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7권 17화
"크......큰일 났어요!!"
일대를 주시하던 엘프가드 두어 명이 다급한 표정으로 의식장에 난입했다.
"오......오염이 경계를 넘어서 빠르기 접근하고 있어요! 도망치셔야 해요!"
그의 외침에 최상급 정령을 향해 경배하던 엘프들이 벌떡 일어나며 눈을 부릅떴다.
"그......그 무슨?!"
"이곳은 깨끗한 정령 에너지가 풍부한 곳인데 어떻게 여기까지?!"
그리고, 가드들의 말이 사실이라도 된 것 마냥, 좀 전까지만 해도 보랏빛이 가득하던 아름답던 숲의 생기가 서서히 말라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분위기가 싸해졌다.
이곳이 오염되기 시작한다는 말은 간단히 바꿔 말할 수 있었다.
이 숲 전체가 완전히 오염되었다.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기에, 유리아의 얼굴이 미묘하게 찡그려졌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의지의 미동에 연동하듯 최상급 정령, 엘레스트라의 소환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최상급 정령의 형체가 다시금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른들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는 아이는 혼이 나야 하는 법이지. 하물며, 더러운 외부 종족의 피를 이은 아이가 마을에서 너무 오래 살았소."
그리고, 당황한 엘프들 사이로 한 남성이 느긋하게 걸어 들어오며 싸늘하게 웃어 보였다.
뒤로는 그를 따르는 보수파 엘프들이 있었다.
문제는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전신이 저릿할 정도의 기세를 내뿜는 복면을 쓴 엘프 하나가 그들을 호위하듯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전체적으로 푸른 제복을 입은 여성 엘프는 이 숲의 엘프들과는 달랐다.
"저......저 복장은 설마."
"에이션트 가드."
"어떻게 신목의 가디언이 여기에?!"
"최상급 정령 소환 실패의 리바운드는 지대하다. 수장께서 위독하시다. 따라서, 현 시간부터 모든 권한은 최고장로인 나 콘대가 이양 받도록 한다."
"코......콘대 장로. 도대체 무슨......."
창백한 얼굴의 유리아가 힘겹게 입을 열었지만 그녀는 현재, 꺼져가는 엘레스트라의 소환진을 붙잡고 있는 게 고작이었다.
"그 추악한 피를 이어받은 저주받을 꼬마가 쓸데없는 호기심에 오염의 근원까지 갔다가 그대로 늪에 빠졌소. 그 때문에 오염이 급속도로 가속화된 게지. 이제는 돌이킬 수 없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곳은 출입 금지 구역이에요! 뮤우는 어른들의 말씀을 잘 듣는 착하고 영리한 아이였고요!"
"그럼 지금 내가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게요? 쯧쯧. 서로 존중해야 하는 장로의 말을 그리 믿지 못하는 수장이라니. 본인이 젊었을 적엔 상상도 못했을 겝니다."
"그 존중을 시작부터 버린 장로가 할 말이 아니지요!!"
거드름을 피우며 그가 고개를 까딱였다.
"이제 어쩔 수 없다. 이 숲은 포기하고 모두 신목으로 돌아간다."
"그......그럴 순!"
"현재 명령권자는 나일세! 나를 거역하겠다는 말은 곧 죽겠다는 소리인 게지!!"
한 엘프 하나가 반박하다 그대로 움찔거리자 콘대는 마치 날개라도 단 것처럼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보게! 젊은 수장 유리아 헬리샤나를 따른 그대들의 말로가 어찌되었는지! 숲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무너져 내렸고! 자신만만하게 최상급 정령을 소환하겠다던 수장은 추악한 인간의 힘까지 빌렸으면서도 실패했네!"
싸한 분위기 속에서 콘대가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그뿐인가. 수장께서 그렇게 싸고돌던 그 추악한 피를 이은 하프엘프가 결국 모든 일의 마무리를 찍었음이지. 거부한다면, 무력이라도 감행하겠네."
마치 잘 짜여진 판처럼 돌아가는 모습에 콘대의 시선이 이젠 내게 닿았다.
"인간, 네놈은 여기서 죽고. 유리아 님은 신목으로 돌아간다. 그 진실은 분명하다."
"그렇게 말해도 돼?"
그런 그의 선고에 마법진의 한 편에 선 채 느긋하게 뒷짐을 지고 있던 내가 씨익 웃었다.
빌어먹게 귀찮게 굴던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다.
낚싯줄을 끊을 자신이 있다고 신나게 날뛰고 있었는데, 그는 낚싯줄이 오리하르콘으로 짠 실처럼 질기다는 사실을 몰랐다.
"숲에 들어오면서 분명히 말했는데."
"무슨......."
"선택은 본인의 몫이고, 책임도 본인의 몫이라고."
그거 알고 있나?
"그 자리, 지금 내 공격 거리 안인데."
서걱!
아주 짧은 소음 끝에 붉은 잔상이 허공을 수놓았다.
동시에 길던 콘대의 머리카락 일부가 잘려나갔고, 그의 새하얀 뺨에 새빨간 혈선이 그어졌다.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느긋한 내 말에 멍하니 있던 그가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는.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보다 급기야 비명을 지르며 품안에 있는 무언가를 꺼내 황급히 허공에 던졌다.
"주......죽여! 저놈을 죽이시오!"
비명을 지르며 소리치는 그의 손을 떠난 구슬이 허공에서 검은 기류를 흘렸다.
사아아아아아아아아!!!
동시에 특이한 기류가 일대를 완전히 장악하기 시작했고, 곧 내 몸 안에서 활보하던 마나와 신성력을 강제로 억제하고 정령마나로 뒤바꾸기 시작했다.
정령마나로는 육체를 강화하지 못했다.
오러블레이드나 마법을 발현하지도 못했다.
"빠......빨리 죽이시오! 결계는 오래 가지 못하니!"
그의 외침과 동시에 나를 향해 에이션트 가드라 불리던 여성이 덤벼들었다.
마스터 급 존재가 강한 이유.
그것은 마나의 숙련도 여부였다.
마나나 신성력은 여러 능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무학을 다루는 이들에게 가장 큰 요소로 다가오는 건 다름 아닌 인간을 초월하게 만드는 육체 능력의 증강에 있었다.
그런 부분을 모두 제압당한다면 마스터라도 별 수 있을까.
콘대는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나를 제압하기 위해 그가 숨겨둔 비밀 카드를 꺼내든 것이었다.
서슬 퍼런 단검이 순식간에 내 목을 향해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접근을 보고 있던 내 얼굴에 더욱 짙은 미소가 어렸다.
"대량의 정령 에너지 증폭....... 고맙게 잘 쓸게."
지금까지 묵혀두었던, 아공간에 잠들어 있던 구슬이 찬란하게 빛나며 이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주 찰나의 순간.
구슬을 가슴께로 끌어당긴 내가 양손으로 구슬을 짓누르듯 잡고 짧게 시동어를 터뜨렸다.
[개방]
태초의 존재.
자연의 근원.
정령왕의 존재가 담아낸 거대한 힘의 정수가 가지는 효과는 단순무식하다.
최상급 정령의 힘을 강제로 몸에 빙의, 그에 준하는 모든 정령에 관한 힘에 강제력을 지녔다.
정령왕을 소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세 가지.
최상급 정령과의 계약, 그리고, 그 정령과의 완전한 동화.
마지막으로 순수한 의지.
[명령한다.]
휘이이잉!!
"큭?!"
동시에 거대한 에너지가 폭풍이 되듯 내 몸 안에서 휘몰아치기 시작했고 나를 공격하던 에이션트 가드의 여성은 자신이 사용하던 정령의 힘을 나에게 모조리 빼앗긴 채 그대로 튕겨져 나갔다.
순식간의 사태에 눈을 부릅뜬 채 상황을 지켜보던 콘대 장로를 무시한 채 나는 곧바로 몸을 돌린 채 반쯤 쓰러져 숨을 헐떡이고 있는 유리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명하노라, 멈춰라.]
동시에 내 말이 언령이 된 듯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수룡, 엘레스트라의 형체가 완전히 물방울로 바스러졌다.
화아아아아악!!!
그리고 갑작스런 의식 중단으로 생긴 거대한 힘은 오갈 곳을 잃고 사방으로 비산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것을 향해 다시 한 번 손을 뻗으며 조용히 읊조렸다.
[명하노라. 스며들지어다.]
화아아악!!!!
갑작스런 사태를 이해 못 한 모두의 시선을 뒤로 한 채 유리아와 눈을 마주치자 그녀가 힘없이 웃으며 억지로 붙잡고 있던 엘레스트라의 형체 고정을 그대로 놓아버렸다.
그리고는 그 리바운드를 온전히 몸에 받아내며 피를 울컥 토하고는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나머지를...... 부탁드려요."
콘대 장로는 스프를 만들어서 개를 준 꼴이라는 말을 알아야 할 것이다.
* * *
갑작스런 상황.
거대한 힘의 여파가 내 손에 모여들며 주변을 잠식하기 시작하자 모두의 얼굴에서 얼이 빠진 듯했다.
"이......이게 무슨?!"
하지만 나는 그런 그들의 의문을 해결해주기보다는 내 손 안에서 날뛰는 거대한 에너지를 그대로 회전시켜 속성을 강제로 변형시키기 시작했다.
그녀가 넘겨준 정령마나는 사실상 필요 없었다.
내가 그녀에게 받아낸 것은 그녀가 가진 정령을 갈구하는 순수한 의지.
멍한 얼굴로 모두가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나는 손에 모여든 거대한 에너지를 그대로 바닥에 내려놓은 뒤, 한쪽 무릎을 꿇고 조용히 선언하듯 입을 열었다.
[태초의 시작 아래, 세계를 구성하는 자여.]
[맹약에 따라 굳건하게 굳어지고]
[강렬하게 격동하는 대지의 흐름이여.]
[나, 그대의 이름을 등에 업고 맹약에 따라 약속을 지키고자 함이니.]
[나의 이름은 데이비 올 라운.]
[그대의 이름은 대지의 근원.]
[위대한 의지에게 부여받은 이름.]
[노아스.]
이어지는 내 목소리에 모두가 눈을 부릅떴다.
그럴 수밖에.
분명 최상급 정령을 소환하는 건 유리아였다.
하지만 마치 계획을 세운 듯 그녀가 내게 바통을 넘겼고, 나를 통해 상상도 못할 존재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노아스?"
"저......정령왕?!"
당황한 엘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령과 계약한 적도 없던 자는 아무리 계약하려 해도 하급 정령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단계를 밟아야 하는 힘이 바로 정령 계약이었다.
그런 상식이 있건만, 그들의 눈앞에 있는 나는 하급 정령은커녕 곧바로 말도 안 되는 신화 속의 존재를 끄집어내고 있었다.
땅의 근원.
태초의 흙.
대지의 정령왕 노아스.
최상급 정령도 수백 년에 걸쳐 한 번 볼까 말까한데 그 상위의 존재인 정령왕이라니.
정령왕이 가지는 힘.
당장 소환 직후의 힘만 끌어다 써도 현재 내가 가진 전력과 비등할 수준.
누가 들으면 헛소리 하지 말라며 소리 칠 모습이었다.
절대 성공할 리 없다고. 형체를 잡기도 전에 피를 쏟고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상식적으로 당연하기에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쿠웅.......
보란 듯이 그 위대하다 불리는 존재는 나의 부름에 응답하듯 격동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리아가 겨우겨우 현신화해내던 수룡 엘레스트라와는 수준이 다른, 어마어마한 존재감과 위압감을 품은 채 말이다.
62. 대지의 주인, 노아스.
고위급 정령을 불러내기 위해 마법진의 힘까지 빌려가며 준비해온 유리아와 다르게 나는 아무런 도움 없이 내 손으로 그 모든 것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정말....... 소환이 된다는 거야?!"
가장 크게 경악한건 다름 아닌 콘대 장로였다.
그는 눈알이 빠질 듯 눈을 크게 뜬 채 내게서 시선을 떼어내지 못했다.
쿠웅!!!
이윽고 또 한 번 거대한 진동이 퍼져나가며 내 몸 안에 억류되어 있던 방대한 양의 정령마나가 사방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무형, 무취, 무색의 기운이지만 그 양이 너무도 압도적으로 많아진 탓인지 피부가 저릿할 정도로 그 체감이 강렬하게 들기 시작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나를 지켜보던 가운데.
나는 말없이 눈앞에 모여들기 시작하는 흙을 보며 조용히 영창의 흐름을 일순간 뒤바꾸었다.
잘 봐라, 이것이 데이비식 정령왕 낚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