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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72화 (171/1,559)

# 172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7권 21화

'이건...... 이것대로 배덕감이 드네.'

-거기서 그런 생각을 해? 난봉꾼 같으니. 애초에 그대가 좋다는 여자들에겐 손도 안 대면서 도대체 왜 그러는 게야?

그런 그녀의 요망한 미소에 내가 느긋하게 주먹을 뻗어 허공을 후려쳤다.

쩌적!

동시에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깨어지며 그 안에서 특이하게 생긴 묵빛의 커다란 지팡이가 끌려나왔다.

"기대해, 내가 아주 끝내주는 놈으로다가 설치해줄 테니까."

덤으로 엘프 마을과 하인스 영지를 이어버리는 이동 포탈도 설치하고.

드워프 마을에서 구상만 했던 누구도 간섭하지 못하는 독자적인 이동 포탈을 만들 때가 되었다.

-그......그것은!

내가 꺼내든 커다란 지팡이를 본 페르세르크가 새된 비명을 지르고 눈을 반짝거렸다.

오랜만에 보는 이 그립감.

미묘하게 익숙한 기분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전에 생각해둔 것들이었다.

하인스 영지에 설치하기 전에 우선 하인스 영지보다 면적이 좁은 이곳에서 실험해 봐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완전 접근 차단 결계는 만들지 않을 생각이다. 대신 다른 것들을 넣어줄게, 어떤 걸 원해? 단 한번이지만 메테오도 막을 수 있는 대 마법 방진을 추가해줄까. 아니면, 생명력이 언제고 넘치도록 성역을 추가해 줄까."

프리미엄 옵션은 비쌌다.

"네?"

내 물음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도 싫으면, 정령마나 동력을 기반으로 한 물리 반사 결계를 만들어줄까."

이제 내 영지민인데, 조금 신경은 써주마.

내가 내놓은 선택 답안에 유리아의 얼굴에 의문이 어렸다.

"저기....... 제가 뭔가 잘 못 들었나요?"

"제대로 들었어. 골라. 뭐가 됐건, 선택만 하면 오늘 안에 설치해주마. 어서 이 숲과 하인스 영지 사이를 잇는 이동 포탈을 만들어야 하거든."

"......회......회의를......."

도망치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유리아가 후다닥 숲으로 도망쳐버렸다.

* * *

결국 유리아는 적당히 절충하여 여러 방면으로 숲을 보호할 수 있는 결계를 부탁해왔다.

엘프들은 마치 신기한 걸 봤다는 듯 모여들어 내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정말 그런 말도 안 되는 결계를 치는 게 가능한 것인가 궁금해 하는 모습들이었다.

-흐흣......흐흐흐흣. 이 고운 자태를 보게, 어찌 이리 아름답단 말인가.

체면이 박살난다는 표현은 이런 곳에 쓰이는 단어일 것이다.

"......."

사실 나를 의문스레 바라보는 엘프들보다 나는 다른 곳에 신경이 굉장히 쏠려 있었다.

-세상에....... 아다만티움 재질의 장대에 오리하르콘 문양의 각인, 게다가 고대룡의 뼈와 퓨어미스릴(극도로 순수한 미스릴)로 마감처리를 하고 거기에 엘릭서(신의 눈물방울)로 코팅까지!

당장에 눈에서 레이저라도 나올 것처럼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내가 들고 있는 스태프에 달라붙어 헤실헤실 웃고 있는 이가 범인이었다.

-데이비! 말해 보아! 이 안에 어떤 마법을 저장해둔 게야? 메테오? 헬파이어? 그것도 아니면....... 이론상으로나 가능한 마법인 다차원 입자 분해 마법이라도 들어 있는 게야?!

무엇을 숨기랴.

좀 전부터 내 시선을 강제로 강탈하고 있는 건 스태프 자루에 밀착한 채 볼을 비벼대고 있는 이 체통을 잃어버린 전(前) 마왕님이었다.

'침 떨어진다. 비싼 거야, 인마.'

-쓰읍. 보......본녀도 이런 엄청난 물건은 처음 봐서 그런 게야! 초월의 종언....... 초월의 종언 정말 좋은 이름이로고. 데이비!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

꼭 그 말을 홍단이, 청단이만 쓰라는 법이 어딨을까.

-그냥 조금씩 빌려주는 것도 아니 되는 게야? 더럽구나! 정말 치사하구나! 본녀가 이리 매달리게 만드는 남자는 그대가 처음인 게야!

마치 떼쓰는 아이처럼 칭얼거리는 그녀를 떼어내기 위해 스태프를 이리저리 흔들자 장대에 달라붙어 뺨을 비비고 있던 그녀가 비명을 지르고 나가떨어졌다.

'어차피 만지지도 못 할 거면서 뭔 욕심이 그렇게 많아.'

-아닐세! 본녀의 혼은 아직 남아 있음이니! 조금씩 물체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으니 언젠가는!

울상을 지으며 물러난 그녀가 아쉬운 표정으로 내 손에 쥐어진 스태프를 바라보았다.

초월의 종언이라는 이름의 스태프.

본래엔 내게 마법을 가르쳤던 아트렐리아 대륙의 최고 마법사.

마법사의 신이라 불리던 오딘의 주 애장품이지만 이제는 내 것이 되었다.

그렇게 아끼던 물건을 내가 가기 전에 가져가라며 던져준 게 조금 의외이긴 했지만, 준다면 잘 쓰면 되는 일이었다.

실제로 이 미친 스태프를 빌려서 마법을 사용해보면 그 뽕맛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늘 사용해왔던 것처럼 순식간에 내 마나를 읽고, 저장하고, 기억하며, 응용하기 시작하는 자아가 없는 살아 있는 스태프, 초월의 종언이 서서히 반응하기 시작했다.

마법구를 대신하여 끼워진 에이션트 드래곤 이상 급의 고대룡 심장은 당장이라도 제 힘을 발휘하고 싶어 못 참겠다는 듯 옅은 공명이 울려 퍼졌다.

"저...... 은공? 결계는 분명 각 꼭짓점이 되는 끝과 중심에 대규모의 마법진을 설치하고 방치하는 것을 반복해서 만들어내는 것 아니었나요?"

그녀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마냥 통상적인 방법이면 나도 그리했을 것이다.

"요는 이 숲을 덮어씌우면 되는 거 아니야."

나와 공명하고, 연결된 초월의 종언을 허공에 살짝 들어 올린 후 손을 놓자 커다란 스태프가 마치 중력을 거스르듯 허공에 떠올라 빙그르르 돌기 시작했다.

"이건 됐고."

담담하게 말하며 이번엔 양손을 펼쳐 가볍게 손뼉을 마주쳤다.

[8서클]

[공간 마법]

[커스텀 스페이스]

시전자의 방대하고, 빠르며, 정확한 연산 능력과, 방대한 마나량. 마나를 다루는 숙련도에 따라 일정 규칙을 부여하는 마법.

본래 마법사들에게 커스텀 스페이스는 좁은 공간에 자신의 마법을 강화시킬 규칙을 만들어 넣고 단시간에 포격을 가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대륙의 현자가 고작 7서클이기에 현실적으로 이 무식한 마법이 사용된 적은 거의 없지만, 내게는 아니었다.

[물리 흡수]

[대 마법 방호]

[그레이트 일루전]

완전하진 않지만 상당량의 효율을 지닌 물리 면역과 마법 면역, 그리고 침입자를 배제하기 위한 환영 마법을 기본으로 설치했다.

그 후 수인을 풀며 내가 조용히 읊조렸다.

"노아스."

쿵......쿵!!!

이어지는 정령왕의 소환.

거대한 존재가 제 존재감을 여지없이 흩뿌리며 내 앞에 힘을 뭉쳐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기다렸다는 듯 거대한 대지의 거인이 다시 이 숲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령왕 급 존재를 마구 부려먹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계약한 정령을 왕이랍시고 편하게 놀고먹게 둘 생각은 없었다.

피 같은 내 정령마나를 뜯어갔으면 일을 해야지.

"흡!"

"저......정령왕께서 또 소환되셨어."

볼 때마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엘프들의 중얼거림을 무시한 채 나는 완전히 소환되는 정령왕을 향해 말했다.

"요구를 상납한다."

[계약자의 요구를 소납하겠다.]

처음 소환했을 때 내가 했던 말 때문인지 처음만큼 큰 사이즈는 아니었지만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마나를 내포한 십수 미터의 거인이 입을 열어 답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정령 에너지의 순환."

결계는 스스로 힘을 비축하고, 소모하는 것을 순환하여 반영구적으로 지속되어야 했다.

그렇기에 정령의 힘이 가장 강한 이곳에선 정령의 필요했다.

기왕이면 가장 강한 존재인 정령왕의 의지가 담긴다면 그 효과는 탁월하리라.

내 말 뜻을 깨달은 듯 노아스는 곧 거대한 흙의 부스러기로 흩어지며 내 근처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노아스의 거대한 힘의 소용돌이가 내 마나와 연동되며 거대한 마법진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수백의 정령 언어와 수천, 수만 가지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룬어로 만들어진 수십 미터 가량의 거대한 마법진이었다.

룬어는 글자의 크기, 글체, 위치의 선정, 그리고 룬어끼리 만들어내는 도형 모두가 다른 특성을 지녔다.

머리가 띵할 정도로 방대한 연산 능력을 요구하긴 하지만.

상관없었다.

순식간에 재배열되며 기존의 두 가지 규칙이 적용된 물리 방어와 마법 면역의 규칙을 띠던 룬어들 위로 정령언어가 스며들고 뒤섞였다.

이후.

다시 양손을 모아 기도하듯 깍지를 낀 내가 조용히 한쪽 무릎을 꿇고 입을 열었다.

[전능하사, 위대한 의지께 고하오니.]

[이정도로 완벽하게 이뤄줬으면 축복도 좀 내려주십쇼.]

우웅!!!

[9위계 성마방진]

[데아 생츄어리]

순백의 거대한 빛이 퍼져나가며 마법진을 코팅하듯 감쌌다.

이후 다시 몸을 일으킨 내가 손을 가볍게 휘젓자. 수십 미터에 달하던 거대한 마법진이 이내 10센티 정도의 작은 사이즈로 줄어들며 특이하게 생긴 반구형을 띠기 시작했다.

사람은커녕 동물 하나도 들어갈 수 없을 만큼의 정말 아기자기한 사이즈였다.

"정말 어마어마한 힘이 느껴지네요. 방금 뭘 넣으신 건가요?"

유리아의 질문에 결계가 완전히 굳어지길 기다리던 내가 대답했다.

대량의 마나가 빠져나가서인지 상당한 탈력감이 밀려온다.

"9위계 성마방진에, 8서클 커스텀 결계를 만들고 거기에 물리 내성과 마법 내성을 추가, 거기에 정령왕의 가호로 마법진 내부의 힘이 끊임없이 순환하게 만들었지."

내 말에 그녀가 놀랍다는 듯 결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이상한 점을 깨달은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음?"

"그거...... 너무 작지 않나요? 사람은커녕 동물도 못 들어갈 만큼 작은데......."

고작 십 센티미터가 조금 넘는 결계의 모습에 그녀가 타당한 의문을 제기해왔다.

그랬다.

효율이 커질수록 범위는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 넓은 하인스 영지 전체를 뒤덮고 있는 고대의 제어 시스템은 그야말로 기겁할만한 물건이었다.

물론, 그만큼 거대한 마정석이 설치되긴 했지만.

"이만한 결계를 만드는데 그걸 크게 만들면 그건 미친 낭비 아니야?"

"아......아니, 숲을 지켜야 하는 결계를 이렇게 작게 만들면 무슨 소용이에요?!"

내 말에 어처구니가 없는지 유리아가 눈 꼬리를 곱게 흘겼다.

"요는 커지면 되는 거 아니야."

괜히 초월의 종언을 꺼낸 것이 아니었다.

담담하게 말하며 내가 허공에 뜬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진 스태프 자루를 가볍게 말아 쥐었다.

"이 지팡이 별명이 뭔지 알아?"

"뭐......뭔가요?"

"도깨비 방망이야."

상식을 거부하는.

신검에 버금가는, 아니, 어떤 의미로는 신검 칼디라스보다 더 무식한 물건.

물론, 도깨비 방망이라 한들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직접 보여주는 게 좋으리라.

그 크기는...... 대충 이 숲을 덮을 정도로.

워낙에 대량의 에너지가 순환하기에, 정령 에너지가 극도로 풍족해지는 부작용이 있겠지만, 괜히 성마법으로 성역 선포를 한 게 아니었다.

가위 바위 보를 하듯.

마법이 기초를 이루고 정령의 힘과 신성력이 서로의 부작용을 보완하고 상호작용을 일으켰다.

세 가지 힘을 적절하게 배합하는 방법은 제법 마법 학문에서 유명한 이론이었다.

"커져라, 뚝딱."

그 말과 함께 내가 스태프를 가볍게 휘둘러 결계를 두드리자 유리아의 눈이 놀라움으로 크게 뜨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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