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권 14화
8. 펠리스티 공국.
소리 없는 폭격에 주변은 완전히 침묵에 휩싸였다.......
쩌억!
자신이 왜 죽었는지조차 모른 채 반으로 갈라진 사내는 그대로 피를 흩뿌리며 쓰러져 내렸다.
푸쉬이익!!
혈압을 견디지 못한 혈액이 사방으로 튀지만 가볍게 무시한 뒤 나뭇가지를 가볍게 털어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했던가.
마땅히 수중에 들고 있는 검이 없으니 나뭇가지로 대처하는 수밖에.
내게 검을 가르친 두 번째 검의 스승, 천마 독고준은 그렇게 말했었다.
-무슨 물건이건 손에 쥐면 전부 무기가 된다. 잊지 마라, 싸움에 법칙 같은 건 없다. 무기라는 건 결국 육체 공격의 연장선상. 생각하기에 따라서 천 쪼가리가 희대의 명검이 될 수도 있는 거다.
내 예견치 못한 기습 때문일까. 완전히 기세를 숨긴 채 이동하던 흑 무복의 사내들이 내가 만들어낸 충격파를 견디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고작 손에 쥔 게 나뭇가지라 해도 이정도 수준의 암살자들은 내게 살수의 기술을 가르쳤던 헤르메이샤와 비교하면 비교 자체가 불경한 수준이다.
가볍게 내리치는 종 베기.
하지만 천마 독고준에게 배운 천근추와 패도적인 파괴력을 자랑하는 하레스의 검술이 섞이면 나뭇가지도 태산이 되기 마련이다.
그런 마당에 작정하고 내리찍은 내 공격을 일개 암살자가 받는다?
놈이 제법 실력 있고 협동성 기가 막힌 놈들이라도 예외는 없음이렷다.
"기회가 생기자마자 습격이나 하고, 재미없는 놈들."
당장 산개해서 흩어져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일까.
긴장한 눈동자로 나를 노려보는 살수들은 마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이라도 하듯 굳은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확인하는 건데, 리네스 왕비가 보냈나?"
질문을 던져보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애초에, 답변을 바라고 던진 질문도 아니었으니 새삼 아쉬울 것도 없었다.
간만에 몸을 풀게 된 터라 조금 텐션이 올라가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는 현실이었다.
"그동안 기회만 엿보다가 함정인지도 모르고 꾸역꾸역 기어들어 와서 습격이라니."
혀를 쯧쯧 차며 손에 쥐고 있던 나뭇가지를 가볍게 휘둘렀다.
"커헉!!"
동시에 몇몇 살수들이 숨을 헐떡이며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그나저나, 그 여자는 뒷감당을 어쩌려고 이런 일을 저지른 거지?"
솔직히 조금 의문이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왕족이 셋이다.
타국으로 가는 도중 암살을 당하면 왕실 전체가 뒤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 여파는 제아무리 리네스 왕비라도 쉽게 감당하기 힘들 텐데.
생각할 수 있는 요소는 두 가지.
절대 흔적을 남기지 않을 자신이 있거나, 아예 다른 쪽으로 누명을 덮어씌울 계획을 세워 두었거나.
어느 쪽이건 그 여자에겐 이용가치가 충분한 방법이기도 했다. 애초에 이 나라의 실권을 쥐고 뒤흔드는 그녀는 과거에도 비슷한 짓을 저지른 경험이 있을 테니까.
"음? 아직 도망 안 갔네?"
내 말에 그들의 눈에 의문이 어렸다.
혼란스러울 수밖에.
그들이 받은 정보에 의하면 눈앞에 있는 타깃. 즉 나는 이제 겨우 운신이 가능한 병약한 왕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그가, 자신들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은밀하게 파고 들어왔다?
캠프에서 수백 미터 떨어져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자신들을 찾아내서?
어느 쪽이든 말이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들을 경악하게 만드는 것은 아마 내 손에 쥐어진 이 볼품없는 나뭇가지였을 것이다.
튼튼하고 날카로운 검도 아닌, 산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얇은 나뭇가지였다.
단 한 번의 종 베기에 주변을 짓누르고 그 대상이 된 살수 하나의 몸을 가볍게 반으로 갈라버렸다.
완력으로 가능한 범위가 아니라는 건 멍청이가 아닌 이상 분명히 눈치챘을 것이다.
"암살은 인내다, 잘 새겨둬."
내 말에 살수들의 보이지 않는 표정이 짜게 식는 게 느껴졌다.
거, 감수성 한번 풍부한 살수들일세.
내가 더 이상 공격하지 않은 채 놈들을 압박하고 있던 정체 모를 기류를 거둬들이자 놈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빛에 담긴 감정은 독심술이 없어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정보와 다르다, 임무는 완전히 실패다.
"가서 전해, 보채지 않아도 천천히 무너뜨려 준다고."
내가 더 이상 공격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주변을 살피던 녀석들이 내 의중을 파악하려 눈을 가늘게 떴다.
정말 보내주려는 것일까.
그리 고민하겠지.
그래, 한번 가봐라.
내가 나뭇가지를 내린 채 아무런 행동도 취하고 있지 않자 곧 함정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지 녀석들이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는 내게서 벗어나려 빠르게 등을 돌렸다.
훼이크다, 머저리 같은 새끼들.
[마구잡이 식 암술]
[파열]
푸욱!!
순식간에 번뜩이는 검은 빛 섬광이 대여섯 놈의 몸을 관통했다. 아니 관통하다 못해 두꺼운 무언가가 놈의 몸을 아예 뚫어버린 꼴이었다.
몸을 제압하는 기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도 안 되는 광경에 모두가 굳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끄륵...... 끅."
개중에 내게 몸을 관통당한 암살자 하나가 몸을 부르르 떨며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핏발이 선 눈동자를 한 채 나를 노려보았다.
그 눈동자에 담긴 속내를 대충 파악하자면.......
'보내준다면서 이 x발 새끼야!'
정도인 듯한데.......
그런 눈길을 보내면 대답을 안 해주곤 못 배기는 법이다.
"그걸 속냐? 멍청한 새끼. 암살은 인내라고 방금 말했는데 그새 까먹었네."
"이게...... 무슨 암살......."
얼마나 황당했는지 지금까지 침묵하던 녀석이 힘겹게 피를 울컥 토해내며 쏘아붙였다.
반쯤은 잠긴 목소리라 제대로 들리진 않지만 말이다.
"보는 놈만 없으면 암살이야. 이것도 오래 남은 명언이니까 새겨두고 가라고."
그리 말하며 내가 한발 내디뎠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남은 녀석들이 도주를 위해 몸을 튕기며 흩어졌다.
개중 몇몇은 판단력을 상실하고 내게로 덤벼 들어왔다.
암습을 가해도 이길까 말까인데 정면으로 밀고 들어온다라?
확실히 속도는 빨랐고 또한 날카로웠다.
처음과는 조금 다르다 느낄 만큼의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묵묵히 손에 쥔 나뭇가지를 휘두르는 것뿐이었다.
서걱! 촤악!!
뭉툭하고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한번 번뜩이자 나뭇가지의 궤적을 따라 백색의 빛이 섞인 검은 불꽃이 일렁였다.
동시에 내게 달려들던 녀석들의 몸이 일순간에 양단되듯 잘려나갔다.
내구성도 인간이라고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을 만큼 튼튼하고.
내게 달려들었던 놈들이 순식간에 고깃덩어리가 되어 쓰러지자 곧바로 나뭇가지를 쥐지 않은 남은 손을 땅에 짚고 사령 마나를 끌어올렸다.
상대를 추적, 저지하고 무너뜨리는 데엔 흑마법과 사령 마법이 가장 효율적인 법이다.
영웅의 회랑에서도 그랬다.
수련이 싫어서 짱박혀 있던 나를 가장 잘 찾아내던 건 이곳과는 다른 세상, 페스리사 대륙의 데스로드라 불리던 [로 아이아스]였으니 말이다.
울먹울먹하는 얼굴로 죄송하다, 죄송하다. 연발하면서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해버리는 그녀의 추적 실력에는 어지간한 영웅들도 모조리 두 손 다 들어버릴 만큼 뛰어났었다.
성격이 너무 착하다고? 초대 성녀 다프네가 술을 좋아하고 욕 한 번 내뱉기 시작하면 사람의 혼을 빼놓는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생각하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애초에 [로 아이아스]는 흑마법사들을 양지로 끌어내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게 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한 괴짜 흑마법사였으니 말이다.
어찌 되었건.
잡힌 이후 어떻게 되었냐고? 떠올리고 싶지는 않은 기억이다.
[체이서.]
[블라인드]
우웅!
내 손끝을 시작으로 검은 채찍 같은 것들이 사방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상대의 시야를 앗아가 버리는 1 서클계 저주계통 흑마법이었다. 조금의 저항력만 있어도 금방 버텨낼 수 있는 저주지만 극도의 공포에 질린 놈들에겐 충분히 효과가 드러났다.
"크악!"
"컥!"
놈들과 마주쳤을 때부터 이미 락온은 끝마쳐 놓은 상태.
당장 대륙의 반대편까지 가지 않는 이상 벗어날 길은 없을 것이다.
이윽고, 마법의 효과가 드러나기 시작하자 사방에서 기척이 강렬하게 느껴져 오기 시작했다. 시야를 차단당한 놈들이 본래의 은밀한 움직임도 잊은 채 버둥거리며 내게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맛에 추적했습니까?
문득 미안해하면서도 묘하게 희열을 느끼는 것 같은 표정을 짓던 로 아이아스의 심정을 이해해버린 것 같았다.
극도의 공포에 노출된 그들은 어떻게든 내게서 벗어나려 버둥거렸지만 이미 손아귀 안에 들어온 이상 살려둘 생각은 없었다.
자비를 베풀 대상은 내가 정한다. 죽이든 살리든 내 마음이라는 소리였다.
남을 죽이고자 했으면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도 인지했어야지.
바닥에 손을 짚은 채 도망쳤던 놈들과 이어진 검은색의 사령 마나 끈을 가볍게 당긴 뒤 이미 쓰러진 놈들의 몸에도 사령 마나의 끈을 연결했다.
그리고는 검게 흘러넘치는 사령 마나를 주체하지 않고 그대로 폭발시키듯 끈을 타고 퍼뜨렸다.
[컨퓨즈]
[로우어 레지스트]
[소울 익스플로전.]
혼란, 저항력저하.
마지막으로 영혼 폭발.
조금 독한 처사이긴 하지만 뒷마무리를 깔끔하게 하는 건, 나를 가르쳤던 모두가 같은 입장이었다.
죽이고자 작정한 이에게만큼은 자비를 베풀지 말라고 말이다.
투웅!!
무형, 무취, 무색의 영혼이 폭발하며 옅은 파장을 퍼뜨리고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그대로 영혼의 반 이상이 터져나가 버린 그들은 회생 가능성 없이 그대로 즉사했고 모조리 침묵했다.
순식간에 고요한 숲 속이 참혹한 살상의 현장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깔끔한 암살이구만."
문득 이렇게까지 크게 판을 벌이고 여유를 부릴 필요가 있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버렸다.
그리고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버렸다.
뭐가 되었건 발견한 이가 없으면 완벽한 암살이다.
* * *
"왕비 저하."
고요한 방안으로 검은 인영이 마치 연기가 퍼지듯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 되었느냐."
"실패했습니다."
짜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보고를 올렸던 시녀, 샤리의 뺨이 돌아갔다.
어찌나 강하게 때렸던지 하얗던 볼이 시뻘겋게 물들다 못해 입술이 터질 정도였다.
"어떻게 책임질 것이야!!"
히스테릭한 외침이었다.
리네스 왕비의 히스테릭한 성정이야 늘 봐왔던 사용인들에겐 새로이 놀랄 일도 아니었다.
"제 수하들의 심장이 멎을 시 불이 꺼지도록 고안된 마나석들이 모두 소등되었습니다."
"실패라...... 자세한 내막은?"
"아직, 알아보지 못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조력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짜악!!!
다시 한 번 시원한 소리와 함께 샤리의 뺨이 돌아갔다. 하지만 리네스 왕비는 그것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손에 닿는 것을 닥치는 대로 그녀에게 던졌다.
쨍그랑!!!
급기야 손에 쥔 작은 화분이 그녀의 이마를 찢었을 때.
숨을 헐떡이던 그녀가 표독스레 샤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흥! 검은 달 길드도 결국은 이정도였구나!"
"......."
"고작 기사 네 명에 애송이 셋을 처리 못 해서 전멸?! 스무 명이 고작 기사 다섯을 어찌하지 못해!!"
그녀의 고함에 분노할 법도 하건만, 샤리는 그저 묵묵하게 고개만 숙인 채 묵묵부답이었다.
"그 조력자가 누구인지도 알아내! 감히, 감히 내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어떻게 되는지 철저하게 보여주란 말이다!"
"명심하지요."
"그래. 잊지 마라, 내가 너희 검은 달과 손을 잡고 뒤를 봐준 건 네 실패를 보기 위함이 아니야. 반드시 명줄을 끊어야 할 거다.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싸늘한 시선으로 샤리를 노려보던 그녀가 씹어뱉듯 말을 이었다.
"계약은 거기서 끝이다. 바리에타 공작가와 이 나라의 힘을 모두 이용해서라도 검은 달 길드를 매장해버릴 터이니."
"새겨두지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거칠게 찻잔을 들이키는 그 모습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샤리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며 옅게 미소 지었다.
그런 그녀의 눈동자엔 피처럼 붉은, 기괴한 빛이 옅게 어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