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3화 (3/1,559)

# 3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권 3화

이 육체로 돌아오면서 혹시 마나나 신성력, 사령 마나 같은 것들이 전부 날아가는 건 아닐까, 그리 걱정한 때도 있었다.

마법의 숙련도나 사용법은 익숙하지만 그 원료가 되는 마나가 없어서야 죽도 밥도 안 되니 말이다.

결과적으로는 다행스레 대부분의 힘은 멀쩡히 나를 따라 이 육체에 안착이 되었다.

문제는 단단히 돌처럼 굳어서 모두 사용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

당장 이 굳어버린 것들을 푸는 데에 시간이 꽤 들 거라는 사실은 분명히 들었다.

'움직여라.'

강력하게 의지를 발현하듯 기초 신성 마법의 영창을 내뱉었다.

"리스토어."

하지만 변화는 여전히 없다.

'움직여.'

이쯤 되면 슬슬 미약한 양이라도 나와줄 때가 되었을 텐데도 고집이 장난이 아니다.

한번 유동하기 시작하면 가속도가 붙어 스스로 신성력이 깨어나기 시작하겠지만, 그 시작이 쉽지 않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솔직히 어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리라.

놈들이 고집을 부린다면 나로서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고집불통의 카운터는 철판 깔린 뻔뻔함이다.

묵묵히 부탁을 계속한다.

'움직여.'

다시 한 번 강력하게 의지를 발현하며 움직여보자 단단하게 굳은 신성력이 아주 미약하게 움찔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주 미약하지만 그걸 놓칠 내가 아니다.

헛웃음이 흘러나오려는 걸 애써 억누르며, 다시 한 번.

고집을 부리는 신성력을 향해 정중하게 부탁한다.

'줘 터지기 전에 움직여라?'

우우웅!!!

쩌적!!

몸속에서 무언가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내 눈이 번쩍 뜨여졌다.

기회를 놓칠 순 없는 노릇이다.

"리스토어!"

격하게 외치듯 영창을 내뱉자 미약하게 움직이던 신성력이 드디어 확실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백색의 따스한 기운이 단단하게 굳은 신성력 덩어리 속에서 천천히 빠져나오며 몸을 감싸기 시작한 것이다.

드디어 신성력을 움직이는 데에 성공한 만큼 절로 쾌재가 불렸다.

"나이스!"

남들이 본다면 침대에 누워 혼자 미친놈마냥 헛소리를 하는 모양새지만 뭐 어떤가.

어차피 보는 인간도 없는데.

마치 따뜻한 이불을 덮은 것처럼 전신을 휘감는 리스토어 마법은 회복 계통 중에서도 내상을 치유하는 기본 신성 마법이다.

구조 자체도 간단해서 어지간히 신성력을 받아들인 사제들이라면 대부분 할 수 있는 마법이기도 했다.

물론, 기본 마법이라고 무시하다간 효율을 거의 못 보는 참사도 보겠지만.

신성 마법의 특징은 다른 마법과 다르게 하위 마법의 수준을 끌어올려 효과를 증폭시킬 수 있다는 점.

고위 성직자의 리스토어와 신출내기 성직자의 리스토어가 차이가 나는 건 그런 이유이리라.

"우욱......."

다만 등가교환이라고 했던가.

회복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체력을 상당량 빼앗긴다는 점을 생각하면 마냥 사기적인 마법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체력을 소모해 회복량을 끌어올리는 건 현재의 나 같은 환자에겐 자칫 독이 될 수도 있는 위험한 행위.

하지만 행동을 멈추진 않았다.

우웅...... 우웅!

백색의 빛이 서서히 멎어 들기 시작하자 감각조차 희미하던 다리 쪽에 서서히 촉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전히 사라졌을 때, 나는 발가락이 움직이는 것에 만족했다.

처음은 발가락. 그리고 두 번째는 발목, 세 번째는 무릎.

아주 천천히, 무리하지 않는 한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힘이 부족한지 손에 무언가를 잡고 있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위태하다는 기분이 절실하게 들었다.

"리스토어."

물론, 내가 거기서 멈출 깡다구 부족한 놈이 아니다.

까짓거 투자 좀 하자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리스토어를 발동하자 이제는 공복까지 찾아오고 있다.

그렇다고 당장 영양을 보급하는 수액의 투여량을 멋대로 늘렸다간 몸 하나 아작나는 건 순식간일 터.

리스토어의 효과는 탁월하게 몸을 치유하기 시작했고 눈에 띄게 변화를 보여주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묘한 희열까지 들기 시작한다.

기어 다니기만 하던 아기가 천천히 일어섰을 때를 보는 부모의 마음이 이러할까!

내 몸이긴 하지만.

한 손으로 벽을 지탱하며 일으키자 한껏 낮아져 있던 시야가 천천히 높아진다.

"으흠, 역시 윗공기가 좋구만."

쓸데없는 소리를 하며 부드럽게 천천히 움직여본다.

그리고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지만 하늘에 뜬 태양만큼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듯 쨍쨍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 이거 꼭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말하며 나는 다리를 붙이고 차려자세로 꼿꼿이 섰다.

그리고는 양손을 하늘 높이 45도로 들고 손바닥을 편다.

흡사 알파벳 Y자와 같은 모습이다.

"태......."

경건하게!

"태양 만세!!"

덜컥.

쨍그랑!

동시에 뒤편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유리가 떨어져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꺄악?!"

"아."

타이밍 한번 신박하기 그지없다.

뻣뻣하게 굳은 채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니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작은 소녀가 보였다.

나이는 대략 십 대 중반 정도. 시녀 일을 하는 것으로 보아 변경 남작가 정도의 여식일 것이다.

고작 십 대 중반인 내 입으로 말하긴 뭣하지만 아직 시녀 일을 하기엔 조금 어린 나이로 보인다.

생각지도 못한 당혹스러운 사태 때문일까.

다리의 힘이 풀려 내 몸이 그대로 허물어졌고 비명과 함께 소녀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저, 저하! 정신 차리세요!"

그 와중에도 나는 얼굴을 들 생각도 못 한 채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흑역사는 누가 보지 않아야 묻는 게 가능한 법이건만.......

'하, 접시에 코 박고 죽고 싶다.......'

* * *

"흐음......."

뭔가 미심쩍다는 얼굴로 몸을 살피던 노인이 수염을 쓸어내렸다.

노인의 이름은 람다스. 왕궁의 궁정의 신분으로 있는 사내였다.

주로 국왕의 신변을 검진하고 왕이 병에 걸리지 않게 예방하는 직급을 가진 인물이었다.

"묘한 구석이 있지만, 몸 상태는 놀라울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혹시 제게 말씀하지 않으신 통증이 있습니까?"

"조금 피곤한 것만 빼면 괜찮아."

담담하게 답해주자 그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의 삶이었다면 노인에게 이렇게 하대를 하는 건 생각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생은 달랐다.

별로 내키진 않는다만 나 자신도 내 위치를 모르진 않았다.

데이비 올 라운.

태어날 때부터 내게 주어진 풀 네임이기도 했다.

내가 있는 국가는 라운 왕국으로 대륙의 동부에 위치한 평범한 왕국이다.

뭔가 의미를 눈치챘다면 알겠지만 라운 왕국에서 라운이라는 성을 쓰는 이들은 한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바로 왕족이라는 공통점을 말이다.

그중에서도 내 위치는 국왕의 맏아들.

본인의 입으로 말하긴 뭣하지만 내 위치는 국왕의 첫째아들이라는 소리였다.

"흐음...... 목숨 하나는 질기구나."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자니 날이 잔뜩 선 듯한 목소리가 들려와 절로 시선이 갔다.

그 시선 끝에 보인 것은 화려한 차림에 표독스러운 인상의 여자였다.

그리고 그녀의 뒤로 마치 비웃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두 소년이 보였다.

현 왕비, 리네스 바리에타.

그리고 그녀의 아들들인 2 왕자 칼루스와 3 왕자 베네디트였다.

"저도 제 목숨이 이리 질긴 줄은 몰랐네요."

"그래, 네게 화살을 쏜 그 배은망덕한 놈은 보았더냐."

"글쎄요. 워낙에 경황없이 날아온 눈먼 화살이라. 아, 혹시 잡혔습니까? 일단 큰 죄인이니까요."

"아니."

뼈가 담긴 의미를 잔뜩 담아 답해주니 그녀가 부채를 펼쳐 얼굴의 반을 가렸다.

인상을 찡그린 것을 애써 숨기는 것이다.

리네스 왕비.

왕비가 되기 전의 이름은 리네스 바리에타. 바리에타 공작가의 장녀이기도 했다.

"되었습니다. 기본적인 처치는 끝이 났으니. 주기적으로 사제를 불러 치료를 받으시면 몇 해 안에 쾌차하실 겁니다. 내일 아침부터는 데이비 왕자 저하께 식사를 올리거라. 위에 부담이 가지 않을 유동식에 대한 식단은 내 따로 보내주마"

"예."

"고마워."

담담하게 답해주자 깐깐한 얼굴을 한 채 람다스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면 소신은 이만 물러가 보겠나이다."

그를 따라 시녀가 나서자 방안엔 왕비 리네스와 2 왕자 칼루스, 그리고 3 왕자 베네디트만이 남았다.

딱히 좋은 사이라고 할 수도 없는 관계라 방안에 침묵이 감돈다.

"그냥 그대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눈에 거슬리던 놈이 살아 돌아와서 아쉽게 되셨습니다?"

"흥!"

가벼운 목소리에 리네스 왕비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왕자.

그녀는 왕비이다.

본래라면 어미와 아들의 관계이지만 리네스 왕비와 내 관계가 그렇게 속 편한 관계가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덜컥!

리네스 왕비가 나가버리자 뭔가 비웃는 듯한 얼굴을 하던 칼루스와 베네디트가 조용히 따라 나갔다.

"첫째 왕자라는 놈이 습격이나 받고 혼수상태에 빠지다니, 왕국에 다시 없을 망신이군. 가자 베네디트."

되먹잖은 도발과 함께 말이다.

순식간에 고요해진 방안. 6년 가까이 잠들어있다가 깨어난 사람의 방치고는 너무하다 싶을 만큼 고요했지만 딱히 그리 서럽다거나 하진 않았다.

혼수상태에 빠지기 전에도 익숙하던 광경이 아니던가.

냉정하게 말하자면 오히려 이게 더 좋았다.

"국가 망신 좋아하고 자빠졌네."

피식 웃으며 눈을 감은 채 신성력을 서서히 운용하자 다시금 몸에 따스한 기운이 내려앉았다.

대놓고 신성 마법을 쓰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이 황궁 내에서 내가 가진 마나나 사령 마나, 혹은 신성력을 눈치챌 수 있는 인간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경지의 차이가 너무 나면 상대의 본질을 꿰뚫어보기가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깨어난 직후부터 몸의 회복에 모든 신경을 쏟아부은 덕분일까.

당장은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다 해도 며칠 내로 운신이 가능해질 것이다.

한번 움직이기 시작한 신성력이나 마나는 점차 그 속도에 가속도를 붙여가며 원래의 형태를 되찾아갈 터.

회복속도가 점차 빨라질 것은 명확한 사실이었다.

* * *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죽은 것마냥 침대에서 시간을 보낸 지 약 2주, 보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회복에 매진한 덕분인지 시간이 상당히 빠르게 흘러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