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33화 (33/288)

악마의 성검(5)

“그런 것 같소.”

댈런이 말했다. 그 대수롭지 않은 말투에, 펠버는 오히려 두 눈을 반짝였다.

“이럴 수가! 진짜였다니! 물론 자네라면 금방 도달할 거라 생각하긴 했네. 하지만 내 예상을 한참 뛰어넘었군!”

이 양반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댈런은 턱을 긁적이며 물었다.

“그렇게 대단한 거요?”

“그럼 당연하지! 영역을 이뤘다는 건, 자네의 그릇이 더 큰 힘에 걸맞음을 증명했다는 걸세. 토미, 우리 마탑에 영역을 이뤄낸 사람이 몇이나 있지?”

“스승님과 탑주님, 이렇게 두 분 계십니다.”

금발의 청년은 두 손을 공손하게 모아쥔 채 대답했다. 펠버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게나. 순은 구역에서 내로라하는 마탑인 우리 엘가이아에도, 영역을 이뤄낸 이는 단 두 명 뿐일세. 그릇을 증명했다는 건, 단순히 명석함이나 힘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야.”

후우.

너무 많은 말을 한 번에 쏟아냈는지, 펠버는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자신만의 심상을 담아낸 영역을 이뤄내는 건, 과거를 직시하고 극복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네.”

“흠.”

댈런은 턱을 쓰다듬었다.

‘과거를 극복한다라.’

짐작가는 게 없는 건 아니다.

그때 봤던 설산 위의 오두막에는, 그의 오래 전 모습이 그림자처럼 남아있었으니까.

열흘 가까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이 세계를 살아낸 경험이, 예전 세계에서의 자신을 책망하던 그 순간을.

그때.

댈런은 파도처럼 몰려오는 그 죄책감의 그림자 앞에서, 단 한 문장을 소리쳤다.

‘살아남기 위해서였다고.’

그저 회사원에 불과하던 시절.

삶에 들이닥친 폭풍들 속에서 발버둥치며, 그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게임을 비롯한 탈출구들을 찾아다녔다.

그건 거인마저 이길 전사가 된 지금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가 괴물과 사교도들을 때려잡고, 시체를 회수하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으니까.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비록 그가 택하는 방법과 수단이, 언제나 옳고 정당하다 말하지는 못하지만.

지나간 결과에 묶여 자책하며 세월을 흘려보내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을 살아내는 게 훨씬 나은 길이었다.

그건 그가 지금껏 살아온 흔적이자, 앞으로도 살아갈 방식이었고.

“허허, 내가 괜히 지나간 화두를 또 던졌나 보구만.”

노년의 마법사는, 생각에 잠긴 댈런을 바라보며 끌끌 웃었다. 댈런은 그 웃음에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끼익.

펠버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옥상 안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어쨌거나 이제 자네의 질문에 답해줄 차례가 됐구만. 그 전에, 영역을 다루는 법은 좀 알겠나?”

“하나도 모르겠소만.”

댈런은 고개를 저었다.

스킬을 사용하는 법은 안다. 스킬은 획득하는 순간, 필요한 모든 지식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니까.

고도의 지능 수치로 이를 분석해내고, 오랜 시간 실전과 훈련을 통해 체화해내는 것만이 그의 몫이었다.

반면 영역을 다룬다는 건 굉장히 모호한 이야기였다.

게임 설정상 그런 개념이 있다 정도만 알고 있었지, 실제로 모니터 너머에서 그걸 겪어본 적은 없었기 때문.

펠버는 뒷짐을 진 채 천천히 걸어가며, 댈런에게 재차 물었다.

“좋네. 그러면 영역이라는 게 어디에 만들어지는 건지는 아는가?”

“환상세계 아니오.”

이 역시 설정에서 본 내용이었다. 그러나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알지 못했다.

펠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걸었다. 댈런도 천천히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렇네. 영역이라는 건 환상세계에 구축되는 걸세. 우리가 숨쉬는 이 대륙과는 달리, 환상세계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 이 땅의 법칙에 구속받지 않고, 따라서 불가능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지.”

자박.

발밑에서 흙이 바스라졌다.

엘가이아 마탑의 옥상은, 대부분의 공간이 정원처럼 흙으로 덮여있었다.

인위적으로 관리하는 게 아닌, 자연 그대로 자생하도록 두는 정원.

겨울철 추위에 풀들은 누렇게 죽어있었고, 말라 비틀어진 낙엽은 그 아래에 잔뜩 쌓여 썩어가는 중이었다.

판석을 깐 좁은 도보만 제외하면, 마탑의 옥상은 작은 숲이라 해도 될 모습이었다.

“마법과 비의를 위시한 모든 신비들은, 원래라면 이 땅의 법칙에 위배되는 것들이네. 환상세계에 이미 구축된 영역을 이 현실에 내비침으로 만들어내는 기적인 게지.”

듬성듬성 자라난 나무들 사이를 지나가며, 펠버가 말했다.

“영역을 이뤘다는 건, 그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에 자네만의 가능성을 실체화시켰다는 이야기일세.”

“···어렵군.”

댈런은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예전부터 가능성이 어쩌고, 운명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잘 와닿지 않는 부분이었다.

이 세계에 떨어지기 전에도, 그는 대학에서 철학이나 사상 같이 추상적인 수업을 가장 싫어했었으니까.

물론 펠버는 그런 대학 교수들보다도 훨씬 연륜과 경험이 풍부한 스승이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조금 더 쉬운 예시를 들었다.

“쉽게 말해서 어떤 다른 세상가 있고, 자네가 그 세상의 작은 일부분을 점령했다고 생각하게나.”

“그 세상이 환상세계라는 거요?”

“그렇지.”

댈런은 피식 웃었다.

“그럼 내가 그 어딘가를 점령했다고 치고, 내 영토를 어떻게 사용하면 된다는 거요? 비의나 마법의 근원이라면서. 그것들과는 너무 다른데.”

“그건 한 번 보는 게 백 마디 설명보다 나을 걸세. 토미. 이만 내려가서 쉬거라.”

펠버는 뒤따라오던 토미에게 손짓했다.

젊은 청년 마법사는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허리를 꾸벅 숙이고는 옥상에서 내려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댈런이 고개를 기울이자, 펠버는 눈치 빠르게 이유를 설명했다.

“영역이 전개되는 장면을 보는 건, 아직 저 아이에게는 과분한 일일세. 오히려 낯선 마력의 흐름에 혼란만 생길 테야.”

원로 마법사는 그렇게 말하며, 누렇게 죽은 수풀을 발로 꾹꾹 다져 원을 만들었다.

“잘 보게나.”

앞으로 뻗어내는 두 손.

손목과 손가락을 돌려가며, 둥근 모양으로 맺어나가는 수인.

댈런은 허리띠에 손가락을 끼우곤, 잎이 다 떨어진 나무에 기대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휘이잉―

바람이 불었다.

덥수룩한 댈런의 머리칼이 그 바람에 천천히 흩날렸다.

어떤 강력한 폭풍이 아닌, 그저 산들바람 수준의 미풍.

“······.”

하지만 마법사를 멀뚱히 바라보던 댈런은 느낄 수 있었다.

일대의 공기의 흐름이, 조금씩 펠버를 중심으로 회오리를 그리듯 휘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 회오리의 한가운데.

펠버의 수인은 갈수록 복잡해졌다.

시선은 손끝에. 움직임은 부드럽게 이어지도록.

댈런의 높은 지능수치로도 그 그리는 모양을 이해하기 힘들어져갈 때쯤, 펠버가 입을 열었다.

“엘르―메멘토 엘레구스.”

우웅―

짤막한 영창.

공기가 떨리기 시작한다.

댈런은 본능적으로 감각을 한껏 확장했다.

오감이 곤두서고, 육감이 고개를 든다.

마력 감응력이 민감하게 깨어나며, 공기중에 흐르는 마력의 바람을 느껴낸다.

“말했다시피 영역을 이뤘다는 건, 작게나마 환상세계에 나만의 공간을 구축했다는 걸세.”

그리고 그는 느낄 수 있었다.

펠버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마력이.

공간을, 아니 세계 그 자체를 일그러뜨리고 있다는 것을.

그 일그러짐에서, 댈런은 문득 얼마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대사도와의 결전.

천둥을 빚어내는 일격을 위해, 온 몸의 근육을 올올이 깨어냈을 때.

‘그때도, 주변의 마력 흐름이 바뀌었다.’

마법을 사용한 게 아니었다. 그저 단 한 번의 공격을 심상 속에 새기며, 그 일격을 온몸으로 준비했을 뿐.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가 서 있던 공간은 마치 어떤 압이 내리누르는 듯 일그러졌다.

“깨달았나 보군.”

펠버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맞네. 환상세계에 이뤄낸 영역을 이 현실에 불러와, 이 땅의 불가능함을 무한한 가능성으로 덧씌워버리는 것.”

일렁―

파문이 일었다.

복잡한 수인 가운데에서 퍼져나간 마력이, 땅 아래로 스며들며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지면이 순간 울렁이는 듯한 감각에, 댈런은 손도끼를 움켜쥐며 반 걸음쯤 뒤로 물러났다.

두 눈을 금빛으로 빛내며, 펠버가 말했다.

“그게 영역을 사용한다는 것이라네.”

쉬이이익―!

일렁임이 파고든다.

단순한 마력이 아닌, 어떤 개념의 파동.

지면에서부터 올라오는 그 파문은, 댈런의 발끝부터 정수리까지를 순식간에 훑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대사도와의 결전에서 뻗어냈던 그의 주먹과는 달리, 펠버의 영역은 파괴적인 결과를 내놓지는 않았다.

허나 댈런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단 한 번의 주먹질로 강력한 힘의 폭풍을 일으키고, 수십 가닥에 달하는 악마의 촉수를 고깃조각으로 만들었던 것처럼.

펠버의 영역 역시,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한 어떤 현상을 이뤄내고 있다는 것을.

“후우. 나이가 드니 뭘 하든 힘에 부치는군.”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흙바닥에 앉아버리는 원로 마법사.

그는 가만히 생각에 빠진 댈런을 바라보며, 괜스레 더 골골대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떤가. 이제 영역을 사용할 수 있겠나?”

“그렇소. 하지만 아직 자주 사용할 수는 없을 것 같군.”

“원래 그런 걸세. 강력한 비의나 주문에는 강력한 제약이 따르는 법이지. 무사들의 수행과 마법사들의 연구가 다 그걸 극복해나가는 것 아니겠나.”

그리고 영역의 능력은 하나만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자네만의 능력들을 더 개발해보게. 덧붙이는 펠버의 말에, 댈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가닥을 잡았으니 어떻게든 될 것이다. 능력치의 균형을 맞추던, 다른 능력을 개발하던 간에.

이로써 마탑을 방문한 목적은 해결한 셈이었다. 나무에 다시 등을 기댄 댈런은 문득 물었다.

“노인장의 영역은 능력이 무엇이오?”

“나 말인가?”

댈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간을 울리던 파문은 사그라들었지만, 펠버를 중심으로 흐르는 기묘한 마력의 흐름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펠버는 게임 상에서 그렇게 비중있는 인물로 등장하지 않았기에, 댈런도 그 능력을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

기왕 맺어진 인연이니, 이참에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펠버는 길게 기른 갈색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러 능력이 있겠네만···기본적으로는 대지의 기억을 읽어내는 걸세. 대지에는 이 땅을 밟고 선 모든 이들의 시간이 기록되어 있지. 과거를 반추할 뿐만 아니라, 수없는 대지의 기억을 기반으로 흐릿하게나마 가까운 미래마저 내다볼 수도 있다네.”

펠버의 두 눈동자가 금빛으로 번뜩였다. 댈런은 허리띠에 꽂힌 도끼머리를 슬슬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판타지 버전 빅데이터인가.”

“···뭐라 했나?”

“아무 것도 아니오.”

댈런은 씩 웃었다. 펠버의 능력을 들으니 떠오르는 의문이 있었다.

이 세상에 떨어진 뒤, 가장 많이 되뇌었던 질문이자.

지난 2년의 시간동안 어느새 흐릿해지고 있던 기억.

잊지 않기 위해 종이에 적어두었던, 그의 가방 깊은 곳에 묻혀있는 혼란함의 잔재.

“그럼 하나만 더 물어보겠소.”

댈런은 천천히 펠버의 앞에 마주앉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누구요?”

***

다음날.

마탑에서 하루를 묵은 댈런은, 아침을 넉넉히 먹어두고 정오에 가까워져서야 느긋하게 길을 나섰다.

중앙광장에 접어드니 높이 솟은 결계탑 앞에 와글거리는 인파가 보였다.

루시아는 그 인파의 한켠에 서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광장에 나와있었는지, 그녀의 코와 귀는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많이 기다렸소?”

“아, 아니···에취! 아닙니다. 성기사에게 인내와 기다림은 일상의 미덕이지요.”

댈런은 픽 웃었다.

“들어가서 기다리지 그랬소.”

“에, 에취! 혹시라도 안 오시면 데리러 가려고······.”

“내가 어디서 묵었는지는 알고?”

“······.”

훌쩍. 투명한 콧물이 주륵 흐르는 게 안쓰러워보일 지경이다.

댈런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말했다.

“들어갑시다.”

“네, 네―에취!”

두 사람은 결계탑의 1층으로 들어갔다. 뭐만 해도 세금을 떼는 순은 구역답게, 입장료는 무려 은화 열 개나 되었다.

‘돈이 꾸준히도 빠져나가는군.’

댈런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순은 구역에 들어오자마자 돈주머니의 무게가 순식간에 반 이상 가벼워졌다.

‘이번에 미궁에 들어가면, 뭐라도 크게 한 탕 해야겠어.’

돈벌이가 될 만한 건 생각보다 많았다.

댈런은 머릿속의 목록을 훑어가며, 탐험가들로 바글거리는 넓은 홀 안에 적당히 자리를 잡았다.

잠시 그렇게 서 있자, 뒤늦게 입장료를 내고 들어온 루시아가 조심스레 곁에 다가와 나란히 섰다.

그녀가 물었다.

“이대로 기다리면 됩니까?”

“그렇소.”

“언제까지···?”

“저기 시계 보이지 않소. 정오가 되면 문이 열릴 거요.”

루시아는 댈런이 고갯짓한 쪽으로 눈을 돌리더니, 시계를 발견하고는 아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댈런은 그 모습을 보고, 또 한 번 낮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대체 이런 애송이가 어떻게 그 전설적인 성기사가 된 걸까.

수많은 마물과 악마의 피로 목욕을 했으나, 지나가는 아이가 건네는 꽃 한송이마저 거절하지 못하는 심성의 소유자.

단단함에도 한없이 부드럽고, 날카롭게 벼려졌음에도 따뜻함을 품고 있는 영웅.

악마 살해자라 불리는 루시아 카스타챌드의 과거가, 이렇게 덤벙거리고 미숙한 다혈질의 수습기사였을 줄이야.

“···긴장 안 되십니까?”

웃고 있는 댈런을 보고 루시아가 물었다.

“긴장되시오?”

“···조금요.”

조금이라. 뻣뻣하게 굳은 어깨와 목을 보아하니, 전혀 조금이 아닌 것 같은데.

댈런은 그렇게 정곡을 찌르는 대신, 다르게 접근하기로 했다.

“어려울 것 없지 않소. 미궁에 들어간다. 그쪽 친구가 실종된 곳으로 간다. 흔적을 추적해 악마를 처치한다.”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아가며 말하는 그를 보고, 루시아는 황당한 눈으로 반문했다.

“이게 그렇게 간단한 일입니까?”

“그렇게 간단한 일이오. 적어도 날 고용한 이상에는.”

그러니까 긴장 좀 풀라고, 수습기사 양반. 댈런은 그렇게 덧붙이며 루시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미래를 바꿔나가야 하는 댈런의 입장에서도, 지금은 전혀 나쁠 것 없는 상황이었다.

밑바닥에서 플레이어와 함께 성장하는 르베론 아하킴과 달리, 루시아 카스타챌드는 원래부터 완성형으로 등장하는 NPC.

그녀가 완성되기 이전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건, 이 또한 긍정적인 변수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 아니겠는가.

어쩌면 그토록 영입하기 힘들던 악마 살해자를, 등을 맞댈 동료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이번 회차의 악마 살해자는, 모니터 너머에서 보던 것보다도 더 강력한 모습으로 빚어질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댈런은, 멀리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왜 믿지를 못하시오. 성검을 가진 악마, 그놈은 지금 다 죽어가는 상태라니까.”

댈런은 고개를 돌렸다.

삼사백 명이 들어찬 결계탑의 1층 홀.

띄엄띄엄 간격을 두고 선 인파 사이로, 댈런은 눈에 익은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관에서 봤던 그 놈이군.’

썩 괜찮은 갑옷을 걸친, 민머리의 용병 출신 탐험가.

처음 보는 탐험가와 속닥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그는, 루시아에게 철퇴를 휘둘렀던 바로 그 용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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