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2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1권 11화
91. 불법 경매장.
대규모 정보길드의 상위 조직원은 사실 귀족이라 해도 함부로 만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와의 접점을 만드는 것이 이득이라 여겼는지 접선에 금방 응해왔다.
소국의 국왕조차 이리 쉽게 되진 않을 텐데 말이다.
-사기 친 거 아니야? 모조품이잖나.
'진품은 세상 밖으로 나갈 일은 없어.'
애초에 라트시아 왕국의 유산은 단 하나 남은 마보석이라는 이유로 가치가 어마어마하다만.
그것을 진품 가품 가려낼 수 있는 이는 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보석의 진품을 알아볼 수 있는 건 그 연식뿐인데 비슷한 시기의, 아니 그보다 오래된 보석을 사용하면 저들도 알아낼 방법이 없으니까.
실제로 진품이 세상 밖으로 나갈 일은 없을 것이니 내겐 거리낄 것도 없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었다.
안 들키면 예술.
-보는 이가 없으면, 암살.......
'그거지.'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그 사실을 가르친 본인이 헤르메이샤라는 점이 웃긴 일이다.
"륀느 질문, 어째서 정보길드 세 곳을 모두 동원한 건지 륀느의 계산으로는 이해 불가능. 해명을 요구."
내 대화를 다 듣진 못했지만 륀느는 그저 그 사실이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실상 현실 상식을 가장 빠르게 흡수하고 있는 것이 륀느이니 말이다.
"굳이 세 곳을 모두 고른 이유? 간단해 륀느."
내 대답에 륀느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뒷세계 인간들은 제법 소문에 신경을 많이 쓰거든."
단순히 영지민 하나를 위해 영주가 작정하고 나선다.
이 사실 하나만 퍼지면 몇 가지를 챙길 수가 있다.
"그건 단순 계산?"
"아니, 지켜준다고 약속했으면 지켜줘야지."
적어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말이다.
역시나 가장 큰 정보길드답게 다른 두 정보길드보다 빠르게 필요 정보를 가져다준 메아리의 행동력은 사실상 제법 놀라웠다.
"아이나가 소속되어있던 정보길드가 예상 이상으로 대단하네."
현재는 내 밑에서 고정계약을 맡고 있지만, 본래는 아이나 헬리샤나, 그녀도 메아리의 소속으로 활동하던 녀석이었다.
그 정도 능력 있는 살수를 부릴 정도면 메아리도 보통 길드는 아니라는 뜻이리라.
"볼티즈왕국? 그래도 검의 명예를 찾는답시고 거만하게 굴던 왕국이 갈 데까지 갔네."
볼티즈왕국이라면......
분명 기억에 남는 국가다.
라운왕국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이웃 국가로 오랜 시간 라운왕국과 사사건건 신경전을 벌여온 국가이기도 했다.
주로 검을 숭상하며 기사의 나라라고도 불리던 국가지만 내 기억에 의하면 이들은 이제 라운왕국의 성장을 견제할 힘도 남지 않은 약소국에 불과했다.
왜냐고?
정신 나가서 뱀파이어와 계약했던 7 왕자, 발르티앙 드 볼티즈 때문에.
수많은 국가의 주요 인사나 왕족들이 모인 그곳에서.
대놓고 괴물로 돌변해 수많은 이들을 죽일 뻔했으니. 각국에 볼티즈 왕국이 내놓은 보상금이 적잖은 수준이다.
아마 현재의 볼티즈 왕국은 적잖이 빚에 허덕이고 있을 것이다.
한때에 서로 견제하던 국가였다.
하지만 라운왕국은 펠리스티 공국 사태 이후로 급상승했고.
볼티즈왕국은 눈에 띄게 주가가 하락했다.
같은 왕자 하나 때문에 말이다.
그런 그들이라면 확실히 이런 상황도 이해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엄연히 불법 노예 경매다.
하지만 이런 불법 노예 경매가 한번 펼쳐지면 상당한 돈이 되는 것도 사실인 만큼 자금난에 극심하게 시달리는 볼티즈 왕국은 불법을 몰래 용인해서라도 자금을 융통해야 했을 것이다.
-데이비. 차라리 자금을 조금 풀어서 그들의 왕족이나 귀족들을 어르고 달래면 전혀 문제없이 영지민들을 구할 수도 있어.
"그럴 수도 있겠지."
-저들은 그대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할 테니까.
그녀의 말대로 굳이 폭력적인 방법을 쓰기보다는 좋은 대화방식을 고수할 수도 있다.
"그럼 어디, 한번 쪼아보자고."
우선은 말로 해보고.
안되면 직접 행차하는 수밖에.
나는 곧장 볼티즈왕국으로 보낼 서신과 이번 일을 라운왕실에 보고할 서신을 두 장을 동시에 써 내렸다.
* * *
볼티즈왕국은 자금난에 시달린다.
불법 노예경매가 얼마나 많은 자금을 그들 왕실에 융통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우리는 모르는 일입니다. 만약 정말 그런 불법 경매가 펼쳐지고 있다면 우리 손으로 잡아냈을 터, 괜한 소문을 퍼뜨려 왕국의 위신을 깎아 먹고자 한다면 당장 그만두시오.]
볼티즈왕국의 선택은 당연 부정이었다.
그들이 나에 대해 모를 수는 없을 것이다.
가장 소문을 가까이서 들을 수 있는 인근 국가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문제를 떠나 불법 노예 경매에 대한 것을 인정하는 순간 상당한 정치적 비난을 피할 수가 없다.
안 그래도 보상금으로 빚에 허덕이는 볼티즈 왕국이다.
과거 성군이 있을 적엔 그래도 평민조차 살기 좋았다던 국가였지만 지금의 볼티즈 왕국은 빚을 해결하기 위해 세금을 올리고 그 여파로 대량의 돈을 평민들에게서 긁어모으고 있다.
당연 원성이 높아 민심이 흉흉할 수밖에.
이런 마당에 국제 비난을 받고 거기에 따른 보상까지 한다면?
절대 안 될 말이지.
그렇다면 처음부터 자신들도 이제 알았다는 것처럼 나서서 해결하면 되지 않는가.
확실히 볼티즈왕국도 피해자 입장으로 들어서니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자신들의 자존심과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검은돈의 매력에 빠져 그것을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는 답신에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쪽에서 움직여주지 않겠다면."
이쪽에서 직접 가서 들쑤셔 놓는 수밖에.
현장 검거만큼 확실한 것도 없다.
* * *
볼티즈왕국으로의 입성은 사실상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뒷조직의 등을 밀어주는 볼티즈왕국인 만큼 내가 이곳에 왔다 하면 경매 자체가 무너질 염려가 존재한다.
"어때, 쓸만해?"
-너무 왜소해.
체격이 다부진 것을 좋아하는 페르세르크답게 왜소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모습으로 일루전을 덧씌워 놓은 내 모습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는 듯했다.
"근육질로 바꿔줄까?"
-아서게, 애초에 눈에 띄는 외모가 되면 안 되지 않나. 그리고 마구잡이식 근육질은 본녀도 이제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럼 어느 정도가 좋은데."
-......그대 본래 모습 정도면......핫!
깜짝 놀란 페르세르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사라져 버리자 나는 짧게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는 머쓱한 표정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볼티즈왕국은 상당히 침체되어있는 분위기였다.
이런 와중에도 가끔씩 지나치는 귀족들의 마차는 호화스럽기 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발르티앙 드 볼티즈라는 7번째 왕자의 개수작으로 피해를 본 것은 귀족이나 왕족이 아닌 볼티즈 왕국의 평민이었던 모양이었다.
물론, 그런 그들의 악행과 폭정은 내게 관심 없었다.
볼티즈 왕국의 국민 또한 불쌍하긴 하지만 내가 구할 인물들도 아니고.
내가 구할 것은.
암담한 정세가 이어지는 이 나라에서 펼쳐지는 암 경매에 잡혀 온 하인스 영지민 세 명.
다행히 노예 중의 하나가 엘프였던 탓일까.
당장 귀중한 노예였기에 뒷조직놈들도 함부로 세 사람을 처분하지는 않은 듯했다.
본래라면 뿔뿔이 흩어져서 흔적도 남지 않아야 하는데 운이 좋았다면 좋은 케이스라 봐도 무방했다.
볼티즈왕국은 주로 투기장을 많이 운영하는 편이다.
그런 만큼 암암리에 비밀경매가 주로 펼쳐지기도 했다.
"음? 뭐냐, 꼬맹아. 여긴 너 같은 젖비린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비밀 경매장의 출입은 당연히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마 대량의 자금을 지닌 이들에게 몰래 초대장을 보내는 식으로 이어지리라.
이런 경매.
주로 전생의 삶에서 영화를 보면서 자주 봤던 광경이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투박한 사내 두 명이 지하로 진입하려던 나를 막아섰다.
"응? 뭐냐 꼬맹아. 여긴 너 같은 애송이가 올 곳이 아니야. 돌아가라."
페르세르크와 단둘이서 찾아왔기에, 저들의 눈엔 그저 왜소한 체격의 어린 소년이 홀로 찾아온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본래 내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면 아마 기겁을 했을 테지만.
저들의 눈에 비친 나는 유약하고 평범해 보이는 소년일 뿐이다.
"왜 못 들어갑니까? 분명 투기장이 열린다고 들었는데요."
투기장은 의외로 볼티즈 왕국의 비밀스런 볼거리 중 하나였다.
평민들 중에서도 과거엔 이런 투기장에 들어와 돈을 걸거나 하는 식으로 참가를 해왔을 것이다.
"오늘은 투기장 같은 것을 하지 않아. 그런 걸 보고 싶으면 여기가 아니라 북쪽 거리로 가라."
"여기서 안 한다는 겁니까?"
"아, 안 한다니까!!"
짜증스레 외치는 그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며 두 사내와 눈을 마주쳤다.
"너희는 지금 나를 본 적이 없다."
우웅......
내 말과 동시에 인상을 찌푸린 두 사내가 뭐라 말하려 했다.
하지만.
곧이어 그들의 눈동자에 이채가 띠더니 곧 멍한 얼굴로 변했다.
"알겠......습니다."
저항력 없는 일반인 정도면 이런 반응도 딱히 놀라울 것도 없다.
최면으로 문지기들을 무력화시킨 나는 미리 준비해둔 가면을 얼굴에 쓰고 망토로 몸을 가린 뒤 그들을 지나쳤다.
그리고는 천천히 지하로 내려갔다.
투기장치고는 지독하게 조용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면 이해는 가지만 애석하게도 이 지하 내부엔 대량의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진 않았다.
실제로 지하로 내려오기가 무섭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객석에 앉아있는 게 보였다.
대부분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나와 같은 가면이나 망토로 몸을 가리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기도 했다.
그렇게 객석의 가장 뒤쪽, 빈자리에 걸터앉은 나는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경매는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경매 물품 대부분이 진귀한 보석이 아닌 불법으로 잡혀 온 노예들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노예를 사고파는 것이 합법인 국가에서는 주로 정식적인 승인을 받은 노예 상인들이 돌아다닌다.
그들이 판매하고 있는 노예는 주로 스스로 각서를 써서 노예가 된 이들이 많았는데 주로, 돈을 벌기 위해서 스스로 노예가 되거나 빚을 갚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형벌을 받아 노예가 된 이들은 대부분 국가에서 관할하는 노역장에서 일을 하는 편이니 사실상 시장에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팔려나간 노예가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노예가 된 이들 대부분은 자신들을 산 사람을 주인으로 모시며 살아가지만.
적어도 그들에겐 인권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주인이 된 자는 노예의 생활 전반을 책임진다는 각서를 쓰게 되고 인도적인 차원에서 노예를 부린다.
'하지만 그런 제약이 전혀 없는 이곳은 다르지.'
불법 실험, 성노예, 그 외에 더럽고 추악한 모든 것이 허용되는 노예들.
본인이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잡혀 와 노예가 된 이들이 당연 주인이 된 자를 따를 리 없지만.
이들은 용의주도하다.
당연 반항하지 못하게 족쇄를 채워놓고 그들을 암암리에 팔아넘기는 게 대부분이다.
그리고 지금 이곳 투기장에서 그런 불법 노예들이 하나하나 팔려나가고 있었다.
"이번 상품은 남쪽 평야에서 잡아온 토인족 소녀입니다. 수인족 중에서도 극히 보기 힘든 종이지요. 다리 힘이 좋아 심부름꾼으로 부려먹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도망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교육이 끝났고 제약도 걸어두었으니까요."
가면을 쓴 사회자의 나지막한 중얼거림에 앞의 단상 너머 천이 열리고 속이 비치는 하늘하늘한 옷을 입은 작은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소녀는 제대로 된 의상도 없이 거의 넝마나 다름없는 옷을 입고 있었는데, 약에 취하기라도 한 건지 눈빛에 총기가 전혀 없었다.
-어찌 이럴까.
'인간은 적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야. 별수 있나.'
나는 말없이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저들을 지켜보았다.
"토인족들은 상당히 색정적이고 음란한 종족이지요. 성노예로서도 상당히 흠 없는 물품입니다. 특히 이 소녀는 무려 처녀입니다."
사람을 물품 취급하는 행동하며.
"그게 아니라도 좋지요. 마법 저항력이 낮아 실험에 쓰이기도 좋습니다."
같은 인간을 실험용으로 써먹는 글러 먹은 머리통에.
"그것도 아니라면, 이 튼실한 다리 살은 미식가들에게 꽤 인기가 있기도 하지요. 아! 말씀드린 대로 300 금화 나왔습니다! 300 금화, 더 없으십니까? 400 금화. 나왔습니다. 더 없으십니까."
인간을 탈피하여 아인종을 잡아먹기도 하는 싸이코패스까지.
페르세르크의 말대로 구역질이 날 대로 난다는 느낌을 피할 수가 없다.
-그냥 엎어버리자. 안 돼?
그녀의 재촉에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렇게 보챌 정도로 불쾌했던 것일까. 평소답지 않게 울상을 지으며 내 팔을 잡아끄는 그녀의 행동에 내가 의아한 듯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미안해......역시 이런 꼴은 보고 있으니 속이......
그녀의 과거에 이것과 관련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는 경매장을 불쾌하다는 듯 바라보던 그녀의 행동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화가 나나?'
-데이비......본녀의 부탁을......
'말 안 해도 알아. 구해달라는 거지?'
-......그래. 본녀는 노예경매가 너무 싫어......끔찍한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듣고 보니......페르세르크는 검신 하레스의 양녀다.
그리고 그녀가 검신 하레스와 만난 계기는......
분명......
처음엔 하인스 영지민 이외엔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페르세르크가 원한다.
그렇다면. 까짓거 돈 좀 쓸 수밖에.
어차피 뱀파이어의 근거지를 털어먹으면서 얻은 돈이 적은 양이던가.
느긋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있던 나는 옆에 놓인 팻말을 들어 보였다.
경매장에서 한 명이 모든 물품을 산다고 누가 뭐라 할 이는 없다.
이곳은 돈이 많은 자가 우선이며.
주최자 또한 돈이 많은 이를 위해 움직인다.
내가 난리를 당장 피우지 않는다면 저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내 경매에 휘말리듯 경계를 느슨하게 풀 것이다.
"처......천 나왔습니다! 더 없으십니까?!"
전생의 통화가치로 약 1억.
나는 내 스승처럼 무르고 세상 물정 모르던 인간이 아니다.
수십 갈래의 도망갈 길을 만들어놓은 이들은 내가 난동을 부리는 순간 나머지 모두를 사방으로 흩어버린다.
당연 나로서도 다 찾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전부 내가 구매해버린다면.
저들이 가지고 도망가야 할 것은 단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바로 내게서 받아낸 돈 말이다.
모두 구하고자 한다면, 나는 내 스승처럼 단 한 명만을 구하는 데에 그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