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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71화 (170/1,559)

# 171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7권 20화

[첫 계약자여, 그대의 바람은 모두 이루어졌다.]

숲의 정화가 끝났음을 말했다.

최상급 정령이라면 수일에서 수십 일은 걸릴 만큼 방대한 양의 오염이었지만, 역시 자연 그 자체라 불리는 정령왕에겐 아주 잠깐의 시간만으로도 모든 것을 본래대로 되돌리는 힘이 있었다.

"수고했어, 노아스. 다음엔 작은 사이즈로 부탁하자고. 너무 커서 목이 아플 지경이다."

[그대는 단 한 번도 정령을 소환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나를 불러냈지.]

정공법인 순차적인 소환 방식 없이 곧바로 정령왕을 불러낸 이유는 실상 간단했다.

"네 계약자였던 정령여제가 내게 만들어준 정령왕의 정수 때문이야."

[우스갯소리로 하던 물건을 정말로 만들어냈었단 말인가.]

정확히는 그녀가 죽은 이후 회랑에서 만들어진 물건이지만. 정령여제 유리아나가 혼으로나마 살아있다는걸 알려주지 않는 것이 이로워 보였다.

하급정령에서 중급 정령, 그리고 상급정령.

이 중간과정을 모조리 생략하는건 아무리 나라고 해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용한 것이 바로 정령왕의 힘이 담긴 구슬.

초월급 물건이라 분류된 물건.

소모품 주제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물건인 정령왕의 정수의 효과였다.

기존의 어떤 제약이든 모두 무시하고 최상급정령을 불러내고 계약하는 물건.

내가 계약한 것은 땅의 최상급 정령, 노에아넨.

동화를 이루려면 상당히 시간이 걸리지만, 사기를 친다면 당장에라도 상위 정령왕을 불러낼 수 있다.

그 모든 행위가 요구하는 역량은 내게 달렸지만 말이다.

물론, 진실을 알아도 놀랍고 믿기 힘들다는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정말...... 진짜 정령왕이라니.......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요. 제 생에 정령왕을 실제로 볼 줄은......."

"말해줬잖아. 이런 물건이라고."

"세상에 그런 물건이 있다는 게 알려졌다면 아마 난리가 나겠죠."

그녀의 말에 내가 쓰게 웃었다.

아공간 속에 아직 정령왕의 정수가 12개나 더 남아 있다는 사실은 가급적이면 함구하는 게 좋을 듯싶었다.

이렇게 오염된 숲이 아니면 복잡하게 할 것도 없이 바로 정령왕을 노려볼 수 있는 물건이니까.

* * *

최상급 정령도 아닌 정령왕의 소환.

보수파의 짧은 반란은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에이션트 가드도 한 방에 나가떨어져 시신도 찾기 힘들어진 마당에 전의가 남아 있을 턱이 없었다.

"은공."

드워프들은 은사라고 하더니, 이쪽에선 은공이라.......

뮤우의 집이 있는 고요한 숲속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은 채 유리아가 내게 작은 구슬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바로 콘대 장로가 나를 제압하기 위해 꺼내들었던 구슬이었다.

"고대정령의 구슬. 다른 모든 힘을 강제로 정령마나로 치환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는 고대 이름 없는 정령의 구슬이랍니다. 설마 그가 이런 것까지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곤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한 채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이것을 가지고 있었던 건 당신을 견제하기 위함이었겠죠."

"그렇겠지."

구슬이 발동되면 마나, 신성력 등 대부분의 힘이 강제로 정령마나로 치환된다.

물론 정령왕이 없어도 내게는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 할 물건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일반적인 소드마스터를 상대로는 압도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던 물건이다.

말없이 그녀가 건네준 구슬에 손을 올린 내가 마나를 끌어올리기 시작하자 구슬이 아주 미약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 효용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슬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요동쳤다.

그리고, 아주 순간적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뇌리에 직통으로 꽂혀 들어왔다.

[혼돈!! 파괴!!! 망연자실! 크헤헤헤헤헤!!! 쿨럭쿨럭! 파하하하핫!]

"......."

재빨리 구슬을 테이블 위에 던져 버린 내가 혀를 쯧쯧 찼다.

역시, 정령여제 유리아나의 정령만 성격이 그랬던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정령의 종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어."

내 질문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종류요? 6대 정령이 끝이 아닌가요? 기본 4대 속성과 빛과 어둠의 정령. 자랑은 아니지만 저는 빛의 정령과 물의 상급 정령인 운다인과 계약하고 있답니다."

"카오스."

그녀의 말에 내가 짧게 중얼거렸다.

"카오......스?"

"혼돈의 상위 정령 카오스가 담긴 구슬이다. 어떤 미친놈이 봉인해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정령을 산채로 구슬 속에 봉인시켜둔 물건이야."

"혼돈의 정령이라니....... 그런 정령이......."

혼돈 속성의 상위 정령 카오스.

카오스의 능력은 간단했다.

일대의 모든 힘을 자신의 힘으로 바꿔버리는 괴짜 정령이 바로 카오스였다.

"정령의 종류는 총 열셋이야. 몰랐지?"

"세상에...... 그건 또 충격적인 지식이네요. 고서를 뒤져봐도 그런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어요."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구슬을 집어 들었다.

그녀는 저 구슬 속에서 들려오는 미친 목소리가 안 들리는 듯싶으니 차라리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게 옳을 것이다.

"네가 보관해. 언젠가 그 안에 있는 미친놈을 해방시켜줄 때까지."

"미......미친놈이요?"

"네가 진짜 최상급 정령을 소환할 수 있게 된다면, 아마 들을 수 있을 거다. 왜 미친놈이라고 했는지는 그때 확인해봐."

내 말에 그녀가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제 세계수에게 제대로 선전포고를 해버린 꼴이네요."

그녀가 쿡쿡 웃어보였다.

"저희, 지켜주실 거죠?"

"하는 거 봐서."

장난스런 내 말에 그녀가 만족스레 웃어보였다.

"부디 실망하지 않으시게 최선을 다해 당신을 모시겠습니다."

다른 이는 몰라도, 제 모든 것은 이제 당신의 것이니.

뒷말을 아주 작게 웅얼거렸지만 귓가에는 명확하게 닿았다.

미안한데, 정령왕 없어도 그 정도 무력을 끌어내는 건 쉬운 일이다.

진실은 때때로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는 법이었다.

* * *

스르륵.

오염이 사라지고 다시금 예전의 아름다움을 찾은 숲속.

고요한 숲속을 배회하던 정령수들은 풀을 뜯다 느껴진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고요한 그 풀숲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푸른 복장의 한 여성이 천천히 양손을 모아 수인을 맺은 후 짧게 영창을 읊었다.

[라 푸르쉘라.]

엘프의 고어로 이어진 정령 영창과 동시에 그녀의 눈앞으로 작은 사이즈의 홀로그램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초목의 어머니를 뵙습니다."

"호오. 갔던 일은 잘되었더냐?"

느긋하면서도 자애로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여성이 더욱 고개를 숙여 보였다.

"죄송합니다. 임무는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미라가 사망했습니다."

"사망했다?"

입체로 된 영상 속 여성의 눈이 꿈틀거렸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함정을 파놓았더군요. 장로 콘대가 사용한 고대 정령의 구슬을 맹신했지만, 인간은 그것을 역이용해 그 힘을 강제로 제어하고 정령왕을 불러내버렸습니다."

여성의 말에 영상 속에 모습을 드러낸 희끗한 형체가 쿡쿡 웃기 시작했다.

"쿡...... 쿠쿡. 그것참, 걸작이로구나. 설마하니, 여가 본 것들이 진실일 줄이야."

"무엇을 보셨는지요."

"아닌 게다. 상식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괴물을 본 게지. 그래, 너라도 살았다면 다행이구나. 그가 네 존재까진 눈치 채지 못한 듯한데."

"송구합니다. 알고서도 그냥 보내준 것 같습니다."

그녀의 보고에 침묵이 감돌았다.

"감히, 여를 시험하겠다라......."

고개를 숙이는 여성을 향해 희끗한 여성의 형체가 고개를 저어 보였다.

"어미의 품으로 돌아 오거라. 당분간은 내버려 두어야겠구나."

"추가 토벌대를 만드시지 않으실 겁니까?"

"가출한 딸아이는 결국 부모에게 돌아오는 법. 언젠가 모두가 여의 손바닥 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테지."

"명심하겠습니다. 세계수시여."

조용히 대답한 그녀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대화를 하는 두 인물은 알지 못했다. 멀찍이서 느긋하게 그것을 구경하던 이가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 * *

드워프는 은사라고 하더니.

엘프에겐 다른 호칭이 붙어버렸다.

"은공! 칼라 열매라고 해요, 피를 맑게 해주는 저희 숲의 특산물이에요. 어머니가 꼭 은공께 가져다 드리라고......."

"아니, 뭘 이런 걸 다."

과장되게 웃으며 모른 채하자 젊은 엘프 소년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엘프는...... 아니 저희 달의 숲 주민들은 은혜를 잊지 않습니다. 그것이 유리아 님을 구해주신 분이라면 더더욱요."

"유리아 님께 전부 들었습니다. 그동안 숲을 오염시킨 건......."

뿌득.

이를 갈며 한 남성 엘프가 눈시울을 붉혔다.

오염을 가속화시키기 위해 보수파, 즉 콘대가 선택한 방법은 간단했다.

사고사로 위장해 숲의 주민들을 주기적으로 실종, 사고사로 처리한 후 그들을 산 채로, 혹은 죽은 지 얼마 안 된 채로 숲에 만연한 오염의 근원 속에 던져 넣었다는 것.

"제 딸아이가 세 달 전 숲에서 몬스터와 조우해 목숨을 잃었다고 하더군요. 곧 결혼을 할 나이라 그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게 아니라 콘대 장로와 신목의 어두운 욕심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라니.

"이 말만은 하고 싶었습니다. 인간이라 당신을 알아보지도 않고 경계했던 것, 죄송합니다. 그리고...... 힘이 부족했던 저희를 도와 원수를 갚을 수 있게 해주어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 글쎄! 난 한 게 없다니까. 번지수 잘못 찾았다고."

"하하, 이리 겸손하실 줄이야. 그동안 전해져온 인간은 모두 추악하고 이기적이라는 말은 완전히 거짓이었군요."

사실인데.

"하지만 은공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저희는 모두 죽었을 거라더군요."

"맞아요. 이후에 들었어요. 유리아 님을 신목으로 다시 끌고 가고, 이곳에 남은 저희들은 모두 이곳에서 죽일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전통을 거스른 엘프에겐...... 죽음을 내려야 한다더군요."

결과적으로 콘대 장로의 무리수 덕분에 나는 한 가지 시도로 네 가지를 얻어버렸다.

적의를 한껏 드러내더니 결국엔 아낌없이 퍼주고 감옥에 들어가신 분.

아아, 콘대 장로. 당신은 도대체.......

전의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감옥에 갇힌 콘대 장로와 그를 따라 그동안 숲의 오염을 조장해온 보수파 과격 엘프들의 처분 문제가 꽤나 시끄럽게 잡음을 흘렸다.

제 가족이 억울하게 희생되었다는 것을 알아낸 엘프들은 통곡하며 제발 원수를 갚아 달라며 호소했고, 아닌 이들도 대부분이 그들의 의견에 동조해 숲을 배신하고 자신들을 죽이려 한 보수파를 살려두지 말라 하였다.

하지만 유리아는 그 결정을 쉬이 내리지 못했다.

"뭘, 고민해. 다 죽여."

이제는 마을로 거처를 옮긴 뮤우의 예전 거처.

작은 아이 혼자 살기에 적당한 나무 구멍을 집으로 두고 있는 마을의 외곽에 위치한 조그마한 정원.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고민하던 유리아를 향해 나는 슬라임의 체액으로 만든 차를 홀짝 들이키곤 심드렁하게 말했다.

이 망할 오묘한 맛이 의외로 중독성이 강해서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손은 찻잔을 향해 가고 있었다.

"조금 씁쓸해서요."

"거참."

그녀의 질문에 단호하게 답해줄 자신이 있었다.

"자비는 네 상황이 여유로울 때나 베푸는 거다. 산적이 처 들어와서 네 앞에 칼 들이밀고 있는데 상대를 공격하면 똑같은 인간이 된다면서 칼 맞을래?"

논리가 안 통하는 신념을 가진 또라이들은 기회를 줘 본들 다시 물어뜯는다.

실제로 전의를 상실하고 포박된 콘대 장로는 마치 정신이 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한마디만 반복했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어. 모든 것은 대의를 위한 희생이었을 뿐이라고!'

"은공께서 말씀하신다면 저는 따르겠어요."

숲의 수장은 그녀였지만, 이제 그녀를 포함한 이 숲의 주민들은 하인스 영지의 영지민이 되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내 의견을 상당수 반영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는 건 좋은데, 너희가 요구한 걸 잊지 마."

내 말에 그녀가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상식이 통하는 삶.

그리고.

자유가 있는 삶.

"너희는 하인스의 영지민이 된 거지, 노예가 된 게 아니야."

"그렇다면 그들을 추방 시켜서......."

"죽여."

"어머, 박력이 넘치셔라, 알겠어요."

너무 간결하게 승낙하는 그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닌 건 아닌 거였다.

"공포정치는 위험한 정치 방법이지만, 최소한의 질서도 요구하지 않는 호구정치는 근간이 흔들린다."

"그건......."

"역사가 입증한 사실이야. 명심해. 지도자는 때로는 독해져야 하는 거지같은 자리야."

내가 그래서 라운왕국 국왕의 자리를 걷어찼다.

한국의 과거, 조선시대 왕들이 왜 단명했는지는 역사가 입증해 주는 법이다.

내 말에 그녀는 주먹을 꼬옥 쥐고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요. 저는 몇 배는 젊은 당신의 앞에서 바보같이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네요."

혼의 나이는 역으로 차이가 나겠지만.

"그나저나 결계는 어떻게 하죠? 은공께서 박살내신 그 결계요."

환하게 웃으며 품안에서 잠들어있는 뮤우의 뺨을 쓸어내린 그녀가 물었다.

"책임져 주실 거죠?"

손가락을 빨며 잠들어있는 작은 아이를 품에 안고 책임져 달라고 말하는 아름다운 엘프 여성의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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