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8권 18화
71. 계속해서 싸워라, 죽지는 말고.
하나 둘.
점차 많은 수의 언데드들의 눈에서 빛나던 검붉은 빛의 안광이 미묘하게 다른 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붉은색이 사라지고 서서히 푸른 빛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망자는 맹렬한 원한을 가졌지만, 반대로 그들을 지휘하는 존재의 의지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내가 저들에게 없앤 것은 생자에 대한 맹렬한 적의를 지우는 것.
그리고 나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이다.
삽시간에 불어나는 그 수는 확실히 보통 숫자가 아니지만 내가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이던가.
비록 본래 용도는 원소마나를 다루는 물건이지만 사령마나 또한 결국은 마나의 한 계통일 뿐이다.
효율이 조금 떨어진다고 해서 전설급, 혹은 신급 장비가 일반급으로 떨어지진 않으리라.
도시를 점거하고 있던 수천의 언데드들 대부분이 삽시간에 내 손으로 넘어온 게 확연히 느껴지며 수많은 망자의 제어권이 내 손안에 잡혔다.
상위 네크로맨서의 지배력은 강하다.
하지만 그 강한 지배력도 수가 10만을 넘어가는 이 상황에서는 당연히 약해질 수밖에 없다.
"무기가 필요해 보이는데."
언데드는 대부분 맨손이나 버려졌던 부서진 무기들이 대부분.
스켈레톤들은 제 뼈를 뽑아 만든 듯한 골검들을 지니고 있었다.
안 그래도 기본 스펙이 떨어지는 놈들인데 무장까지 빈약하니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무식하게 인해전술로만 밀어붙이는 게 마냥 좋은 것은 아닌데.
짧은 고민 끝에 내가 입을 열었다.
"우선 이것부터 나누자, 최근에 감염되거나 죽어서 언데드가 된 놈들은 전부 오른쪽으로. 나머지는 왼쪽으로 이동한다, 5초 준다. 실시."
간단한 명령에 언데드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언데드에겐 제어권자의 명령을 분석할 지능도, 그것을 항명할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히 존재하고.
명령을 내려받으면 맹목적으로 움직일 뿐.
순식간에 파도처럼 나뉘는 언데드의 수를 보니 놈들이 일어나며 희생당하고 언데드가 되어 다시 일어난 이들의 수가 보통이 아니었다.
-잠식력이 보통이 아니군....... 생각보다 너무 많아.
"갑자기 일이 터진 거니까, 이렇게 불어나도 할 말은 없지. 거기, 몬스터나 동물들은 전부 왼쪽으로 가."
이어지는 이동 끝에 오른쪽에 남은 인간형 좀비나 스켈레톤들을 바라본 나는 말없이 손가락을 꼬아 핑거스냅을 튕겼다.
우웅!!
동시에 두 개의 검은 마법진이 펼쳐지며 일대를 휘감았다.
파스스스스!!
달그락!!
동시에 그들의 전신이 마치 힘을 잃은 것처럼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언데드가 창궐하며 질병과 싸움 끝에 감염되어 언데드가 된 희생자들이었다.
그들의 손까지는 필요 없었다.
혼을 저당 잡혀 윤회의 고리에도 들지 못한 채 지속적으로 고통을 받던 이들.
언데드의 형태를 구성하던 마법을 흩어버리고 그 후에 사령술사의 마법인 재령마법진으로 그들을 윤회의 고리에 올리고 나서야 나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 끔찍한 곳에 죽되 죽지도 못하고 살아남아 괴물이 된 것이다.
그들을 애도할 이 하나 없다는 사실은 퍽 좋은 일은 아니니까.
생면부지 남이라고 해도 혼과 교감하는 사령술사라면 저들의 슬픈 표정을 보지 못할 수가 없었다.
"다들 올라가. 윤회에 들면 아픈 기억은 모두 잊게 될 거다. 다음 생엔 더 좋은 삶을 살기를 조금 정도는 기도해줄게."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기류가 그들을 서서히 감쌌다.
이윽고, 내 주변을 배회하던 희끄무레한 형체들이 일제히 분자로 흩어지듯 바스러졌다.
제각각의 모습을 한 혼령들은 모두가 다른 인물들이었지만 한가지는 공통적인 모습을 보였다.
[고맙습니다]
바로 고마움이었다.
흑마법도 사령마법도 전쟁을 위한 도구로 개발되긴 했지만 반대로 순수한 학문과 누군가를 구원하겠다는 의지에서 발현된 능력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힘에는 나쁜 힘이나 좋은 힘이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일순간 대량의 언데드가 사라진 탓에 고요해져 버린 도시의 모습을 보며 나는 바스러져 파편만을 남긴 언데드들의 뼈를 스윽 훑었다.
"아, 맞다. 가더라도 뼈는 빌려주고 가라."
까드드드득!!!
동시에 힘을 잃고 흩뿌려진 뼈들이 일제히 떠오르며 뒤틀리기 시작했고 이내 단단하고 커다란 창이나, 검, 혹은 방패로 변하기 시작했다.
빈약한 무장을 하고 있던 언데드들의 전력을 상승시키기엔 이만한 선택도 없다.
-수가 너무 줄었는데? 괜찮은가?
"괜찮아 어차피 내가 만든 언데드도 아닌데 뭐."
부족하면 더 빼 오면 되는 법이다.
언데드가 날뛰고 있는 게 여기뿐이더냐.
없으면 더 충당하면 되는 법.
나는 이곳으로 오기 전 준비했던, 로브를 걸치고는 얼굴 전체를 가리는 밋밋한 가면을 썼다.
쿵!!
동시에 내 의지를 직접 거행하겠다는 듯 언데드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멈추지 말고 달려, 보이는 대로 부숴버려라."
목적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 * *
척! 척!!
중구난방 같지만 한결같은 행렬이 보이기 시작했다.
유적이 존재하는 거대 숲지에서 산성으로 향하는 길목은 현재 진군하는 언데드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수는 대략 2만....... 역시 간 보기네."
이미 발견된 수만 10만에 달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숫자는 늘어나고 있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연합군은 지쳐가는 데에 반해 이쪽은 세력이 점차 커질 것이다.
-고위 사령술사와 싸워본 경험이 없는 이들이니 당연한 일인 게지.
시간을 끌수록 불리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니 어찌 보면 당연하리라.
-다만 저 2만이라도 어마어마한 인력이 죽어 나갈 텐데.
"그렇겠지."
연합군이 합류하고 곧 벌어질 첫 전투다.
본래의 언데드와 다르게 이번엔 물리거나 상처를 입는 순간 동료를 버려야 하는 만큼 연합군 측이 상당히 불리하게 전투를 하리라.
-그래도 그 사실 여부를 알고 있으니 머저리가 아닌 이상 대비책은 갖췄겠지.
"무시하자."
당장 내 손에 들어온 언데드로 게릴라전을 펼친다면 저들의 진군을 와해시키고 늦출 순 있다.
다만.
"그래야 할 이유가 없지."
-생명을 지킬 수 있다면 지키는 것이.......
"페르세르크, 내가 말했지. 앞으로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질 확률이 높다고."
-......
"초장부터 기를 잡아놓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해서 벌어질 거다. 이건 단순히 성녀후보인 그 여자를 향한 경고가 아니야."
-그대가 그리하겠다면.
언데드들은 각기 수를 나누어 각 산성으로 몇 차례 들이닥친 전적이 있다.
실제로 눈앞에 보이는 2만여 명의 언데드 역시 8개의 산성중 한 곳으로 가고 있는 것이고 말이다.
어디 한번 막을 수 있다면 막아봐라 라는 식의 진군이지만 언데드 측은 느긋하기 그지없었다.
말없이 고개를 돌린 나는 이 모든 언데드를 만들어내고 조종하고 있을 이가 있는 방향을 목적지로 두고 이동을 시작했다.
유적 내부에 있다면 번거롭게 유적까지 밀고 들어가야 했지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언데드 군세를 무시하고 지나친지 약 몇 시간 정도 쉬지 않고 이동했을까.
나와 나를 포함한 언데드 군세는 곧 울창하게 자란 썩은 나무숲 사이로 우뚝 솟은 거대한 탑을 발견할 수 있었다.
멀리서 보면 눈치를 못 챌 수 없는 탑인데, 가까이 와서야 이것의 존재 유무를 눈치챌 만큼 나름대로 정교한 위장이었다.
-이곳은 본래 숲이 없는 들판일 텐데.
'만들어진 거겠지. 모두가 살아있는 망자의 거목이잖아. 뭣 모르고 저 숲에 기어들어갔다간 나무줄기에 목이 졸려 죽을 거다.'
네크로맨서가 전쟁터에서 작정하고 자리를 잡으면 그 영역은 죽음의 땅이 된다.
지금도 결국은 같은 상황이리라.
-7서클 마법인 네크로폴리스. 분명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 핵이 되는 네크로맨서의 사기를 수십 배나 증폭시키는 영역 마법.......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가? 겁도 없게."
상대 고위 네크로맨서는 내가 10만의 언데드 중 몇천 정도를 빼앗아간 사실을 눈치챈 듯 보였다.
그리고, 놈은 내가 이곳으로 온다는 사실을 깨닫기가 무섭게 길을 열었다.
마치 올 테면 어디 와보라는 듯 말이다.
그렇다면 안갈 수야 있나.
말없이 손을 휘저어 언데드 군단을 진군시킨 내가 한 발 내디뎠다.
동시에 아주 미약한 파장이 내 전신을 훑고 지나가며, 기괴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감히, 나의 군단을 훔쳐가고도 뻔뻔하게 이곳을 찾았는가, 애송이 사령술사여. 허나 일부라곤 해도 나의 군단의 제어를 강탈한 것은 칭찬해주마.
육성이 아닌 의지로 전해져 오는 그 목소리는 가만히 듣고 있으면 정신을 잠식당할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빨리 해결하고 가서 환자를 치료해야 해."
현재 사령부에는 나를 대신해 나를 따라왔던 륀느가 내 모습을 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생체라곤 해도 골렘인 만큼 녀석은 정보의 습득능력이 상당했고, 내가 남겨둔 메뉴얼에 따라 지금도 문제없이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으리라.
1924/20000
그 좋은 예로 지금도 숫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게 보일 정도였다.
다만 그냥 뒀다간 몇 날 며칠을 해야 할 숫자인 터라 내가 직접 여기까지 와서 상황을 가속하려 들지 않았던가.
륀느, 혹은 내 지휘를 받은 질병 관리단의 의료원들의 치료까지.
모두가 포함이 된다는 사실은 그나마 다행으로 다가왔다.
"요즘 리치들은 손님 찾아왔는데 얼굴도 안 들이미나?"
탑 내부까지 들리진 않을 목소리이지만 놈이 내 목소리를 듣고 있을 거라는 사실에는 추호도 의심 하지 않았다.
간단한 도발과 함께 네크로폴리스 전역에 퍼져있던 사령마나 일부가 내 몸을 침습하듯 파고들었다.
그의 불편한 심기가 살아있는 의지가 되어 파고든 것이다.
파앙!
하지만 내 몸 안에 있던 사령마나들이 기다렸다는 듯 침식하는 사령마나들을 낚아채고는 마구잡이로 먹어치웠다.
동화의 경지에서 엿보이는 사령마나의 의지를 해석해보자면.
'감히 저급한 밀도를 가진 주제에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와!'
제법 단순한 방식의 의지였다.
철컥! 철컥!!
이에 네크로맨서는 단순한 정신 침식으로는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제 본대의 일부를 꺼내 들기 시작했다.
거대한 석탑의 벽면에 나 있는 커다란 구멍에서 십수 마리의 언데드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네크로폴리스의 가장 최하층에 있는 가장 거대한 문을 통해서도 거대형 몬스터 언데드나 갑주를 입은 스켈레톤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끼에에에에엑!!!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본 와이번.
그리고 그 본 와이번 위에 올라탄 덩치가 거대한 해골 기사들까지.
하나같이 오러블레이드를 뽑아낼 정도로 강력한 데스나이트들이었다.
-마스터급 데스나이트의 수가 약 열넷......, 보고보다 많군. 게다가 어지간한 인간 수십이 붙어야 이길 수 있는 거대 몬스터형 언데드도 많아. 데이비, 그대의 군세로는 금방 쓸려나가겠는데?
"그럼 이쪽도 강화해줘야지."
담담하게 말한 내가 가볍게 뽑아 든 청단이를 빙그르르 돌렸다.
그리고는 탑을 정확히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들어가기 전에 내 목적을 전해두지. 난 네가 누군지 모른다."
끼에에에엑!!!
선두에 선 나를 죽이려는 듯 본 와이번이 수직하강을 하고 그 위에 올라탄 데스나이트가 내게 검을 휘둘러왔다.
"네가 뭘 원하고 이런 전쟁놀이를 하고 있는지도 몰라."
고열을 품은 예리한 오러블레이드가 내 몸을 절단할 듯 파고들었지만 나는 가볍게 청단이를 쥐지 않은 남은 손으로 홍단이를 뽑아 허공에 그었다.
서걱!!
동시에 본 와이번의 단단한 뼈 날개가 일순간에 잘려나가며 놈의 균형이 무너졌고 그대로 추락하는 데스나이트를 향해 가볍게 점프해 놈의 신형을 짓밟았다.
쐐애액!! 푸욱!
당연 마스터급 실력이 없다 해도 상위기사인 데스나이트였다.
제 공격을 당하면서도 반격을 넣는 녀석의 검을 차단한 나는 녀석의 얼굴 정중앙에 청단이를 박아넣고 땅에 처박아 버렸다.
제아무리 데스나이트라도 불사 파괴의 힘에 마(魔)속성을 상대로 메리트를 지니는 청단이를 견디진 못할 거다.
순식간에 데스나이트 하나가 정리되자 나는 가볍게 비벼 찔러넣었던 청단이를 뽑아내 버렸다.
푸쉬시시시식!!
순식간에 제 몸을 유지하던 힘을 잃고 바스러지는 데스나이트를 짓밟고는 추가적으로 다가오는 놈들을 향해 검을 뻗었다.
"네가 대륙을 향해 정복욕을 내세우겠다면. 나는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밖에 해줄 수 없다."
내 도움을 거부하고 털을 뾰족하게 세운 것은 연합이니까.
"다만, 네가 있는 곳이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 있는 곳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거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가, 침입자여.
내가 휘두른 검에서 무시 못 할 힘을 눈치챈 것인지 그 목소리에 경계가 어린 것이 느껴졌다.
"넌 지금부터 내 의도대로 움직이는 거다. 같잖은 전쟁놀이 집어치우고 필사적으로 싸워. 환자를 치료하는 내가 지쳐서 쓰러지게끔.
-헛소리!
"하지만 그러지 않겠다면, 나는 네가 있는 곳을 찾아낼 거다."
우웅.......
"그리고, 널."
말끝을 흐린 내 손을 따라 허공으로 떠오른 청단이가 유유히 움직이기 시작함과 동시에 내 손끝으로 백광의 신성력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내 입맛대로 부숴버릴 거다."
[8위계 성마법]
[신의 가호]
우우웅!!!!
내 몸을 기준으로 일대에 거대한 신성마법의 공간이 펼쳐지자 나를 따르던 언데드들의 몸이 크게 경련하기 시작했다.
몇몇은 그 신성한 광휘를 견디지 못하고 불타오른다.
적 측과 우리 측 할 것 없이 신성력에 취약한 언데드답게 여기서 신성 마법을 쓰는 건 웃긴 일이지만.
편법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내가 신의 사랑이 아닌 관심을 얻은 것처럼.
[다프네식 9위계 최후 성마법 ]
[회개.]
언데드의 의지는 곧 나의 의지. 나의 회개는 곧 그들의 회개가 될지어다.
우리에겐 둘도 없는 버프가. 저들에겐 최악의 디버프가.
기본 스펙이 딸리면 그 수준을 맞춰주는 수밖에.
순식간에 변하기 시작하는 주변 분위기를 무시한 채 나는 추가로 한가지 마법을 더 발현했다.
[8위계 공격 성마법]
[신의 지팡이(Rod of God)]
내 손끝을 타고 하늘 높은 창공에서 순백의 섬광이 낙하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