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9권 3화
"비......빌어먹을!!"
머리가 박살 난 놈의 죽음은 허무했다.
같은 수준.
아니 이쪽이 상당히 유리한 입장에서 부활 직후 제대로 몸을 추스르지도 못한 놈을 공격한 이상 싸움의 결과는 당연했다.
[계약자여, 그대가 돕는 인간들이 전투를 시작했다. 대지에 핏물과 뼛가루가 적셔지고 있으니.]
"상황은?"
[머리를 잃은 짐승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법이지.]
"고생했어."
언데드를 조종할 리치, 클레르 오르판의 모든 신경 줄이 내게 향하는 이상 연합군은 어렵지 않게 성들을 수복할 것이다.
직접 가서 버프를 걸어주지 않느냐고?
그럴 필요도 없거니와 여유가 되지 않는다.
완전히 박살 나 흔적도 없이 사라진 놈은 안전하다 파악되는 다른 곳에서 다시금 부활을 노릴 것이다.
시간을 조금이라도 주는 순간 연합 측의 피해가 커진다.
네크로맨서는 상대적으로 대인 전이 약한 대신, 압도적으로 다수 전에 유리하다.
당장 물리는 정도로 급격하게 변이를 일으키고 언데드가 되는 사기는 내가 짓눌러버렸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놈이 만들어놓은 상위급 데스나이트들이 허약해지는 것은 아닐 터다.
물론, 그 정도 수준이라면 전장에서 날뛰고 있을 마스터급 존재들이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다.
우웅!!
미련 없이 허공에 손을 뻗은 뒤 손바닥을 펼치고 그대로 흩어버리자 허공으로 수십 개의 반투명한 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으로 특이하게 생긴 암호와도 같은 문자들이 배열되기 시작한다.
내가 찾는 것은 좌표.
썩어도 준치라고 했던가.
놈은 엄연히 대륙급 재앙인 8서클 네크로맨서라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온전히 처음 보는 마법이라 해도 그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 대비를 할 것이다.
원천 차단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시간을 주면 귀찮아지는 건 이쪽.
그런 만큼 나는 빠르게 소모되는 힘의 경고를 무시한 채 다시금 워프 마법을 가동시키기 시작했다.
[계약자여, 이 이상 너의 그대의 정령마나를 가져간다면 네 몸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됐으니까 움직여."
[계약자.]
"노아스, 한 번만 말하자. 좀 들어줬으면 좋겠는데."
담담한 내 대답에 말없이 나를 지켜보던 노아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서서히 몸을 흩어버리기 시작했다.
[그 악마 스승에 그 정신 나간 제자답게 아주 쌍으로 돌았군. 잊지 마라. 네 스승 유리아나가 죽은 이유는 너처럼 무리하게 힘을 발현했기 때문이다.]
"노아스, 사기 치다 걸리면 손모가지로 안 배웠나?"
정령여제 유리아나는 천수를 누리고 죽은 속 편한 영웅이다.
그런데 무리하게 힘을 쓰다가 죽었다고? 사기는 적당히 치셔야지.
[빌어먹을 눈치 빠른 놈.]
완전히 사라진 놈을 따라 워프 마법을 발현해 공간을 뛰어넘은 나는 주변의 배경이 뒤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슈슈슈슈슈슉!!!
놈을 추적해서 도착한 곳은 새카만 연기가 가득해 주변이 전혀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본래라면 절대 해선 안 될 위험한 짓이지만, 놈이 실시간으로 좌표를 뿌려주고 있으니 이동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마치 심연이라는 단어가 여기에 적합할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이 어둠은 단순히 검은 안개가 아니라 모조리 지독한 독기의 안개였다.
슈슈슈슈숙!!!
푹!! 푹푹!!
그때였다.
가만히 서 있던 나를 향해 어둠 속에서 검게 변색된 뼈의 창이 날아온 것이다.
한차례 피해내기가 무섭게 수십 발의 창이 나를 노리고 날아들기 시작했다.
감각을 차단한 뒤 기습공격.
제법 흥미로운 방법이긴 하지만, 사령술사들에겐 이 독연에 어느 정도 저항할 수 있는 안력을 지니고 있다.
"두 번은 안 당한다는 거지."
멍청이가 아닌 이상 대비는 해놓았을 거라곤 생각은 들지만.
콰자자작!!!
하나하나가 강렬한 무기이긴 하지만 결국은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나를 노리지 않는 것들도 있다.
직접적으로 치명적인 루트를 타고 들어오는 본스피어를 빠르게 베어내 버린 나는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벗어나듯 몸을 박찼다.
푸쉬이이이이이익!!!!!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뼈의 창이 충돌하기가 무섭게 내가 서 있던 자리를 감싸듯 지독한 검은 독연이 새어 나오며 주변을 더욱 어둡게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반사적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숨을 참지 않았다면 나로서도 크게 낭패를 볼 뻔한 수준이었다.
-기가 막히는군. 저 정도의 독연이라면 소드마스터도 대번에 당해버렸겠어.
"쿨럭...... 독하기도 하지. 얼마나 많은 시체를 갈아 넣은 거야."
사령술사가 독소를 만들 때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하긴 하지만 이처럼 독한 독소는 오로지 시체에서만 나온다.
그리고, 특수한 마법처리를 가미하는 이 작업은 살아있는 대상을 이용할 때 더욱 효능이 짙어지리라.
무슨 소리냐고?
이런 함정을 만들기 위해 놈은 수많은 생명을 산채로 망자화 시켜서 독소를 뽑아냈다는 소리였다.
물론, 나를 죽이기 위해 만든 것은 아니었겠지만. 아낌없이 사용한다는 건 그만큼 여유가 없다는 소리일 것이다.
몬스터, 인간, 동물, 이종족.
아마 놈은 이만한 독소를 만들기 위해 대량의 생명을 산채로 갈아 넣었을 것이다.
이번엔 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사령술사의 사령 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내 주변 일대까지가 전부.
이외에 후각, 청각, 오감을 엉망으로 만드는 곳에서는 놈의 모습을 찾기 쉽지 않다.
다만, 놈은 내가 녀석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 연기를 걷어버리려면.......
"무시해."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고, 행동은 곧바로 이어진다.
일순간 날아든 공격을 빗겨내듯 피해내기가 무섭게 발을 구르자 내 발밑으로 워프 마법진이 구동하기 시작했다.
놈의 위치를 아는데 굳이 이 함정에 걸려 허우적거릴 이유는 없었다.
퇴로를 차단하고 날아드는 본 스피어들은 충분히 위협적이지만.
그래 봐야 공간을 넘어서까지 나를 따라올 정도는 아니었다.
과도한 워프 마법의 사용으로 몸 안의 힘들이 점점 고갈이 되어간다.
무리한 행보라는 건 내가 가장 잘 알았다만.
적어도 놈은 이곳에서 반드시 죽어야 한다.
"젠장!! 네놈의 마나는 끝도 없는 것이냐?! 워프 마법을 또 사용하다니!"
이번에도 자신을 찾아오는 내 모습에 놈의 경악 어린 외침이 들려왔다.
거리는 멀지 않다.
청각이 마비되었어도 아주 미약하나 소리 정도는 잡아낼 수 있었다.
물론, 단순히 내 발목을 묶으려는 건 아닌지, 놈이 있는 방향으로부터 수십 겹의 파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공간이동을 해온 나를 기준으로 발동되는 마법진의 종류는 다양했다.
쇠약, 부패, 노화, 탈진.
기본적인 저주부터.
물리 반사, 마법 반사. 오감 제어, 정신붕괴.
하나하나가 8서클 마법사의 힘으로 발동되는 만큼 위협적이기 그지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저주마법의 특성상, 시전 후 적용되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알기에 놈은 모든 공격 마법을 등한시하고 방어에 올인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놈이 청단이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청단이의 본래 힘은 단순히 불사 파괴라는 권능을 지닌 것이 아니다.
물리 법칙에 존재하지 않는 모든 것을 베어내는 힘.
불사 파괴는 그에 따라 흘러나온 파생적인 힘일 뿐이었다.
우우웅!!! 서걱!
"무......무슨?!"
나를 향해 다가오는 무형의 저주의 기운들은 상식적으로는 검으로 베어서 사라지지 않는 부류의 힘이었다.
당연 특정 신성마법을 제외한 어떤 마법도 그 접근을 막을 순 없는 게 현실이지만.......
청단이는 그딴 건 모르겠다는 듯 저주의 기운째로 공간의 마나까지 절단해버렸다.
기겁하며 반사적으로 방어마법을 있는 대로 둘러 방어를 하려는 그의 행동은 상당히 깔끔한 판단이었다.
다만, 그런 소모전이나 하자고 놈을 쫓아온 게 아니라는 걸 직접 새겨주리라.
"쓸데없는 소모전은 사양하마."
콰지지직!!!
내 손에 쥐어져 있다 허공으로 떠오른 신창 롱기누스가 길고 가느다란 장창의 형태로 변한다.
죽창형태의 롱기누스는 솔직히 신창이라 부르기도 미안할 정도로 밋밋한 형태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만.
그 위력은 실제로 초월체급이라 불리던 샨드라 미네아 분신체의 거체도 한 번에 날려 처박아버린 출력을 가지고 있다.
-데이비!! 지금의 그대는 회랑에서의 그때와 달라! 마나 아껴!
'이미 출력 줄일 만큼 줄였다.'
나도 내 힘을 못 가눠서 죽을 생각은 전혀 없다.
[신창 롱기누스 두 번째 고유능력]
[핵죽창]
콰드득!!
두텁게 쌓여있던 방어 마법들이 일순간 으깨지며 무너져 내리자 놈의 경악 어린 비명이 들려왔다.
"이......... 이럴 순 없다! 이건 말도 안......"
"돼!"
콰드득!!
라이프 베슬을 잃어가며 잃어버린 라이프 베슬의 힘이 모조리 남은 쪽으로 향하는지 놈의 몸이 점차 단단해지는 느낌이다만.
그래 봐야 의미가 있을까.
홍단이의 붉은 검신이 놈의 양팔을 베어내기가 무섭게 청단이의 푸른 검기가 마치 단단히 뿔이라도 난 것처럼 화를 내며 놈의 머리통을 베어버렸다.
푸쉬이이익.......
"우리 청단이, 수학 공부할까?"
느긋한 어조를 유지한 채 인간형으로 변한 청단이를 안아 들고 물었다.
"응! 응! 청다니 잘할 수 이써!"
"홍다니도 할래!!"
내가 청단이에게만 신경을 써주는 것에 질투라도 느낀 것일까.
스스로 인간형으로 변한 홍단이가 저돌적으로 달려들어 내게 안겨왔다.
"그래, 자, 몇 번 남았지?"
"네에번!"
"네......네네네......네번!"
손가락 네 개를 펼치며 팔짝팔짝 뛰는 청단이, 그리고 한참 동안 버벅거리다 급히 뒤따라 외친 홍단이.
청단이는 홍단이 보다 빨리 대답했다는 사실이 기쁜지 헤실거렸고 홍단이는 울상을 지었다.
"살아있는 검이라니, 그건 신검이었나."
"신검은 무슨 얼어 죽을."
그제야 두 검이 자신이 상상했던 것 이상의 아득한 무엇인가라는 것을 깨달은 듯 놈이 황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나는 단호하게 놈의 가정을 부정해주었다.
"내 자식들이다."
내 손에서 태어났고, 내가 기르는 아이들이다.
녀석들의 본질이 검이고, 능력이 베어내는 데에 특화되어있다고 해서 그 사실이 어디 가진 않는다.
"듣고 있나? 네 번 남았다."
경고성 짙은 내 목소리에 놈의 안광에 일말의 흔들림까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독한 놈......."
가루가 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 * *
놈의 발악은 처절했다.
절대 다른 언데드를 조종할 틈을 줄 수 없었기에 무차별적으로 밀어붙인 결과라고 할까.
순식간에 놈의 목숨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8개의 라이프 경로로 나누어 혼을 보호하고 있던 놈의 남은 생명줄은 이제 4개.
놈이 다시금 부활한 장소는 다름 아닌 내가 한 차례 박살 내버렸던 네크로 폴리스의 내부였다.
-이쯤 되면 놈이 봉인되어있던 그 유적을 한번 조사해 볼 필요가 있겠어.
가장 안전한 장소일진데, 제 목숨을 불태워가며 그곳으로 가는 길목을 모조리 차단하고 있다.
거대한 빛에 휩싸여 입자가 모여들고, 거대한 거인족 스켈레톤의 형상을 지니기 시작했다.
힘으로 이루어진 육체인 만큼 재구성 자체가 상당히 용이한 모습이다.
"또 보네?"
부활하기가 무섭게 내가 손을 흔들며 씨익 웃어주자 놈의 입이 쩍 벌어졌다.
"얼른얼른 가자! 세 번 남았다!"
콰득!!
* * *
"크으윽?! 저......저리 꺼져라!!"
아직 부활조차 채 하지 못한 놈이 비명을 지르며 온몸으로 거부 반응을 드러냈다.
"왜 그러시나, 부활할 때까진 기다려 준다니까."
"이 악랄한 놈! 악마도 네놈보단 선할 것이다!"
"거참, 학살자끼리 서로 선악을 논하네. 10초 남았나?"
기계 장치용 시계를 꺼내 들고 형체를 구성하는 놈의 눈앞에서 흔들어주자 놈의 얼굴에 다급함이 어렸다.
"교......교섭하지! 네놈의 힘은 인정하겠다! 이런 무분별한 소모전과 살육은 좋지 않다! 항복......그래! 항복하지!"
"뭐래, 학살자 놈이, 10초 지났다. 이제 두 번 남았나?"
촤악!!!
* * *
상대를 가장 효율적으로 뭉개버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한번 밀어붙였을 때 놈이 반격할 틈을 주지 않고 밀어붙이는 것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결국, 놈은 내가 녀석의 혼과 뼈에 새겨둔 리픽스 커스의 응용 마법을 눈치채지 못했다.
시간을 들였다면 찾아내기야 했겠지만, 진짜 데스로드급의 사령술사가 만들어낸 특수언어의 마법을 놈이 파악하기엔 수준 차이가 너무 크다.
엄밀히 말해서 내 사령술의 스승 [로 아이아스]는 회랑에 와서 더욱 강해진 다른 영웅들과 다르게 이미 완성된 강자였다.
무슨 소리냐면.
생전부터 괴물 같은 강함을 지니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데스로드는 네까짓 게 아직 짊어질 정도로 안일한 경지가 아니야. 아, 30초 정도 남았나? 어째 부활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다가오지 마라! 빌어먹을 놈! 대체 내게 왜 이러는 것이냐!"
처음의 강직함은 어디다 버렸는지 다급함을 숨기지 못한 채 놈이 격하게 소리쳤다.
"왜 그러냐니. 싸움에 이유가 있나?"
"네놈은 그 도가 지나쳤다! 분명 이쪽에서 항복 의사를 밝혔을 터!!"
"항복?"
그렇다면 네 상태를 출력하는 상태창에 적혀있는 이 지독한 적의는 뭐라고 설명할 텐가.
"네가 죽인 인간들은 항복을 안 했든?"
"......"
결국, 말장난일 뿐인데.
"이제 한번 남았네?"
내 미소에 그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