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5권 2화
'그나저나 칼디라스가 쌍둥이 검을 못 알아챌 줄은 몰랐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애써 티 내진 않았다.
"꽤 오래된 양식인데. 마법으로 유지되고 있는 건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주변을 이리저리 구경하던 내가 일리나에게 말을 걸자 그녀가 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데이비......."
"관리가 잘 돼 있어."
"미안해...... 이렇게 극단적인 대처가 나온다는 건 나도 예상 못 한 일이라......."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가벼워 져 있던 나와 다르게 일리나는 이 상황이 당혹스러우면서도 내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끼이이이익!!!
우리를 데리고 앞장서서 걷던 시오 하울이 거대한 대문에 손을 올리자 검은 목재로 된 두꺼운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은은하게 빛나는 성의 넓은 홀 내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데이비를 데리고 기숙사로 가겠어. 보고는 내가 따로 올릴 테니까."
"아니, 너는 나를 따라와라. 그리고 트레브."
앞장서서 걸어가던 시오가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응시하는 게 보였다.
"민간인을 외곽 숙소에 안내해. 이 일에 대한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라는 지시다."
"알았어."
한 치의 타협을 모르는 듯한 싸늘한 어조에 트레브가 조용히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와 키가 비슷한 시오와 다르게 트레브라는 소년은 확실히 신장이 작은 편이었다.
"가능하면 무력을 쓰고 싶지 않아."
"무력을 쓰기 싫다고?"
"나는 말 한마디로 대상을 죽일 수도 있어. 하지만 안심해. 인간을 상대론 함부로 사용하지 않아."
"거 기대되네."
짙어지는 내 웃음에 그의 얼굴에 미묘한 의문이 어렸다.
* * *
[특질능력자? 네 전생 기준으로 초능력자 같은 놈들이지. 솔직히 분석해보면 인간...... 이라 보기도 힘들어. 실제로 사람에게서 태어나지 않거든.]
[혹시 적으로 만나면 대처를 어떻게 하냐고? 일단 발현계 특질능력자들은 상관없을 테고.]
[정신계통? 지금 네 녀석에게 그딴 게 어딨어, 미친놈아. 저 미치광이 [마법사의 신]이 정신 마법 걸리는 거 봤냐?]
"여기."
나를 데리고 고성의 외곽에 위치한 작은 방으로 안내한 트레브가 손에 쥔 스태프로 가볍게 문을 두드리자 마치 물의 파문이 퍼지듯 일렁이며 굳게 닫힌 문이 열렸다.
"환술사는 참 보기 드문데."
"......."
"고향이 어딘지 물어봐도 되나?"
내 말에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다만, 곧 털어내기라도 한 듯 미련 없이 방을 나서버렸다.
세기의 미스터리를 풀 기회가 날아가 버렸다!
다만 언제 가져온 건지 고소한 향을 풍기는 빵과 우유가 담긴 쟁반이 놓여 있는 게 보였다.
겉보기엔 둘 다 겁도 없이 냉기 풀풀 흘리고 있는 애들이지만, 그 시오 하울이라는 놈이 아무 데나 적의를 보이는 녀석이라면 이 트레브라는 소년은 그냥 주변 일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고소한 향을 풍기는 빵 하나를 입에 털어 넣으며 침대에 누운 뒤 눈을 감았다.
제법 푹신한 침대의 감촉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음, 역시 인체공학.
느긋하게 눈을 감고 있자니 미묘하게 수마가 몰려온 탓에 저도 모르게 그대로 눈을 감고 잠들었던 모양이었다.
미약한 기척에 눈을 뜨자 두 소년이 말없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게 보였다.
"시간 다 됐나?"
"......따라와라. 선생님의 호출이다."
녀석의 말과 동시에 환술사 트레브의 손이 허공에서 깜빡이더니 미약한 힘과 함께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튼튼한 밧줄이 내 팔을 구속하듯 옭아맸다.
마법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 밧줄은 환상이지만 당신에겐 진짜처럼 느껴질 거야, 다칠 수도 있으니 무리하지 마."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소년의 설명에 나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팔을 내려다보았다.
이쯤 되니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상대에게 환상을 보여주어, 오감을 장악하는 특이능력을 쓰는 환술사의 힘이 과연 무생물인 골렘에게도 통할까 하는 것.
환술이라는 힘은 부적술과 다르게 완전히 미지로 알려져 있는 힘이다.
의지가 없는 단순한 시스템 덩어리인 골렘에게 먹힐지 안 먹힐지는 실상 나로서도 쉽게 판단을 내릴 순 없었다.
* * *
트레브와 시오를 따라 내가 도착한 곳은 성내의 상층인 접견실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다만 내부의 모습은 집무실이나 접견실보다는 오히려 청문회장과 비슷했다.
"데려왔습니다."
커다란 문이 열리며 고개를 숙여 보고하는 시오를 둔 채 시선을 돌리자 여러 쌍의 눈동자가 보인다.
호기심, 흥미, 경계. 놀라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크게 신경 쓸 모양새는 되지 못했다.
정면에 있는 커다란 테이블엔 3명의 남녀가 앉아있었다.
로브를 입은 여성, 거구의 남성, 그리고 쌍검을 등에 멘 평범한 체구의 사내였다.
그리고 중앙에 심문받듯 고고하게 서 있는 일리나와 그녀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이들이 몇몇이다.
"다시 확인하도록 하지. 일리나 데 팔란 견습생."
"네."
담담한 그녀의 대답에 거구의 사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대는 맹약을 위반하고 외부인을 리인포스 알파의 본거지로 데려왔다. 그 사실을 인정하나?"
"그것은!"
"묻는 말에만 대답하라."
엄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에 일리나가 짧게 혀를 찼다.
"네."
그녀의 대답에 구경하고 있던 소년 소녀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이어서 거구의 사내 곁에 있던 여성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기사단의 단원은 대륙에서 어떤 직급을 지니고 있다고 한들 맹약을 어긴 죄를 그냥 넘어갈 순 없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
"......예."
"더 볼 것도 없군, 일리나 견습생은 징계. 그리고 저 소년은 날짜를 잡아 기억을 소거한다. 저항한다면 기밀 엄수를 위해 처형도 고려하지."
"그전에 발언하겠습니다."
여성에 이어 상황을 종결시켜버리려는 가벼운 체구를 지닌 사내의 말에 일리나는 당당한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분명 규정에는 외부인을 끌어들일 수 없다고 했지요."
그녀의 발언에 주변이 침묵한다.
제법 재밌는 광경이라 그 자리에 선 채 느긋하게 상황을 감상했다.
일단 미우나 고우나 일리나는 친우가 된 소녀. 만약 그녀가 정말로 곤란에 처하는 상황이라면 그때 나서는 게 오히려 현명한 상황이다.
적어도 그녀의 입장이 쓸데없이 난처해지진 않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
"하지만 외부인이 아니라면요?"
"뭐라?"
"제가 가진 권한을 사용하겠다는 뜻입니다."
일리나의 당돌한 발언에 눈앞에 있는 3명의 남녀가 술렁거렸다.
"그 말인즉슨, 네게 주어지는 평생에 단 한 번 들일 수 있는 제자의 권한을 사용하겠다, 그런 뜻이냐?"
"네, 그런 이유로 데이비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니까요. 선생님들은 제 시험의 기회를 박탈하려 하셨지만 저는 반드시 시험을 치를 겁니다."
"네 파트너였던 샤란 셀림의 소재는 아직 파악 중이다. 경솔한......."
"충분히 심사숙고 한 일입니다. 샤란 셀림에 관한 것도요."
일리나의 차가운 질문에 누군가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너는 아직 견습 단원이다. 네가 누굴 가르치겠다고 이리 경솔한 짓을 한 게야! 게다가 제자는 일생에 단 한 번이다. 그를 정말로 믿을 수 있느냐? 또 가르칠 자신이 있느냐?"
처음 차갑던 말투와는 다르게 미묘한 걱정이 어린 말투였다.
여성의 물음에 그녀가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단호한 어조로 물었다.
애초에 가르친다는 전제가 틀려먹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리아 선생님, 중요한 것은 제가 권한을 사용했다는 것, 그리고 데이비가 그 규정에 맞는 대상이라는 점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리 정도 이상으로 경계하고 계신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녀가 말끝을 흐렸다.
"리인포스 알파의 방침은 인류의 보호. 이런 상황은 옳지 않아요."
"일리나! 말을 조심해라! 그딴 궤변으로 저 정체도 알 수 없는 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거냐!!"
그때 가만히 서 있던 청발의 소년, 시오 하울이 격하게 분노하며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그건 네가 정하는 게 아니야. 주제넘게 굴지 마, 시오 하울."
"존경하는 선생님! 이건 말도 안 되는 말입니다. 그녀의 논리는 언뜻 들으면 맞아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나 두 가지 오류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시오 하울, 나는 발언을 허락한 적이 없네."
거구의 사내가 엄하게 말하지만, 그는 말을 끊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크게 소리쳤다.
"그에게 사명감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게다가 그에게 재능이나 특이한 봐줄 거리가 있는지조차도 알 수 없습니다!"
"시오 하울!"
소리치는 일리나를 무시한 채 그가 다시금 발언했다.
"마나조차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이입니다. 리인포스 알파의 규정에는 2명 이상의 선생님들이 참관하는 곳에서 그만한 재능을 입증한 자만이 견습 단원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무리 좋게 봐도 일반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군요."
"......."
"차라리 리인포스 알파의 정보를 유출하려는 그녀의 모종의 행동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채앵!!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일리나가 단상에서 내려와 그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말이면 다 되는 게 아니야, 시오 하울. 어지간히 성격 더러워도 같은 견습생인 널 죽게 두고 싶지 않으니까 그 입 닥쳐."
"네까짓 게 나를 벨 수 있다고 생각하나?"
"까불지 마, 마나의 축복을 받더니 네가 뭐라도 된 것 같아? 그리고 전제부터 틀려먹었어, 나는 널 벤다고 한 적 없으니까."
"하! 그럼 저기 있는 저 마나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 녀석이 날뛰기라도 한다는 거냐?!"
싸늘하게 대치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막연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막장드라마가 생각날 수준이다.
-마나의 축복...... 마법사로선 크나큰 영광이겠지.
묵묵히 그들을 지켜보다 시선을 돌리자 말없이 나를 지켜보는 세 남녀가 보였다.
선생이라 불린 이들은 하나같이 보통 수준의 이들이 아니었다.
그래도 가르치는 입장이다 보니 실력이 있는 이들로 선정이 된 것일까.
'정령사 하나에 검사가 둘.'
-실력으로 치면 모두 마스터 이상이군. 비밀 기사단이니 이해는 한다만.
모두가 마스터가 될 순 없다. 선생이라 불리는 이들은 아마 기사단원들 중에서도 뛰어난 이들일 것이다.
"정숙!! 지금은 엄연한 재판 중이다! 일리나 견습생! 시오 견습생! 한 번만 더 소란을 일으킨다면 퇴장 조치하겠다!"
이윽고 여성의 외침에 일리나가 짧게 혀를 차자 시오가 차가운 얼굴로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경멸하는 시선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대 의외로 잘 참는군?
'알아서 판 깔아 줄 때 해결하면 되는 일이야.'
"하지만 시오의 말은 사실인 듯하군."
이윽고 평범한 체구의 사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 소년의 소재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그의 마나는 상당히 평범한 수준이다."
결국, 저들도 내게서 느낄 수 있는 마나는 극히 일부분뿐이었던 모양이다. 애초에 아예 느끼지도 못하는 이들에 비하면야 나은 편이지만.
"일리나 데 팔란. 이 부분에 한해 할 말이 있는가?"
"그의 힘에 대한 보장은 제가!......."
"그건 네 기준이 아닌가?"
"선생님!"
"시오의 말대로 우리는 저자에 대해 어떤 재능의 흔적도 느낄 수가 없다. 게다가 사명감을 가진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따라서 네 요청은 기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