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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49화 (49/1,559)

# 49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2권 24화

"시작 단추는 좋네."

-너무 좋아서 문제지. 다만 거래 상대가 거대 단체일 텐데, 압력을 무시해도 괜찮겠는가.

"서로서로 견제할 텐데 뭐."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왕궁이겠지.

"아."

그녀의 말에 내 얼굴에 절로 귀찮다는 표정이 어렸다.

마침 요 몇 달 사이에 내가 남겨놓은 정보를 확인한 페일트리스 후작이 귀족파들을 하나둘 쳐 날리고 있다는 모양이다.

덕분에 왕궁에는 현재 유례없는 피바람이 불고 있기도 했다.

"아마 왕궁은 이걸 신경 쓸 여력이 없을 거다, 발등에 불 떨어진 작자들이 서로 편가르기 하고 있을 텐데. 이렇게 보면 그 양반도 능력이 참 대단해."

거의 단신으로 수많은 귀족파들을 쓸어넘기고 있지 않은가.

나야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다지만 페일트리스 후작은 내게 얼마 남지 않은 아군이 될 이 중 하나인 만큼 그가 당하게 둘 생각은 없었다.

그래 봐야 쓸데없는 걱정이겠지만.

막말로 그가 막다른 길에 몰려 다른 왕국으로 망명을 떠난다고 하면 쌍수 들고 환영할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제 소문이 퍼졌을 테니 곧 이곳에 장기 체류하며 각 지부를 설치하려는 자들로. 또 잔뜩 바빠지겠지."

이 자그마한 영지에 수많은 마탑, 연금학파. 상단의 지부가 생긴다.

어지간한 소국의 수도에서도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게 가능하도록 만들어버린 건 다름 아닌 달의 풀 잎사귀.

땅을 말려 죽이려던 고대저주가 이렇게 일이 쉽게 풀리도록 바꿔주다니 새삼 고마울 지경이었다.

-파는 건 그 후?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판이 커지는 법이니까, 이곳에 온 심부름꾼들이 정할 수 있는 자금의 융통으로 끝낼 수야 있나."

씨익 웃는 내 모습에 그녀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대는 정말 악질 상인이군.

"상인은 아니고."

* * *

몬미더를 통해 퍼뜨렸던 소문이 암암리에 나돌면서 영지엔 장기 체류를 위해 남은 이들이 가득해 보였다.

당연히 내가 말한 대로 장기 체류를 허가해달라는 요청문이 들어왔고 나는 망설임 없이 승낙의 의사를 밝혔다.

당연히 현재 내 소유로 되어 있는 땅을 사들이겠다는 상인들이 많았다.

이제 비도 오고 땅의 상태도 좋아지고 있으니 이렇게 넓은 영지는 그야말로 개발의 장터나 다름없다.

광산도 없고 내세울 것이라곤 농업밖에 없다지만 그 농업이 어디 보통 농업이던가.

내가 허가를 내린 지역은 어디까지나 주거지역.

상업을 발전시킬 용도로 움직여야 할 작자들이 농지에 관심을 두게 둘 순 없었다.

그렇게 되면 주객 전도현상이 벌어질 테니까.

당연히 이런 사태를 예상 못 한 건 아니라는 듯 그들은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주거지역을 사들이기 위해 부단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생긴 경쟁과 충돌?

예상했던 바다.

"어찌할까요?"

"경매 붙여. 비싼 쪽에 판다고 해."

"하면 상하한가는 어찌 선정할까요."

"제한 없음."

"받잡겠습니다."

어디 끝도 없이 치솟는 땅값을 보라지.

예로부터 선조들은 땅 부자가 진정 부자라고 했다.

주식? 현물? 좋긴 한데 유지력은 땅만 한 게 없는 법.

교통적인 위치가 좋은 편인 만큼 달의 풀이 재배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때쯤엔 이미 거대한 도시로 성장해있을 터.

빨아먹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그냥 둘 내가 아니다.

이러한 내 선택에 불만이 터져 나올 법하지만 대상들이 보통 부자집단이 아닌 만큼 큰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이후 병이 나았다고 공표하면서 내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달의 풀 경매에 참여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 나는 곧장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가장 높은 경매가로 사 가는 이들에게 대량의 물품을 판매하되 일정량은 골고루 판매하도록 한다.

지금 같은 상황에 독점은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한곳에 코가 꿰일 이유가 없었다.

아주 손바닥 위에서 신나게 춤을 추는 모양새에 절로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그대, 표정관리는 좀 하시게.

"좋을 땐 웃는 거지. 흐흐흐."

내 모습에 페르세르크가 한숨을 내쉬며 끝도 없이 승천하는 내 입꼬리를 잡아 끌어내렸다.

-그 음흉한 웃음은 영 적응이 안 되는 게야.

"보지 말든가."

-끄응! 그대는 본녀를 굳이 악녀로 만들고 싶은 게지!

내 말에 그녀가 부루퉁한 표정으로 뺨을 부풀렸다.

투덕거리는 그 작은 팔을 무시한 채 피식 웃어주니 그녀가 더욱 울상을 지어 보였다.

21. 검을 회수하다.

대륙에 퍼져있는 마탑과 연금학파는 각자 국가에 소속되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독립단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자치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불의 마법을 연구하는 적탑 레드리아.

물의 마법을 연구하는 청탑 콜로네드.

바람의 녹탑 바리오드.

땅 마법의 회탑 루미니아드.

그 외에도 여러 방면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탑이 상징하는 색은 각 속성과 연관이 어느 정도 있는 편이었다.

개중에 적탑 레드리아의 마탑주 헬리슨은 고요한 얼굴로 눈앞에 있는 젊은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율리스 5급.

28살의 나이에 5 서클이라는 엄청난 경지에 오른 적탑 최고의 천재이며 그의 제자인 사내였다.

"들으셨습니까. 스승님."

"무엇을 말이냐?"

인자한 얼굴로 차를 마시고 있는 헬리슨을 향해 율리스가 물었다.

"라운 왕국이라는 소국의 왕자 이야기 말입니다. 오지나 다름없는 영지로 내려가서 이번에 달의 풀 잎사귀를 재배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듣긴 들었지."

"저희도 가세해야 하지 않을까요? 듣자 하니 서대륙에서 수입해오는 것보다 질이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럴 수밖에, 서대륙에서 좋은 물건을 일부러 동대륙에 수출해야 할 이유는 없을 테니."

길게 늘어진 백색의 수염을 쓸어내리며 헬리슨이 고개를 끄덕이자 율리스가 묘하게 답답한지 눈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니까 드리는 말씀입니다. 듣기로는 그곳에서 현장 경매가로 매각한다고 하더군요. 다른 마탑에서는 벌써 거기에 자금을 얼마나 투자하는가에 대해 회의 중이라고 합니다."

"그래?"

"하다못해 그 영지에 적탑의 지부를 세우는 것이......."

율리스의 근심 어린 목소리에 헬리슨이 껄껄 웃어 보였다.

"허허, 그럴 만도 하지. 달의 풀 잎사귀가 어디 좀 귀한 물품이더냐."

"하면......."

"그 부분은 네가 한번 해 보아라."

"제...... 제가요?"

"문제라도 있느냐?"

의문을 품은 눈동자로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서 무엇을 느낀 것일까.

율리스가 조금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것이......."

"못할 건 무에 있느냐. 너도 이제 어엿한 적탑의 장로 중 하나이거늘. 넌 매사에 너무 신중한 게 탈이야."

"아......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실망하게 해드리지 않겠습니다."

머릿속에 복잡한 고민을 품고 있는 듯 침묵하던 율리스가 급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실패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라운 왕국의 그 당돌한 왕자님은 대륙을 상대로 경쟁에 불을 붙였다지."

"사실 달의 풀 잎사귀를 재배하는 데 성공했다는 말은 놀랍지만 말입니다. 스승님."

"음?"

"왜 현장 경매를 고집하는 것일까요. 그건 마치......."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 같다?"

"예, 중간 유통과정에 투자금이 많이 들긴 하겠지만 직접 판매한다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을 텐데요. 게다가 이렇게 떨이 판매하듯이 팔아치우는 건......."

율리스의 말에 그가 고개를 까딱여 보였다.

"팔아치우는 건?"

"그 물품의 가치를 스스로 낮추는 행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장 서대륙에서 들여오는 만큼의 가격보다 높게 쳐도 팔릴 겁니다. 그만큼 질이 좋으니까요."

"그렇지."

"하지만 그렇게 현장에서 바로 파는 건 한계가 있는 법이지 않겠습니까, 처음이야 비싸게 팔릴지 몰라도...... 정가가 정해진 게 아닌 이상 담합이라도 한다면 서대륙에서 들여오는 것보다 싸게 매각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랬다.

처음이야 경매가가 불붙은 듯 치솟아 비싸게 팔릴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물량이 어느 정도 확보되고 나면 경매가격이 자연스레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서대륙에서 현장 경매를 하지 않고 포장해서 유통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허허. 내가 볼 때 라운 왕국의 1 왕자라는 그 소년은 굉장히 머리가 좋은 듯 보이는데."

"예?"

의아한 표정을 짓는 그 모습에 헬리슨이 껄껄 웃어 보였다.

"하인스 영지라고 했느냐."

"예."

"그 영지의 영지민이 몇이나 되더냐."

"200...... 아!"

말을 하던 율리스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현장에서 팔아치우기에 구매는 그 영지에서밖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투자금을 최대한 아끼고, 최단기간에 영지를 거대화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이지, 그뿐인 줄 아느냐? 우리 적탑 이외에 수많은 마탑, 연금학파. 상단까지. 그 물건을 구하기 위해서 그곳에 지부를 설치할 테지. 하면 질문하마. 라운 왕국이라는 그 작은 왕국에 그만한 대형 단체가 몰려있는 도시가 있더냐?"

헬리슨의 말에 율리스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쩍 벌렸다.

"아니지, 라운 왕국뿐만 아니라 어딜 가도 쉽게 볼 수 없는 조합이지. 실제로 그렇게 많은 단체가 모이면 자연스레 상업지구가 형성된다. 교통편이 유일하게 좋은 영지이니 아주 금상첨화로구나."

"놀랍군요...... 하지만 상단에서 물건을 사들여서 다시 판다면......."

"그래서 물량을 늘이지 않는 게지."

"아......."

"고작 열일곱의 나이에 거기까지 생각했을 거라곤 생각 못 했지. 그뿐인 줄 아느냐. 자금문제가 심각하던 영지에 비가 내리면서 더 많은 돈이 필요해졌지. 영지를 개발해야 할 테니."

"세상에......."

"당장 큰돈을 챙기고 그 이후의 일까지 노렸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헬리슨의 말에 율리스가 쩍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또...... 있습니까?"

"그 왕자는 일이 잘못돼도 전혀 아쉬울 게 없다는 듯 행동하고 있다. 그것은 달의 풀을 재배한 건 그저 시작일 뿐이라고 공표한 것이나 다름없어."

"그런...... 그렇다면 다른 무언가를 또 보여준다는 소리입니까?"

"그렇겠지. 내가 이리 느낄 정도이니 금전에 대한 안목이 깊은 작자들은 대부분 눈치를 챘을 게다. 설사 그것이 거짓이라도 그에겐 손해볼 게 없음이야."

"놀랍군요...... 정말......."

처음의 의문 따위는 말끔하게 날아가 버린 듯 율리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건 정말 상상 이상으로 치밀한 계획이 아닌가. 정말 20대도 안 된 소년이 만들어낸 구상이 맞단 말인가.

제아무리 고등교육을 받는 왕족이라지만 이정도면 영지의 전문 관리인들도 쉽게 시도하지 못할 위험하고 과감한 방식이었다.

"그럼 이제 네가 그 소년과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 알겠느냐?"

"네. 다른 걸 떠나서라도 한 번쯤은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고 싶군요."

"어디, 날이라도 잡아 보거라. 그 당돌하고 현명한 소년을 나도 한번 보고 싶으니."

헬리슨의 말에 율리스가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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