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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02화 (201/1,559)

# 202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9권 1화

거대한 빛의 향연은 마치 신의 축복처럼 일대를 휘감았고,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실.

별거 없는 눈속임이다.

한둘도 아니고 수만에 달하는 병사 모두에게 버프를 건다는 건 나로서도 정신 나간 짓일 테니까.

하지만 들키지 않으면 예술이라고 했던가.

병사들은 내가 터뜨린 빛의 가루를 보며 자신들의 몸에 무언가 신의 가호가 내렸다고 판단한 듯 보였다.

플라시보 효과.

단순한 설탕이라도 약이라고 믿고 먹는 순간 정말로 병이 나을 수도 있다는 정신적인 효과를 칭한다.

"인간의 몸은 참 신기해."

"도대체 그 짧은 시간에 사기를 몇 번을 친 거야?"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물어오는 소녀를 보며 나는 진지하게 한마디의 격언을 던져주었다.

"들키지만 않으면 예술이 되는 거다."

"프리아 주신께서 눈이 삔 거지, 네게 성흔을 찍어주다니 말이야."

"굳이 성흔을 가진 이가 한 명이라는 법은 없어."

내 말에 환한 금발의 소녀, 일리나가 우아하게 땋은 머리카락을 가볍게 튕긴 뒤 뒤따라왔다.

"그나저나 정말로 진격할 거야?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녀의 질문이었다.

"네가 강한 건 알지만, 그래도 한둘의 목숨도 아닌데 뭐라도 파악한 뒤에 움직이는 게......."

"일리나."

그녀의 말을 끊은 내가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지금이 마지막이야."

짧은 대답에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무엇 때문에 시간이 부족한지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럼....... 하나만 부탁해."

그녀가 드물게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아직......오라버니의 시신을 되찾지 못했어."

그녀가 말하는 오라버니라는 게 누구인지 모를 순 없었다.

리치 클레르 오르판이 나타나며 놈을 토벌하기 위해 먼저 나섰다가 살해당한 팔란 제국의 황태자였다.

"오라버니의 시신은 꼭 찾아야 해. 찾아서......황태자비께 소식을 전하고 국장을 치러야 해."

드물게 보이던 약한 심정이 드러나는 눈동자에 나는 말없이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덮어 밀어버렸다.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넌 남아라."

"뭐!? 안돼!"

비명을 지르듯 소리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말없이 그녀의 팔목을 잡아 소매를 걷어 보였다.

소매 속에 숨겨진 그녀의 팔은 시퍼런 피멍으로 가득했다.

단순한 피멍이 아닌 근육과 혈관의 괴사였다.

무리하게 마나를 끌어내 사용한 이들에게 찾아오는 부작용이었다.

아직 상황이 심각하진 않아 흉터가 남을 것 같진 않지만, 전투가 지속되면 그녀의 팔은 괴사한 피부의 흔적으로 보기 흉하게 되어버릴 것이다

"그래도 의술을 배운 사람 앞에서 그만한 부상을 입어놓고도 잘도 돌아다닌다 그치?"

웃는 얼굴로 말하자 그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걷어차서 쫓아내기 전에 치료소로 가라."

"꺅!"

비명을 지르며 물러나는 그녀를 둔 채 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 격하게 몰아낼 필요가 있는가.

"멍청한 호구는 가끔 혼내서라도 상황을 인지시켜줘야지."

'노아스. 아직 있지?'

[듣고 있다. 계약자여.]

"준비하고 있어. 신호하면 마음껏 날뛰어도 좋아. 내 몸 안에 저장해둔 정령에너지를 모조리 가져가도 좋다."

내가 가진 정령에너지는 다른 힘을 정령에너지로 치환하는 방식을 쓴다.

그렇기에 현재 총량만 따지면 가장 높지만, 회복률이 가장 낮은 힘이기도 하다.

저쪽이 물량 언데드라면.

이쪽은 정령왕이다.

어디 누가 압도적으로 유리한지 한번 보자.

쿠웅!!

병사들의 얼굴에 다시 한 번 경악이 어리기 시작한다.

거대한 지진과 함께 대지에서 일어난 거대한 흙의 거인이 마치 길을 트듯 한 발 한 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살리반 황자님."

"......아, 네! 전군!! 진군한다!"

쿵!!

그가 검을 뽑아 들고는 외쳤다.

"감히 망자가 우리의 땅을 넘보고 가족을 힘들게 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놈들에게 당해왔을지 모르나 이젠 다르다! 오늘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와아아아아아!!!!"

든든한 우군이 있다는 사실을 직접 눈으로 상기시켜준 탓인지 패잔병마냥 떨어져 있던 사기가 다시 폭발할 듯 올라가기 시작했다.

"사기를 끌어올리는 데에 상당히 익숙해 보이십니다만."

말에 올라 나를 따라오던 살리반 황자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말끝을 흐린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방심하지 마세요. 내가 한 것은 그저 승리할 수도 있다라는 암시이지 당신들을 강화시킨게 아닙니다. 전쟁터는 아무리 강한 자도 언제 '억' 하고 죽어도 이상하지 않으니."

적은 7서클도 아닌 8서클 사령술사.

지금 그가 보여준 것은 단순한 언데드의 운용이었지만 그가 정말로 작정한다면 이만한 숫자의 병력이라도 단번에 대규모 손실을 받을 수도 있다.

마법으로 치면, 8서클 프로미넌스 마법 정도면 어떠할까. 이 군세가 있는 중앙에다 그것을 응축시켜 던지면 못해도 몇천이 그 자리에서 증발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가진바 모든 것을 쏟아부어 놈을 묻어버릴 생각이었다.

씁쓸한 중얼거림에 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 * *

거대한 협곡으로 들어서는 연합군을 바라보던 리치 클레르 오르판은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한걸음 내디뎠다.

"기어이 무덤으로 찾아왔구나."

그의 시선에 보인 것은 겁도 없이 용의 아가리로 머리를 들이미는 고깃덩어리들이었다.

"헌데, 놈은 보이지 않는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끝도 없는 힘을 품고 있던 괴물.

필멸자라 말했지만, 도저히 필멸자의 시간으로 얻었다고 볼 수 없는 미지를 숨기고 있는 그 괴물 같은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만약 그가 근처에 있었다면 그가 모를 수가 없다.

하지만 그의 감지에는 소년의 마나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놈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가 무슨 짓을 할지 불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이내 클레르 오르판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계획의 중심부가 된 성녀후보 앨리스는 위대한 주군의 부활을 위한 성소에 들어간 후였다.

그 이외엔 무엇을 빼앗겨도 상관없다 여기는 그였다.

무엇을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했는지는 모르나, 그 어리석은 판단 때문에 수만에 달하는 이들이 저항도 못 하고 살해당하리라.

"두려움을 잊어버린 필멸자들에게 줄 것은 죽음뿐이지."

담담하게 말한 그가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슈르르르륵!!

동시에 그의 손끝으로 거대한 블랙홀과 같은 어둠이 생겨나며 주변 일대를 일그러뜨리기 시작했다.

그 괴물 같은 소년에게 당하긴 했었지만.

그는 엄연히 8서클의 사령술사. 대륙에서 찾아볼 길이 없는 강대한 존재였다.

'기필코, 놈들에게 내 저력을 보여주리라.'

이윽고 그의 손에 모여든 거대한 소용돌이는 곧 거대한 구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는 말없이 그것을 움켜쥐고 터뜨렸다.

번쩍!!

백색의 번뜩임과는 다른, 새카만 번뜩임.

거대한 암흑의 섬광이 한차례 터지기가 무섭게 연합군이 장사진을 펼치며 들어오던 협곡에 이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절벽의 벽을 부수며 수만에 달하는 대규모 언데드들이 그들에게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번 물리면 모두 죽음이니, 그 누구도, 죽음을 부정할 순 없다."

연합의 인간들은 그의 군세와 싸울 때 정면 대결을 반드시 피했다.

아무리 개개인의 힘이 떨어지는 언데드라 해도 한번 물리는 순간 저쪽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저......전원!! 전투준비!!"

"허둥대지 마라! 화살을 장전해!"

갑작스런 매복 기습에 당황해 소리치는 연합군이 이렇게 반격을 위해 나왔다는 건 나름대로의 대책을 세워놨다는 소리이겠지만.

이곳에 펼쳐 둔 함정은 저들의 알량한 전술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한 차례 번뜩인 힘을 다시 끌어모은 클레르 오르판은 곧 그 힘의 잔재를 들고 있던 지팡이에 모두 쏟아부었다.

그리고는 지팡이의 끝을 지면에 대고 한번 가볍게 두드렸다.

"이곳은 과거 내 주군께서 지배하시던 땅이다. 감히 인간들 따위가 넘보다니, 간이 크구나!"

쿵!!

옅은 빛과 함께 거대한 지진이 일어난다.

그리고.

연합군과 언데드 군단이 충돌을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

지축을 울리는 어마어마한 수의 인간과 언데드들의 싸움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말없이 전장의 상황을 내려다보던 클레르 오르판은 역시나 하면 당연하다는 듯 기본적인 피지컬에서 압도적인 연합군 측의 병력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반대로 언데드들은 기본적인 피지컬은 인간 측 연합군에 비해 확연히 딸리지만.

반대로 적에게 상처를 입히는 순간 이긴다는 점을 적극 이용했다.

물어 죽인 적이 곧 자신의 우군이 되는 시스템을 가진 이상.

이런 정면 대결은 승자가 뻔해도 너무 뻔했다.

나름대로 강자랍시고 오러블레이드를 뽑아 드는 인간들이 여럿 보였지만 사실상 큰 효능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이는 전공들이었다.

"어리석은 자들......."

비명과 함성, 그리고 살의와 질시가 뒤섞인 처참한 전쟁 끝에 클레르 오르판은 이 싸움을 단번에 찍어눌러 버릴 수단을 선택했다.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를 가볍게 지면에 두드리는 것으로 그 준비를 마친 것이다.

퉁.......

바위로 이루어진 협곡의 절벽이 옅게 진동했다.

이곳은 천연 경관이지만 사실 이곳에는 인간들이 모르는 비밀이 분명 숨어있었다.

바로.

이곳은 수백 년 전부터 비룡의 무덤으로 사용되어 온 곳들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 무덤 속에는 오랜 시간 축적되어온 놈들의 뼈가 잠들어있다.

쿵!!

이윽고 거대한 진동과 함성마저 묻어버릴 만큼 거대한 균열음이 울려 퍼졌다.

쿵!!

또 한 번 들려오는 소리와 함께 단단하던 바위 협곡의 일부에 거대한 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쿵!!!!

그리고 그 균열이 최대치에 이르렀을 때.

일제히 벽면이 무너져 내리며 그 안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초저온의 냉기를 품은 프로스트 웜 와이번들이었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십수 마리에 달하는 프로스트 웜 와이번이 일제히 날아올라 하늘의 빛을 가리는 모습은 확실히 장관이었다.

"한 마리는 어떻게든 막은 모양이지만."

그의 붉은 안광은 곧 하늘에 떠오른 십수 마리의 거대 몬스터.

프로스트 웜 와이번에게 꽂혔다.

"십수 마리가 동시에 브레스를 쏴대도 엄폐물 없이 버티긴 힘들 것이다."

이렇게 밀집된 곳에서 쏟아지는 브레스는 압도적인 효율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이 반격을 위해 연합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사실 관심 없었다.

쿵!!

츠츠츳!

일제히 입을 벌리고 검은 기류의 에너지를 끌어모으기 시작한 수십 미터의 거체 비룡.

프로스트 웜 와이번의 브레스가 그대로 난전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연합을 습격했다.

콰아아아앙!!

피할 구석도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저온의 수증기가 일어나며 주변의 시야를 완전히 가려버렸다.

분명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야 하건만.

그의 눈은 옅은 연녹빛이 뒤섞여 그 내부가 훤히 보였다.

"으아아아악!!"

"살려줘!!"

공포에 질려있던 연합의 병사들은 한순간에 하늘로 떠오른 십수 마리의 프로스트 웜 와이번의 브레스에 속절없이 얼어붙었고 부서져 갔다.

분명 압도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이상한 기시감이 가시질 않는다는 것을 클레르 오르판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기시감의 정체를 눈치채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비명을 지르고 냉기 브레스에 쓸려나가는 병사.

필사적으로 싸우는 연합의 강자들.

분명 아주 잠깐의 순간이었지만 충돌 직후부터 싸움이 상당 시간 지속되었다. 당연, 언데드가 대량으로 희생되어야 했다.

하지만 희생된 언데드는 단 하나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연합군의 손에 부서진 언데드가 단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 짧고 강렬한 기시감은 본능으로 위험 신호를 마구잡이로 보낼 정도였다.

"입체 서라운드 환영은 잘 구경했나?"

"흐읍?!"

반사적으로 놀란 클레르 오르판이 몸을 돌리려던 찰나.

새빨간 검신을 가진 검과 푸른 검신을 가진 그를 한번 죽였던 기괴한 검이 그의 몸을 꿰뚫고 협곡 절벽 위의 바닥에 처박아버렸다.

"크아아아아아!!"

제대로 반응조차 못 한 채 처박힌 그는 곧 전신에 엄습하는 영혼의 통증에 걸걸한 비명을 토해냈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면서 그는 볼 수 있었다.

서서히 흩어지는 연합 전체의 모습을 말이다.

지금까지 봐온 상대 전력이 모두 환영이었던 것처럼.

그리고.

쿠웅!!!!

고요하던 지면이 일순간 일렁이며 사라지는 연합의 병사들 대신.

수십 미터에 달하는 초거대의 흙의 거인과 그보다는 작은 흙의 거인 백여 마리가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십수 마리의 프로스트 웜 와이번들이 초라해 보일 정도의 존재감이 주변을 짓누르는 느낌을 주기 시작한다.

"그 많은 병사들이...... 전부 환영이었다고? 말도 안 된다! 그만한 마법을 유지하기 위해서 드는 마나는 일개 존재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단순한 방식이면 그렇겠지."

상황판단을 한 그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지만.

이미 모습을 드러낸 초거대 흙의 거인의 주먹이 프로스트 웜 와이번들에게 내리꽂힌 직후였다.

거짓된 언데드의 유린이 아닌.

진실 된 연합의 유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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