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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6화 (6/1,559)

# 6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권 6화

너무도 능숙한 해체작업에 에이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다.

기겁하며 말리는 그녀에게 한 번만 더 말리면 쫓아내 버린다고 으름장을 놓으니 울먹거리면서도 물러났다.

그런 주제에 조금이라도 칼끝이 위험하게 스치면 비명을 지를 듯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 상황에서도 나를 지키겠다는 건지.

충성심이 과한 것인지 귀여운 것인지.

나쁘지는 않다.

수십 년 가까이 자칭 생존왕 헤라클래스에게 굴려지며 살아남는 법을 배워왔던 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야생동물을 잡는 실력이나 해체하는 것 정도는 껌이라는 소리다.

물론, 이런 내 행동이 다른 이의 눈에 들어가면 굉장히 골치 아파질 것이다.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제 침대에서 일어나 움직이는 정도인 왕자가 사냥터까지 꾸역꾸역 기어들어가 멧돼지를 잡아왔다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애초에 왕궁 내에서 첫째 왕자가 실전 서바이벌을 하고 있는 것부터가 정상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괜한 위험요소를 남길 순 없다고 해도 일단 먹고 살려면 별수 없는 법이렷다.

리네스 왕비 측에서 감시 인원을 붙이긴 했다만.......

이미 그놈의 눈을 돌린 지는 오래였다.

어떻게 확신하냐고?

사령 마법이 괜히 있는 게 아니거든.

사령 마나는 다른 마나나 신성력과 다르게 성장 속도가 굉장한 편에 속한다.

그리고 사령 마나의 기초는 상대에게 혼란을 주는 것.

상대를 파악하지 못하고 애송이를 감시로 붙인 시점부터 당신들의 눈은 감긴 것이나 다름없을 거다.

멀리 있는 왕비 리네스의 궁을 보며 싸늘하게 웃어주고는 적당하게 고기를 썰어 미리 준비해둔 약초와 소금을 뿌렸다.

"저녁쯤이면 누린내가 많이 빠질 거야. 에이미, 심부름을 좀 해줘."

"저...... 저하아......."

이제는 울먹거리면서 제발 그만하라는 시선을 보내오지만 괜히 가학심만 더 생긴다.

"시종장 베스퍼스에게 가서 국왕 폐하를 알현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한 번만 더 말해줘."

"그...... 그렇지만......."

"안 되는 거 알아도 일단은 말해."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는 종종걸음으로 떠나는 그녀의 발걸음은 굉장히 무거워 보였다.

나름대로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인데 솔직히 이제 와서는 피를 나눴다 해도 아비라는 사람과는 화해할 생각이 없었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나를 방치했고 내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진상을 파헤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점에서 이미.......

'당신은 더 이상 가족이 아니게 된 것뿐이야.'

머리가 굳으면 사상도 굳는다고 했다.

누군가가 철없다 말할지라도 지금의 나로선 이 선택을 종용할 뿐이다.

직접 밤에 찾아가면 어떠냐고? 내가 원하는 건 제대로 된 독대일 뿐, 암살자마냥 몰래 쳐들어가서 멱살 잡고 왜 그랬어요! 하고 소리치는 게 아니었다.

한때는 어머니만을 바라보고 어머니만을 사랑해온 남자라고 했다.

어머니의 일기장엔 그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있었고 죽어서도 잊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그의 사랑은 고작 이정도였다. 어머니의 유일한 흔적인 내 시선으로 본 아버지라는 양반 또한 결국 이정도의 인간이었고.

그런 양반이니 그저 지켜보고 있는 것뿐이다. 나름의 판단을 위해서.

과거엔 배다른 형제들은 툭툭거리긴 해도 진심으로 다가가면 언젠가는 알아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내 나이 10살 때에 나는 놈들에게 배신을 당했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눈먼 화살에 맞고 살아남은 것도 어떻게 보면 기적에 가깝다. 아니, 눈먼 화살이 아니라는 건 내가 제일 잘 알았다.

내가 멧돼지를 잡아왔던 왕궁 내부의 사냥터에서 사냥대회가 열렸던 때였다.

왕족과 귀족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이뤄진 행사이기도 했다.

거기서, 나는 2 왕자 칼루스가 쏜 화살에 맞았다. 다른 이도 아니고 나보다 한 살 어린 내 이복동생에게 말이다.

왕비 리네스에겐 범인을 보지 못했다고 했지만 그 철없는 선민사상에 절어있던 칼루스 자식이 나를 향해 화살을 쏜 후 짓던 비웃음은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배다른 형제라 해도 형을 쏴 죽이려 한 동생이라.

웃기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거가 없다는 점. 그리고 리네스 왕비의 힘이 무소불위의 수준으로 강하다는 점. 그리고. 내가 깨어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칼루스는 어떤 형벌도 받지 않았다.

리네스 왕비, 그리고 2 왕자 칼루스와 3 왕자 베네디트가 바쁜 몸을 이끌고 내가 깨어났다고 하자마자 찾아온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괜히 거기서 목숨이 위험해질 순 없기에 모른다고 잡아떼버렸지만 영악한 그 여자는 순순히 그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감시 인원이 붙은 것도 그 때문일 테지.

어쩌면 국왕알현을 못 하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있는 것도 내가 혹시 칼루스를 보지 않았을까 그리 염려한 그녀의 뒷공작이 가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백 퍼센트 그게 진실이겠지."

잔뜩 절인 고기를 정리한 채 클린 마법으로 피를 씻어냈다.

그리고는 몸에 두르고 있던 투박한 옷과 바닥에 깔아둔 것을 모두 그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태워버렸다.

아주 조금 정도.

다른 이들의 눈에 나는 힘겹게 살아가는 유약하고 힘없는 운 좋은 왕자로 보일 필요가 있었다.

날마다 누군가가 사냥한 고기를 가져다주는 그런 왕자 말이다.

* * *

"데이비 저하, 식사를 가져왔사옵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그녀에게 빙그레 웃어주자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같이 먹을래?"

"그...... 그럴 수는!......."

"그냥 먹어."

그래야 소문이 더 잘나거든.

멍청하고 자신의 직위에 대한 자각도 없는 놈이라고. 상대가 나를 깔보면 깔볼수록 나를 견제하는 움직임만 느슨해질 뿐이다.

"그렇지만......."

"내가 두 번 말하게 하지 말라고 했던 거 같은데."

"죄...... 죄송합니다."

"와서 앉아."

담담하게 말하자 그녀가 쭈뼛거리며 맞은편 자리에 조심스레 앉았다.

현재 그녀는 이 궁 안의 유일한 아군이다. 이런 대접 정도야.

"든든히 먹어둬. 너 혼자서 이 궁을 관리하는 게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니까."

"제 일인 것을요."

"이 왕궁에서 그 누구도 너만큼 많은 일을 하진 않아."

"당치 않사옵니다! 저는 그저...... 저하께서 시키신 일만......."

"그것도 많아."

대부분을 관리하는 건 그녀 혼자서는 힘들다.

그 때문에 나는 과감하게 이 궁의 관리를 포기해버렸다.

차라리 소문이 더 나면 좋을 것이다.

무능력하다는 소문이 돌면 돌수록 반대로 나는 안전해질 테니까.

제아무리 리네스 왕비라 해도 내게 없는 죄목을 씌워 당장에 치워버리진 못할 터.

해봐야 타박 정도뿐이겠지.

그걸 들어 처먹고 쫄 만큼 담이 약한 것도 아니고.

"맛있네. 꼼꼼한 게 시집가서도 사랑받겠어."

"가...... 감사합니다."

"나중에 내가 보답은 반드시 할게."

시녀는 원래 허드렛일을 하지 않는다. 그건 하녀들의 담당이지 몰락귀족이라 해도 귀족 출신인 그녀가 할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허드렛일까지 도맡아 하는 건 이 빌어먹을 작자들이 궁을 나 몰라라 하고 도망쳤기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 후환이 두려우니 머리를 들이밀어 보려는 자들이 보인다만 그들이 돌아왔을 때가 이 궁에서 그들의 마지막이 될 거라고 자신했다.

나는 정이 많았던 거지 멍청하게 호구 짓을 해왔던 게 아니니까.

하나같이 나름대로 뒷배를 가지고 있으니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것일 터다.

"국왕 폐하 알현 요청에 대한 답변은?"

"그것이......."

"보나 마나, 또 퇴짜구만."

"죄송합니다. 저하......."

풀이 죽은 목소리로 그녀가 조심스레 고개를 푹 숙였다.

"그거면 됐어. 내가 알아보라고 한 건?"

"아, 그건 이미 알아봐 두었습니다만...... 어찌하여 그런 것을......."

그녀의 질문에 말없이 그녀를 보자 그녀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감히 제가 질문을......."

"아니, 뭐 그런 거로."

담담하게 말하며 고기를 씹어 삼켰다. 리스토어 마법으로 계속해서 회복을 하고 있는 만큼 식욕만큼은 굉장히 왕성해져 있는 상태다.

물론.

'크...... 또 속이.......'

장 활동이 너무 활발해진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환골탈태를 하면서 노폐물까지도 영양분으로 바꿔 쓰지 않는 이상 이놈의 장 활동은 쉴 새 없이 난동을 부릴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드니 어쩐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 * *

"도대체 무슨 생각인 게지."

테이블에 앉아 홍차를 조용히 마시던 리네스 왕비는 표정을 굳혔다.

"놈이 연기를 하고 있을 가능성은?"

"데이비 왕자를 검진하는 사제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의 몸은 아직 가볍게 움직이는 게 한계일 만큼 아슬아슬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치료속도를 생각하면 최소 1년 이상은 요양해야 한다고 합니다."

시녀복을 입은 여성이 조용히 답했다.

평범한 시녀처럼 보이지만 그녀는 보통 시녀와는 조금 다른 인물이었다.

라운 왕국의 수도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암살자 길드 검은 달의 A급 정보원.

A급 정보원이라는 위치가 가져다주는 존재감은 실로 굉장했다.

리네스는 말없이 차를 음미하며 눈앞의 여성을 지켜보았다.

흐트러짐 없는 모습.

분명히 숙달된 시녀로 보이지만 그녀는 충분히 볼 수 있었다.

묵묵히 대답하는 저 얼음장 같은 얼굴을 한 여자의 눈동자 속에 담긴 오만과 살의를 말이다.

특정 대상을 향하지 않는 살기를 갈무리하는 실력은 대단하지만 그녀는 어릴 적부터 굉장히 눈썰미가 좋은 야망가였다.

대륙 어디에 던져놔도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른 정보원이며 필요 시 암살을 한다 하면 준비가 된다는 가정하에 어지간한 고위귀족도 하루아침에 암살해버릴 수 있는 실력가.

그렇기에 그녀는 검은 달 길드에 의뢰해 그녀를 장기적으로 자신의 곁에 두었다.

그녀보다 더 뛰어난 암살자는 대륙에 많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 왕국 내에선 그녀의 실력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는 건 분명했다.

적어도 그녀의 힘이 있다면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이요 거슬린 것들을 치워버릴 수도 있으니 욕심을 부릴 것도 없었다.

실제로 그녀에게 누군가의 목숨을 맡긴다면 며칠 내로 멱을 따오는 실적을 보이기도 했다.

살인을 위해 만들어진 기계.

리네스가 본 그녀의 느낌은 그러했다. 그녀가 나섰다면 정보는 거의 진실일 것이오, 그녀가 나선다면 어지간한 타깃은 다음날 시신으로 발견될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찝찝한 것일까.

"네가 파견한 정보원이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은?"

6년이라는 시간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1 왕자 데이비 올 라운이 깨어났을 땐 사실 굉장히 놀랐었다.

하지만 그녀는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고 곧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데이비가 사냥대회에서 칼루스가 쏜 화살에 맞아 죽을뻔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상관없었다.

협박을 이용해 적당히 묻어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국왕은 어차피 제 아들에게 관심이 없다.

그런 만큼 데이비의 목줄은 언제나 자신이 쥐고 있었다.

그저 제때에 처리해버릴 명분을 찾고 있을 뿐.

리네스의 질문에 검은 달의 A급 정보원 샤리의 눈이 묘하게 싸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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