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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50화 (150/1,559)

# 150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6권 23화

무기와 장비가 뛰어나다 해도 그걸 쓰는 인간이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비록 드워프들이 만든 블루스틸제 무기들을 암암리에 바리에타 공작에게 팔아넘기고 돈을 챙기긴 했지만.

결국 다시 내 손으로 돌아온 꼴이지 않은가.

잠시간의 휴식을 위해 성벽의 바깥에 위치한 평원에 앉아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그들이 항복하며 내다 버린 블루스틸제 검을 흘끗 바라보았다.

"이제 이것들 다시 내다 팔면 돈은 두 배가 되는 거네?"

-세상에...... 무기를 갑자기 요청하고 바리에타 공작가에 몰래 팔아넘길 때부터 예상은 했다만.......

돈 벌기 참 쉽다.

이번 전쟁...... 아니 전쟁이라 부르기도 묘한 이 사달은 실상 내 손바닥 위에서 완전히 놀아난 꼴이다.

관여하지 않은 왕국민의 피해는 극도로 줄이고 이 사태의 원흉들은 모두 수면으로 끌어내 쳐내버렸다.

중앙이 뚫린 이상 저들의 위세는 크게 꺾일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저들도 멍청이가 아닌 만큼 그대를 저지하면서 왕궁으로 진격하려 할 테지.

이미 제압한 병사의 수가 8천에 가깝다.

3만의 병사 중 3분지 1이 거의 사라진 꼴이다.

물론 그동안 이쪽의 피해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버프로 강화해도 한계는 존재한다. 틈을 노리고 파고든 공격에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하긴 했지만.......

'누가 멋대로 죽으라고 했나.'

죽지만 않으면 거의 좀비에 가까운 회복력이 버티고 있다.

교황급, 아니 그 이상급의 신성력에 숙련도를 지닌 신관을 우습게 보지 마라.

그럼에도 2만 2천 명의 병사들이 남아있는 만큼 그들 모두가 왕성으로 진격하고 뱀파이어가 나온다면 왕성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저들이 내세울 유일한 최후 전력인 소드마스터 엔쟈 후작과 뱀파이어들이 슬슬 기어 나올 때도 되었다는 소리다.

뱀파이어의 은거지를 습격하고 저들을 도발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이번 싸움에서 뱀파이어는 극히 일부만 모습을 드러내고 나머지는 숨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도발을 한 이상 그 자존심 높고 콧대 높은 놈들은 자신들의 모든 전력을 이용해서라도 나를 죽이려 들 것이다.

-데이비, 뱀파이어는 교활한 자들이지, 특히 약점을 쥐고 흔드는 걸 아주 좋아하는 저질적인 놈들이네.

"그렇지."

스스로 자부심이 넘치는 놈들이지만 귀족이라는 종족 이외에는 생명체로 보지도 않는 오만한 종족.

버프의 효과로도 이제는 지칠 대로 지쳤다.

병사들을 대동한 채로는 이 이상 진군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말없이 손을 내려다보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남은 신성력과 마나는 반 정도...... 생각보다 너무 많이 빠졌는데?'

현재 내 상태는 오버차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환골탈태의 여파에 아직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으면서 마구잡이로 날뛰는 힘들이 남아있다는 소리였다.

자체적인 조절력은 확 떨어져 있지만, 반대로 총량은 늘어있는 희귀한 상황.

전력으로 치면 별 차이는 없지만 이렇게 무식한 방법을 쓰기엔 지금이 최적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한할 수는 없는 법이다.

당장 이 짓을 계속 반복하는 것도 미친 짓에 해당하지만, 이정도 힘을 분산해서 사용하는 데에 익숙한 만큼 회복을 기다렸다가 다시 사용하고, 회복을 기다리는 방식을 고수했다.

서클이 올라갈수록 늘어나는 건 마나의 총량뿐만이 아니니 말이다.

티오니스 대륙은 마나가 극도로 풍부한 세계.

정작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인간은 그리 많지 않지만 회랑의 영웅들이 말해준 비교사례를 들어보면 티오니스 급으로 마나가 대기에 많이 녹아 있는 곳은 잘 없는 편이다.

-어느 정도로 많은 게야?

"음...... 통상적으로 10배는 가볍게 넘을걸."

당장 재능이 없는 인간이 아니면 타 세계의 존재가 넘어오면 성장치가 확연히 눈에 보일 것이다.

그만큼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마나가 풍부한 세계에서 태어나, 다른 세계에서도 잘 보기 힘들 만큼 친화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다양성의 재능은 내게 내려진 유일한 무기와도 같았다.

얄리스 산성을 모두 정리하고 그곳을 지키던 바리에타 공작의 측근 귀족을 베어 넘긴 뒤 말없이 성 아래를 지켜보던 나는 산성 건너편의 거대한 산맥을 바라보다 천천히 청단이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아공간에 손을 밀어 넣고 천천히 길고 무거운 신창, 롱기누스를 소환한다.

동시에 언월도의 형태를 취하고 있던 창날이 십자가 형태로 변하며 창의 전체 길이가 조금씩 짧아지기 시작하며 내 등 뒤로 푸른색의 마법진이 공명하며 순식간에 버프 마법으로 전환되고 스며들었다.

다양한 힘을 가진 이는 다양한 방법으로 싸워야 하지. 하나만 고수하는 건 즐길 때뿐이다.

실제로 페이스라는 놈도 일반적인 소드마스터나 지금까지 만나왔던 뱀파이어와는 급이 다른 강함이 절절히 느껴질 지경이긴 하다.

"슬슬 저쪽도 한계라는 거지."

높이만 7m에 달하는 성이지만 30m 높이의 거성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착지할 만큼 초상비(草上飛)의 숙련도가 높은 내게 이정도는 의미가 없었다.

소리 없이 사뿐하게 내려선 뒤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좀 전까지만 해도 느껴지지 않던 거대한 두 명의 기세가 여지없이 내게 전해져 오기 시작했다.

"2:1 정도는 돼야 싸울 맛이 나지."

산 위에 하늘이 있다.

놈들은 그것을 아직 모른다.

* * *

느긋하게 서서 기다리기를 잠시, 천천히 다가오는 노장은 나를 확인하기가 무섭게 허리춤에 걸어둔 두 자루의 바스타드 소드 중 한 자루를 천천히 뽑아 들었다.

"데이비 올 라운. 당신은 이곳에서 더는 앞으로 나가지 못할 거요."

"경칭은 가져다 버리셨나?"

"반란분자가 된 내게 존경심이나 충의를 바라는가."

묵묵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절로 헛웃음이 났다.

엔쟈 후작.

딱히 악행을 일삼는 인간군상은 아니었지만 그의 사상은 상당히 귀족파와 흡사하다.

통치 주의의 지독한 신봉자.

사실 어떤 의미에선 그 누구보다 충절한 신하가 될 수 있는 인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바리에타 공작과 손을 잡았고, 그 사상이 위험하게 변질되었다.

"나라는 지휘하는 자가 있어야 하는 법. 평민들은 그들의 보호를 받으며 정해진 틀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올바른 세상의 법치이거늘."

"당신이 평민으로 태어났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본인은 그렇게 되었다고 해도 세상에 순응했을 테지."

저게 저 남자의 문제였다.

통치 사상에 어떠한 틈도 만들지 않는 존재.

"시대는 언제고 변해.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다 변할거다."

언젠가 이 티오니스 대륙에도 왕권이 무너지고 사라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세상이 당장오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 왕정체제 속에서도 평민이라고 고통받아야 한다는 법은 없게 하고싶었다.

나름대로의 절충안이란 그런 것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이오. 나는 그런 혼란이 오기를 기대하기보단 차라리 현 상태를 고수하겠소이다."

어떤 의미로 그는 사상의 변화가 가져올 혼란을 잘 캐치해냈다.

국왕 크리아네스가 즉위한 후 젊은 시절. 그는 분명 과거와 다르게 귀족과 평민 사이에 생긴 어마어마한 두께의 벽을 어느 정도 허물고 그들의 삶의 질을 조금씩 질적으로 향상시킨 전적이 있었다.

결국 사연없는 인간은 없다더니.

"서로 주저리 떨면서 대화를 나누기엔 쓸데없이 입만 아플 거 같은데."

그리 말하며 그의 뒤로 천천히 다가오는 회색 머리칼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처음 만나나? 겁도 없이 남이 걸어놓은 저주를 해주하고 말이야."

"네놈......."

"멍청하게 함정을 파는 대로 곧이곧대로 말려들었으면서 아직도 자신이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내 물음에 나를 싸늘하게 노려보던 그가 픽 웃었다.

"그래, 여유는 계속해서 부려라 하등한 벌레. 지금 네 보금자리가 무슨 꼴이 났는지도 모르고 말이야."

서늘한 웃음을 띠는 그의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인스 영지에 무슨 짓이라도 하셨나?"

"귀족들의 분노를 조금 실감시켜 준 것뿐이지. 설마 이전의 장난질 같은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 장난질이란 5천에 달하는 몬스터들의 정신을 장악해 보낸 것을 말하는 것일 터다.

확실히 한둘도 아니고 오천에 달하는 몬스터의 정신을 장악해 보내는 걸 보면 보통 놈은 아닌데.

"아, 그래?"

그의 말인즉슨 그를 제외한 다른 뱀파이어들이 하인스 영지를 습격했다는 소리와 같다.

하인스 영지의 병력은 최소한으로 현재 남은 이들이라고 해봐야 고작 100여 명이 전부.

마탑과 신전이 있긴 하지만 전투에 도움이 될 만한 이는 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게다가 영지엔 내가 지켜야 할 영지민들과 내 소중한 여동생인 윈리가 남아있다.

본래 같으면 그의 개 짓거리에 화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만.......

"그 분홍색 머리의 뱀파이어가 아무 말도 안 해줬나?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오다가 큰일 난다고."

느긋하게 말하며 한발 내디뎠다.

"네놈은 착각을 하고 있어."

섬뜩하게 웃으며 그가 가볍게 움직였다.

콰앙!!!!

동시에 진각을 밟고 롱기누스를 휘두른 내 공격과 놈의 손에서 뽑혀 나온 시뻘건 혈기가 충돌했다.

콰드드득!!!

일격의 충돌에 수 미터의 지면이 일그러지며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기듯 내려앉았다.

"하이 엘프 하나로 백작급 이상의 뱀파이어 다섯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너는 너무 오만했고 겁이 없었어, 네놈의 팔다리를 여기서 뭉개고 네가 보는 눈앞에서 네 사람이 모두 피가 빨려 죽는 꼴을 보여주도록 하자."

그의 말에 힘겨루기를 하듯 대치하던 내가 피식 웃었다.

"등신 새끼."

퍼엉!!

콰드드득!!

섬뜩한 파괴음과 함께 지면이 마치 거대한 발톱에 할퀴어지듯 일그러졌다.

"뭐가 그리 여유롭지?"

"두 가지가 틀려서, 그걸 말해주려고."

내 말에 그의 싸늘한 눈동자에 의문의 빛이 떠올랐다.

"첫째로 넌 여기서 죽어, 둘째. 지금 영지에 보낸 네 부하들이 누굴 만났을지 참 기대되지 않아?"

...

내 말에 그의 눈에 의문이 어렸다.

[제 부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윤허한다!]

[우선은 약조해주십시오. 이번 일은 국가 간의 외교가 아닌 폐하와 저, 두 사람의 거래입니다. 당연히 이 일로 국가 간의 어떤 압박도 외교적인 문제도 발생해선 안 될 겁니다.]

그 말이 가장 중요했다. 구두라곤 해도, 앞으로 있을 일에 황제의 공식 입장은 중요하다.

그게.

[대인전의 경험이 다양한 소드마스터, 열 명을 빌려주십시오.]

소드마스터를 빌리는 어마어마한 짓거리 일지라도 말이다.

제국에 존재하는 소드마스터가 스물이다.

나는 그때 린디스 황제 데오르트 알 린디스에게 제국 최강 전력 중 반을 빌려달라고 말한 것이다.

[이유는?]

당장 멱살을 잡고 미친 소리 하지 말라 소리쳐도 이상하지 않으련만, 그는 차분하게 내게 이유를 물었다.

[이유랄 것이 있습니까, 제가 제 사람을 보호하려는 것뿐입니다. 저는 개인입니다. 그렇기에 개인적인 욕망에 따라서 요청합니다.]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제국이 보장하는 세 번의 거대한 기회를 이렇게 날려 먹겠는가.

다만 나는 그렇게 했다. 필요하다면 나머지도 사용했으리라.

"하...... 적이라도 심어두었나? 그래 봐야......."

"일반 소드마스터 이상의 실력가 10명에, 뱀파이어의 약점인 순수의 은으로 만든 무기면, x나 재미지겠지?"

싱글벙글 웃으며 그에게 파고든 내가 그대로 그를 걷어차 날렸다.

"이제 어때, 사태 파악이 좀 되시나? 돌대가리 모기."

"네놈......."

"뭔가 단단히 착각하는 거 같아서 하는 말인데, 3천 년 전에는 너보다 더 x랄 맞은 뱀파이어 새끼들이 득시글거렸어. 멍청한 모기 새끼야."

그리고 내가 뱀파이어와의 전투 경험, 대치경험을 쌓은 건 그때 당시의 뱀파이어 놈들의 실체 있는 환영이었고.

빠드득.

뱀파이어를 처리할 때 가장 좋은 방법.

그들의 분노를 머리끝까지 자극해서 행동을 단순화시킨다.

검신에게 자잘하게 배웠던 것을 참 잘도 써먹는다.

* * *

"오라버니는 괜찮으실까......."

근심 어린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던 윈리는 걱정을 떨쳐내지 못한 채 불안하게 중얼거렸다.

내란이 벌어졌다.

이렇게 될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너무 빨리 벌어졌다.

"오라버니가 걱정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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