 용혈의 재생 인자(C), 도약(E), 불꽃 화살(D), 급속 빙결(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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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회수로 얻은 능력치 이외에도, 모든 능력치가 1씩 더해져 있었다.
근력만 예외였다. 근력은 다행히도 30에 고정된 채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스킬 숙련도 또한 전반적으로 눈에 띄게 올라 있었다.
못해도 5퍼센트 이상. 도약이나 불꽃 화살 같이 숙련도가 낮은 스킬의 경우 10퍼센트도 넘게 증가한 상태였다.
‘이런 건 처음이군.’
레벨업과 시체 회수 이외의 경로로, 이런 급격한 성장을 이룬 건 처음 있는 일.
애당초 시스템과 별개인 성장 자체가 겪어보지 못한 경우였다.
‘추측가는 바가 없는 건 아니다.’
댈런은 턱을 쓰다듬었다.
오두막의 모니터 안에서 봤던 알림창이 힌트였다.
‘작은 영역’을 이뤘다는 알림창의 메시지.
영역 개념은 게임 설정상으로 여러 번 봤었지만, 실제 시스템에는 적용되지 않았던 내용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게임이 현실이 된 이 세상에서, 그런 자잘한 설정들이 꽤나 중요하다는 건 이미 여러 번 겪어서 알고 있는 바.
‘노인장한테 한 번 물어봐야겠군.’
엘가이아 마탑의 원로 마법사, 펠버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댈런의 뛰어난 기억력은, 그가 처음에 자신을 소개했던 말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작은 영역을 일궈낸 대지술사랬지.’
물론 당장 물어볼 건 아니다. 몇 번의 전투와 폭증한 근력을 잠재우는 일로 인해, 그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나 다름없었다.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누적된 피로는 언제 그의 의식을 끊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쉬는 게 먼저였다.
덜그럭.
댈런은 부러진 검과 널브러진 방패, 그리고 도끼를 주워들었다.
제물로 바쳐진 시체들을 뒤적이니, 경비단의 배신자 지휘관이 몇 명 더 나왔다.
댈런은 놈의 옷을 벗겨, 부러진 검 조각들과 걸레짝이 된 방패를 싸매 어깨에 걸쳤다.
도끼는 허리띠에 끼우고, 넝마에 가까워진 갑옷 끈도 넉넉하게 풀어주었다.
찰박.
댈런은 피바다 위에 파문을 남기며 공동을 빠져나갔다.
그의 찰박거리는 발소리를 마지막으로, 공동에는 어두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
“댈런! 돌아왔구만.”
펠버가 손을 흔들었다. 댈런은 피식 웃었다.
역시 노인장. 피 튀는 전투가 끝나고서도 누구보다 정정하시군.
“그래. 돌아왔소.”
“이쪽 싸움은 조금 전에 정리되었네. 걱정되어 나 혼자라도 내려가볼까 생각했었지만···그럴 필요까진 없었나 보군. 다행일세.”
댈런은 대답 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펠버의 말대로, 동굴 입구에서 벌어진 전투는 방금 막 끝난 듯했다.
“으, 으으으···.”
“포션! 포션 가져와! 빨리!”
“커헉. 컥, 살려줘······.”
부상자들의 비명과 그들을 돌보는 이들의 고함이 메아리친다. 피비린내와 약초 냄새가 진동했다.
특별한 광경은 아니었다. 전투 이후에는 으레 펼쳐지곤 하는 모습이었으니까.
오히려 마물과의 전투였음에도, 사망자가 많지 않다는 게 놀랄 점이었다.
‘침묵중대원 셋에, 마법사가 둘인가.’
댈런의 뛰어난 감각은 대략 그 정도가 죽었다고 말해주었다.
부상자는 그보다 좀 더 많아보였다. 그 숫자는 펠버가 말해주었다.
“사망자 다섯에, 부상자는 경상자를 제외하면 스물하나일세. 금방 치료가 끝날 테니 걱정은 말게나. 마탑이 함께한 전장에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중상은 많지 않으니.”
펠버의 말마따나, 중상자들 중에서 상태가 심각해 보이는 이는 거의 없었다.
상태가 악화되는 낌새가 보이기만 하면, 냅다 마탑제 재생 포션을 들이붓고 있는 덕분이었다.
“끄아아아악!”
“아아악! 죽을 것 같아!”
소리만 들어보면 거의 수십 명씩 죽어가는 것 같기는 했지만. 펠버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포션 치료가 원래 좀 아픈 법이지.”
댈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게임에서도 재생 포션을 전투 중에 사용하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사용하자마자 어마어마한 고통 디버프가 걸려서, 전투 속행이 거의 불가능해지기 때문.
물론 포션 하나로 모든 치료가 가능한 건 아니었기에, 멀쩡한 마법사들과 침묵중대원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부상자들의 치료를 돕고 있었다.
손의 핏자국과 갈색 머리칼에 맺힌 땀방울을 보아하니, 펠버 역시 댈런이 오기 전까지 그들과 함께였던 듯했다.
원로 마법사쯤 되면 치유 주문에도 능숙할테니, 재생 포션만으로는 처치하기 힘든 부상에 큰 도움이 되겠지.
“이래저래 신세를 많이 지는군. 고맙소.”
“신세를 진 건 자네가 아니라 침묵중대와 청동 경비단일세. 그리고 우리도 얻어가는 게 있으니 신경쓸 것 없다네. 가끔은 이런 실전도 겪어줘야 깨달음이 막히지 않거든.”
펠버는 로브 소매로 땀을 닦아내며 말을 이었다.
“아, 침묵중대장은 저기 잠들어 있네. 은가면 사도와의 싸움에서 중상을 입어, 포션으로 치료한 뒤 안정을 취하는 중이야. 자네에게는 신세 많이 졌다면서, 꼭 사례하겠다 전해 달라 했네.”
사례라. 금화 많이 없다면서. 댈런은 낮게 웃었다.
“사도는?”
“침묵중대장이 직접 죽였다네. 내가 아는 그답지 않게 잔혹한 손속으로 마무리하더군. 솔직히 놀랐네.”
“저마다 사연이 있는 법이지.”
댈런이 말했다. 펠버는 갈색 수염을 움찔거리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맞네. 사연 없는 이가 어디 있겠나.”
“원로 마법사님!”
그때 한 마법사가 펠버를 급히 찾았다. 환자에게 포션이 잘 듣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펠버는 실례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황급히 달려갔다.
“이런, 마물의 부러진 발톱이 깊이 박혀서 그런 거야. 먼저 제거하고 치료해야 하네. 엘르―즈이툼.”
그의 나지막한 주문에 땅에서 여섯 손가락 달린 손이 올라온다.
흙의 손은 펠버의 의지에 따라,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환자의 환부를 헤집었다.
댈런은 그가 주문을 응용해 외과적 수술을 하고, 포션과 치유 주문으로 처리를 하는 모습까지 한동안 지켜보다 발걸음을 옮겼다.
‘갈 시간이군.’
그는 동굴을 걸어나가며 잠든 가웨인을 발견했다. 그는 부상을 입고 쓰러졌음에도 평온한 얼굴이었다.
아마 가족의 원수를 제 손으로 갚아서겠지.
팔다리가 다 잘려나간 은가면 악어인간의 시체는, 저 구석에 따로 보존되어 있었다.
타다닷.
댈런은 곁을 스쳐지나가는 한 젊은 마법사의 귀에, 지나가듯 속삭여주었다.
“원로 마법사께서 몰랐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말아라. 내가 봐도 다 티나니까.”
움찔.
마법사가 화들짝 놀란 순간, 로브 아래의 머리가 금색이 되었다가 황급히 다시 갈색으로 물든다.
댈런은 낮게 웃으며, 가보라는 의미로 그의 등을 툭툭 쳐주었다. 마법사는 잰걸음으로 후다닥 자리를 피했다.
이름이 토미였나. 이 어린 마법사는 하수도 사건 이후에도 아직 철이 덜 든 것 같았다.
‘펠버가 알아서 잘 교육하겠지.’
어디까지나 사제지간의 일. 그가 간섭할 영역이 아니었다.
몰래 따라온 걸 내버려뒀다는 건, 추측하건대 그만큼 이곳에서 많은 걸 배워가게 할 생각이었다는 것이겠지.
철 없는 소년이 철이 들기 위해서라면, 피 튀기는 전장만큼 좋은 장소도 없긴 했다.
마법사건 농부건 간에, 떳떳하게 살아온 노인들은 언제나 지혜로운 법이다.
저벅.
동굴 밖으로 나오니 동이 트고 있었다.
저 멀리 청동 성벽 너머, 울긋불긋 고개를 내미는 태양을 보며 댈런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만간 지부에 들리겠네! 얼굴 한 번 보세나!”
등뒤에서 소리치는 원로 마법사의 목소리에, 그는 손을 들어 휘적휘적 저어주었다.
오두막에서 치맥을 보고 와서 그런지, 자기 전에 시원한 맥주나 한 잔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