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244화 (244/288)

244

무너진 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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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댈런

레벨 : 49

[근력 : 77] [기량 : 68] [체력 : 68]

[감각 : 70] [지능 : 69] [마력 : 74]

스킬 : 데하만의 갑주격투(D), 야간 시야(E), 도약(E), 불꽃 화살(D), 라판텔라의 분쇄검(C), 헤갈레우스의 화염의 비(C), 쏘아지는 번개(D), 저주막이의 인장(D), 레레도나라의 비검(B), 성화의 불씨(C), 검붉은 용의 피(A), 지옥문의 열쇠(C), 아커만의 작도법(C), 필즈의 바람 결계(C), 화영창술(D), 살아 움직이는 뿌리(D), 급속 발아(D), 룰리아의 샘물(C), 영혼 착취(B), 치유의 기도(D), 스카디의 해일(B), 카스마의 붉은 바람(B), 모래바람 왕조의 탄령(B), 용골 가공(B), 망자들의 왕(S)

*고유 스킬(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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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 한쪽을 빼곡하게 채우는 상태창의 글자들.

평균 70대에 접어든 능력치와 수십 개의 스킬, 그리고 각 스킬에서 비롯된 수많은 고유 스킬들.

스킬 하나 없이 조촐했던 예전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중에도 댈런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 스킬 항목의 끄트머리에 추가된 새 스킬이었다.

‘망자들의 왕.’

S급.

이 게임에서 가장 높은 등급.

그 바로 아래인 A등급 스킬조차도 하나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마저도 바로 얻은 게 아니라, 기존에 가지고 있던 C등급 스킬의 잠재력이 각성한 케이스였다.

‘하수도의 실험체 시체에서 용혈의 재생 인자를 얻었고, 청린과 상대하면서 완전한 용혈이 깨어났지.’

그렇게 얻은 스킬 ‘검붉은 용의 피’는, 댈런이 가진 스킬들 중에서도 단언컨대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 할 수 있었다.

진룡의 초월적인 재생 능력.

대룡의 검붉은 겁화를 다룰 수 있는 권능.

무엇보다 용혈은 심상 너머 설산에 눌러앉은 고룡, 적창의 근원이나 다름없었다.

사선을 넘나드는 싸움에서 그녀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것만 몇 번인지.

‘그게 A등급 스킬이었으니, S등급은···.’

쿠구구구구······!!

상념을 뚫고 굉음이 귓가를 쩌렁쩌렁 울린다.

단순한 소리를 넘어 피부를 저릿하게 만드는 진동. 지천으로 깔린 뼛조각들이 제멋대로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진동의 근원지는 황금빛 장막 너머였다.

펠버의 의지에 따라 서서히 흐릿해져가는 장막 너머, 칙칙한 백색의 뱃머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우우우······.

하늘 위, 원혼의 구체가 울부짖는다.

반가움인지 절규인지 알 수 없는 비명의 합창.

유령선은 그에 화답하듯 한층 더 빠르게 노를 젓기 시작했다.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돛. 그 아래에서 부산스레 움직이는 망령 선원들.

촤르르르― 쿠궁!

용의 머리뼈로 만들어진 네 개의 닻이 지면을 긁으며 유령선을 허공에 멈춰 세우고.

휘청이면서도 자로 잰 듯 정확하게 돌아선 배의 측면에서, 수백에 달하는 포문이 일제히 댈런과 일행을 조준한 순간.

[놈들을 갈아버려라.]

부스러져 흩날리는 황금빛 장막 너머에서, 백작의 전성이 울려 퍼졌다.

꽈과광! 콰과과광!

수백 문의 대포가 일제히 불을 뿜는다.

응축된 사기를 그 영혼째로 뭉쳐 만든 포환이 우박처럼 쏟아진다. 그 뒤를 따르는 건 원혼의 찌꺼기를 저주의 촉매로 덧입힌 화살비였다.

어지간한 도시의 성벽이라도 이런 일제사격 앞에서는 단번에 초토화되겠지.

당대 사령술의 정점에 올라, 말 그대로 일인군단이라 불리는 뱀파이어 백작의 공세다웠다.

우어어어어···

꺄아아악!

하늘을 수놓는 귀곡성 아래에서, 댈런은 가만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는 턱을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멈춰라.]

정적이었다.

귀를 찌르는 포성. 하늘을 울리는 귀곡성.

그 모든 게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춘 광야에는, 잠시 동안 정적만이 맴돌았다.

공기마저 숨죽인 것 같은 침묵. 아니,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유령선에서 쏟아져 공기를 가르던 포화 일체가, 시간이 멈춘 듯 제자리에서 정지해 있었으니까.

비틀.

황금빛 장막이 소멸한 경계 너머.

창백한 얼굴의 뱀파이어 백작이,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비척이며 걸어 나왔다.

“······무슨.”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백작의 눈이, 하늘에 펼쳐진 기이한 광경을 하나씩 훑었다.

쏟아지다 말고 허공에 딱 멈춘 원혼 포탄들.

그 뒤를 따르다 마찬가지로 허공에 멈춰선 수천 발의 화살.

힘차게 저어지던 유령선의 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고, 팽팽하게 부풀었던 돛은 축 늘어진 채 흐느적거렸다.

무풍지대에 표류하는 배처럼 제자리에서 출렁거리기만 하는 유령선의 모습.

“이게······.”

댈런은 넋을 놓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시선을 조금 내렸다.

놈의 손은 피투성이가 된 사람 하나를 붙잡고 있었다. 마탑주 펠버였다.

쐐─

공간을 빗겨간 도끼가 그 손을 잘랐다. 힘없이 붙잡혀있던 펠버가 털썩 엎어지며 윽 하는 신음을 냈다.

신음 낼 힘이 있는 걸 보니 아직 멀쩡하군. 하긴 욕할 정신도 있었으니 죽지는 않았을 테였다.

“이럴 수는 없다. 어떻게 내 함선을 멋대로 멈춰 세울 수가 있단 말이냐! 네놈의 사령술이 나보다 뛰어날 수는 없거늘!”

뱀파이어 백작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잘린 손목에서 울컥울컥 피가 쏟아졌다. 그래서인지 안 그래도 창백한 놈의 얼굴은 완전히 하얗게 질려 보였다.

“설마 혈령선의 허점을 발견한 건가? 소환의식 자체에 취약점이 있었나! 무슨 편법이지? 대답해라! 대답해, 인간!”

“존나 시끄럽네.”

쐐―!

손목을 살짝 털자 도끼가 하나 더 날아갔다. 도끼는 백작의 발목을 정확하게 노렸다.

“크윽!”

「망원적(亡怨積)」

촤자자작!

재빠르게 원혼과 백골이 벽을 쌓아 올려 도끼를 막아섰지만.

콰직!

강철보다 단단한 벽은 도끼에 닿은 순간 썩은 나무만도 못하게 바뀌었다.

“크아악!”

발목이 반쯤 잘린 채 뒤로 엎어진 백작. 하나 남은 손을 놀려 필사적으로 기어간다.

댈런은 손목을 살짝 털며 성큼성큼 놈에게 걸어갔다.

[떨어져라.]

그가 다시 입을 열었고.

쿠구구구구──

유령선이 침몰했다.

***

허공에서 어색하게 멈춰 섰던 포탄과 화살들이, 하나같이 힘을 잃은 채 후두둑 떨어진다.

그 위로 드리워지는 거대한 범선의 그림자.

지면과 부딪힌 유령선은 땅에 구덩이를 만드는 대신, 연약한 도자기처럼 박살나 비산했다.

부서진 원령의 잔해들이 사방으로 흩날렸지만, 그 무엇도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돌아가라.]

우으으······.

원혼들은 댈런의 명령에 곧바로 연기처럼 흩어지며, 안도의 신음을 메아리처럼 남겼을 뿐.

“크으으윽!”

뱀파이어 백작이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놈의 하나 남은 손이 수인을 맺었다.

「참령옥수(塹靈獄手)」

「백사령(白死靈)」

땅이 쩍 갈라지며 수십 개의 거대한 팔이 솟구쳤다.

창백한 손가락 끝에서 새까만 손톱이 길게 자라고, 손바닥에는 망령의 붉은 눈동자가 희번뜩거리는 팔이었다.

댈런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막거나 피하지도 않았다.

그저 귀수(鬼手)의 파도 사이로 걸어 들어가며 속삭였을 뿐.

돌아가라.

한마디에 귀수의 원혼들이 흩어진다.

「망위군세(妄僞軍勢)」

돌아가라.

한마디에 검은 두건을 쓰고 일어난 수백 마리의 귀병들이 안식을 되찾는다.

「참령율궤(斬靈律軌)」

돌아가라.

한마디에 영혼을 자르며 고문하는 지옥의 바퀴가 그 동력을 잃고 고철로 변하고.

「구천을 떠도는 원혼들의 아비규환」

「백귀야행(百鬼夜行)」

돌아가라.

한마디에.

츠즈즈즈즈···!!

하늘에서 유성처럼 떨어진 거대한 원혼의 집약체이자, 뱀파이어 백작이 완전개방한 영역의 정수마저도.

새빨갛게 달군 돌에 떨어뜨린 작은 물방울처럼, 찰나의 지글거림만을 남긴 뒤 날아갔다.

“우욱! 커어어억!”

가까스로 일어섰던 백작이 다시 엎어졌다. 영역이 강제로 날아간 반동에, 놈의 입과 코에서 검은 피가 왈칵 쏟아졌다.

펠버의 몸에 포션 몇 병을 끼얹어준 댈런은, 느긋하게 걸어가 그 앞에 섰다.

그러자 죽은 피를 토하던 뱀파이어 백작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쿨럭! 혈령···혈령께서······.”

“뭐?”

“설마···혈령께서 네놈에게 권능을 내리셨나? 나를 버리고 새 기수를 받아들이신 건가?”

무슨 소리 하나 했더니 아직도 그 이야기였나.

댈런은 가만히 손을 들었다. 그러자 혈령과 싸웠던 곳에 두고 왔던 성검이 손안으로 들어와 안착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백작은 쉬지 않고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다. 놈이 피를 뚝뚝 흘리며 말했다.

“만약 네가 새 기수라면···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 함께 세상을 불태우고, 정복하고, 우리의 발밑에······억!”

툭 하고 떨어진 머리.

댈런은 검을 휘둘러 칼날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면, 머리가 잘리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초월자는 많지 않다.

뱀파이어 백작은 그런 존재이긴 했지만, 성검에 목이 잘린 이상 놈에게도 별다른 수는 없었다.

“후우.”

댈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 여정이었다.

대륙 북부에서 쑴의 화신체를 죽이고, 머나먼 남부의 제국으로 내려와 혈령과 뱀파이어 백작의 목을 떨어뜨리기까지.

“토미! 스승님을 챙기거라! 그리고···댈런? 댈···!”

“영감, 가방에 넣어뒀던 체력 물···.”

[아버···!]

그래서일까.

예민하게 돋아났던 감각이 순간 흐트러지고, 들려오는 소리들도 꿈처럼 몽롱하게 울린다.

흐릿해지는 눈앞. 서서히 기울어지는 시야.

사실 혈령과 싸우며 이미 몸은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영역을 완전개방한 것만으로도 그의 영육은 힘을 바닥까지 사용했고, 백작을 쓰러뜨리기 위해 처음 사용한 S급 스킬은 남은 여력마저 모조리 소모시켰다.

[···그래. 우선은 휴식을 취하거라. 내가 자리를 지키마.]

그래도 힘겨운 고비를 하나 넘었으니, 조금은 쉬어도 괜찮겠지.

아득해지는 감각 속에서, 댈런은 저항하지 않고 몸을 내맡겼다.

둔탁한 충격이 등에 느껴졌다.

기억의 마지막이었다.

***

대륙 남단의 대수림은 위험한 곳이다.

그 위험성은 햇빛이 조금이나마 드는 낮보다, 깜깜한 밤중에 극대화됐다.

달빛과 별빛은 수십 미터 높이로 자란 나무들에 가로막혀 땅에 닿지 못했다. 지상에 내려앉은 어둠 속에서는 포식자가 안광을 번뜩이며 먹잇감을 찾아다녔다.

개중에는 수준급의 술사나 전사를 찢어발길 수 있는 맹수나, 소리 없이 희생자를 집어삼키는 거대 식물도 존재했다.

드넓은 땅을 개척하고 정복한 제국이, 유독 남부 대수림만큼은 건드리지 못한 이유였다.

“힉, 찍, 찌익···.”

그 대수림 깊은 곳. 암월단의 본거지 대전당.

룩시시투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았다.

한나절을 훌쩍 넘게 전력질주해도 지치지 않는 폐부가, 당장에라도 찢어질 듯이 아려왔다.

대수림의 짐승이나 식인식물 같은 것들 때문은 아니었다.

애당초 암월단의 다섯째 손가락인 룩시시투카 타브렐라가, 그따위 동식물에 목숨에 위협을 느낄 리 없었으니까.

지금 그녀의 털들이 쭈뼛 일어선 건, 눈앞에서 쥐인간의 잘린 머리를 만지작거리는 거대한 존재 때문이었다.

흔해 빠진 쥐인간 암월단원이 아니라, 무려 암월단장의 머리를 던졌다 받았다 하는 존재.

[그래서···놈이 6위계에 올랐다는 이야기군.]

그는 다름 아닌 암월단이 추종하는 계략의 신, 에낙사구스.

[그리고 너는 암살자이자 정보원이 되어서, 그 능력을 확인하기도 전에 텔레포트 스크롤을 찢었고?]

“찌이······!”

대전당 벽에 큼직하게 조각된 것과 거의 비슷한 형상으로 강림한, 그녀가 섬기는 악신의 화신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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