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마을(2)
[뼛조각 하나 남기지 말고 잡아먹어라, 나의 종자들아!]
괴인의 목소리가 하수도를 쩌렁쩌렁 울린다. 댈런은 그 목소리에 반응하는 대신, 슬쩍 뒤를 돌아봤다.
“···왜?”
수천 마리의 괴물쥐들에게 사방이 포위된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에나의 얼굴에는 한 점의 동요조차 없었다.
단순한 배짱이 아니었다. 자신감이었다.
뒷골목에서 살아남으며 다져진 생존감각 위에,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더해져 비롯된 자신감.
‘그래, 이게 내가 알던 깃털의 마녀지.’
시에나 에클라시아.
초대 깃털의 마녀를 포함해, 모든 세대들 중 가장 강력한 오성을 품었다고 평가받는 존재.
모니터 너머, 지옥의 군세를 눈앞에 두고도 그녀는 태연하게 저런 표정을 지었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댈런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시에나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뭐야, 실없긴.”
“대충 이놈들을 근처에 묶어주시오. 금방 돌아올 테니까.”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어딜 다녀오려고?”
“숨어있는 쥐새끼를 잡아 와야지.”
스릉―
송곳니를 드러내는 웃음과 함께, 허리춤에서 성검을 뽑아든다. 칠흑 같은 어둠 속. 희미한 푸른빛이 졸졸 흐르는 수면 위에 은은하게 반사됐다.
“다녀와.”
양팔을 좌우로 넓게 펼치며, 주문의 준비를 시작하는 시에나가 그렇게 말하고.
퉁―
그 즉시, 어둠 속의 거체가 그림자처럼 흐릿해졌다.
스각―
늑대만 한 쥐가 반으로 나뉘었다. 위턱과 아래턱을 기준으로 한 깔끔한 양단.
위쪽 절반이 내장을 좌륵 쏟아내면서도, 붉은 눈은 마지막 순간까지 식탐으로 번들거렸다.
그로테스크한 몰골이었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전사의 몸뚱이 속에서 수년간 단련된 정신은, 저 정도에 감흥을 느끼기에는 이미 바래질 대로 바래져 있었기에.
촤자작!
가볍게 휘두르는 검끝. 그 끝에 휘감긴 회오리는 가죽은 물론 근육과 내장까지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콰르르륵―!
순간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에 검을 찔러넣자, 폭풍이 터져나오며 뒤따르던 십여 마리의 쥐를 더 갈아버린다.
촤아악―!
폭풍의 뒤를 이어 축축한 파도가 쥐 떼를 덮쳤다. 갈려나간 마물의 피와 체액, 하수도의 구정물이 뒤섞인 물세례였다.
그 자체로 피해는 없더라도, 상대가 사람이었다면 공포에 질려 달아날 만한 상황.
찍찍! 키이익!
찌지직!
그러나 동족의 피에 털가죽이 흠뻑 젖었음에도, 괴물쥐들은 저돌적인 돌격을 멈출 줄 몰랐다.
오히려 후각을 자극하는 혈향에 눈을 까뒤집고 더 미친 듯이 달려들기 시작하는 놈들.
‘빙고.’
바로 댈런이 노리던 바였다.
치지지지직―
성검에서 왼손을 떼어 앞으로 내민다. 손가락 사이에서 자연스레 일어나는 전격의 줄기들.
[쏘아지는 번개(D)]
- ‘레니아 바사크’. 전격술사들의 이동식 마탑이자, 세간에는 반쯤 전설이라 불리는 천공요새 바르샤바크의 마법. 전격 술식의 기반이 되는 심상인 번개를 소형화시켜 구현해내는 기초적인 주문이다.
- 숙련도 100%
심상의 기초가 되는 주문을 떠올리며, 휘몰아치는 마력의 바람을 한차례 비틀어내는 게 첫 단추였고.
손끝에서 한순간에 십수 차례 꼬아지는 전격 줄기들을 제어하며, 머릿속으로 그려내고자 하는 장면을 떠올려낸다.
‘쏘아지는 번개는 D등급. 그중에도 기초에 속하는 주문이지.’
전격술식은 빠르고 강력하다. 하지만 쏘아지는 번개는 그쪽 계파에서도 가장 기초가 되는 주문.
그 등급에 걸맞게 여러 제한사항이 붙었고, 결과적으로 1대 1 상황에서나 가까스로 쓸 법한 주문이었다.
제대로 된 전격술사라면 누구나 다룰 수 있는 저 기본적인 술식을, 심상의 힘을 빌려 한껏 비틀어내면 과연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까.
좁은 공간에 밀집된 개체들. 축축한 습기를 가득 머금은 털가죽들은 그걸 시험하기 최적화된 장소였다.
파짓, 파지직!
짧은 순간 스파크들이 튀어오르며, 전격 줄기의 범위를 급격히 불려나가기 시작한다.
중요한 건 수치화된 등급이 아닌, 그 능력을 새로이 엮어내고자 작정한 심상의 크기와 방향성.
더불어 더 높은 곳으로 뻗어나가고자 하는 향상심의 크기와, 그 모든 걸 아우르는 재능의 그릇일 뿐.
파지지지지―!
손아귀를 뒤덮는 걸 넘어선 전격의 그물이, 거대한 파충류의 앞발 같은 형상으로 구체화된다.
언젠가 진룡 청린을 향해 휘둘렀던 흑염의 발톱을 연상시키는 모습.
그 때의 일격을 떠올리며, 댈런은 하수도를 밝게 비추는 전광을 그대로 뻗어냈다.
「뇌조(雷條)」
콰지지지직―!
나무의 가지처럼 뻗어나가는 새파란 전격의 줄기.
처음의 굵은 동체로부터 수십 갈래로 스스로를 쪼개고 나눠내며, 비좁은 하수도를 형형한 빛깔로 채워나간다.
물기 맺힌 괴물쥐의 털가죽은 그 끝자락에 닿을 때마다 퍽퍽 터져나갔다.
순식간에 백여 마리의 쥐가 시꺼멓게 탄 숯덩이가 되어버리고, 감전당해 축 늘어진 숫자는 그 두 배 이상.
“···시발. 이거 나도 따끔하네.”
댈런은 전기에 뻐근해진 어깨를 풀며 손을 휘휘 털었다. 전격에 강한 흑철 갑옷을 입었음에도 누적되는 피로가 적지 않다.
술자가 감전될 수 있다는 건, 전격 마법이 가진 치명적인 단점 중 하나.
물론 온몸을 휘도는 용혈의 기운은 심호흡 한 번에 모든 피해를 수복해냈다.
착―
발목까지 잠기는 구정물 위를, 마치 마른 땅을 밟듯이 디뎌낸다.
새파란 벼락의 폭풍이 쓸고 지나간 통로에 발을 들이는 쥐는 없었다.
식탐에 미친 놈들인 만큼 겁에 질린 건 아니다. 그저 수분 가득한 공간에 남은 잔여 전류로 인해, 다른 통로로 접근하기를 택한 것일 뿐.
“녹스! 오벡스!”
그리고 다른 통로들로 머리를 들이미는 놈들은, 시에나의 주문에 착실하게 죽어나갈 테였다.
‘쥐 떼는 시에나가 붙잡아둘 테니, 시체 회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고.’
그렇다면 이제 남은 일은 하나뿐.
[······.]
언젠가부터 말이 없어진 괴인을 찾아내, 이 사태의 전말에 대해 적절한 질의응답의 시간을 가질 시간이었다.
***
숨어있던 쥐새끼를 찾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예전부터 환영이나 환상 계열 술식은 댈런에게 거의 통하지 않았으니까.
야간 시야에서 비롯된 고유 스킬, ‘파영의 마안’은 대부분의 신비와 환영을 꿰뚫어 볼 수 있었고.
설령 완전히 간파하는 게 불가능하더라도, 약간의 흔적만 발견하면 늪지의 시체에서 회수한 암월의 환상살해자를 사용하면 그만.
쿵.
“끄엑!”
쥐대가리를 한 수인의 머리를 도끼자루로 찍어 기절시킨 뒤, 댈런은 빠르게 시에나에게 합류해 나머지 쥐 떼를 쓸어버렸다.
무작정 힘을 쓰다가 하수도에 매몰되면 안되니, 새로 빚어낸 고유 스킬 ‘뇌조’를 적절하게 활용해가면서.
“비요른 영감이 당신이 고위 마법사일지도 모른다고 그러던데. 정말이었네. 마법사로도 3위계···아니, 4위계 초입인가. 뭐 이런 괴물이 다 있어?”
“마녀에게 괴물 소리 듣는 것도 신기한 기분이군.”
“···뭐라는 거야, 정말.”
시에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댈런은 낮게 웃었다.
숯덩이와 갈기갈기 찢긴 시체로 가득해진 통로의 교차점. 댈런은 기절시킨 랫맨을 깨우기 전에 시체를 먼저 회수했다.
[암월의 쥐 떼에 먹힌 거지의 시체를 회수했습니다. 능력을 계승합니다.]
[계승 보상 : 기량 +3, 합투권(고유)]
“흠.”
시체에서는 두 번째로 얻는 고유 스킬이었다. 나름 고인물이랍시고 거적때기 하나 걸치고 다니면서, 현란한 컨트롤로 모든 적들을 쓰러뜨겠다 생각하던 시절의 유산.
금화 한 궤짝 가까이를 털어서 순은 구역의 자택 지하에 수련장을 만드는 중이었으니, 머지않아 제대로 연구해볼 시간이 있을 듯했다.
“이 새끼는 어떻게 할 거야? 지금 깨울까?”
“그래야지.”
댈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시에나는 검지로 쥐대가리의 길쭉한 미간을 지그시 눌렀다.
“끄에엑!”
머지않아 발작하듯이 일어나는 랫맨. 놈은 주위를 휙휙 둘러보더니, 댈런을 발견하자마자 기겁하며 외쳤다.
“어,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끄아아악!”
“조용.”
우지직!
손가락 세 개가 한 번에 뜯겨나간 랫맨이 끅끅거리며 비명을 삼켰다.
놈의 손가락은 각각 여섯 개씩 모두 열두 개. 적당히 아껴서 쓰면 꽤 오래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듯했다.
첫 순서는 통성명이겠지. 댈런은 벌벌 떠는 랫맨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암월단의 하급 간부, 벨벨라토르 스카이마스.”
“···나, 날 어떻게 알지? 까마귀 둥지의 정보상은 분명 네가 아니라······.”
“전문 분야는 이쪽이 더 해박하지만, 나도 두루두루 좀 아는 게 많거든. 그리고 하나 더. 질문은 나만 한다.”
우직! 콰직!
이번에는 두 개. 다만 두 번에 걸쳐서 하나씩 떼어냈다.
순식간에 왼손에 엄지만 남은 랫맨이 하수도가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
물론 잠시뿐이었다. 남은 엄지마저 잃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무, 물어봐. 뭐든···뭐든 대답해줄게.”
“입이 싸군. 암월단의 일원답지 않은데. 아직 상급 간부진들은 깨어나지 않은 건가?”
“어떻게 그런 것까지···아, 아냐! 내가 잘못했어. 상급 간부들은 깨어나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암면이 끝날···끄아아악!”
이로써 놈의 왼손은 그냥 왼손바닥이 되었다. 댈런은 일어나서 한 발 물러섰다. 그가 궁금한 건 끝났으니, 이제 시에나에게 남은 심문을 진행하라는 뜻이었다.
물론 허리춤의 도끼를 톡톡 건드려줌으로써, 바뀐 심문자에게도 협조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건 당연했고.
“고마워, 댈런.”
바통을 넘겨받은 시에나가 랫맨의 앞에 삐딱하게 섰다. 그녀는 품속에서 작은 편지를 꺼내 놈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자, 쥐새끼 씨. 어디 이 협박문을 누가 적었는지 낱낱이 실토해볼까?”
***
랫맨은 협박 편지를 보낸 장본인이 아니었다. 놈은 그저 이번 일의 배후에 고용된 용병일 뿐이었다.
그 배후가 누구냐는 질문에도 놈은 대답하지 못했다. 알려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몰라서였다.
‘끅, 끄으···진짜 모른다니까. 얼굴에 밋밋한 가면이랑 주문까지 덧발라서 알아볼 수가 없었어.’
‘체구나 문신 같은 특징은 있었을 거 아니야. 하다못해 옷차림이라도.’
‘자, 작은 체구···정보상 너보다 머리 하나는 작았어. 항상 칙칙한 색의 두꺼운 로브를 걸치고 있었고.’
“두꺼운 로브에 작은 체구라.”
댈런이 중얼거렸다. 그 말에 곁에서 걷던 시에나가 고개를 돌렸다.
“너무 모호해. 지금까지 모인 단서라고 해봐야 마약, 흑마법사, 악마, 그리고 쥐새끼가 말한 게 전부인데.”
시에나는 짜증 어린 표정으로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정보상인 그녀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 답이 없는 문제였다.
물론 조악한 컨닝 페이퍼라도 수백 장씩 들고 있는 입장에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게 가능했지만.
댈런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마약에 중독되었던 부랑자의 최후를 생각해보면, 흑마법사 놈들이 추종하는 악신을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다.
‘역병의 악신 라필렘.’
끝없는 변화와 모방, 뒤틀림을 추구하는 놈은 악신들 중에서도 시각적으로 가장 혐오스러운 부류였다.
그리고 라필렘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할 무렵이면, 반드시 플레이어의 진로를 가로막는 보스몹이 몇 마리 존재했다.
작은 체구. 거기다 특색 없는 로브. 이 두 가지 특징을 고려해보면, 답안지는 하나로 좁혀지기 마련.
‘···하지만 그년은 아예 게임 후반부가 근접해야 나오지 않나?’
아무리 진행 속도가 빠르다지만, 이건 선을 좀 많이 넘은 것 같은데.
“···짐작 가는 게 있나 봐?”
“글쎄.”
“하여간 비밀도 많다니까. 친구라면서 나한테까지 그러기야? 나는 비밀 없는데.”
“친구라도 사생활은 존중해줘야 하는 법이지. 그리고 친구 사이에 거짓말하면 천벌 받소.”
“말은 잘해요. 신도 안 믿는 불경한 야만인이면서.”
들으라는 듯이 투덜거리는 시에나. 살짝 뾰루퉁한 표정으로 눈썹을 추켜올리는 게, 그녀를 잘 몰랐다면 귀여운 반전이라고 느낄 법한 모습이었다.
‘정보상은 외모도 무기로 갈고 닦아야 한댔었나. 하여간 여우라니까.’
언젠가 모니터 너머의 그녀에게 들었던 대사를 떠올리며, 댈런은 슬슬 고개를 털었다.
그의 예상이 맞는지 아닌지는 시간이 해결해줄 테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추적술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정보원들이 죽은 장소를 찾아가는 게 먼저.
남부 지구와 서부 지구 사이의 낮은 거리, 경계선 마을이 두 사람의 목적지였다.
“거의 다 왔어. 저쪽 모퉁이만 돌면 공동이 나올 거야. 예전에 원로 마법사 제자 구한다고 하수도의 공동에 갔었다고 했지? 경계선 마을이 있는 공동은 그보다 열 배는 더 클걸.”
시에나의 목소리는 미묘하게 격양되어 있었다. 댈런은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며 앞서서 모퉁이를 돌았다.
찰박.
“······.”
공동에 접어들어 멈춰선 발걸음.
“응? 왜 멈추···어어?”
뒤따라온 시에나의 당황한 목소리.
그녀의 말대로 공동은 거대했다. 작은 규모의 마을을 통째로 집어넣어도 전혀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실제로 경계선 마을의 모습 역시 그와 비슷했다.
높게는 삼, 사층 짜리 솟은 수십 채의 건물들. 낮은 거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규모의 마을 전경.
“이게 무슨···?”
그러나 그들을 반기는 마을의 모습은, 어딘가 단단히 잘못되어 있었다. 시에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댈런도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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