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권 8화
우우웅!!
옅은 진동이 몸 전체로 퍼져나가자 기다렸다는 듯 소주천을 하는 마나를 움직여 전신으로 퍼뜨리고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사혈 부분과 대뇌혈.
머리 부분은 마나를 건드리건 혈도를 건드리건 하나같이 위험하기 짝이 없다.
무공으로 치면 순식간에 광인 되기에 십상이라고 했던가.
그런 의미에서 신의 히포크리아의 지식은 굉장한 도움이 된다.
그녀에게 혼나가면서 머릿속에 쑤셔 박은 혈도에 대한 지식이 굉장한 도움이 되고 있다.
아주 미약하지만 서서히 아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단단히 막혀있던 혈도들이 서서히 진동하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흐른다.
아주 작은 구멍에 맞춰서 수백 개의 구멍에 바늘을 넣었다가 빼기를 반복하는 작업마냥 섬세하기에 집중력이 대부분 그곳으로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보험을 깔아두긴 했지만 실패는 어지간해선 하지 않는 게 좋았다.
뚜둑!
무언가가 부러지는 소리.
단단하게 막혀있던 혈도가 마나에 의해 구멍이 나며 서서히 새어들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속도는 느리게.
과격하게 밀어붙여선 그대로 뇌에 출혈을 일으켜 넘어가 버릴 테니 아주 천천히 진행을 한다.
'한 번만 뚫으면 된다. 딱 한 번만.'
첫 번째 서클의 라인을 잡는 게 가장 어려운 만큼 가장 집중력이 많이 요구되었다.
식은땀이 흐르고 온몸에서 힘이 빠져 나른해지지만 절대 집중을 풀지 않았다.
외려 빠릿빠릿한 정신머리로 몸속 상황을 지켜보며 정교하게 마나를 컨트롤해 나갔다.
뚜둑! 뚜두둑!
단단하게 닫혀있던 혈도를 임독양맥 타통하듯 뚫어 나가기 시작하자 절로 속도가 붙으려는 마나가 느껴졌다.
억지로가 아니라 흘러가듯 놈을 붙잡고 샛길로 새지 않도록 단단히 방향을 고정하고는 충차로 성문을 두드리듯 아주 천천히 밀어붙였다.
뚜둑!
"윽!"
상상도 못 할 고통이 순간적으로 밀려왔다.
오함마로 머리통을 한 대 맞은 것마냥 띵하게 느껴지자 정신이 아릿해졌다.
회랑 때와는 다르게 육체는 빈약하기 그지없으니 그 난도가 더 올라간 게 분명했다.
물론. 거기에 겁을 먹고 피할 거였으면 되살아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실패는 없다.'
암시하듯 속으로 수십 수백 번 중얼거리며 구멍을 내자 댐에 구멍 뚫려 쏟아지기 시작한 물처럼 마나가 어마어마한 압력을 자랑하듯 대뇌혈로 밀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펑!!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정신이 일순간 맑아지며 머릿속에 시원한 냉기와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푸후......."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야매 서클이 아닌 명확한 1 서클 확립에 성공한 주제에 뭘 그러냐고 물어본다면 내가 해줄 말이라곤 직접 해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솔직히 이 기괴한 서클 확립 방식은 1 서클의 라인을 잡는 게 8~9 서클의 확립보다 어려우니 더 말해 무엇할까.
그땐 실험의 역작을 보기 위해 네 여자가 직접 곁에서 도와주었으니 덜했지만 이번엔 홀로 이 미친 과정을 해냈다.
마나와 신성력, 사령 마나는 존재하나 육체는 완전히 초기로 돌아와 버린 탓에 몸의 균형이 완전히 기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순식간에 전신을 회전하기 시작하는 마나를 확인한 후 천천히 눈을 뜨자 이미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진 바깥의 풍경이 보였다.
분명 점심쯤에 와서 앉은 것 같은데 벌써 날이 저물었다.
밖에선 한껏 걱정 어린 얼굴로 에이미가 안절부절못하고 서 있는 게 보였다.
계속해서 곁을 지키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거의 7~8시간을 내리 서 있었으니 다리가 아플법한데도 집념이 상당했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녀가 보이지 않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혈도를 따라 움직이는 서클은 서로 성질이 다른 힘이 충돌하지 않고 회전하게 도와준다.
마나로 길을 뚫어놓았으니 이제 신성력과 사령 마나까지 돌리면 되는 일.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 이 기괴한 서클 확립방법은 여러 장점이 존재하지만 가장 좋은 장점은 바로 이것이었다.
우웅.......
무영창.
소설에나 나올법한 용언이 이런 경우가 아닐까.
직접 영창 한다면 그 효율은 배로 늘어나는 장점 또한 가지고 있다.
의지의 발현을 돕듯 손가락을 까딱이는 것만으로도 간단한 능력을 발현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역시 마스터 위저드 클라스.
리스토어 마법이 발현되면서 자신의 몸을 감싸는 따스한 기분이 들자 에이미의 눈동자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벌써 놀라면 쓰나. 앞으로 계속해서 놀랄 텐데.
괜히 가학심을 자극하는 모습이라 한번 크게 놀라게 해주고 싶다는 짓궂은 마음까지 들었다.
* * *
다섯 달이 흘렀다.
그동안 내가 한 것이라곤 남들의 눈을 피해 숨죽이고 마나를 굴리는 일 정도였다.
물론, 처음만큼 힘든 일은 없는 데다가 기본적으로 굳어있던 마나나 신성력들이 서서히 움직이면서 성장 속도가 기가 막힐 정도로 늘어나는 것 또한 분명 있었다.
4 서클.
인간의 기준으로 평균 마법사들이 3 서클을 넘지 못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실로 엄청난 회복속도나 다름없다.
그동안 식량은 부족할 때마다 몰래 나가서 산짐승을 잡아오는 정도면 충분했다.
물론 그 다섯 달 사이 들어온 배당금을 잘 굴려서 필요한 부분에만 사용한 덕분에 자금적인 여유가 천천히 나오기 시작했다.
다른 왕족마냥 무작정 사치를 부리는 건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저하. 식사입니다."
"들어와."
작은 천에 바늘을 쿡쿡 찔러 넣으면서 허락하는 신호를 보내자 낡은 문이 열리며 에이미가 천천히 들어왔다.
"오늘도 누군가가 산짐승을 가져다 놓았어요. 그 외에 야채류도요."
"그렇단 말이지."
정확히 석 달 전부터였다.
누군가가 내가 있는 이 고요한 궁의 안뜰에 고기와 야채 같은 것들을 가져다 놓기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엔 리네스 왕비가 나를 암살하려고 가져다 놓은 건가 싶어서 확인해 보았지만 멀쩡한 고기이고 야채라 적당히 잘 써먹고 있다.
누군가가 나를 돕는다는 느낌은 드는데 직접 확인은 해보지 않았기에 누구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진 못하고 있었다.
'확실히 전날 누가 들르긴 했지.'
인기척은 하나였다.
이 내궁에 넓게 퍼진 마나를 잘 이용하면 누군가가 있는지 정도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의도하지 않게 내궁에서 생활하는 에이미의 사생활 침해까지 가능해져 버렸지만 양심상 그녀의 주변만큼은 마나를 거둬들이곤 있다.
"이번에도 식재료 걱정은 없을 거 같아요."
"그래 수고했어."
"저기...... 저하."
"음?"
"이제 궁의 수리 보수를 고려해보시는 게...... 정원의 잡초들도 그러하구요."
"내버려둬."
"하지만 궁의 외형은......."
"내 목숨 챙기려면 그냥 두는 게 더 좋아."
그 말에 그녀가 뭔가 울컥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성정이 착한 녀석이고 책임감이 생각보다 커 내 말의 의미를 깨닫고 침울해진 모양이다.
"알겠습니다."
"고생했어. 들어가 봐."
"네."
고개를 숙인 채 물러나는 그녀를 바라보다 다시 눈을 감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외적으로 나는 그렇게 격한 움직임을 행할 수 없는 상태지만 감시를 피해 이렇게 틈이 생기는 동안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내 손에 잡힌 건 이 궁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철검.
당장 써먹기엔 욕이 나올 정도로 무디고 낡은 검이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여유는 없었다.
아무리 뛰어난 검술을 지녀도 연습을 게을리하는 순간 실력은 떨어지기 마련.
간단하게 하더라도 연습은 필수나 다름없다.
우웅!!
내 움직임에 맞춰 주변의 마나들이 스스로 변화하여 움직였다.
현재 내가 보이는 움직임과 검술은 처음 내게 검을 가르쳤던 검신 하레스의 검술이 아니었다.
이름은 마령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데 솔직히 그리 관심 둬 줘 가며 유래를 알아보진 않았다.
물론, 내가 처음 배웠던 하레스의 검술과 비견되어도 좋을 만큼 무지막지한 검술이라는 건 분명하다.
물이 흐르듯 이어지는 마귀의 검이라고 한다나 뭐라나.
검에 깐깐하기로 소문난 검신 하레스조차 인정할 건 인정한다며 받아들인 검술이기도 했다.
검신 하레스의 검술이 패도적이고 파괴적이라면 이 검은 집요하고 부드럽다.
[천마 독고준.]
한때 부패해버린 정파를 무너뜨리고 독보적으로 무림의 일인자에 선 귀신같은 사내이기도 했다.
영웅의 회랑에서 검을 극한으로 파고든 또 한 명의 인간인 만큼 처음 나를 가르쳤던 헤라클래스는 하레스 이후로 그에게 검을 배우게 만들었다.
물론, 처음엔 그도 제자 같은 귀찮은 건 들일 생각도 없고 가르쳐줘야 할 이유도 모르겠다며 그리 말했지만 그 게을러터진 하레스가 가져온 특이한 청주 한 병을 받고는 순식간에 태도를 바꿨던 괴짜이기도 했다.
청주를 내려놓고 절을 하며 신줏단지 모시듯 하던 그때 그의 모습은 솔직히 웃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긴 했다.
그는 회랑에서도 유명한 술고래였으니 말이다.
술을 그렇게 좋아하던 성녀 다프네조차 저놈은 안 된다고 하던 양반이 아니던가.
보통 한 개의 검술을 익히면 나머지는 익히기 힘들기 짝이 없다.
극성으로 익힌 검술에 다른 것이 들어가는 순간 이물질이 되어버릴 테니 말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현재 내가 쓰고 있는 복합 검술이었다.
천마 독고준의 천마마령검의 집요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검신 하레스가 만들어낸 검술의 패도적임을 합쳤다.
검에 미친 두 또라이가 만나 만들어진 검술은 솔직히 지금에 와서 봐도 놀라울 만큼 완성도가 높은 검술이기도 했다.
그 외에 육체적인 부담이 되는 건 다른 영웅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정확하게 평가하자면 나는 영웅들이 작정하고 만들어낸 최종병기라 봐도 무방했다.
자신도 강한 걸 인지하고 있었고 그들조차 이정도면 기가 막히는 수준이라며 말했을 정도니까.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 적을 떠올려 마치 투명인간과 싸우는 것처럼 몸을 쉬지 않고 움직였다.
거의 회복된 몸은 어지간한 움직임에도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하아...... 하아. 그래도 30단계가 한계네."
88식 중 30식 정도가 한계지만 고작 5개월 만에 이만큼 회복한 것도 놀라운 건 놀라운 것이다.
당장 마스터라고 불리는 왕실 근위 기사단장도 검술의 조예만 따지면 내게 밀릴 터.
"후우...... 후우......."
지친 몸을 이끌고 드러누워 있자 낡았지만 말끔한 홀의 천장이 보였다.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 같은데 최소한의 관리는 해준 덕분에 이리 멀쩡하게 버티고 있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음? 누가 왔나?"
"저하, 사제들이 찾아왔습니다."
"아아...... 드디어 왔구만. 금방 갈게."
왔구나, 주변 정리해줄 청소기들이.
그리 말하며 땀에 절어버린 몸에 클린 마법을 사용하자 뽀송뽀송한 기운이 돋아났다.
조금 전까지 훈련을 하던 사람이 맞는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개운한 얼굴을 한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겨 방을 향해 지팡이를 쥐었다.
남들이 보는 나는 아직 걷는 것도 쉽지 않은 인간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