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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75화 (174/1,559)

# 175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7권 24화

"에...... 엘프?!"

상황판단을 못 하고 버벅거리던 일리나가 가장 먼저 놀란 건 엘프인 유리아와 뮤우의 존재였다.

"반가워요. 일리나 데 팔란 황녀님. 달의 숲의 수장인 유리아 헬리샤나라고 한답니다."

"아......바......반가워요. 일리나 데 팔란이라고 해요."

현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채 두리번거리고 있는 그녀를 향해 내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일리나는 유리아와 유리아의 품에 안긴 뮤우에게서 시선이 떨어질 줄 몰랐다.

이윽고.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일리나가 눈을 부릅뜨더니 나를 노려보았다.

"데이비 너 설마......"

한 치도 어긋남 없이 오해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배알이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쓸데없는 오해하지 마. 그보다 네겐 많은 걸 바라지 않지만 네 도움이 꼭 필요해."

"데,데이비?"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는지 그녀가 한발, 두 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미묘한 데자뷰가 느껴진다.

동시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 그녀가 후다닥 내게서 도망치더니 칼디라스를 뽑아 들었다.

"저......접근하지 마!"

"누가 보면 널 해하는 줄 알겠네."

"하! 웃기지 마! 전에 동굴에서 단둘이 하룻밤을 보냈을 때를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

그녀의 외침.

분명 어조는 화가 난 어조인데 언어선택이 상당히 잘못되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데."

"개수작 부리지 마, 데이비. 난 그렇게 아픈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어!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도 넌 놔주지 않았잖아!"

"결국은 너도 좋아했잖아."

그녀의 발악 섞인 외침에 유리아의 눈이 반짝거렸다.

"단둘이서......하룻밤을......그렇군요. 확실히 은공께서는 아직 젊은 나이이시니 혈기 왕성하시죠."

그런 말을 하는 유리아도 엘프의 기준으론 상당히 젊은 편이 아니던가.

"하지만 조금 이상하네요. 팔란제국의 황녀님께서는 적탑의 마법사이신 율리스님과 혼약 내정관계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살을 마주하셨다면....... 이건 설마......불......"

"아니에요!! 살을 마주하다니!"

초면인데도 소리를 칠 정도면 얼마나 당황한 것인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비명을 지르는 그녀의 모습에 유리아가 흥미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머? 아니었나요? 그렇게 아픈 건 처음이었다고......."

"그런 게 아니에요! 터무니없는 오해는 불쾌하네요!"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한 채 소리치는 그녀의 반론에 유리아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쩍쩍 다셨다.

"그렇군요. 아직 그 정도까지의 진도는 나가시지 못하셨다는 거네요. 아이 풋풋해라."

희미하게 웃어 보인 유리아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괴롭히고 싶게......"

못 들은 것으로 해야 할 듯싶었다.

"아, 이제 알겠어요. 두 분은 서로를 사랑하시지만, 아직 그런 관계까진 못 가신 거로군요? 확실히 정략혼이라는 게 사랑이 강제되진 않으니 다른 정실을 둔다고 해도......"

"아니 도대체 왜 자꾸 그렇게 오해하시는 거예요?! 저와 데이비는 아무런 사이가 아니에요!"

유리아의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아무런 사이도 아닌데 야밤에 창문을 타고 들어오시나요?"

"그...... 그......친구 사이니까!"

"쿡쿡......남녀 사이엔 친구가 없답니다. 황녀님."

한마디를 안 지고, 한마디를 놔주지 않는다.

결국,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눈물까지 고인 얼굴로 일리나가 내게 소리쳤다.

"뭐야?! 엘프들은 원래 이렇게 사람 괴롭히길 좋아해?!"

"네가 괴롭히기 좋은가 보지."

"웃기지 마!"

결국, 울먹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유리아도 나도 이 이상의 괴롭힘은 부질없다고 판단했다.

"괴롭히는 건 그쯤 해."

"어머, 저는 괴롭힐 생각이 없었는걸요?"

그런 게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을 볼 때마다 섬뜩섬뜩한 미소를 지어 보였나.

"일리나."

"뭐. 왜!"

"시간이 촉박해서 축제 준비에 네 도움이 꼭 필요해."

내 말에 그녀가 눈을 찌푸렸다.

"넌 가끔 나를 필요할 때만 찾는 것 같아."

짜증스레 외친 그녀가 칼디라스를 다시 브로치 형태로 바꾼 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확실히 드워프와 엘프 인간 세 종족의 연합축제라곤 하지만 엄연히 라운왕국 내의.

아니 정확히는 하인스 영지의 축제다.

거기에 팔란제국이 끼어들 건덕지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 축제를 성공리에 끝내려면 그녀의 힘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별거 없어. 필요한 물건이 있는데 팔란제국에서 상당히 입지가 강한 네 힘이 있어야 구할 수 있는 물건이거든."

"데이비......너 내가 무슨 물주로 보여?"

"대금은 확실히 치러줄게."

"그게 문제가 아니야!"

대놓고 이용하겠다는 내 의도에 그녀의 짜증 지수가 폭발 직전까지 내몰렸다.

조금만 더 자극하면 당장 폭발할 것처럼 이를 부득부득 가는 모습이라 나는 슬슬 당근을 던져줄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소드마스터. 하고 싶지?"

"소......소드마스터?"

"그래, 네가 협조만 해주면 소드마스터가 될 수 있게 발판 정도는 만들어줄게."

사실 손대지 않아도 곧 벽을 넘어서겠지만, 그녀가 모르면 이용하는 것이다.

거짓이라 치부하기엔 그녀는 이미 내가 얼마나 상식 밖의 짓을 저지르고 다녔는지 모두 봐왔다.

이윽고 분노가 극에 다다른 듯 그녀의 얼굴이 차갑게 식어버렸다.

"하! 너 사람 잘못 봤어, 내가 그런 거에 넘어갈 거 같아?! 친구 사이에 못 도와줄 게 뭐야? 시켜만 줘! 뭘 구해주면 돼? 응?"

사람의 심리라는 것은 참...... 간사하다.

* * *

팔란제국은 타 왕국이나 제국에서 구할 수 없는 귀한 물건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번의 경우가 그러했다.

내가 일리나를 통해 팔란제국에서 사들인 물건의 이름은 플레어 브레이크 스톤.

손바닥만 한 작은 마나석이지만 이놈은 단순한 마나석이 아니다.

철혈전쟁보단 냉전이 이어지고 있는 현재엔 광산폭약 정도로 상당히 의미가 하락되어 불리고 있지만,

사실 팔란제국에서 수출을 엄격하고 꼼꼼하게 따지는 물건이 바로 이 플레어 브레이크 스톤이었다.

이 플레어 브레이크 스톤의 과거 별명은 다름 아닌 [평등]이었다.

왜 평등이냐고?

노인이 쥐건 역전 용사가 쥐건, 아이가 쥐건, 모두가 똑같이 위협적인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마나가 아주 어지럽게 충돌하고 있어, 마나석에 꽂힌 안전핀을 뽑으면 마나가 충돌하면서 폭발을 일으키는 방식이군. 이런 식이면 시동 마나가 필요 없으니 누가 쥐어도 사용할 수 있는 게지.

팔란제국의 무기는 대륙적으로도 유명하다.

상대적으로 대마법사나 소드마스터가 타 제국에 비해 부족했던 팔란제국이 7개나 되던 제국 중 단 세 곳만이 살아남을 때까지 버티고, 종래엔 대륙 최강국으로 거듭나게 된 이유.

바로 현 황제의 정책으로 시행된 무기학문의 발달 때문이었다.

물론 그 단가가 상당히 비싸서 마구잡이로 양산할 수 없다는 단점은 존재하지만 말이다.

도대체 축제에 무기를 어디 쓰겠다는 것인지.

외부 관광객은 최대한 억제한 탓에 치안용으로 쓰일 것도 아니다.

애초에 위력 자체가 치안 용도로 쓰기엔 과격한 감이 없잖아 있다.

"저하. 명하신 대로 손재주가 제법 있는 놈들을 싸그리 데려 왔습니다요."

영주성의 지하. 디셉티콘 편대 공방의 옆에 만들어둔 잡동사니 공방 안으로 일련의 무리가 들어왔다.

모두가 하나같이 인간으로 엘프와 드워프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다들 오느라 고생했어."

"아닙니다요! 당연 오랍시면 저희가 가야지요!"

"암! 어디 성자님 말씀 듣고 손해 본 적이 있던가?"

"뭐, 믿어주는 건 고맙게 생각해."

씨익 웃으며 나는 그들의 앞에 각각의 원료가 담긴 통을 가져다 놓았다.

"이게 뭐입니까요?"

"뭐긴. 엘프와 드워프가 정령제니 광산축제니 아주 혼자서 독주를 하려고 하는데, 인간의 자존심이 있지 아무것도 못 하고 그냥 얹혀 갈 수야 있나."

"그......그 말씀은!?"

"하인스 영지의 드워프는 드워프대로, 엘프는 엘프대로, 또 인간은 인간대로 각기 내세울 게 있다는 걸 보여주자고."

필요한 것은 모두 모였다.

과도한 경쟁은 서로를 망치지만 적절한 협력은 한 개의 목표를 더욱 아름답게 하리라.

"저......저하......죄송하지만, 저희는 뭘 하는 겁니까요?"

"지금부터 우리가 만들건 이번 축제의 피날레를 장식해줄 것들이야. 잊지 마. 드워프든 엘프든 모두 하인스 영지의 영지민이고 너희들의 이웃사촌이다. 우린 서로의 저력을 보여주는 거지 서로를 깎아내리고 경쟁하고 싸우는 게 아니다."

축제 본연의 뜻을 절대 잊지 마라.

"만약 물을 흐리는 놈이 있으면 직접 내가 목을 칠 테니까."

보통 같으면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고 텃세가 상당할 터인데.

이들이 나를 맹신하는 경향이 짙은 탓에 그 영향이 상당히 적다.

약발이 떨어지기 전에 세 종족을 완전히 동화시키기 위해선 역시 서로 익숙해질 만큼 부대끼는 게 답이리라.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시켜만 주십시오!"

"있는 대로 부려먹을 테니까 각오 단단히 하고 시작하자고."

그리 말하며 내가 손에 쥔 플레어브레이크 스톤의 안전핀에 손가락을 걸고 빙글빙글 돌렸다.

결국은 영지민 모두가 웃고 떠들며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드는 게 목적이다.

관광객으로 돈을 긁어모을 수 있는데 왜 안 그러냐고?

지구 속담 중에 그런 말이 있다.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거 없다.

마냥 대대적으로 홍보해봐야 사실 그리 좋진 않으리라.

* * *

빠듯한 준비.

한 달이라는 시간은 정말 순식간이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흘렀다.

그동안 나는 적절한 구역 배치와 시설의 점검에 모든 정신을 쏟아부었다.

하인스 연합제의 본 목적은 어디까지나 그동안 고생한 영지민들이 웃고 떠들며 즐길 수 있는 축제를 여는 것이지만 분명히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이들도 제법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주머니라도 확실히 털어야 하지 않겠는가.

드워프들의 광산축제는 호사가들 사이에서도 꽤 유명한 축제다.

철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기 위한 드워프들의 연례행사.

하지만 그 축제의 현장을 본 이는 거의 없었기에 모두가 그렇게 여길 뿐이었다.

물론, 소문만 무성하고 정말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유명해지진 않았을 것이다.

드워프 종족의 광산축제가 대륙 널리 유명하게 퍼진 것은 사실 한 권의 베스트셀러 서적 때문이었다.

[광산 견문록.]

대륙 각지의 수많은 귀족들에게 필독서라 불릴 만큼 유명한 이 책은 대륙 각지를 돌아다니면 풀어낸 다른 견문록과 다르게 딱 한 가지만을 다루고 있다.

바로 드워프족의 패쇄적인 축제인 광산축제였다.

필력이 대단했던 건지, 아니면 축제에 대한 상상력을 부풀리는 게 제대로 먹혔던 것인지.

결과적으로 그가 써낸 견문록은 수많은 이들에게 광산축제에 관한 관심을 증폭시키게 만들었다.

드워프만 해도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 마당에 엘프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광산축제와 비슷한 엘프들의 축제인 정령제를 동시에 개최한다고 하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둘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바쁜 평민들의 큰 호응을 얻을 수 없지만 자유로운 용병이나 여유가 많은 귀족층에겐 꼭 굳이 먼 길을 돌아서라도 한 번쯤 들리게 만드는 이유가 존재했다.

"예상 이상으로 소문이 빨리 퍼진 탓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방문객이 늘었습니다. 왕국 내 귀족 가문이 수십이고 타국에서 온 가문이 일백을 넘었습니다. 이외에 자유용병들이 대거 방문한 것으로."

"이름값이 대단하긴 한가 봐. 많이도 왔네."

미끼는 한없이 황홀했고, 떡밥은 향기로웠으니.

흥미가 동한 월척은 뒤도 보지 않고 낚싯바늘을 덥석 물어뜯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긴 했다.

영지의 시설을 보수하고 겉보기에 깔끔하고 아름다운 영지의 형태로 만든 것.

쉬지 않고 건물을 세워 올려 유치 인원의 수를 늘리고 도로를 포장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 속도가 조금 빠르긴 하지만 유비무환이라고 했던가.

결국, 준비를 틈틈이 해온 내게 이 정도 일은 어렵지 않은 도전이 되었다.

축제가 진행되는 기간은 약 3박 4일.

하지만 축제가 시작되기 사흘 전부터 영지는 영지를 찾아온 손님들로 인해 평소 이상으로 부산스러운 느낌이었다.

"정말......라운왕국의 수도에서도 이렇게 많은 관광객이 오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대단한 거지. 중요한 건 영지민 모두가 일을 해선 안 돼. 무조건 반은 돌아가면서 축제를 즐길 수 있게 배치하자고."

"그렇게 되면 인력이......"

"외부에서 고용해 오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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