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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09화 (109/1,559)

# 109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5권 9화

연금술 계통은 솔직히 연습보단 암기나 이해에 가깝다.

그 탓에 나는 무식한 기억력으로 정보만 익혔을 뿐 이렇다 할 무언가를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지식만 머릿속에 쑤셔 넣고 별로 활용을 안 한 게 후회되는 순간이리라.

위잉!! 위이이이잉!!!!

무지막지하게 회전하는 날카로운 원뿔 형태의 쇳덩이를 본 일리나는 이제는 거의 초탈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매번 보는 거지만, 데이비 넌 정말 흉악한 걸 만드는 재주가 있어,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지경이야."

확실히 처음 도안을 만들어 드워프 장로인 골다에게 넘겼을 때 그도 같은 말을 하긴 했었다.

'은사, 아이디어도 기발한 건 좋은데, 이건 이것대로 흉악하기 짝이 없구려?'

대량의 마나를 동력으로 거대한 쇳덩어리를 회전시키는 드릴.

"지금까지 쌓아둔 데이터로 가용 가능한 개조만 조금 했을 뿐이야, 아직 내구성이나 지속성은 실험을 더 해봐야겠지?"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재료가 아쉬운 건 아니니까.

-그냥 떠오르는 대로 만든 것이니 별수 없는 노릇인 게지.

당장 아무런 데이터도 없이 그저 손 가는 대로 만든 것이라 드릴이 망가지거나 출력이 급 저하되거나 하는 요소도 고려대상 중 하나였다.

일차적으로 프로토타입 커스텀 파츠인 드릴이 완성되는 데엔 약 사흘이 걸렸다.

신축되는 하인스 영지의 영주성 지하, 디셉티콘 격납 공방에서 사흘간 쉬지 않고 작업에 몰두하고 이제야 초기 완성품이 나온 탓에 상당히 뿌듯함이 몰려왔다.

지잉!! 지이이잉!!!

실험용 강판에 드릴을 꽂아넣고 사정없이 파헤치는 메가트론의 힘을 체크하며 이래저래 수정점을 보완한다.

"일단 흑철에 미스릴 코팅이지만, 내구성이 그렇게 떨어지진 않겠지."

총도 스코프, 레이저, 후래쉬라이트 손잡이 같은 것을 부착하듯, 골렘의 장점은 커스텀 파츠를 부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드릴은 장착과 해제가 자유로운 장비 시작품이라 할 수 있었다.

역시 이론만으로 만드는 것보다 이리저리 부딪히고 굴려보니 발전속도가 남다르다.

"그런데 그걸 어디서 시험하게?"

문득 든 생각인지 일리나가 조심스레 물어오자 나는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기사단 본부 고성에 널리고 널렸잖아. 신제품 성능을 시험해줄 의욕 호르몬 과다분비 된 병아리들."

내 말에 일리나의 표정이 흡사 음식물 쓰레기를 보듯 변했다.

"......넌 정말 개자식이야."

알고 있다.

* * *

"꺄아아아아악!!!"

"흐아아앙!"

비명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연무장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두 소녀.

키이이잉!! 키잉!!!

부아앙!!

그리고 한 손엔 전기톱, 한 손엔 드릴을 장착한 채 종횡무진 두 소녀를 쫓고 있는 메가트론.

음, 너무 빠르게 과열되는 것만 제외하면 성능이 아주 마음에 든다.

마물도 직접 좀 뚫어보면 좋겠다만 마물들이 제대로 날뛰는 판도라 영역의 초입부는 아직 입장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다.

"그...... 그만!"

"졌어! 항복! 항복!"

비명을 내지르며 주저앉은 두 사람, 쌍둥이 자매 중 동생인 펜디르 렌다와 그녀의 파트너인 린시 페일라가 창백하게 질려 소리쳤다.

헤치지 않을 걸 알지만 본능적으로 겁을 먹게 만드는 효과가 탁월하다.

"가동 정지."

[명령 수락.]

내 말이 들리기가 무섭게 거침없이 돌진하던 메가트론이 그대로 양손에 쥐어진 흉악한 것들을 멈추고 천천히 몸을 숙여 보였다.

바람의 중급 정령사인 펜디르 렌다와 익스퍼트 헌터 린시 페일라는 중거리 견제용 페어라 할 수 있다.

바람의 정령을 이용해 두 사람의 기동성을 올리고 린시와 펜디르의 차륜전으로 히트 앤 런을 하는 방식.

나쁘지는 않은 조합이지만 메가트론의 저 거대하고 무거운 몸체를 날려버리기엔 두 사람 다 화력이 부족했다.

급히 소환해 벽으로 내세운 정령은 전기톱에 갈려 나가고 드릴에 구멍이 뚫려버리니, 그들을 지켜줄 존재가 없다.

"조금 봐달라고 했는데......."

"흐응...... 정말 못됐어!"

울상을 지으며 불만을 토하는 펜디르의 외침에 내가 망설임 없이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주자 울상을 지으면서도 받아간다.

아이들을 달래는 데엔 역시 당분만 한 게 없다.

"데이비! 우리도 부탁해!"

이어서 펜디르 렌다의 쌍둥이 언니인 샤이르 렌다와 거병을 다루는 헤그 페어가 연무장 위로 올라왔다.

견습 단원이 되고 하인스 영지와 이곳을 오가기를 약 2주 가까이.

그동안 견습생들에게 나는 상당히 강하고 판단력이 좋은 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혔다.

사람이 사람과 부대끼면서 살다 보면 조금씩 변한다고 했던가.

나는 필요 이상으로 허울 없이 동기로서 나를 대해주는 이 작은 녀석들에게 호감을 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이런 경험은 전생 현생, 회랑에서의 삶까지 통틀어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고작 만난 지 한 달조차 안 된 이들에게 끌려 버렸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 일로 선생들이 내 역량에 대해 더욱더 평가가 좋아졌다는 건 부차적인 일일 뿐.

"학창시절이 이랬을까."

전생을 통틀어도 나는 초등학교 이후로 학창시절이라는 기억이 없다.

기억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중학교를 들어갈 나이부터 내가 죽을 때까지 병원 밖을 나가본 적이 없으니까.

마치 감옥과도 같은 병원의 무균실에서 평생을 보낸 기억이 전부였다.

그런 생각이 드니 괜스레 짜증이 치솟았다.

"오늘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해왔다! 그 골렘의 공략법은 이제 숙지했으니 쉽지 않을 거야."

가동명령만 기다린 채 침묵하고 있는 메가트론의 팔뚝 장갑을 퉁퉁 두드린 후 나는 솔직하게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거 기대되네, DDD 전술 타입으로 가자."

[명령 수락]

어둠의 Dark! 죽음의 Death! 파괴의 Destroy!

키잉!! 위이이잉!!

동시에 드릴과 전기톱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푸른 안광의 강철 괴물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후 대련이 끝난 건 새로운 유적지가 발견되었고 견습생 전원이 실전 견학을 위해 그 유적지로 간다는 소식을 들고 온 몇몇의 외침이 들려왔을 때였다.

44. 낙하!

판도라 영역의 초입부에서 최근 발견된 미개발 유적.

연식이 파악되지 않는 유적지의 존재에 기사단의 교육을 담당하는 세 선생은 견습생들을 그곳에 보내 견학시키기로 결정을 내린 듯했다.

"저하께서 시행하신 정책 덕분에 기존의 영지민과 새로 유입되는 영지민의 조화가 생각보다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래, 다행이네."

"그리고...... 베스퍼스 왕실 시종장으로부터 연통이 왔습니다만, 궁정의 람다스 경이 폐하를 찾아뵙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그래?"

"저하,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이십니다. 한번 찾아뵙는 것이 어떠실는지요."

"됐어."

내 말에 베르닐 시종장은 그저 씁쓸하게 웃어 보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내 방문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고 나도 그를 만나는 게 그리 내키는 상황은 아니다.

안 그래도 최근 왕성에서 2 왕자이자 내가 원형탈모를 심어준 칼루스의 패악질이 점차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하던데.

지독한 원형탈모에 말끝마다 기괴한 동물의 울음소리가 달라붙어 버린 놈이었다. 비록 말투에 섞인 저주는 사라졌지만 머리에 태양이 심어진건 지우지 못한 듯하니 그 히스테리가 아마 보통이 아닐 것이다.

최대한 고통이나 받으면서 스스로 파멸하라지.

결국 마지막에 녀석이 당도할 결과는 어차피 처음부터 하나였으니까.

"그나저나, 최근 들어 저하의 얼굴이 많이 펴지셨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그래 보이나? 최근에 재밌는 녀석들을 만나서."

"예, 불경한 말씀이지만 솔직히...... 저하의 표정은 세상 다 산 늙은이 같은 얼굴이었으니까요."

"또 장난이 늘었어, 보기 좋다는 뜻으로 받아들일게."

기분 좋게 수긍하자 베르닐 시종장이 만족스러운 듯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영지 일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익숙하게 고성으로 돌아온 내 눈앞에 잔뜩 준비를 마치고 기대감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이 어린 새싹들이 보였다.

"앗! 데이비! 일리나! 왔구나?"

실전 수업이 기대되는지 등 뒤에 맨 가방을 이리저리 자랑하며 즐거워하는 견습생들은 확실히 의욕 호르몬 과다 분비된 병아리다웠다.

"정숙!"

이윽고, 강당에 모든 견습생들이 모이자 기다렸다는 듯 보리스를 포함한 세 명의 선생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알고 있겠지만 이번엔 판도라 영역의 초입 영역에서 발견된 미궁으로 실전 수업을 나간다!"

"너희들이 가는 곳은 실전이다! 언제 너희들의 목숨을 노릴지 모르는 위험이 사방에 도사리고 있다는 걸 명심해!"

"언제고, 방심을 늦추지 마라. 기사단에게 방심은 곧 죽음이다."

선생들의 당부를 들으면서 눈을 반짝거리는 녀석들의 귀에는 이미 들려오지 않는 듯했다.

이어서 선생들의 인솔에 따라 마차에 오른 견습생들은 마치 소풍 가는 어린이들처럼 재잘거려댔다.

세상을 등지고 이곳에서만 살아가는 이들도 있기에 이런 자극은 아마 생각 이상으로 신선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

그리고, 약 5시간 정도 이동을 한 뒤 도착한 유적의 형태를 발견한 내 입에서 얼빠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건.......

동부대륙과 중부대륙의 북부인 판도라 영역.

거리 차이가 얼마인데 이렇게 동일한 유적이 보인단 말인가.

-미약하게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이 비슷해.

내 생각과 다르게 견습생들은 그저 신기한 유적이라는 평가를 내놓을 뿐이지만 나는 조금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하인스 영지의 유적에도 어마어마한 것들이 잠들어있었다.

예상이지만 이 정도의 유적이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라면 분명히 안에 커다란 무언가가 있다.

'슬쩍 할까?'

가능하지 못할지는 둘째치고서라도 한번 시도해볼 가치는 있어 보였다.

-또 골렘이 있는 거 아닌 게야?

'그럼 마정석과 마법진이 배열된 부분만 뽑아서 가자고. 디셉티콘 편대에 메가트론 한 대만 있는 것도 문제니까.'

추가로 만들어지고 있는 골렘은 아직 하나밖에 없는 만큼 더 많아질수록 영지에 생길 문제를 처리하는 완벽한 가디언 부대가 될 것이다.

"다들 정숙해라! 이곳부터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믿을 것은 각자의 파트너뿐이라는 사실을 인지해라! 살릴 수 있다면 살리되! 위험하다 싶으면 무조건 몸을 빼라!"

경고 섞인 당부를 하는 보리스가 몇 차례 잔소리를 늘어놓은 뒤 검을 뽑아 들었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유적을 탐사한다!"

단호한 외침에 견습생들의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거렸다.

* * *

아니나 다를까.

유적 내부는 하인스 영지에 있던 그 유적과 거의 흡사한 모습이었다.

정체불명의 바위 블록으로 이루어져 오러 블레이드로 후려쳐도 잘 부서지지 않는 내벽. 그리고 푸르게 빛나는 틈 사이까지.

다만 그 영역과 다른 점이라면 골렘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제법 아쉬운 일이지만 이곳에서 그런 놈들이 튀어나왔다면 아마 이곳에 오지도 못했을 확률이 높다.

그래 봬도 놈들은 메가트론보다 출력이 떨어질 뿐 익스퍼트 최상급 이상의 화력을 가진 놈들이었으니 말이다.

"여긴 총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요."

말없이 앞장서서 걸어가는 일리나를 뒤따라가던 중 곁에서 알리사 페트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3층이요?"

"네, 하지만 1층과 2층은 하위 마물만 발견되는 특이한 곳이라 견습생들의 견학에도 문제가 없다는 모양이에요."

그녀는 내가 묻지도 않은 정보를 나열하며 내게 호의를 표해왔다.

우상이라느니 뭐니 하더니 부담감이 배로 증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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