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7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1권 26화
거대한 금속 골렘은 마치 인간과 흡사했다.
골렘 특유의 큰 덩치보다는 인간의 형체를 비슷하게 자아낸 그 모습이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고 민첩하기 그지없었다.
키잉!! 키이이이이잉!!
기괴한 소리와 함께 골렘의 한 손에 들려진 거대한 톱이 스스로 회전하며 굉음을 울렸다.
"아!"
멍하니 있던 레이나는 곧 거대한 오우거 한 마리가 제 몸집만 한 금속 망치를 휘둘러 오는 것을 보고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물론,
그녀가 소리친다고 반응할 골렘은 아니었다.
콰앙!!!
결국 묵직한 굉음과 함께 한방을 허용해버린 골렘의 상체가 그대로 꺾여버렸다.
아무리 뛰어난 골렘이라도 한계는 존재한다. 저 정도 충격이라면.
아마 내부의 핵 또한 충격을 받아 박살 났으리라.
키잉!!!!!
다만, 그것은 그녀의 착각이었다.
허리를 숙이고 있던 골렘의 손에서 다시 한 번 톱이 기괴하게 회전하더니 그대로 벌떡 일어나 오우거의 갑옷을 강하게 낚아챈 것이다.
"꾸어어엉!!"
한 방에 죽을 줄 알았는지 여유를 부리던 갑옷의 오우거는 생각 이상의 악력에 당황한 듯 버둥거렸다.
다만 푸른 안광의 골렘은 그딴 건 모르겠다고 말하듯 오우거를 처참하게 도륙 내버렸다.
도대체 무슨 재질의 금속을 사용해야 저렇게 질긴 피부의 오우거를, 그것도 단단한 갑옷으로 감싼 놈을 망설임 없이 갈라버리는 것인지.
황당한 장면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레이나는 오히려 몬스터가 불쌍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무식한 공격방식이라 생각했다.
투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날아온 푸른색의 광탄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스몰 가고일들의 날개를 찢어발기는 게 보였다.
갑작스레 나타나 사람들을 구해내고 몬스터들을 도륙을 내고 있는 골렘들의 모습에 멍하니 있기를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소년 마법사 메르실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 불꽃들, 전부 인간에게 해를 전혀 주지 않고 있어......."
상식적으로 불은 고온에서 타오른다.
당연한 물리법칙을 벗어난 이 정체불명의 화염을 설명하려면 특수한 마법 불꽃이라고밖에 볼 수가 없는데 문제는 마나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세상에......정말이잖아."
크루세이더이자 전위담당인 로이나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바닥에 붙은 화염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뜨겁기는커녕 아무런 느낌조차 없다.
그렇다고 이것이 그냥 눈속임식 화염인가 하면 그건 아니었다.
-끄으으으아아아!
도시를 침공한 이 무수한 몬스터들은 화염에 노출되기가 무섭게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고 새카맣게 타 죽는 게 훤히 보일 지경이었으니까.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의 비는 세상에 분노한 신의 천벌 같아 보였지만 그 대상은 모두가 아닌 이곳을 침공한 몬스터에게 한정되어있었다.
황당한 사태에 한참 동안이고 자리를 뜰 줄 모르고 멍하니 있던 레이나는 자신의 어깨를 거칠게 잡는 수인남성 벤디크의 외침에 움찔거렸다.
"정신 차려! 아무래도 우리의 움직임을 눈치챈 놈들이 선수를 친 듯하다!"
"그러......그럴 리가......그럴 리가 없어요! 아직 군세가 넘어오기까지엔 시간이......"
"그럴 리가 있고 없고 간에 현실적으로 벌어진 일이다! 레이나! 결정해라!"
그의 외침에 레이나가 침묵했다.
검게 변한 하늘.
그리고 불길한 느낌을 주는 붉은 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초대 리치 닉스의 힘이 어마어마하게 강한 탓에 주변의 환경까지 영향을 미친다.
오랜 시간 봉인되어 오며 증오를 키워왔을 그의 영향력이 커진다는 말은 곧 그의 봉인이 깨어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도시를 지킬 건지. 아니면, 그놈을 처리할 건지."
그의 말에 근처의 몬스터들을 베어 넘기던 로이나와 마법으로 지원하는 메르실.
그리고 신성마법으로 다친 이들을 치료하던 에실트가 모두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부활하면 현재 우리의 힘만으론 그를 막을 수 없어요. 막을 수야 있겠죠. 다시 임시방편으로 시간을 벌 순 있어요."
다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까.
이곳을 두고 닉스의 봉인해제를 막으러 떠나면?
아마 가장 최상책이 될 수도 있다.
이곳의 몇몇이 희생되는 게 대륙 일부가 날아가는 것보단 나을 테니.
하지만, 그녀의 기억에 닉스의 부활을 막지 못한다는 말은 곧 그 차후의 적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다는 결과와 같았다.
그리되면 이곳 또한 끝이다. 단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다시 시작했는데 다시 모두를 잃게 된다는 소리였다.
그녀는 한 손으로 가면을 움켜쥔 채 몸을 비틀거렸다.
참담한 현실에 구역질이 나는 그녀였다.
한번 겪었던 지옥의 문이 또다시 이곳에서 열리려고 하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는 듯 현실은 그대로 이어졌다.
그녀는 한 차례 초대 리치 닉스를 시작으로 3천 년 전의 마왕의 측근들의 부활을 막지 못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
처음 부활에 성공한 초대 리치 닉스의 공세 한 번에 동대륙의 절반이 석 달도 채 가지 못해 불바다가 되었다.
단순히 그의 힘이 강해서?
그의 힘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를 기점으로 나타난 자들이 문제였다.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라. 나는 너를 지지하겠다."
벤디크의 말에 레이나는 주먹이 부서져라 강하게 틀어쥐었다.
'냉정하게 생각하자.'
그녀의 몸이 짧게 경련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를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 골렘들과, 하늘을 나는 화염 새의 존재가 저들을 막아내기 시작했으니까.
게다가 해양도시국가 발카스의 군대도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아마 피해가 극심하긴 해도 방어에는 성공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직......
그때였다.
이변이 발생한 것이다.
검게 변한 하늘에서 수백 개에 달하는 시커먼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하자 레이나를 포함한 일행들의 눈에 당혹스러움이 어렸다.
"아......안돼!"
그리고, 그 검은 균열들을 이미 몇 차례 본 적이 있는 레이나는 발작하듯 외치며 급히 손에 든 검을 휘둘렀다.
[중검]
[태산 가르기]
쩌적!!
어마어마한 무게가 담긴 종베기가 허공을 찢으며 균열 하나를 베어낸다.
하지만 수십 개 이상 생겨나는 이 어마어마한 범위의 전이는 그녀의 힘으로도 막아내기엔 힘들었다.
아무리 강자라도 한계는 존재한다.
소드마스터인 레이나라면 이들 모두를 오래 걸리더라도 가능성은 검토해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걸릴 시간과 희생이 문제였다.
단순히 배를 통해 습격해온 수백 수천의 몬스터도 몬스터지만.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하늘에서 균열이 열리고 기괴한 괴물들이 쏟아지는 광경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세상에......저게 뭐야......"
굳은 얼굴로 중얼거리는 마법사 메르실의 말에 에실트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말도 안 돼......도대체 어디서 저 많은 양의 몬스터들이......"
암살자 출신인 벤디크 또한 이런 기괴한 사태에 할 말을 잃은 듯 보였다.
이렇게 된다면.
제아무리 뛰어난 골렘들이라 해도. 쉬지 않고 몬스터를 불태우는 화염새가 있다고 해도 이곳은 멸망한다.
그리고, 그 화마가 꺼질 때쯤이면 일대의 소영지나 도시들이 죄다 괴멸한 후일 것이다.
아니 피해는 그보다 더 극심해질 것이다.
'마족들이......마족들이 이렇게 빠르게 움직인다고?!'
다급함을 억지로 숨긴 채 쉬지 않고 검을 휘둘러 균열을 부서뜨리던 그녀는 결정을 쉬이 내리지 못했다.
"초대 리치, 닉스는......"
어느 쪽이든 결과는 어마어마한 피해를 낳을 테니까.
대규모 몬스터 군단의 습격은 그녀의 기억에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이런 방식의 말도 안 되는 습격은 단연코 처음이었다.
마왕의 측근인 닉스가 제대로 태동하기 시작하고 마족과 그놈들이 사역하는 몬스터, 마물들이 활개 하는 건 어림잡아도 반년은 더 있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눈앞의 참상을 들이밀었다.
초대 리치 닉스의 봉인 해제를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하면 어마어마한 양의 피를 흘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1을 얻고 싶다면 2를 내놓아라.
2를 얻고 싶다면 1을 내놔야 할 것이다.
마치 이것이 운명이고, 정해진 미래라고 말하듯, 세상은 너무 야박하게 흘러갔다.
억울함에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
"여기서 구경만 하고 있어도 되나? 보아하니 벌써 깨어나기 직전인 것 같은데. 더 늦으면 손 못 쓸 걸?"
그때.
검을 들고 빠르게 몬스터의 무리로 뛰어들려던 레이나는 귓가에 들려오는 담담한 목소리에 멈칫했다.
그리고 그녀를 포함한 그녀의 일행 모두 그녀와 같이 시선을 돌리고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곳에는 언제 왔는지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소년이 서 있었다.
어찌 모를까.
레이나에겐 완전한 변수 그 자체이며.
그녀가 살던 세계에선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강자가 아닌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카트린느 대공의 힘으로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인물이라고 했는데.
솔직히 그렇기에 더욱 믿을 수 없는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레이나는 데이비 왕자라는 인물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이고.
그렇다면 그는 자신들이 이곳에 있는 것도 몰라야 하고, 안다고 해도 벌써 이곳에 와있을 순 없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그녀의 눈앞에 있는 소년은 분명 그 본인이었다.
얼마 전 본 사람의 얼굴을 까먹을 정도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도 저도 결정을 못 내려서 멍하니 있다가 둘 다 잃는 걸 원하냐고."
이윽고 소년의 말에 레이나가 침묵했다.
* * *
그녀를 구원해달라는 주신 프리아 여신의 거래.
애초에 편애 짙은 거래였다.
주신 프리아 여신이 내게 애정을 쏟아줄 거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집어치웠지만. 솔직히 신의 의지가 단 한 사람을 위해 나를 이용하는 건 이번에 와서 두 번째가 아니었던가.
모든 것을 제쳐놓고 솔직히 억지 같은 거래 제안이지만 나는 주신 프리아 여신의 의도로 일면 그녀의 과거를 들춰보았다.
짧은 시간 들춰본 기억에 나는 그저 묵묵히 상황을 받아들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렇기에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들어가서 발이나 닦고 잠이나 자라는 말을 꺼내진 않았다.
이번 일은 그녀에게 있어 유일한 목표 중 하나일 것이고.
그녀의 삶의 원천일 테니 말이다.
"당신이, 어떻게 여길......"
"어떻게 긴. 내가 말했지."
그냥 가면 개죽음이라고.
"무슨 말을......"
"여긴 네가 있던 그곳이 아니야."
내 말에 그녀가 침묵했다.
"네가 있던 거기엔 내가 없었지만 여긴 내가 있지."
"......"
"그 차이가 작은 것 같지?"
"무슨 말을......"
"팔란 제국에서 날뛰던 리치들이 단기간에 제압당하고, 서부대륙에서 미쳐 날뛸 세계수가 인간에게 호의적이고."
내 말에 그녀의 몸이 움찔거렸다.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거대한 굉음에 소리 분간이 잘되지 않기 시작한다.
그럴 수밖에. 그녀가 알던 미래는 팔란 제국에서 일어난 자칭 불사자 리치가 팔란 제국을 뒤흔들고 서부대륙에서 세계수가 개판을 치던 시기이니까.
그뿐일까.
"서부대륙의 명국에서 갑자기 이상한 일을 벌여서 서부 국가의 힘의 흐름이 뒤바뀌지도 않았고."
"당신......대체 누구야."
그쯤 되니 이제 내 정체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그녀였다. 그녀의 정체를 아는 이가 있을 수 없는데 내가 알고 있다는 듯 말하니 경계할 수밖에.
다만 그런 그녀의 의문을 지금 해결해줄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까 처음 네가 하려고 했던 대로 넌 섬에서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그 대머리 리치놈을 찾아 조지면 돼."
이놈들은 네가 찾던 그놈들과는 조금 달라.
내 말에 그녀가 파르르 떨었다.
"당신 혼자서......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죠? 인간은 한계가 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감당할 수 없는 위협이라는 게 있다고요! 차라리 모두가 힘을 합쳐서......"
그녀의 말에 나는 픽 새어 나오는 웃음을 뒤로한 채 조용히 말했다.
"누가 그러든?"
"......네?"
"감당 못 한다고 누가 그러든? 주신 프리아 여신이 그랬나?"
내 도발에 그녀가 주먹을 꽈악 쥐었다.
"지금 말장난할 때가 아니라는 건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내가 말장난하는 거로 보여?"
담담하게 말한 나는 아공간에서 신창 롱기누스를 꺼내 들었다.
순식간에 십자가의 형태로 변하는 창을 아공간에서 꺼낸 탓에 마법사 소년인 메르실이 눈을 부릅뜨며 나를 보는 게 보였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가서 길 닦아놔. 네가 무슨 마음가짐으로 여기까지 왔건 지금 여기서 네가 할 일은 하나도 없으니."
담담하게 말한 내가 지팡이를 가볍게 바닥에 대고 두드렸다.
투웅!!
동시에, 그녀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