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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16화 (116/1,559)

# 116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5권 16화

한번 빠져들면 주변이 보이지 않는 케이스.

신체 스펙과 반사신경은 상당한데 정신이 아픈 케이스.

내가 판단한 밀피유는 그런 뱀파이어였다.

"쿨럭, 아파."

위험하다 싶으면 빠르게 처리하는 게 맞으리라.

밀피유는 미묘하게 안전한 것 같으면서도 쉽게 판단하기 어렵게 만드는 유형의 적이었다.

"그 푸른 검...... 판단미스야...... 우리에게 너무...... 치명...... 적......."

붉은 검을 처음부터 경계하던 밀피유는 반대로 청단이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했다.

그리고 결과가 이 지경이다.

"하나같이 흥미로워...... 연...... 구하고 싶어."

이 와중에도 연구욕을 꺾지 않는 그녀였다.

하지만 그녀의 육체는 그녀의 의지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마치 시위라도 하듯 격하게 그녀의 입을 통해 각혈을 쏟아냈으니 말이다.

"데우스 액스 마키나...... 불사파괴의 검...... 포기하기 싫은데......."

아쉬운 듯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 우울함이 어렸다.

그리고, 아주 찰나의 순간.

"그래도, 죽고 싶지 않아......."

결국 그녀는 도망을 선택했다.

마치 액체로 변하듯 그녀의 신형이 무너져 내리며 사방으로 흩어진 것이다.

목표보다 목숨을.

도망을 선택한 그녀의 결단은 생각 이상으로 과감했다.

"데이비 님!"

이윽고 그녀의 후퇴를 확인한 루시아가 허겁지겁 달려와 내 몸을 살폈다.

"다...... 다친 곳은 없나요?!"

비명을 지르듯 물어오는 그녀의 질문에 고개를 숙여 이리저리 살펴보지만 큰 상처는 없었다.

"문제는 없어."

"하아...... 다행...... 다행이에요. 자애로우신 성녀 다프네 님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그거 다 가면이야."

"네?"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도 생전에 이미지 관리는 철저했다는 모양이다만, 진실을 아는 이의 입장에선 기도 안 찰 노릇이 아닌가!

아오, 이걸 말할 수도 없고!

나라고 좋아서 입을 다무는 게 아닌데.

답답해 죽을 지경이다!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을 주워 삼키며 시선을 빠르게 회피했다.

겉보기엔 멀쩡한데.

참 순한 인상에 귀여운 말투까지 다 좋은데 왜 하필 다프네의 광신도란 말인가.

신은 공평하다더니.

* * *

-세상에 완벽한 건 없는 게지. 그보다 몸은 어때.

'그럭저럭.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어.'

일대의 골렘들은 전부 밀피유가 박살 내버린 탓에 이 이상의 습격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일단 나가기만 하면 큰 문제가 될 건 없으리라.

"완전히...... 도망간 걸까요."

주변을 경계하며 루시아가 불안스레 중얼거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도망갔다고 판단했는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저희 어디로 탈출하죠?"

확실히 이곳은 시험관들만 빽빽하게 차있을 뿐 다른 곳으로 통하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나를 습격하고 도망쳤던 뱀파이어 밀피유도 특유의 공간이동마법을 사용했으니.

"......."

없으면 만들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

작게 누군가가 내 옷깃을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좀 전에 자신과 싸우던 밀피유를 내가 끝내버린 게 못마땅한지 미묘하게 부루퉁한 표정이다.

분명히 무표정인데, 왜 감정이 엿보이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륀느?"

"주인님. 위로, 가야 해?"

여전히 어색한 발음으로 물어오는 륀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천장. 부수면 돼?"

"마구잡이로 부수면 무너지니까 깔끔하게 통로 정도로, 할 수 있어?"

과연 이것도 할 수 있을까.

그녀가 사용한 광선의 위력을 보면 이 정도로 단단한 유적도 그대로 부숴버릴 것 같긴 하다만.

내 말에 륀느가 천장을 올려보며 눈을 번뜩였다.

"분석개시."

동시에 축소되었던 머리 위의 링이 크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정보 오류. 구성분의 분석 실패. 차기 분석을 개시. 강도 측정. 측정완료."

담담하게 중얼거린 륀느가 허공에 손을 들기 시작했다.

찰캉!!

동시에 그녀의 손바닥 위로 홀로그램 같은 것들이 다시 모여들며 아주 작은 부착물이 생성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부착물을 소환하다니, 이 신의 사자라는 백익은 뭐하는 종족이란 말인지.

"링크 개시. 링크완료. 고열광선 채택."

담담하게 말한 륀느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주인님, 위험. 륀느의 뒤로."

"그걸로 뚫을 수 있어?"

오러 블레이드로도 잘 잘리지 않는다. 잘리기야 한다만 효율이 낮다.

문제는 그녀가 소환한 저 손등 위의 장비가 좀 전 보여주었던 무기와 똑같다는 점이었다.

그 말인즉슨, 그녀의 화력으론 어림도 없다는 소리였다.

내 질문에 륀느가 무표정한 얼굴로 귀엽게 답했다.

"두 번 실패는 용납 불가, 초고열광선. 륀느의 출력 50퍼센트. 사용 직후 시스템 상당 부위 다운. 주인님, 륀느 회수해야 해."

"보기보다 가볍던데, 그 정도는 무리 없어."

내 말에 녀석의 무표정에 미묘하게 기쁨이 서린 듯 보였다.

동시에 그녀의 손등 위에 생겨난 소형 대포와 같은 장비가 서서히 빛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륀느, 초 고열광선 조사 가능. 이것은......."

그녀가 담담하게 말한다.

"륀느가, 높게, 평가!"

이번엔 좀 전처럼 쓸모없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려던 것일까.

상당히 목소리에 힘이 담겨있다.

찌잉!

아주 굵고 짧은소리가 울려 퍼지며 충격파가 주변을 뒤덮었다.

그 말과 함께 륀느의 손 위에 장착된 작은 장비가 빛을 내뿜으려 이전과 다른 푸른 광선이 천장을 향해 사정없이 꽂혔다.

확실히 처음 봤던 연사용 광선에 비하면 화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게 여실히 느껴질 정도였다.

게다가.

'높이 평가라니, 유머 센스 괜찮은데?'

사실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든다.

* * *

고집이었던 모양이었다.

자신의 존재가 생각보다 실망이라는 듯 바라봤던 내 행동 때문인지 륀느는 생각 이상으로 집요하게 천장을 뚫어버렸다.

덕분에 그 여파로 녹아내린 바닥이 후두두 떨어지긴 했지만, 어떻게 되어 처먹은 몸인데 새빨갛게 달아오른 파편을 맞고도 녀석의 몸은 멀쩡했다.

둥글게 회전하여 경계를 태우고 내부까지 깔끔하게 날려버린 녀석이 천천히 손에 끼고 있던 장비를 비활성화시키며 나를 바라본다.......

이번엔 제대로 했다는 것일까.

륀느의 표정은 마치 칭찬이라도 해달라는 것처럼 의기양양한 무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왜 무표정인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은 건데.

페르세르크의 투덜거림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털썩!

"주인...... 님. 륀느, 출력...... 에러......."

제 본신의 출력 50%를 날려버린 탓에 운용이 힘들다는 말이 저런 뜻이었던 모양이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빨리 괜찮은지 말해달라는 것처럼 녀석의 시선이 꽂히자 나는 신성 마법을 거둬들이고는 완전히 알몸이 되어버린 녀석의 몸에 여분의 망토를 둘렀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녀를 업었다.

'으억?!'

그런데, 그녀의 몸이 처음과 다르게 굉장히 무겁다!

어림잡아 무게를 측정하자면 200kg은 간단히 넘을 것 같은 기분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처음 그녀를 시험관에서 빼낼 땐 정말로 가벼웠으니 말이다.

자신도 골렘이라 항의라도 하는 것일까.

톤 단위로 노는 메가트론에 비하면 월등히 나은 편이지만 일반인은 들지도 못하리라.

"다친 곳은 없지?"

내 말에 루시아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끄덕였고 시오 하울이 말없이 침묵했다.

"그나저나, 올라가려면 플라이 마법이라도 써야겠는데."

홀로 올라가는 거야 바닥을 차고 올라가면 되지만 두 사람에게 그런 스펙을 기대할 순 없다.

"내가 하지."

그때 가만히 침묵하던 시오 하울이 조용히 루시아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핫?! 시오 씨는 4 서클이 아니었나요?!"

"쯧, 1 서클 숨겼다. 잠자코 힘 빼."

무슨 무림인이라도 되는 양 조용히 말한 시오는 곧바로 5 서클 플라이 마법을 사용했고 루시아와 함께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주인님, 륀느의 중량, 인간에겐 무겁다고 판단."

"훨씬, 무겁긴...... 하네."

"륀느, 감정회로의 손상을 감지. 추가로 감정회로가 가열되는 것을 감지, 이것을 분노라 판단."

너무 담담하게 제 기분이 상했다고 호소하는 녀석의 표정은 끝도 없이 낭랑하기 그지없었다.......

이 성격이 백익이라는 특이 종족이라서일까, 아니면 반 골렘이 되어버린 것 때문일까.

그전에 애초에 이 녀석의 정체는 무엇일까.

검이 자아를 가지는 건 뛰어난 검에 자아가 깃드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들은 바 있지만, 그게 골렘에게도 해당하는 말인 줄은 처음 알았다.

"그보다 그 애매한 호칭부터 집어치우자."

"륀느, 판단회로가 오작동, 이유를 요청."

딱히 노예제도를 좋아하는 내가 아니었기에 저 주인님이라는 기괴한 호칭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자아가 있는 이들을 소유하고 그들의 주인이 된다는 건 반대로 그들을 억압하는 위치가 된다는 소리일 테니 말이다.

애석하게도 나는 클린한 단체를 추구하는 인간이므로 이런 과정을 묵과할 생각이 없다.

무엇이라 부르게 할까,

일단 륀느는 사람처럼 보여도 골렘, 이미 내 소유가 된 이상 이 녀석은 내가 만들고 있는 영지 방어 최후 가디언인 디셉티콘 편대에 넣는 게 좋다는 판단이 내려진 상태였다.

다만 골렘들에게 내 호칭을 적립시킨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기에 나름대로 곤란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륀느의 모습을 보던 내가 페르세르크에게 도움을 청하는 시선을 보내자 그녀가 조용히 턱을 쓸어넘겼다.

'음...... 그대의 사고방식을 생각하면 여러 가지 떠오른다만.......'

"됐다, 그냥 당분간은 데이비 님이라 불러."

"임시호칭 각인완료."

그리고 그놈의 3인칭 말투는 못 고치나?

아무리 눈앞에 있는 이 아담한 소녀가 굉장한 미모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미묘한 괴리감이 드는 건 피할 수 없다.

내 그런 물음에 륀느는 그저 갸웃거릴 뿐이었다.

"륀느, 호명 시 개체명을 구호, 동일개체 간 혼란을 자제하기 위한 시스템."

관등성명과 비슷한 개념이란 말이지.

"중간에 빼먹던데?"

"륀느, 개체연식이 매우 오래되었다 판단."

스스로가 말년 병장이라고 말씀하신다. 아예 버리진 않겠지만 중간중간에 빼먹는 건 그저 이 녀석이 글러 먹은 자아를 가지고 깨어났다는 이유로 봐도 무방했다.

과연 저것이 백익의 연식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기계 심장의 연식을 말하는 것일까.

자세한 건 알아보는 재미이리라.

"데...... 데이비 님! 어서 오세요!"

녹아내리고 식은 벽면의 틈에 올라선 루시아가 나를 향해 소리치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그대로 시험관을 발판삼아 가볍게 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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