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6권 24화
부드럽게 웃으며 말하는 율리스의 질문에 윈리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오라버니는 예전부터 자주 무리하셨으니까요. 이제 제가 걱정할 수준이 아닐 정도로 힘을 얻으신 건 알겠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씁쓸하면서도 결연한 윈리의 대답에 율리스가 부드럽게 웃었다.
"확실히 데이비 님의 무력은 생각 이상으로 강하지요. 하지만 그 정도론 사실 3만이나 되는 대군을 상대로 이기기 어려운 것도 사실일 겁니다."
개개인은 만능이 아니다.
브레스 한 번에 산맥을 바꾼다는 드래곤조차 어느 정도 놈을 공략할 자들을 모으고 모은다면 결국은 쓰러지게 된다고 말할 정도로 숫자의 이점은 무시무시한 법이니까.
가볍게 툭 건드리는 게 한 명이 아니라 수십 명이 된다면? 수천 명, 수만 명, 수억 명이 된다면?
가볍게 건드리는 것조차 비교할 수 없는 폭력이 되는 게 수의 폭력이다.
그런 점에서 율리스도 윈리의 걱정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내전에 관해선 왕국의 요청이 없는 이상 함부로 간섭할 수가 없네요."
"하지만 인외의 존재라면......."
"그 부분에 대해선 적탑에서도 회의가 진행되고 있을 겁니다. 그들이 세력을 부풀리면 절대 좋은 꼴은 못 보니까요. 하지만 바리에타 공작가가 펼쳐놓은 술수가 조금 치밀해서......."
그것은 각 집단 간의 약속과도 같다.
족쇄이자 자유를 위한 각자의 약속과도 같았다.
실제로 율리스는 적탑의 장로이지 않았던가.
비록 최연소이긴 하지만.
"도울 명분만 생긴다면, 두팔 걷고 나설겁니다. 하지만 그전에 데이비님을 믿어보는것도 좋을 듯하네요. 그분이 아무런 대책없이 이런 일을 만들진 않았을테니."
비슷한 숫자에 데이비가 끼어든다면 그쪽으로 압도적으로 기울 테니까.
정작 데이비가 판도라 영역에서 무슨 짓을 했고 무엇을 얻었는지는 모르는 두 사람이었다.
* * *
"윈리 님. 이럴 게 아니라 산책이라도 가시는 건 어떨까요? 데이비 님을 걱정한다고 이렇게 근심만 하고 계시다간 데이비 님이 돌아와서 상심하실 겁니다."
"그럴까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에서 떨어진 그녀가 어깨를 추욱 늘어뜨렸다.
그때였다.
와장창!!!
고요하던 영주성의 창문 일부가 바스러지듯 깨지며 무언가가 윈리를 노리듯 날아든 것이다.
[구가하라! 통솔하라! 나 여기 있노라!]
카앙!!!!
동시에 펼쳐진 방어마법이 그대로 윈리를 보호하듯 감쌌고 그 충격을 어느 정도 완화하기가 무섭게 율리스가 윈리를 끌어안고 물러났다.
"누구입니까!!"
격한 외침.
놀란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윈리는 상황을 아직 이해 못 한 듯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공격이 날아든 것은 사실인데 공격을 한 당사자가 보이지 않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까.
잔뜩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던 율리스는 이상하리만치 잡히지 않는 기척에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클클. 여기일세."
그때였다.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와 함께 반사적으로 윈리를 보호하듯 감싸 안은 율리스의 얼굴 앞으로 창백한 손이 들이밀어 진 것이다.
화륵.......
동시에 창백하고 날카로운 손톱을 가진 손바닥에서 푸른 화염이 일렁이기 시작했고 율리스가 반응하기도 전에 거대한 화염을 만들어냈다.
퍼어어엉!!!
거대한 폭발.
파괴적인 힘에 놀란 율리스는 그대로 화염에 휩싸이듯 집어삼켜 질 때까지 반응하지 못했다.
'이...... 이런!'
어떻게든 윈리만큼은 보호하겠다는 심정으로 마나를 끌어올렸지만 이미 늦은 상황.
6 서클만 돌입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걱!
하지만 곧 들려온 것은 살이 타는 소리가 아니었다.
뜨거운 작열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커헉?!"
대신 조금 전 들려왔던 섬뜩한 목소리의 주인이 내뱉은 것처럼 보이는 고통에 신음하는 목소리만 들려왔다.
"여기는 벨로스일세. 감히 은인의 영지에 숨어든 해충을 발견했으니 위대하신 황제 폐하께서 하사하신 임무를 시작하도록 하지."
곧이어 들려온 노인의 목소리.
당황한 두 사람은 시퍼런 빛을 내뿜는 장검을 뽑아 든 채 두 사람을 막아서고 있는 풍채가 든든한 노인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수많은 국가를 돌아본 율리스였기에 그가 누구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소드마스터...... 베, 벨로스 경......."
린디스 제국의 최강 소드마스터 중 하나.
경지만 따지면 대륙에 있는 소드마스터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강자 중 하나다.
"늦어서 미안하오. 영지에 활기가 돋는 것을 보고 이 노인네가 경계가 풀어졌나 보오. 허허, 은인의 영지를 보호하는 일에 이리 마음이 풀어지다니."
허허 웃으며 말하면서도 그가 검을 번뜩인다.
카앙!!
동시에 어디서 들어왔는지 모를 또 다른 중년의 사내가 벨로스와 연계하듯 파고들어 기괴하게 생긴 침입자를 베어 넘겼다.
"늦었습니다. 경. 다른 곳에서도 이미 놈들의 움직임을 포착했고 교전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또 한 명의 린디스 제국의 소드마스터.
하샨 후작!
벨로스 경만큼은 아니지만 그 또한 오랜 시간 소드마스터로 존재해오며 과거 전쟁에 참전한 전적이 있는 사내다!
율리스는 제가 보는 이들이 왜 이곳에 있는지 이해를 못 한 듯 한참 동안이고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 * *
"어때, 내 말이 틀려?"
도발하듯 말하자 그의 얼굴이 점차 섬뜩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저들만의 네트워크 정도는 있다 이것이겠지.
그리고, 영지의 상태를 방금 전해 들은 모양일 테고.
타이밍이 예술이다, 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감히...... 벌레 따위가."
격분한 그가 유일하게 희던 흰자위까지 붉은 핏발을 세우며 노려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끓는 점이 낮은 녀석이다.
이런 녀석의 경우.......
'힘은 강하지만 자존심이 상대적으로 높아져서 쓸데없이 분노도 잘하는 게 약점이지.'
"그 벌레한테 휘둘리는 것도 모르고 자기 잘난 줄 아신 분이 지금 기분은 어떠신가 그래, 꼴에 불사의 권능에 장난질이라도 하신 모양인데, 그렇게 하다 보니 뇌 주름도 다림질하셨나? 모기 새끼는 별수 없나 보네."
"네 이놈!!! 내 뇌 주름은 멀쩡하다! 감히 대귀족을 모기라 칭하느냐!!"
"귀족은 무슨! 모기 새끼겠지!"
"네 이놈!!"
아하하하하하!!
콰아앙!
격노한 페이스와 이 황당한 상황에 인상을 잔뜩 찌푸린 엔쟈 후작의 맹공이 시작된다.
강력한 엔쟈 후작과 그보다 훨씬 강한 페이스.
실제로 페이스의 무력은 강한 수준으로 반 환골탈태 이전이라면 이런 식의 무식한 전술은 채택할 만한 것이 못되지만.
이제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으드득!
"큭?!"
넘실거리는 오러 블레이드를 찔러 넣는 엔쟈 후작의 팔꿈치를 후려쳐 뼈에 충격을 가한 뒤 그대로 그를 낚아채 페이스의 공격에 방패로 사용한다!
[적이 많아서 공격이 너무 많다고?]
[명심해라, 생각은 먹기 나름이다! 적이 많다는 건 그만큼 네가 쓸 고기 방패도 많아진다는 소리! 적이 무기를 휘두르면 근처의 놈을 잡아 방패로 쓰고 공격해라!]
전쟁의 달인 정복왕 아스트레아의 말을 가감 없이 실현한다,
"커헉!"
"방해하지 마라! 하등한 인간! 네놈부터 쳐 죽여버리는 수가 있다!"
"빌어먹을 놈......."
본능에 따라 몸을 던진 탓에 겨우 목숨을 건져낸 엔쟈 후작이 숨을 헐떡거리며 격한 분노를 토해냈다.
이후의 전투 양상은 계속해서 그들이 휘말리는 식으로 이어졌다.
필요할 땐 엔쟈 후작을, 또 어떤 상황에선 페이스를 방패로 둘의 흐름을 완전히 차단하고 들어간다.
내가 부족했던 건 육체 스펙과 마나의 양.
경험에 한해선 저들 같은 이들이 몇이 모이건 문제가 될 게 없다.
그런 마당에 이제는 육체 능력도 어느 정도 뒷받침이 되어주니.......
싸움이 될 리가 있나.
"네놈을 여기서 반드시 찢어주마!"
[마왕 유르그 식(式) 앞차기]
[정강이 까기.]
빠각!!
지면을 파헤칠 정도로 빠르게 날아든 발끝이 놈의 정강이를 걷어차자 놈의 몸이 크게 움찔거렸다.
역시 만국 공통의 제어기술이 따로 없다.
이어서 허공에 뜬 홍단이가 그의 어깨를 관통하고, 청단이가 그의 몸을 강하게 베어 넘겼다.
쓰읍.
투쾅!!!
뒤이어 명치에 장법이 꽂히자 흐름이 완전히 박살이 나버린 페이스가 튕겨 나가 그대로 엔쟈 후작과 충돌, 두 남자 모두 내게서 멀리 떨어져 처박혀버렸다.
"커헉...... 마...... 말도 안 돼......."
그제야 자신들이 완전히 내게 농락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일까.
엔쟈 후작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상식적으로 힘을 가진 것도 놀라운데, 도저히 내가 가진 힘과 경험, 기술의 심도를 이해할 수가 없다.
반대로 자신의 힘이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라도 했는지 페이스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져만 갔다.
더 일그러질 곳도 없을 텐데 신기한 얼굴이다.
푸욱!
마치 장난이라도 치듯 허공에 떠올라 존재감을 과시하는 쌍둥이 검을 본 엔쟈 후작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이기...... 어검."
처음엔 잘못 보았겠거니 했는데 이제 와서는 그걸 부정하기도 어려워졌다.
"데이비 왕자...... 도대체 어떻게 검선의 경지를......."
"내가 당신보다 검을 오래 잡았으니 당연한 거지."
"헛소리!"
진짠데, 믿어주질 않네.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두 검. 홍단이와 청단이의 모습에 전의를 잃어버리기라도 한 것일까.
엔쟈 후작이 주춤주춤하며 뒤로 물러났다.
반대로 페이스는 내 경지가 자신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은 것에 격한 분노를 느낀 듯 씩씩거리며 엔쟈 후작에게 고개를 돌렸다.
"좋다. 벌레. 네가 네깟놈에게 보여줄 건 아니지만 귀족의 진짜 권능과 무서움을 보여주마."
그리 말한 그가 벌떡 일어났다.
스팡!
"무슨?! 커헉!!"
그리고, 당황한 듯 물러나던 엔쟈 후작의 뒤를 점하고 단단하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틀어박았다.
그러니까.
남자가, 남자의 목덜미에...
남자가..남자의...
"망할 내 눈."
이런 망할.
말없이 지켜보던 내가 한 손으로 눈을 가렸다.
-끔찍하군.......
뱀파이어라는 존재에게 흡혈은 기호 식사 중 하나일 뿐이지만 역시 보기엔 그리 좋은 광경은 아니다.
"끄억...... 끅......."
갑작스런 페이스의 기습에 당황한 듯 버둥거리던 엔쟈 후작이 서서히 말라 비틀어지기 시작한다.
소드마스터 하나의 생명이 그렇게 덧없이 사라지고 있지만 이곳에 있는 이들 중 소드마스터 급 이상이 아닌 자가 없으니 사실상 그가 가장 약자라 봐도 무방했다.
우웅!!
뱀파이어의 흡혈은 흡혈 대상에게서 피와 생명력을 뽑아내 갈취하는 행위.
그런 만큼 엔쟈 후작의 몸에서 흘러나온 마나가 페이스에게 흡수되듯 스며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엔쟈 후작의 몸이 말라 비틀어지는 게 더욱 빨라졌고 급기야 완전히 흉측한 몰골로 무너져 내렸다.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빠졌고 근육이 가득하던 노장의 몸은 이젠 거식증 환자처럼 뼈밖에 남지 않았다.
"후우...... 후우...... 빌어먹을 맛이지만 힘은 훌륭하군."
만족스레 입가를 스윽 닦으며 페이스가 섬뜩하게 웃어 보였다.
"넌 내 흡혈을 막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될 거다. 흐...... 흐흐...... 흐흐흐흐흐."
섬뜩하게 웃는 그의 몸에서 기괴하고 불길한 붉은 기류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몸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뒤틀리며 변하기 시작했다.
각성한 고위 뱀파이어가 가지는 고유 형태.
놈의 등 뒤로 거대한 박쥐 날개가 살갗을 찢고 돋아난다. 얼굴의 골격이 커지며 이빨이 날카로워지고 혈기가 더욱 짙어졌다.
그러니까.......
"저 새끼 지금 눈앞에 적을 두고 변신하고 있는 거지?"
-그...... 그래 보이네만.
맹자 가라사대.
적이 변신할 때 공격하는 게 최선이다.
기다려주는 게 예의라고?
내가 왜?
콰앙!!!
망설임 없이 덤벼든 내가 놈의 몸을 지면에 처박아 넣기가 무섭게 홍단이가 놈의 몸을 고정하듯 땅에 처박혔고 청단이가 또 한곳으로 놈의 몸에 처박혔다.
불사의 권능을 지우고는 있지만 어디서 오는 건지 계속해서 권능이 재생성된다.
다만.
무적이라고 해서 아픔을 못느끼는건 아닐텐데.
신랄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크윽?! 무슨?!"
"내가 니 변신을 기다려 줄 것 같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