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8권 19화
지직!! 콰아앙!!
텅스텐 덩어리와는 다르지만, 신의 지팡이는 거대한 신성력 덩어리를 성층권과 중간권 급의 높이에서 낙하한다.
우주까지 가서 떨어지면 좋겠다만, 그건 성녀 다프네 정도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물론, 창공에서 떨어진다 해도 그 위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니지만.
-신의 지팡이?! 안 돼!!
"안되긴 뭐가 안 돼. 그만 방구석에서 나올 줄도 알아야지."
따스한 느낌을 주는 찬란한 빛이 마치 폭격이 쏟아지듯 떨어졌다. 네다섯 발의 신성력 덩어리는 곧 네크로 폴리스를 가차 없이 후려쳤고 첫발에 네크로 폴리스를 휘감고 있는 거대한 벽을 진동시켰다.
쿠웅!!!!
두 번째에 형태를 일그러뜨렸고.
쿠우웅!!!!
세 발에 벽의 일부를 깨뜨렸으며.
남은 두 발이 결계를 완전히 박살 낸 뒤 거대한 석탑의 일부를 부서뜨리며 일대를 뒤엎어놓았다.
내 접근을 막던 결계가 그렇게 박살 난 것이다.
괜히 8서클 급의 사령술사가 아니라는 듯 결계의 견고함이 상상을 초월했지만, 이미 부서진 이상 놈이 날고 기어도 단시간에 그걸 복구할 힘은 없어 보였다.
[내가 필요로 하는 건 전능하신 당신의 힘이 아닌 당신의 허락. 그리고 자비. 눈 딱 감고 300초만 헤아리십쇼,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신을 성희롱하는 미친놈 같으니.
페르세르크의 질렸다는 목소리는 무시해 넘긴다.
신의 의지에 엮여 요동치는 신성력을 억지로 제어하지 않고 퍼뜨린다.
신의 기적의 파편인 신성력은 신의 의지가 깃들었을 때 그 힘이 대량 증폭되리라.
다프네가 만들어낸 조금 특이한 계통의 성마법인 회개와 이어지는 8위계 성마법. [신의 지팡이]로 인해 몸 안에 있던 신성력 대부분이 일순간에 고갈될 정도의 충격파가 전해져 들어 왔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지독한 탈력감과 어지럼증이 밀고 들어왔지만, 그 공허함을 다른 힘을 순환시켜 막아버렸다.
끼기기기기긱!!
바닥에 쓰러져 기괴한 소리를 내고 삐걱거리는 언데드들을 향해 내가 손을 뻗었다.
저들과 다르게 내 제어하에 있는 언데드들은 신의 자애로 인한 용서를 받은 존재로 구분이 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언데드라는 모습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성력의 효능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신성력에 저항하지 않는다.
그 말인즉슨.
[스트랭스]
[어질리티]
[하드스킨]
[아이언 본]
버프계 최강 계통인 신성마법이 가진 장점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남은 신성력을 모조리 짜내 언데드의 몸에 심어 넣은 나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백광의 포격에 무너지기 시작하는 거탑을 보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성력은 최소치까지 고갈.
이제 남은 것은 사령마나와 원소마나, 그리고 이외에 두 힘으로 연동할 수 있는 정령력이나 내 몸에 근원을 두고 있는 힘인 도술이 전부다.
다만 현재 상황에서 세계수를 제외한 모든 존재에게 도술은 큰 의미가 없는 만큼.
우웅......웅......웅......
기본에 충실할 때가 되었다.
허공을 부유하다 내 손으로 빨려들어 온 홍단이를 쥔 뒤 가볍게 검신을 쓸어내렸다.
[꺄르르륵!]
상당히 간지러웠는지 홍단이의 자지러지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오자 괜히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데이비!
쾅!!
신성마법에 힘의 반절을 제한당했다곤 하나 이곳은 네크로 폴리스.
마스터급 힘을 지닌 데스나이트가 무력하게 당하기엔 무리가 있다.
순식간에 내 목을 노리고 날아든 커다란 골검을 홍단이를 들어 막아낸 내가 그대로 팔을 움직였다.
소드마스터급 오러블레이드를 머금었다고 다 같은 소드마스터도 아니다.
놈들은 기존의 소드마스터가 지닌 임기응변까지는 따라가지 못하리라.
놈의 검이 홍단이의 검신에 마치 달라붙은 것처럼 빨려들어 오며 균형을 잃어버렸고 내 쪽으로 쓰러지듯 끌려들어 왔다.
콰직!!
이어서 뻗어진 내 손이 놈의 머리통을 낚아채기가 무섭게 청단이가 무식한 절삭력으로 놈의 갑옷 이음새로 파고들었다.
끼기기기기긱!!
불사파괴의 권능이 발현되며 무너지기 시작하는 또 하나의 데스나이트였다.
"진군해."
이어서 내가 힘에 도취 된 듯 멍하게 있던 언데드들을 향해 명령을 내리자 가지각색의 종류를 지닌 언데드들이 네크로폴리스를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침입자여, 사령술사가...... 어떻게 추악한 신성마법을.......
"궁금해?"
-......
"계속 궁금해해."
그걸 이해할 날은 죽어도 오지 않을 테니.
쿠구구구구구궁!!
까드드득!
네크로 폴리스에서 흘러나온 언데드와 내가 포섭한 언데드들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언데드들이 진군하며 생기는 지축을 울리는 소리와 저쪽에서 내는 같은 소리가 충돌하며 귀를 아프게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놈이 소환한 언데드 중엔 위험천만한 상위 언데드도 많았다.
하지만 일대에 펼쳐진 신성력으로 인해 놈들의 몸은 시시각각 무너지고 불타오르는 데에 반해 내 쪽 언데드들은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압도적으로 스펙에서 밀리던 쪽이 대량의 버프를 받고 싸움을 시작하니 상황이 엇비슷하게 흘러간다.
서로 간에 감염이라는 개념이 없는 만큼 완전히 부서질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는 그들이었다.
거대한 언데드에게는 작은 언데드 수십이 달라붙었고 반대의 경우엔 육중한 체격으로 있는 힘껏 적들을 분쇄해 나갔다.
완전히 아비규환이 되어버린 네크로 폴리스 앞마당을 무시한 채 나는 굳게 닫히기 시작하는 거대한 석벽을 홍단이를 이용해 그대로 그어버렸다.
마법으로 만들어낸 잔재물일 뿐인 만큼 내구성은 그리 뛰어나지 않다.
나의 접근을 제어하던 석벽의 베리어는 내 신성력의 대부분을 집어먹은 두 마법 중 하나인 신의 지팡이로 인해 완전히 박살이 났지만, 아직 방해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끼히히히히히히!!
아주 작은 불빛 이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네크로 폴리스 내부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놈이 나를 제지하려 보낸 수많은 스펙터들이 덤벼들었다.
마법은 통하되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는 스펙터들의 진격에 나는 청단이를 휘두르는 대신 그대로 손을 뻗었다.
동시에 나를 향해 덤벼들던 스펙터들의 움직임이 우뚝 멈추며 곧 저들끼리 뒤얽히며 싸우기 시작했다.
"오 레어 언데드. 좋은 게 있으면 나눠 써야지."
-이 추악한 좀도둑이...... 그래, 오라. 올 수 있다면 와보거라. 이곳은 데스로드인 이 몸이 만들어놓은 미궁일지니, 비록 일부가 부서졌다 해도 네놈을 집어삼키.......
"뭐하러 미궁을 돌파해. 다 부수고 갈 건데."
미로를 돌파할 때 벽을 복구 불가능하게 부숴버리고 이동하는 것만큼 편한 게 또 없다.
뭐 설마, 벽을 부수면 복구하고 환영을 보여주는 환상 트랩이라도 설치하셨나?
"청단이는 편식을 잘 안 하지."
격분한 놈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나는 네크로 폴리스 속 사기가 흘러나오는 근원지를 한껏 바라보고는 벽을 베어내 버렸다.
분명 스스로 복구하는 힘과 벽을 부순 이를 혼란하게 만드는 트랩이 깔려있는 위험한 미궁이지만.
결과적으로 청단이에게 베인 이상 그것들도 다 소용이 없다.
괴성을 내지르는 놈을 무시한 채 빠르게 직통하자 슬슬 위기감을 느끼는지 나를 막아서는 놈의 저항이 점차 강해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데드는 바깥에서 서로 부수고 부서지는 싸움을 하는 탓에 실질적으로 물량을 들이박아 나를 막을 수 있는 언데드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윽고 석탑의 최하층에서 놈이 있는 최상층에 도달하자 거대한 공동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의 중앙에는 거대한 옥좌가.
그 옥좌 위엔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3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존재가 앉아있었다.
"거인족이었나?"
-거인족을 알고 있는 것이냐? 침입자여.
좀 전까지 나를 향해 형언할 수 없는 폭언을 쏟아붓던 그였지만 이젠 의미가 없다 여겼는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신장의 길이만 무려 3미터가 넘는다.
인간의 키라고 보기엔 너무 거대하지만 몬스터의 골격이라고 보기엔 다소 가느다란 느낌이 있었다.
"허상 이외에 실제로 거인족을 보는 건 처음이라."
-그렇군, 거인족은 결국 멸망한 것인가.
옥좌에 앉아있던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류가 더욱 어둡고 차가워지기 시작하며,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새하얀 백골로 이루어진 얼굴 안의 텅 빈 눈두덩이 속엔 새빨간 안광이 스며들어있었다.
언데드 리치.
그것이 바로 놈의 정체였다.
리치라는 것의 실상을 모르진 않았기에 사실 놀라울 것도 없었다.
-감히 이곳까지 찾아온 침입자여. 비록 방법이 뻔뻔하였으나 그 모든 함정을 돌파한 것 또한 침입자의 능력일지니, 이름 모를 원숭이여, 그대의 [명(名)]을 말하라.
"남에게 이름을 묻고 싶으면 자신의 이름부터 대야지."
-나의 이름은 클레르.
"됐어! 듣고 싶지 않아."
-빌어먹을 놈!! 다크홀!
콰아앙!!!
놈의 손이 까딱임과 동시에 거대한 흑색의 에너지 덩어리 들이 나를 향해 쏟아져 들어왔다.
단순히 간단해 보이는 검은 구체로 보이지만 나는 미련 없이 손을 휘둘러 놈이 쏘아 보낸 구체와 똑같은 다크홀을 만들어 그대로 상쇄시켜버렸다.
7서클 흑마법.
다크홀.
블랙홀의 열화판이자 겉보기엔 단순한 검은 구체지만 닿는 즉시 공간을 일그러뜨릴 정도로 강대한 힘을 압축하고 있는 구체다.
실제로 그가 쏘아 보낸 구체와 내가 날린 구체가 충돌하면서 더 크게 일대가 뒤틀리고 있었다.
-감히 내 언데드를 빼앗아간 것도 모자라 고위 신성마법에 오러블레이드......, 그런 주제에 7서클 흑마법까지 다룬다고?
놈이 새빨간 안광을 번뜩이며 중얼거렸다.
피부나 근육이 없어 표정이 보이진 않았지만, 반사적으로 벌어진 입 때문에 놀랐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불가능하다! 그런 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어!!
그의 혼란은 지극히 당연했다.
완전한 무영창, 그리고 여러 힘을 몸에 담고 운용하는 건 시간상으로나 재능 상으로 또 여러 문제점에서 미뤄볼 때 불가능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의문에 대답해줄 이유는 없었기에 나는 재차 공격을 가하려는 놈에게 빠른 속도로 파고들었다.
싸움이 격화될수록 주변에 영향을 미치게 될 테니까.
* * *
피잉.......
아주 작은 소리와 함께 새빨간 구체가 날아든다.
'빌어먹을!'
엘더리치.
스스로를 데스로드라 칭한 클레르 오르판은 속으로 터져 나오는 욕지기를 참을 수가 없었다.
본래의 힘을 다 발휘하기엔 현재 회복상태가 좋지 않았다.
깨어난 직후 모든 힘을 각성하진 못했으니 말이다.
-크라이 오브 피어!
마법을 사용할 시 가장 먼저 요구되는 시동어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기가 무섭게 그의 전신으로 귀가 찢기는 듯한 참혹한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보통 존재라면 귀에서 피를 쏟고 피눈물을 흘리며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위 공격이지만 어째서인지 눈앞에 있는 작은 인간은 한순간도 당황하지 않고 손을 뻗어 정체 모를 흑마법을 방출했다.
사령마법을 배워온 지 수백 년이지만 소년이 사용하는 마법 중 일부는 그로서도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흡?!
양손을 펼쳐 마법을 다시 시도하려던 그가 본능에 따라 움찔거리며 팔을 다시 움츠린다.
서걱!!
동시에 그의 팔이 있던 장소로 새빨간 오러블레이드와 새파란 오러블레이드가 날아들었다.
강하다. 너무 강했다.
이건 상식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지 않는가.
척 봐도 상대는 아직 젊은 인간이었다.
환골탈태를 하면 인간은 노화가 멈춘다고들 한다.
하지만 소년의 몸 안에 있는 마나의 흐름을 보자면 그건 불가능했다.
소년은 환골탈태와 비슷한 변화를 겪긴 했지만 완전하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소년이 마치 다르게 보였다.
무언가 많은 것을 숨기고 있는 괴물.
그렇기에 경악과 동시에 호기심이 들었다.
재능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게 환골탈태라고 했던가.
도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재능이기에 저만한 힘을 지니고 환골탈태조차 완전하게 해내지 못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강대한 힘을 가진 소년의 경지는 분명 자신의 경지와 비슷했다.
자신이 쏘아 보낸 8서클 사령마법을 똑같은 8서클 사령마법으로 받아 쳐냈으니 말이다.
상식적으로 인간이 이 경지까지 올라온 것도 놀랍다만.
더 놀라운 것은 소년의 마법 발현 방식에 있었다.
[무영창.]
지금까지 눈앞의 괴물 같은 소년은 단 한 번도 마법을 사용하면서 영창을 하지 않았다.
마치, 세상의 규칙이 소년을 편애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