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137화 (137/288)

경계선 마을(4)

전투는 곧바로 시작되었다.

푸드드드득!

허공을 찢는 날갯짓 소리와 함께, 두 흑마법사 중 하나의 가슴팍이 움푹 들어간 게 첫 순서.

“스켈! 크윽, 이 저주받을 마녀가!”

그리고 피를 쏟으며 쓰러진 동료를 보며, 당황한 동료 흑마법사가 지팡이를 치켜들기도 전.

번쩍이는 빛의 원반이 놈의 미간을 향해 날아든 게 두 번째였다.

파앗―

원반이 놈의 코앞까지 다다른 순간, 진녹색의 보호막 주문이 발현되었다. 원반은 목표하던 미간에 닿지 못했다.

콰장창!

마도구로 만들어진 보호막을 깨부수고 굴절되어, 귀 한 쪽을 잘라낸 채 떨어지는 단검.

“······.”

단검에 새겨진 기사단의 문양을 본 댈런은, 다시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투척 단검의 주인, 루시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댈런의 싸움법을 좀 흉내내봤습니다. 흑마법사들 상대로는 제격이더군요.”

“···그렇군.”

댈런은 턱을 긁적였다. 모니터 너머의 악마 살해자는 단검 투척 같은 잡기는 쓰지 않았는데.

‘상관없겠지.’

언제나 그랬듯, 변수는 많을수록 좋은 법이다.

수백 번의 종말을 봐온 그의 예상을 깬다는 건, 그만큼 닫힌 결말에서 멀어져가고 있다는 뜻이니까.

“흐하하하! 재밌는 재주로구나. 귀족들 앞의 광대처럼 단검을 던져대는 성기사라니!”

그때 암흑기사가 웃음을 터뜨렸다. 댈런은 눈썹을 슬쩍 들어올렸다.

벌써 다섯 중 둘이 죽고 흑마법사 하나는 충격으로 주저앉아 버렸음에도, 놈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애당초 전력 외라고 상정한 것이겠지.’

제대로 된 흑마법사는 흔하지 않고, 본격적인 전투가 가능한 건 그보다도 더 드물다.

아마 흑마법사들은 제물을 수급하고 마약을 제조하는 역할일 뿐, 실질적인 전투원 취급은 못 받고 있겠지. 이번 사건의 제대로 된 주동자는 놈들이 아닌 암흑기사라는 소리였다.

‘···아니, 정확히는 중간 관리자쯤 되겠군.’

댈런은 빠르게 생각을 정정했다.

암월단의 하급 간부, 그 쥐쟁이를 심문하며 나온 인상착의는 저중 누구에게도 없었으니까.

작은 체구. 특색 없는 로브.

만약 그녀가 여기 있었다면, 댈런 역시 이렇게 여유로운 태도는 아니었을 터.

“악마 살해자라고 했나? 어디 그 알량한 단검이 라필렘의 사랑을 받는 자, 포식과 피식의 융합체, 만족하는 거대한 아가리, 악마 벨제붑의 본체에도 통할지 시도해봐라!”

쿠웅.

댈런이 빠르게 상념을 정리해낼 즈음, 마침내 악마가 지옥문을 비집고 나왔다.

라필렘 휘하의 수많은 악마들 중 하나, 벨제붑은 거대한 두꺼비 형태의 괴생명체였다.

개구리 뒷다리 같은 다리가 넷. 뒤틀린 사람의 팔처럼 생긴 앞다리가 둘.

미끌거리는 피부는 끈적한 점액으로 뒤덮여 있고, 몸통에는 수많은 파리들의 머리와 날개, 다리가 돋아나와 위잉거리고 있었다.

[파리지옥에 빠진 사냥꾼의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알림창을 지우고, 성검을 늘어뜨린 채 놈을 훑어본다.

그리고 그의 시선을 의식한 것일까.

부우우우웅―

불쾌한 소리와 함께, 벨제붑의 거체가 천천히 떠오른다.

몸통 여기저기 달린 수백 개의 파리 날개들이 일제히 날갯짓을 시작한 것.

머리통에 수백 개의 작은 점 같은 눈동자가 다닥다닥 붙어 댈런을 내려다보고.

마치 불타 녹아내린 듯 축 늘어진 살덩이의 머리통 안쪽에서, 놈의 거대한 아가리가 벌어졌다.

[그어어어어······!!]

사람의 언어가 아니었다. 그저 외마디 절규에 가까운 외침.

그것만으로도 공기가 떨리며, 역병의 파도가 댈런을 향해 몰아쳤다.

콰과과과―

닿는 모든 것을 썩어 문드러지게 만드는, 지옥에서 비롯된 탁한 진녹색의 기운.

댈런은 여전히 검을 들어올리지 않았다.

“조심···!”

루시아의 외침에 어깨를 으쓱하며, 그저 왼손을 뻗어 앞으로 내밀었을 뿐.

쩌저저저적!

그러자 왼어깨의 갑옷 틈에서 폭발하듯 빛이 뿜어지며, 반투명한 역장이 역병의 파도를 가로막았다.

마치 어떤 벽에 막힌 듯, 맥없이 튕겨나가 소멸하는 진녹색 기운.

“역병 저항의 신성문신······. 이럴 수가, 저 야만인이 성기사라고?”

그 모습을 본 암흑기사의 입이 마침내 떡 벌어졌다. 댈런은 그제야 검을 들어올렸다.

“인종차별자 새꺄, 넌 나랑 이야기 좀 하자.”

그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

“전쟁의 신이시여!”

밝은 섬광이 날아간다. 선명한 초승달 형태였다.

성기사들만 쓸 수 있다는 신성 검기를, 검에 엮은 걸 넘어서서 적을 향해 날려보낸 것.

꽈과과광!

[그아아아아!]

미끈거리는 피부에 검기가 충돌하자, 악마가 몸뚱이를 뒤틀며 고통스러운 괴성을 질렀다.

지옥의 마력으로 덧칠된 몸뚱이라 한 번에 잘리지는 않았으나, 체액으로 뒤덮였던 피부는 두꺼운 껍질과 가죽이 홀랑 벗겨진 상태.

물론 공격은 그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파른! 다리를 노려라!”

“예!”

수습기사를 먼저 보낸 루시아가 가볍게 발을 움직였다. 몇 번의 디딤발에 이어, 자연스럽게 디뎌낸 건물의 흙벽.

콰아앙!

신성문신의 힘을 끌어올려 발밑을 걷어차자, 허술하게 지어진 건물 벽이 와르르 무너진다.

한 줄기 섬전이 된 그녀의 신형이 악마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번뜩이는 백색의 화염.

쩍 갈라지는 암녹색 피를 뱉는 살거죽.

그리고.

[그워어어억!]

그 이명에 걸맞는, 거대한 아가리가 내지르는 비명.

콰광! 콰과광!

루시아는 온몸의 신성문신에서 빛을 뿜어대며, 건물들의 벽과 지붕을 밟고 악마의 머리를 노렸다.

놈도 길쭉한 앞발로 반격하려 했으나, 허공을 휘젓는 발길질은 애꿎은 건물만 무너뜨릴 뿐.

“흐아앗!”

[그억!]

파른 역시 신성력 머금은 검으로 놈의 다리를 베어대며, 끊임없이 주의를 분산시켰다.

한 명의 성기사와 수습 기사가 악마의 본체를 몰아붙이는 기상천외한 광경.

아무리 벨제붑이 하급 악마에 방금 막 소환된 상태라지만,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 싸움은 평범한 상식을 벗어난 광경이었다.

“녹스! 오벡스!”

“캬아아악!”

물론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싸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번의 주문으로 다수의 충격파를 쏘아내며, 퇴로마저 예측해 가로막는 시에나의 주문.

그 주문에 얻어맞고 날아가는 그림자 엘프의 위로, 반투명한 깃털의 비가 칼날처럼 내리꽂혔다.

“컥! 카학!”

그림자 엘프의 비술로 빠르게 몸을 내뺐지만, 이미 대여섯 개의 깃털이 그녀의 팔다리를 파고든 이후.

그러나 고통에 몸서리칠 새도 없이, 다시금 날아오는 충격 마법을 피하기 위해 그림자 엘프는 몸을 날릴 수밖에 없었다.

“···너희는 대체 누구냐.”

어느새 판금이 군데군데 찢겨나간 암흑기사는, 그 모든 광경을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 일이다. 놈들이 해낸 일은 자칫 청동 구역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난민들을 이용해 비술을 가미한 마약을 낮은 거리에 유통시키고, 그 결과 한 마을의 주민들을 통째로 증발시켰다.

이후에 계획했을 일들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는 않았을 터.

성기사 둘과 야만전사 용병, 그리고 뒷골목 정보상 정도야 충분히 상대할 자신감이 있었겠지.

“에낙사구스 님께서는 이런 이야기는 해주지 않으셨는데. 신의 눈을 피해 이만한 힘을 쌓다니, 어떻게 된 거냐···!”

암흑기사가 발악했다. 댈런은 피식 웃었다.

“야, 검이나 들어라.”

“···끝까지 나를 농락할 셈이냐? 네 실력이면···.”

“악신 따까리 입으로 농락이니 뭐니 하는 것도 웃긴 일인데.”

“따···뭐?”

대답은 없었다. 댈런은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자 허리띠에서 도끼가 스스로 뽑혀나와, 암흑기사를 향해 거침없이 날아갔다.

패래랙― 까앙!

“크윽!”

암흑기사는 검을 뻗어 가까스로 막았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튕겨난 채 수 미터를 날아가다가, 휘릭 반 바퀴 돌아 다시 쏘아지는 손도끼.

까아앙!

다시 격검. 한 번 더 튕겨나가고. 비스듬하게 휘돌아 다시금 들어간다.

깡―!

얕게 흘려냈지만 어깨받이가 찢겨나간다. 한 번 더 손을 까딱였다. 이번에는 아래에서 위쪽 사선으로.

까앙!

흘려내자 다시 한 번 짧게 돌아 뒤통수를 향해.

패래랙―!

“크윽!”

의지를 품고 손가락을 까딱이는 것만으로도, 손도끼는 마치 고무줄에 묶인 것마냥 암흑기사의 주위를 맴돌았다.

계속되는 격검의 소음. 끊임없이 튀어오르는 불꽃.

시간이 지날수록 암흑기사의 갑옷은 누더기가 되어갔고, 놈의 눈 역시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어지간히 급한가 보군.’

무법 그 자체인 흑마법사나 암흑기사에게도, 철저하게 금기시하는 일이 존재한다.

타인의 영혼이야 수백 단위로 바쳐도, 스스로의 몸과 영혼만큼은 바치지 않고 지켜야 한다는 것.

찢긴 갑옷 사이로 줄기줄기 흘러나오는 검은 연기 같은 기운은, 놈이 그 금기를 깨고 스스로의 몸과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넘겼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마침내.

패래랙―

지옥의 마력에 취한 놈의 이성이 끊어졌다.

“크아아아아!”

까아아앙!

날아드는 손도끼를 거칠게 쳐내고, 곧장 땅을 박차 댈런을 향해 달려든다.

삼십 미터에 달하는 거리였음에도, 좁혀지는 건 말 그대로 눈 깜빡할 사이.

드러난 팔다리와 얼굴에 피칠갑을 하고, 검은 마력을 눈에서 흘려내는 놈은 사람이라기보다 악마의 현신 같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저렇게 모든 걸 바친 흑마법사는, 인간성을 상실한 마물이 되어버리니까.

“죽어라아아아!”

메아리치듯 기괴하게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놈의 검이 검푸른 마력으로 빈틈없이 덧씌워졌다.

쉭―

내지르는 검격의 소리는, 공기를 가른다기보다 아예 잘라버린 듯한 파공음.

검을 뒤덮고도 모자라 줄기줄기 흘러넘치는 흑마력을 향해, 댈런은 차분하게 성검을 가져다댔다.

‘찢어낸다.’

심상을 일깨운다.

그 근원은 오롯이 스스로의 재능으로 꽃피운 것.

[라판텔라의 분쇄검(C)]

- 동부 기사왕국의 왕실에 대대로 내려오는 검술 중 하나. 극단적으로 공격에 치중된 양손검술이다. 방어마저도 공격의 일부로 생각하고, 그 모든 공방에서 파괴력 하나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 검술을 창시한 이는 검에서 폭풍을 불러낸다는 전설에 ‘폭풍왕’이라는 이명을 가졌다고 한다.

- 숙련도 100%

비틀려 새롭게 빚어지는 스킬은, 그 심상을 전달하는 매개체일 뿐이다.

‘라판텔라의 분쇄검은 극단적인 파괴력을 추구하지.’

압도적인 크기의 힘으로 눈앞의 모든 걸 갈아버리는 것이야말로, 분쇄검에 담긴 심상이자 골자.

댈런이 하고자 하는 건, 그 파괴력을 확산하는 대신 응축하는 일이었다.

찌지지직―

공간이 찢어진다.

아니, 찢어진다기보다는 지워짐에 가까웠다.

검에 담긴 회오리가 일점에 집중되며, 흩뿌리던 파괴력 역시 국소 범위로 모여들었다.

그 결과는, 검끝에서부터 시작되는 마력 체계의 소멸.

「말원(抹原)」

치지지지직―!

지구의 라디오에서 나는 잡음 같은 소리와 함께, 암흑기사의 검신에 맺힌 기운이 흔적도 없이 증발했다.

“이, 무···슨······.”

캉―!

반토막나서 날아가는 검. 암흑기사는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빈손을 내려다봤다.

댈런은 무덤덤하게 검을 휘둘렀다. 갑옷째로 쪼개진 암흑기사의 몸이 축축한 흙길에 처박혔다.

그리고 얼마 뒤.

쿠웅―

피범벅이 된 그림자 엘프의 시체 옆, 루시아의 검에 잘린 악마의 머리가 떨어지며 전투는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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