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263화 (263/288)

263

암묵해월령(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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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댈런

레벨 : 52

[근력 : 93] [기량 : 89] [체력 : 90]

[감각 : 85] [지능 : 89] [마력 : 91]

스킬 : 데하만의 갑주격투(D), 야간 시야(E), 도약(E), 불꽃 화살(D), 라판텔라의 분쇄검(C), 헤갈레우스의 화염의 비(C), 쏘아지는 번개(D), 저주막이의 인장(D), 레레도나라의 비검(B), 성화의 불씨(C), 검붉은 용의 피(A), 지옥문의 열쇠(C), 아커만의 작도법(C), 필즈의 바람 결계(C), 화영창술(D), 살아 움직이는 뿌리(D), 급속 발아(D), 룰리아의 샘물(C), 영혼 착취(B), 치유의 기도(D), 스카디의 해일(B), 카스마의 붉은 바람(B), 모래바람 왕조의 탄령(B), 용골 가공(B), 망자들의 왕(S), 파마의 돌격(C), 아즈사의 칼날폭풍(B), 투투가의 뒤집힌 땅(B)

*고유 스킬(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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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을 한가득 채우는 반투명한 글자들.

익숙해진 중세랜드의 공용어가 아닌, 마지막으로 써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한글이었다.

고향의 향수는 이제 사뭇 낯설었다. 댈런은 씹던 육포를 마저 질겅이며 상념을 휘휘 털어버렸다.

휘이이······.

폐허 위에 부는 바람은 차가웠다.

한때 악마를 토벌하러 온 대륙에 병력을 파견하던 성기사단의 구심점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되어있었다.

멀쩡한 건물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라, 드넓은 요새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 십수 미터 높이의 무너진 잔해더미.

으레 출정식을 진행하곤 하던 거대한 교회 건물의 잔해 위에서는, 절반으로 쩍 갈라진 도시의 풍경이 적나라하게 내려다보였다.

[힘이 더 강해졌군.]

불쑥 다가오는 인기척. 고위 언령술사 특유의 기묘한 파장을 빚어내는 전성.

[전반적인 육체능력이 급격히 상승했어. 강해진 마력 제어력은 무의식 중에도 네 주변 마력풍의 흐름을 휘어잡고 있구나.]

“······.”

[몸속에는 새로운 주문과 고위 무투술의 흐름이 깃들었고···아무리 생각해도 한 번의 전투로 인한 각성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이질적이군.]

댈런은 별 대답 없이 육포를 질겅였다. 술집 바텐더 복장의 고룡, 버번은 낮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시에나의 추측이 맞는 모양이야. 각지에 흩어진 다른 세계선들의 결말을 그러모아 힘으로 삼는 건가?]

“글쎄.”

[걱정 말거라. 나에게만 이야기한 사실이니까. 애초에 그녀의 자의가 아니었느니라. 내가 거래의 일부 조건으로 요구한 것이니까.]

“계약서에 남의 개인정보 동의 없이 끼워넣는 거 불법인 거 모르시오?”

[그런가? 하지만 무슨 상관이겠나?]

하긴. 상관은 없지. 그 거래의 대가로 나름의 중립을 유지하던 버번이 그를 도왔고, 결과적으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니까.

어깨를 으쓱인 댈런은 육포를 계속 씹었다. 루시아가 만든 육포는 오래 질겅거려도 육즙이 잘 빠지지 않았다.

기름지고 고소한 육향에 알싸한 향신료와, 돌무더기 위에서 내려다보는 폐허의 운치는 나름 괜찮은 조합이었다.

그리고 버번의 반응을 보아하니 그건 범종족적인 관점에서도 괜찮아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거 맛있나?]

“그렇소만.”

[말로만 해서는 모르는 법. 한 덩이만 줘보거라.]

“이거 용 고긴데.”

[······.]

자연스럽게 내민 손바닥이 움찔 떨리는 모습. 피식 웃으며 육포를 길게 찢어 입에 넣는데, 문득 쓸데없는 의문이 떠올랐다.

“잘 몰라서 묻는 건데, 용끼리는 동족포식 안하나?”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하는 싸움에서는, 상대의 심장을 삼킬 때도 있지.]

“먹긴 한다는 소리군.”

[···육포로 말려서까지 먹진 않는다.]

하긴 그건 좀 이상하긴 하지. 댈런은 향신료와 기름기가 묻은 손을 대충 닦았다.

[그악! 누가 내 머리에 먹다남은 고기를···!]

남은 육포 덩이는 종이에 잘 싸서 아공간에 던져넣었다. 용족과의 전투를 치른 지난 몇 달, 루시아는 꽤 많은 양의 육포를 만들어 비축해두었다.

작전 중 휴식 시간마다 짬을 내어 만들었는지, 대충 수레 너덧 대 분은 나올 정도.

다행히 아르보르의 아공간은 여유가 좀 있었다. 본디 아공간을 가득 채웠던 유물 무기들이, 숱한 전투를 거치며 삼분의 일쯤이 거덜난 상태였기 때문.

[으으 고기냄새···안 그래도 비좁은 집에 먹다 남긴 고기까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르보르의 공간이 더 생긴 건 아니었다.

빈 여백을 놀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댈런이, 새로 얻은 전리품들을 한가득 채워넣은 것.

절반은 기사단장 에드거의 허락 아래 회수한, 성기사단의 무기고 안에 남은 무구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모래바람 왕조의 유적에서 건진 유물들이었다.

허락 맡을 파라오가 용신과의 격전 와중에 사라졌으니, 말 그대로 주인 잃은 물건을 주워 담은 셈.

[모래바람 왕조의 파라오도 오랜만이구나. 크헤프 네하카라 아하셉수트. 수천 년 만인데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했군.]

“아는 사이였소?”

[안면 정도는 있었다. 선대 왕들의 묘를 증축하는 공사에서, 서로의 문물을 교환할 겸 반 세기 정도를 함께 일했으니까. 타테앙카트 파르지움도 그때 모래바람 왕조와 인연을 맺었었고.]

“···그렇군.”

반 세기가 안면이라. 수천 년씩 살다 보면 수십 년쯤이야 안면 트는 정도인 건가.

댈런이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고룡은 근처의 돌무더기에 털썩 주저앉았다. 폐허를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그땐 타테앙카트 그 친구도 참 순수했는데 말이지.]

중얼거리듯 흘리는 지저룡의 이름.

[백검. 흉갑. 투구. 첫 숨결. 오른쪽 견갑. 각반. 망토···이들도 한때 개성과 능력이 특출났던 친구들이었다. 종족의 번영을 위해 뭉쳤던 우리 열셋이, 이제 절반도 채 남지 않았구나.]

한숨이 섞어 늘어놓는 이야기에는 옅은 회한이 담겨있었다.

댈런은 문득 이 용의 본심이 궁금해졌다. 그는 턱을 긁적이며 물었다.

“내 편에서 싸운 걸 후회하시오?”

[아니. 거래를 받아들일 때부터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허나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럼에도 후회한다면 그건 오늘의 싸움이 아니라, 용신을 만들었던 우리의 미련함에 대한 후회일 테지.]

무지의 대가로 우리 종족은 황혼기를 맞아가는구나. 바텐더는 씁쓸하게 덧붙였다.

용신과의 전투는 격렬했다.

싸움에 참여한 대부분의 용들이 갈려나갈 정도의 격전.

살아남은 용의 머릿수는 채 백이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사실상 용족의 씨가 반쯤 말라버린 셈.

‘거기다 용신이 소멸하면서, 놈과 일체화되어있던 일곱 대룡도 함께 죽었지.’

용신의 죽음 이후 일곱 대룡 모두 용의 본체로 돌아오긴 했으나, 전부 이미 숨이 끊어진 주검이었다.

그런 맥락에서라면 버번의 한숨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하루 사이에 종족이 멸종 직전으로 몰린 데다가, 가장 강대한 권능을 지닌 지도자 계층이 대부분 죽어버렸으니까.

용족의 구심점이 되었던 대룡전은 무너졌고, 용신이 가졌던 권능 역시 완전히 소멸했다.

버번의 언령술로 권능의 일부가 댈런에게 잠시 입혀졌지만, 그마저도 대룡전의 붕괴와 함께 대부분 소실되고 말았다.

유일하게 남은 건 적창이 새롭게 부여받은 이름뿐.

사실상 용신이 존재하지 않았던 수천 년 전으로 돌아간 거나 다름없었다.

[뒤늦게라도 적창의 말을 들었더라면 좋았을 터인데. 그러고보면 네 세 번째 반려는 언제나 현명한 용이었다. 그녀의 조언을 잘 새겨듣도록 해라.]

“······.”

수천 살 먹은 고룡의 노망을 적당히 흘려넘기며, 댈런은 지나간 시간들을 되짚어봤다.

이 대륙에 떨어진 이래, 종말을 막기 위해 달려온 시간은 결코 적지 않았다.

2년 간의 튜토리얼을 지나, 미궁도시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성기사단으로 남하했고.

다시 미궁도시를 지나쳐 대륙의 최북단까지 올라갔다가, 쑴의 화신체를 쓰러뜨리고 저 남쪽의 제국과 뱀파이어 백작령에 이르기까지의 기나긴 여정.

혈령의 전쟁 준비를 한 발 앞서 처단한 뒤, 돌고 돌아 성기사단의 본단으로 다시 한 번 돌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다섯 악신 중 하나를 완전하게 쓰러뜨렸다.

‘그러고보니 용신이 죽은 회차는 이번이 처음이군.’

이건 분기점이었다.

모니터 너머에서 단 한 번도 달성한 적 없는 업적을, 처음으로 이뤄낸 극명한 분기점.

그건 지난 수백 회차 동안의 반복으로도 부술 수 없었던 종말의 벽에, 선명한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애초에 이번 회차의 성패는, 수없이 반복한 과거의 결과물을 넘어설 수 있느냐에 달린 문제.

저 멀리 어렴풋하게만 보이던 희망이 어느새 성큼 다가왔다. 단순히 계산해도 남은 건 앞으로 고작 몇 걸음.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상념을 뚫고 버번이 물어왔다. 댈런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대답했다.

“소원의 돌을 얻어야지. 최대한 빨리 움직여서, 다음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선수를 쳐야 할 거요.”

[다음 전쟁?]

“하나가 죽었어도 아직 넷이 남아있으니까. 그리고 개중에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놈도 하나 끼어있지.”

운명과 역행의 악신. 이 대륙에 떨어진 이후 가장 일찍부터, 그리고 가장 많이 갈등을 빚어온 최악의 계략가.

[···성간옥좌의 주인이 너무 오래 침묵을 지키고 있기는 했지.]

버번이 말했다. 댈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간교함의 대명사인 놈이, 뒤에서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는 아직 추측만 할 수 있을 뿐.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놈은 머지않아 다시 움직일 것이고, 그럴 경우 놈의 목표는 단 하나라는 사실.

“다음 전장은 미궁도시 팔시온이 될 거요.”

인류 최후의 보루이자, 수많은 영웅들과 초인들의 도시.

일곱 성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미궁의 일곱 층을 주파하고 소원의 돌에 닿아야 했다.

***

용신의 소멸 이후 사흘이 지났다. 그동안 일행은 본단을 반으로 쪼갠 전투의 여파를 갈무리했다.

아무리 압도적으로 거둔 승리라 해도, 전투 이후의 뒤처리는 으레 전투 그 자체만큼이나 고된 일인 법.

다만 이번만큼은 모든 문제들이 수월했다.

부상병들 전원이 수준급의 초인이나 초월자였고, 수리할 성벽이나 도시는 아예 남아있지조차 않았기 때문.

포로는 없었다. 용들의 사체는 뼈와 심장만 발라내고 방치되었다.

다시 떠날 채비를 마친 일행은, 반으로 쩍 갈라진 성벽 앞에서 둘로 나뉘어 마주섰다.

북쪽으로 가는 건 에드거 라인하르트와 고룡 카일버르쿠스 아르번. 댈런과 함께 남쪽의 균열 안으로 들어가는 일행은 그 둘을 제외한 나머지 전원.

“전쟁신의 은총이 여러분의 앞길을 밝히길 기도하겠습니다.”

에드거는 하나뿐인 손을 들어 악수를 건넸다. 댈런이 손을 맞잡자, 가까워진 틈을 타 에드거가 조용히 속삭였다.

“···미궁 4층 암묵해월령의 전도가 그려진 지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곳은 여전히 베테랑 탐험가들도 주파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 마경입니다.”

“알고 있소.”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노파심에 여쭙게 되는군요. 혹시 가본 적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하지만 길은 완벽하게 외우고 있지. 함정도 마찬가지고.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요.”

에드거의 얼굴이 희미하게 굳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만, 가보시지도 않고서 어떻게 외우셨다는 겁니까?”

“한 마흔여섯 번쯤 뒈지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법이거든.”

“······예?”

예는 무슨 예야.

길치라서 캐릭터 마흔여섯 개 삭제당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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