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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4화 (4/1,559)

# 4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권 4화

"흡......."

짧게 숨을 고르며 몸을 움직여보자 처음에 비하면 굉장히 가벼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6년 이상을 혼수상태로 침대에 누워있던 왕자가 이렇게 움직인다 하면 모두가 기겁하지 않을까.

당연했다. 뼈도 상했고 근육도 거의 사라진 탓에 사제의 알량한 회복마법을 받는다 해도 쉬이 나을 수 없을 테니까.

게다가 매번 치료를 하기 위해 오는 사제들이 대부분 왕비 리네스의 사람이니 제대로 된 회복을 해줄 턱이 없다.

그래,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이 왕궁은 아주 속된말로 좆같은 장소였다.

왕비가 왕자를 죽이고 싶어 하는 곳인 만큼 가족의 정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과거엔 그래도 가족인데, 평생을 부대끼며 살아야 할 동반자들이니까. 그리 생각하며 스스로 다가갔고 그들을 믿어주었다.

멍청한 생각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데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더라.

첫 번째 삶인 지구의 삶과 두 번째 삶인 이곳의 삶은 달랐다.

당장 출세를 위해서 자식을 팔아 정략결혼의 도구로 써먹는 인간들이 당연시되는 이 나라에서 가족의 정?

개나 주라는 소리일 것이다.

물론, 모든 귀족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리네스 왕비는 제 친아들만큼은 끔찍이도 아끼는 여자였다.

하지만 피가 섞이지 않았다면?

오히려 피가 섞인 아들의 앞을 가로막는 자식이라면?

리네스 왕비는 정확하게 내 친모가 아니었다.

엄연히 다른 피가 섞인 남남.

본래 왕비의 자리에 있던 내 어머니는 내가 이곳에서 태어난 지 약 5년 만에 독살로 살해당하셨다.

범인은 잡지 못했고 그렇게 어머니의 죽음은 원통하게 살해당한 미수 사건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후 어머니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게 바로 리네스 왕비였다.

야망이 많은 그녀는 전 왕비의 아들인 나를 밀어내고 자기 아들을 차기 국왕으로 밀어 올리고 싶어 하는 야심가였다.

물론, 그만한 힘을 가진 뒷배가 있는 여자이기도 했다.

현재 라운 왕국은 외척이 가장 강한 실세로 그 주축엔 바리에타 공작가가 있다.

리네스 왕비의 본가는 다름 아닌 바리에타 공작가.

둘이 한통속이라는 건 멍청이가 아니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동안 내 삶은 꽤 단조롭게 흘러갔다.

마나, 신성력, 사령 마나를 움직여 그 회복을 늘리고 틈틈이 운동을 해서 몸을 회복시켰다.

그리고 시녀 에이미가 가져오는 식사를 남김없이 먹어치우며 빠르게 회복을 도모했다.

당장 신성력을 응용한 회복마법만 해도 굉장한 회복속도를 보이는데 인체 관련으로 극도의 연구를 거듭한 사령술사의 지식, 그리고 신의 히포크리아에게 의술까지 배운 내게 이정도 회복은 사실상 어렵지 않은 과제나 다름없었다.

그 과정에서 상당히 식성이 좋아진 탓에 왕자궁에 배정된 예산을 신나게 까먹고는 있지만, 어차피 내 돈인데 누가 뭐라 할까.

"그래도 들어오는 돈의 반수 이상은 이미 떼먹고 있겠지."

당장 왕자궁의 상태만 봐도 그러했다.

이곳을 누가 1 왕자의 궁이라고 생각할까.

잔뜩 갈라진 대리석 바닥 하며 그 사이사이로 정돈되지 않아 삐져나온 잡초까지.

솔직한 심정으로 왕궁의 다른 곳과 비교했을 때 폐가나 다름없다.

왕궁의 모습은 왕자의 체면. 즉 이 상태로 두면 내 이미지나 입지에 굉장히 불리하게 다가오지만 이미 반쯤 떼어먹고 있는 작자들을 싹 물갈이해버리지 않는 이상은 요원한 일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회복은 중요했다.

무슨 일을 벌이려 해도 내 몸이 건강해야 할 테니까.

나를 혼수상태에 빠지게 했던 2 왕자와 3 왕자의 개 짓거리나 어머니를 죽게 만들었을 거라 생각되는 리네스 왕비에 대한 복수는 그 후의 일이다.

강자가 되어보았기에 가질 수 있는 여유.

"하......."

무리하게 움직인 탓에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지자 말없이 손을 들어 옅게 영창을 했다.

"클린."

짧은 중얼거림과 함께 허공에서 물방울이 생겨나며 온몸을 덮었고 곧 뜨겁게 달아올라 있던 몸이 깨끗하게 씻겨나가고 시원하게 변했다.

마법은 꽤 편리한 힘이다.

귀찮음이 과학발전의 열쇠였다고 했던가.

솔직히 내게 마법을 가르쳤던 오딘도 그러했지만 나 또한 그 말을 굉장히 신봉하는 편이다.

"왕자 저하. 에이미입니다."

"들어와."

흐트러진 옷가지를 정리하고 침대에 고이 눕자 잔뜩 경직된 얼굴을 한 소녀 에이미가 고개를 숙인 채 들어왔다.

이 왕궁에서 내 입장은 1 왕자라는 위치보다 내놓은 자식이라는 입지가 더 강하다.

귀족은 물론, 시종들까지도 뒤에서 무시하기 일쑤인데, 에이미는 그런 의미에선 꽤 착실한 편이었다.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담담한 그녀의 말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고마워."

호의 자체를 거부하진 않는다. 적어도 이 궁에 온 지 얼마 안 된 에이미는 더러운 정치판에 끼어들지 않은 녀석이었다.

지금 당장은 말이다.

듣자 하니 후궁전에서 일을 하다가 왕비의 눈 밖에 나는 바람에 이곳으로 좌천되어 온 모양이라는 듯하다.

"1 왕자의 궁이 좌천되어 오는 곳이라니......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네."

"예?"

"아무것도 아니야. 고생했어. 오늘은 들어가서 쉬어."

"하오나 왕자 저하, 오늘은 재활 훈련을......."

"그 정도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돌아가서 쉬어."

반론은 듣지 않겠다는 듯 칼같이 잘라내자 그녀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야, 그렇게 보지 마라.

비 맞은 강아지 같은 얼굴로 올려다보면 괜히 양심에 찔린단 말이다.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소리를 속으로 삼키며 그녀의 머리를 푹푹 쓰다듬자 그녀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됐어. 들어가 봐."

"네, 넵!"

무난하게 잘생긴 얼굴이 이럴 때 도움이 되긴 하더라.

"흠흠~"

나름대로 기분이 좋아져 콧노래를 부르며 에이미가 준비해둔 식사를 내려다보았다.

"환자랍시고 아주 그냥 이 없는 노인 취급이네."

정신 나이를 생각하면 인간의 기준에서 노인이 아니라 거의 살아있는 화석 수준이다만 애석하게도 나는 그렇게 고지식한 성격이 될 만큼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않다.

수천 년, 아니 수만 년일지도 모르는 시간을 살아가던 영웅들이라는 작자들도 그곳에서는 1~20대 푼수마냥 낄낄거리는 작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무슨 소리냐고?

사람은 돌고 돈다는 소리였다.

이미 한번 죽음으로써 죽음이라는 끝이 사라진 이들에게는 당연한 변화이리라.

진중함을 고수하는 자도 있지만 어릴 적의 성격이 다시 돌아오는 이들도 있다.

개중에 가장 심했던 게 성녀 다프네와 자칭 생존왕 헤라클래스였었다.

둘 다 성질머리 나빠서는 쯧.

묵묵하게 테이블에 놓인 식사를 욱여넣으면서도 마나와 신성력을 동시에 굴리는 건 잊지 않았다.

사령 마나는 현재 건드리지 않아도 스스로 회복될 테니 나머지만 신나게 굴리면 될 일이다.

당장 신성력으로 할 수 있는 건 기초 마법인 힐과 리스토어, 큐어 정도가 한계요.

마법으로는 간단한 라이트나 매직 미사일, 그 외에 서클이 없어도 유동성 있게 사용 가능한 생활마법이 전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회복이 덜 되었다는 기준의 경우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였다.

배가 가득 차 더는 먹지 못할 것 같은데도 리스토어 마법을 사용하다 보니 소화량이 굉장해져 끝도 없이 꾸역꾸역 들어갔다.

대충 봐도 평균의 일반인이 먹는 양의 3배 이상.

양이 많다고? 욱여넣으면 다 들어가는 법이다.

이렇게 말도 안 되게 늘어난 내 식사량에 에이미가 기겁한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만, 나도 한 고집하는 인간이라서.

볼이 터질 만큼 꾸역꾸역 밀어 넣고 나니 좀 전까지만 해도 골골거리던 몸에 활기가 다시 돋는 느낌이 들었다.

아 물론.

"아...... 망할 화장실."

소화가 엄청나게 잘되는 대신 이놈의 화장실을 자주 가는 사태가 벌어진다는 단점이 생겨버렸지만 말이다.

게으름뱅이 검신 하레스 형씨가 봤으면 똥쟁이라고 신나게 놀려댔을 게다.

나잇값 못하는 검신 같으니.......

4. 먹을 게 부족하다!

회복은 순조롭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문제는 내가 깨어난 지 약 한 달 만에 드디어 그 정체를 드러냈고 신나게 나를 위협했다.

"끄응......."

절로 흘러나오는 신음을 삼키며 복통을 호소하느라 저절로 표정이 찡그려졌더니 시녀 에이미의 표정에 그늘이 졌다.

"죄, 죄송합니다!"

"됐어. 네가 잘못한 게 뭐가 있어."

적당히 다독이며 그녀가 내민 서류를 읽다 피식 웃음을 흘려버렸다.

왕자궁에 배분된 왕실 예산이 너무 적었던 탓에 식사를 구해올 식재료가 바닥이 났다는 모양이었다.

"내 참...... 다른 곳도 아니고 왕궁 한복판에서 그것도 첫째 왕자가 먹을 거로 걱정하게 될 줄이야."

이 사태를 초래한 원인 정도는 간단히 보였다.

"에이미."

"예, 왕자 저하."

"현재 이 궁에서 일하는 시녀와 시종, 하녀는 몇 명이야."

내 물음에 그녀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어렸다.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그 표정을 보아하니 답은 이미 나왔다.

"너뿐이냐?"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대로 엎드려 고개를 땅에 숙이는 그녀의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리 넓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왕자가 써오던 궁이다.

원래 차기 국왕으로 선택된 왕태자들이 사용하는 궁은 아니지만, 일단은 왕족이 사는 내궁의 궁인만큼 꽤 넓은 편이라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이 넓은 궁을 너 혼자서 관리하고 있다 이거지."

"그...... 그것이."

혼수상태에서 돌아왔더니 상황이 아주 가관이다. 그래도 예전엔 사람 사는 곳이기도 했고 조금 부족할 뿐이지 딱히 심하게 부족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그런데 6년 사이에 이렇게 변했다라.

짧은 시간은 아니다만.

에이미의 말을 들어보니 전말 정도는 대충 감이 잡혔다.

안 그래도 왕실에서 왕비의 눈 밖에 난 구박 덩어리 1 왕자 데이비 올 라운.

힘이 부족해 왕태자들이 기거한다는 내궁의 안쪽 파론다스 궁에 들어가지도 못한 팔푼이.

내 잘못이냐고?

내 잘못이다.

아무리 배다른 형제라도 가족이라며 믿어주고 포용한 꼴이 이 꼴이니까.

"어쩐지, 궁 상태가 엉망이더라니."

"주, 죽여주십시오!"

"됐어. 잘못 없는 인간을 죽일 만큼 매정하진 않아."

처음에 비하면 꽤 거동이 편해졌다.

이정도면 유약한 왕자의 육체 정도일까.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테이블 의자에 앉아 돋보기안경을 쓰자 흐릿하던 시야가 서서히 선명해졌다.

미리 말하는 부분이지만 원래의 내 몸은 눈이 굉장히 나빴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던 게 그 이유고 나머지 하나는.......

그리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기도 하다.

"보자. 왕자궁에 원래 책정되는 예산이 얼마지?"

"그...... 그것이, 연 5,000골드입니다."

"그런데 현재 왕자궁에 남은 자산은 고작 10골드."

"......."

"그것도 왕자궁을 관리한 것도 아니고."

애초에 식재료가 부족한 것부터 에러였다.

"이번 달에 들어온 금액은? 적어도 그 돈이 있으면 아껴 써서 식사 걱정은 없을 텐데?"

"그, 그것이......."

"괜찮으니 말해봐."

"서류상으로는 500골드가 들어와야 하지만 실제로 떨어진 금액이 100골드가 채 되지 않아서......."

그녀의 말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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