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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25화 (125/1,559)

# 125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5권 25화

"병 때문에 맨살을 보일 수도 없다니...... 데이비, 너 그때, 오르뎀 영지에서 병을 치료한 전적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지."

"저 병은 치료 못 해?"

그녀의 질문에 절로 눈초리가 가늘게 좁혀졌다.

못할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녀가 겪고 있는 병이 무엇인지도 깨달았고, 지금 그녀의 상태가 어떤지는 가면 너머로 훤히 보일 정도로 예상이 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순식간에 몰린 관심에 당황한 듯 움찔거리던 소녀는 곧 어떻게든 침착함을 되찾았는지 잘게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대화를 받아주는 모습이었다.

"못 하는 건 아니지."

"그럼 치료해줄 수 있지 않아?"

"당장 내가 찾아가서 당신의 병을 고쳐드릴게요! 라고 해?"

"......."

"아마 관심을 얻으려고 개수작 부리는 거로밖에 안 보일 거다."

"그래도...... 너무 가엾잖아. 이제 성년이 됐을 텐데......."

"그래도."

말끝을 흐린 내가 표정을 미묘하게 굳혔다.

"저 병은 굳이 이 세계에 남아 있으면 안 돼."

내 의지는 그렇다. 다른 병은 몰라도 저 병만큼은 이 세계에 티끌도 남길 생각이 없다.

"쿡...... 이럴 때 보면 정말 마냥 개자식은 아닌 거 같은데 말이야. 그나저나, 사람이 조금 많이 붐비네."

넓은 홀은 수많은 사람들이 여유롭게 다닐 만큼 넓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리아와 대화를 하기 위해 모여든 귀족들 때문에 한 지점만 굉장히 부산스러운 모습이었다.

처음엔 일리나에게 향했던 관심이 이제 모두 그녀에게 향한 꼴이다.

연회에 참석한 사람이 워낙에 많다 보니 별일을 다 겪는다.

툭.......

그리고 때아닌 부산스러움으로 인해 생겨난 혼란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중이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침을 꿀꺽 삼킨 귀족 영식 하나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그녀에게 접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마치 우연인 것처럼.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넘어졌고, 허우적거리며 그녀의 가면을 고정하던 부분을 건드렸다.

동시에 단단하게 고정되어있던 가면의 끈이 마치 거짓말처럼 풀리는 게 아주 슬로비디오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나는 망설임 없이 일리나를 품에 당겼다.

"자...... 잠깐?!"

갑작스런 내 행동에 놀란 그녀를 끌어당긴 채 눈을 가린 내가 그대로 마나를 끌어올렸다.

갑자기 내 몸에서 흘러나온 마나를 직접 체감하고 놀란 일리나의 입이 공허하게 벌어졌다.

이윽고, 그녀의 시야를 완전히 가린 내 손이 가볍게 움직였다.

내가 지금 하려는 짓은 상식적으론 정말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

[광(光) 속성 개조마법]

[2 서클]

[라이트 앱솔브 블럭]

몇몇을 향한 빛 흡수 차단 마법.

그리고.

[광(光) 속성 개조마법]

[4 서클]

[스턴 그레네이드]

면역 범위는 율리스와 윈리, 그리고 사건에 휘말린 에이리아 황녀.

일리나는 내가 직접 눈을 가렸기에 문제 될 게 없다.

이윽고 아주 순간적으로 배열이 짜 맞춰진 마나가 움직이며, 거대한 홀 전체에 일순간 시야를 앗아갈 만한 거대한 섬광이 터졌다.

역시 광역 스턴엔.......

섬광탄이 최고다!

연회장엔 각국의 고위인사들이 다 모여있다고? 또한 이건 엄연한 테러 행위라고?

공자 가라사대 그런 말이 있다고 하더라.

빛이 있으라.

"꺄악?!"

"으아아악!"

"내 눈!!"

갑작스런 사태에 연회 홀은 완전히 난장판으로 뒤바뀌어버렸고 눈을 감싸 쥔 채 바닥을 뒹구는 이들이나 비틀거리는 이들로 가득해졌다.

각기 리액션은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하나같이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는 점.

저래 봬도 광 마법 또한 일반적인 빛과는 구조가 약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1분 정도 지나면 문제없이 시야가 돌아올 것이다. 후유증도 짧을 테니 큰 문제는 없다.

놀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는 윈리와 율리스, 그리고 에이리아 황녀의 눈이 부릅떠진 게 보였다.

환한 샹들리에 아래로 가면이 떨어지며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참혹했다.

"흡?!"

이윽고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은 일리나가 움찔하며 소녀의 시선이 우연히 나와 부딪혔고 눈을 크게 뜨더니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곧 바닥에 떨어진 가면을 주워든 채 그녀는 도망치듯 연회장을 빠져나가 버렸다.

"야...... 야 이 미친놈아......."

세상에 각국의 왕족과 고위귀족들이 모인 연회장에서 이딴 짓을 태연하게 저지를 거라곤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상황을 깨달은 일리나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를 놓아주고는 부드럽게 말했다.

아마 연회는 중단되고 황실이 난리가 날 테지만, 이미 저지른 일에 후회는 없었다.

"미안하다. 잠깐, 자리 좀 비울 테니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지 않게 뒤처리 좀 해줘."

융해 가속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참혹한 얼굴을 얻어버린 이들이 제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들켰을 때.

그들이 얻게 될 정신적 트라우마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만큼 참혹한 몰골로 변하는 게 그 병이기도 했고.

실제로 에이리아 황녀의 민얼굴은 보통 발병자들보다 수배는 더 참혹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아마 그녀의 가면을 벗긴 사내는 수인족을 멸시하는 린디스 제국 내의 귀족파 중 하나로, 그들의 모략이 분명해 보였다.

정치싸움에 휘말리는 희생자의 끝은 결코 보기 좋지 않다.

순진무구한 눈망울 속에 담긴 지독한 슬픔과 당혹스러움에 나는 생각보다 몸이 먼저 나갔던 것 같았다.

정확히는 이제 기억도 안 나는 누군가에 대한 기억이 자극을 받은 것 같다는 기분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게 지독한 위선임을 알면서도, 나는 딱히 그것에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위선이면 어떻고 진짜 선행이면 무슨 상관인가.

부상과 질병은 다르다.

의원은 설사 적이라고 해도 병을 치료하는 자.

상대가 쳐 죽일 놈이고 병에 걸려있다면 먼저 그 병을 해치운 뒤 직접 찢어 죽이는 게 내가 받은 교육 방침이다.

쓸데없는 오지랖?

엿이나 먹으라지.

50. 구원과 위선 사이의 인연.

타다다다닥!!!

린디스 제국의 막내 황녀이자 여우과 수인인 에이리아는 가면을 쓸 생각도 못 한 채 허겁지겁 도망치듯 내달렸다.

딱히 운동을 많이 한 것 같은 체격은 아니었지만 수인족 특유의 민첩함이나 유연함은 일반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

그녀가 향한 곳은 연회장의 뒤편으로 존재하는 거대한 정원.

정원이라기보다는 거의 숲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게다가 인적까지 드무니 그녀의 도주 경로치고는 잘된 선택이라 할 수 있었다.

"흑...... 흐흑...... 꺄악!"

수인족 특유의 민첩함을 내보이며 정신없이 내달리는 그녀였지만 치렁치렁한 드레스가 방해였던 것일까.

앞섬에 발이 밟혀 쓰러진 그녀가 처량하게 바닥에 쓰러졌다.

보통이라면 얼른 일어났겠지만, 그녀는 일어날 힘조차 잃은 채 힘없이 흐느꼈다.

"다 끝났어......."

절대 보이고 싶지 않았다. 여자로서 얼굴에 이만큼 흉측한 것들이 돋아있는 것을 보이는 건 절대로 피하려 했던 그녀였다.

그렇기에 황제의 앞에서도 절대 가면을 벗지 않았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유일하게 그녀의 얼굴을 본 이라면 그녀를 치료하겠다고 말했던 질병 관리단의 의회원, 고르네오 남작이 전부.

그녀에겐 그래도 나름의 꿈이 있었다. 이 병을 고치면, 자신을 구해주었던 그 사람을 찾아가 고맙다고 말하고, 그 사람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었다.

조금 웃긴 말이긴 하지만 첫눈에 반해버린 그 남자에게 좀 더 다가가고 가능하면 그와 혼인을 전제로 한 만남도 가지고 싶었던 게 사실이었다.

상대가 평민이라도 그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계급이라는 것에 크게 얽매이는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그녀가 느낀 포근함에는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은 특유의 아늑함이 있었다.

그런 그녀의 소박한 바람은 이루어질 것처럼 보였다.

차가운 표정을 고수하던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의 뜻에 따라주겠다며 한숨을 내쉬고 윤허해주었고, 곧 그 뒤를 따라 그녀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며 의원까지 찾아왔다.

다 잘될 것 같았다.

이렇게만 가준다면, 그동안의 고생은 모두 잊고 조금 욕심을 부려봐도 되지 않을까.

사랑을 해서 만나는 소수의 여타 다른 황족이나 귀족들처럼.

평범하게 맨살을 드러내고 환하게 웃고, 사랑하는 이에게 안겨 풋풋하면서도 애절한 입맞춤을 하고.

언젠가 태어날 자식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며 환하게 웃을...... 그녀가 가진 소박한 꿈.

조금만 더 욕심을 부려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바람은 시작부터 어긋나버렸다.

기대와 다르게 병이 치료되지 않은 것이다.

다가가고 싶었는데. 하다못해 고맙다는 말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이 참혹한 얼굴로는 그에게 다가갈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연회에 참석한 건 그녀의 입지를 공고히 해 당당하게 그 사람을 찾아 만날 수 있어야 한다는 그녀의 아버지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그저 궁에 숨은 귀신 황녀처럼 숨어있기만 해선 무엇도 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그녀는 용기를 냈고 연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연회에 참석하기가 무섭게 가면이 떨어졌으니.

그녀의 삶에 대한 의욕이 무참히 깎여나간 것도 사실이었다.

처량하게 흐느끼는 그녀의 울음소리는 옅게 숲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과 대화하고, 같이 식사하고, 풋풋한 관계를 유지하면 좋겠다.

연모한다는 말을 건네고, 받고, 언제까지고 함께 할 거라며 미래를 다짐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환한 밤하늘 아래에서 와인잔을 부딪치며 환하게 웃고 서로를 향해 애정어린 시선을 보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런데,

"그게 무슨 소용이야. 이 얼굴로, 이 몸으로!!!"

비명을 지르듯 그녀가 흐느꼈다.

그 남자에게 보인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사태는 그녀의 자신감을 나락 끝까지 처박아버렸다.

어렵사리 낸 용기는 싸구려 취급을 받게 되어버렸고 결국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들었다.

주신 프리아가 자신을 보고 있다면, 왜 이런 시련을 주는 건지. 그녀는 평소의 성격답지 않게 옷을 틀어잡고 따지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래...... 차라리......."

급기야 스스로에 대한 애정을 놓아버린 그녀가 품 안에서 꺼낸 핀을 섬뜩하게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비참하게 살 바엔 차라리......."

"죽을 겁니까?"

그때였다.

미약하면서도 아련한, 이상하리만치 생소하면서도 그리운 향이 그의 코끝을 간질였다.

수수한 산수유의 향.

그리고, 남자의 목소리.

멍하게 굳은 얼굴을 한 채 그녀는 가면으로 얼굴을 가렸다는 것도 잊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과거부터 자신의 얼굴을 보고 혐오스럽게 바라보던 이들과는 완전히 다른.

따스하며 그녀의 본질을 봐주는 붉은 눈동자를 직시했다.

아주 찰나의 순간 마주쳤던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던 검은 머리카락, 아주 흘끗 보였던 붉은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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