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5권 1화
41. 비밀 기사단 리인포스 알파.
"부족하다."
종횡무진 닥치는 대로 찢어발기며 전진하는 메가트론을 뒤따르며 내가 진중하게 중얼거렸다.
"여기서 또 뭐가 부족한 거야?!"
비명을 지르는 일리나와 같이 페르세르크도 자신이 도와서 만든 골렘의 여파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본녀도 같은 생각이야, 너무 밋밋해!
"외형이 문제인가, 아니면 음악을 추가해볼까?"
가볍게 상상하자 눈앞에 장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폭발적인 락 음악을 송출하며 훌륭한 대화수단인 전기톱을 휘두르는 가디언이라.
"크! 의욕이 샘솟는구만."
말이 로봇이지 거의 마법으로 만들어진 마도 골렘이지만 외형 자체는 욕심이 그득그득 담긴 변신 로봇과 다를 게 없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내 욕망 어린 시선에 일리나가 황당하다는 듯 물어오지만 내 귓가엔 들려오지 않는다.
굉음과 지진으로 인해 사방에 숨어있던 마물들이 덤벼들어 온다만.
결과적으로 모두 평등하게 전기톱의 희생양이 될 뿐이다.
-끼이잉!
전신이 갈려 나가며 비명이 난무한다.
겁에 질려 도망치려는 뮤턴트 울프 한 마리를 짓밟아 터뜨려버린 메가트론은 푸른 안광을 빛내며 주변을 둘러보고는 조용히 무기를 수납했다.
[일대 지형, 적으로 추정되는 마물 개체 소멸 확인.]
인첸트를 한 미스릴 합금 강판을 덧댄 효과가 확실히 드러났다.
일리나와 대련을 시킬 땐 부착하지 않았던 합금 미스릴 제 강판이지만 그녀와의 싸움 이후 재조정을 하면서 여기저기 덧댄 효과가 톡톡히 드러났다.
"근방에 뮤턴트 울프 말고 더 강한 놈은 없나?"
"......적어도 이 근방엔 없을 거야. 뮤턴트 울프는 번식력이 빨라서 개체 수가 많아. 기사단에서 주기적으로 청소는 하고 있지만 저렇게 가끔 모습을 드러내곤 하니까."
그녀의 말대로 확실히 이 일대는 그녀가 속한 비밀 기사단, 리인포스 알파의 영역이다.
적어도 그들이 사명감을 잃지 않은 조직이라면 마물들이 이렇게 날뛰게 두진 않겠지.
"이 위의 판도라 영역엔 초월체의 아래로 뮤턴트 울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한 마물들이 많다고 들었어."
"초월체?"
"응, 실체를 본 적은 없지만. 판도라 영역 내에 존재하는 마물들 중 가장 강한 왕급 개체라고 해. 소드마스터도 가볍게 찢어버릴 만큼 강하다고."
그녀가 씁쓸하게 말했다.
"물론, 우리가 직접 놈들의 공세를 막을 일은 없을 거야. 그건 견습이 아니라 정식 단원들 중 뛰어난 이들의 몫이야."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메가트론, 휴면 모드."
[명령 인수. 휴면 모드로 돌입.]
철컹!! 드르륵! 철컹!!
이윽고 앞서 나가며 경계를 풀지 않던 메가트론이 커다란 마차로 변하자 나는 망설임 없이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는 일리나를 바라보았다.
"뭐...... 뭐야?"
"타라고. 근방엔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어느 세월에 걸어서 가."
내 말에 그녀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신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마차에 올랐다.
"세상에...... 공간...... 확장마법? 일반적으로 생명체가 들어가려면 그 넓히는 공간에 들어가는 비용이 천문학적......."
기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그녀의 얼굴엔 나를 향한 불신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차의 내부는 체감상으로도 마차의 밖에서 보던 크기보다 훨씬 큰 공간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한 번 파괴되면 끝 아니야? 돈을 얼마나 바른 거야?"
"취미생활에 돈을 아끼면 진정한 취미생활이 되나."
그녀의 시선이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데이비, 저 아이가 생각하는 게 뭔지 본녀는 알 거 같은데?
'뭔데?'
-쿡쿡...... 이 미친놈이 돈 좀 벌어들인다더니, 아주 막 나가는구나!
'.......'
아니라고 하고 싶다만, 그녀가 본 성격을 드러내면 상상 이상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인다는 게 문제였다.
애초에 공간확장마법은 확실히 고난도이긴 하지만...... 이론과 숙련도만 확실하다면야 노가다에 가까운 작업일 뿐이다.
효율 떨어지게 비싼 돈 주고 마탑에 의뢰했을 리가.
제법 억울한 일이다.
* * *
한 차례 깔끔하게 정리를 해둔 덕분일까.
처음 이후로는 뮤턴트 울프를 포함한 마물들을 만나지는 못했다.
좀 더 다양한 데이터를 뽑아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아쉬운 일이지만 괜한 사고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하는 일리나로선 좋은 일인 모양이었다.
'이 숲은 마나 배열이 엉망이네.'
-영 정리가 되지 않아.
고요하게 이동하는 마차의 밖을 바라보던 내가 눈을 살짝 찌푸렸다.
무언가가 방해하는 것처럼, 평소에 몸 주변으로 넓게 퍼뜨려놓는 마나가 노이즈가 낀 것처럼 제대로 컨트롤이 되지 않는다.
그것도 주변을 탐색하는 것 한정으로 지독한 노이즈가 끼고 있다.
이래서야 어지간한 감지가 가능한 나라도 쉽게 손대기 어려운 수준.
-이건 마치.......
'광역 결계 같은데.'
결과적으로 내 예상은 적중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 숲은 말이야, 리인 포스 알파의 근거지를 숨기기 위해 광역으로 탐지 방해 결계가 펼쳐져 있어. 그래서 특정 인원이 아니면 바로 옆에 있어도 마나로는 기척을 찾기가 어렵거든."
그녀의 설명에 내가 고개를 돌렸다.
마차의 벽면으로 조금씩 나와 있는 창밖을 바라보며 그녀가 쿡쿡 웃어 보였다.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땐 나도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라, 분명 마나를 펼쳐서 주변을 경계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인데 어째서인지 노이즈가 끼는 거야, 그래서 이 숲은 마나의 흐름이 이 바깥과는 다른가? 했다니까?"
대화가 즐거운 것인지 그녀의 입가엔 미약한 미소가 어려있었다.
"후에 단원이 되면서 알았어, 리인포스 알파를 포함한 대부분의 라스트 위스프는 본거지의 근처에 이 같은 결계를 친다고. 아마 리인포스 알파의 탐지방해 결계는 이 숲 대부분을 덮고 있을 거야."
"그렇게 되면 반대의 경우는?"
"그건...... 이것으로 해결해."
내 질문에 그녀가 활짝 웃으며 제 손을 들어 올렸다.
희고 예쁜 그녀의 손가락엔 2개의 반지가 끼워져 있었는데 하나는 팔란 제국의 황족을 나타내는 인장이 붙은 반지였고 나머지 하나는 호박색의 특이한 반지였다.
"결계의 영향을 받지 않게 해주는 아티펙트야. 나는 검을 죽어라 팠기 때문에 사실 마법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특수한 파장에 맞물리게 해서 착용자가 영향을 받지 않게 해준다고 들었어."
그녀의 말에 흥미가 돋았다.
이런 방식은 조금 참신하다고 할까, 직접 시도해 본 적은 없지만 제법 시도해볼 가치는 있어 보였다.
"흐음 반지라......."
"리인포스 알파의 단원이 될 경우, 선생님들이 지급해주는 방식이야."
"선생님?"
"정확히는 선배들이지? 어느 조직이건 그렇지만 비밀로 유지되는 기사단은 특수한 방식으로 조직을 유지해야 하는데 언제고 완성된 이들을 끌어들이는 건 규정상 불가능하다나 봐. 그래서 재능있는 아이들을 어릴 적부터 단에 입적시키고 가르치는 방식을 가지고 있어. 나는 조금 늦게 합류했......."
콰아앙!!!
"꺄악!"
그때였다.
갑작스런 충격음과 함께 마차가 뒤흔들리며 그녀의 몸이 튕기듯 내 쪽으로 넘어진 것이다.
갑작스런 흔들림에 놀란 그녀는 제 몸이 내 품에 안겨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인상을 찌푸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아야야...... 이게 무슨......."
벌컥!
이윽고 멈춘 마차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새파란 머리카락 색을 가진 소년이 한없이 차가운 표정으로 난입한 것이다.
"시오?!"
"일리나......."
"이게 뭐하는 짓이야?!"
상황에 놀란 일리나는 저 자신이 균형을 잃고 내게 안겨들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버럭 소리를 질렀다.
"침입자는 배제한다. 일리나, 외부인을 들이다니 무슨 짓이지?"
냉기가 뚝뚝 흐르는 차가운 목소리.
싸늘한 그의 표정을 대변해주듯 그의 주변으로 미리 캐스팅된 자그마한 얼음 탄환들이 부유하며 그녀와 나를 동시에 노린 채 언제든 날아올 것처럼 파르르 떨렸다.
"설사 외부인이라 할지라도 네겐 이런 짓을 저지를 권한이 없을 텐데?"
"넌 지금 내게 질문할 자격이 없어, 현재 너는 엄연히 규정 위반을 저질렀고, 그에 따라 징계 대상이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동년배로 보이는 흑발의 작은 소년이 천천히 마차 쪽으로 걸어왔다.
"시오, 주변에 다른 이들은 없어."
"......그리 멍청하진 않았군. 누군가를 더 데려왔다면 더 볼 것도 없이 이 자리에서 처형감이다."
"웃기지 마, 네가 뭔데 함부로 같은 단원을 징계하는 건데?"
내 몸을 가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손을 가볍게 펼친다.
동시에 그녀의 브로치가 빛을 내뿜으며 그녀의 손으로 모여들었고 곧 백은색의 거검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모든 건 리인포스 알파를 위해서다."
"웃기지 마, 지금 네 행동은 엄연히 월권행위야. 당장 마법을 거두고 물러나지 않으면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어."
"이곳은 단원 이외의 인간이 들어올 곳이 아니다."
"그는 내가 데려온 거야."
으르렁거리며 낮게 씹어뱉는 일리나의 표정은 정말로 화가 난 것 같은 모양새였다.
삐이이이이이~
그때 저 멀리서 특이한 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시오, 복귀 명령이야. 일리나와 민간인을 데리고 돌아오래."
"......."
흑발 소년의 말에 시오는 짜증스레 혀를 차더니 나를 노려보았다.
"운 좋은 줄 알아."
황당함이 도를 넘으면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는다고 했던가.
나를 위협하듯 말하고는 물러나는 그의 모습에 내가 무언가를 하려 하자 일리나가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는 쓰게 웃어 보였다.
"미안해, 나도 상황이 당혹스러워서."
명백히 그녀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상황 전개라 그녀가 제대로 된 설명을 해줄 수 있을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살기."
아무런 미련 없이 마차를 나서는 그를 보며 내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뭐?"
"살기 조심하라고. 두 번은 없어."
"너......."
가벼운 내 미소에 무언가 반박하려는 듯 시오의 입술이 뻐끔거려지던 순간.
"시오, 우린 인류를 지키는 거지 검을 들이밀기 위해 단원이 된 게 아니야."
"......."
흑발의 소년이 그를 제지했고 결국은 충돌이 불발이 되어버렸다.
* * *
마치 죄인 연행하듯 우리를 호송하는 두 소년을 따라 30분 정도를 이동했을까.
일행은 오래된 고성에 당도하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오오...... 본녀는 이런 걸 원했음이야!
뭐가 그리 신나는지 페르세르크는 주변을 연신 두리번거리며 좋아했고 그 사실은 나 또한 마찬가지로 상당히 들뜨게 했다.
'꽤 오래된 양식 같은데.'
-그렇지! 이건 무려 본녀의 생전에 있던 건축양식인 게야!
그녀가 보기 드물게 흥분하며 요리조리 날아다녔다.
보통 같으면 평소의 나긋나긋하고 여유로움도 잃고 난리를 친다며 한소리를 했겠지만, 그녀의 얼굴은 그런 말을 꺼내기 미안할 정도로 즐거워 보였다.
다행이라면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이가 나 이외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일까.
굳이 꼽자면 홍단이와 청단이가 있겠지만 두 녀석은 내 허리춤에 매어진 검집 속에서 잠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