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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90화 (289/1,559)

# 290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2권 13화

갑작스런 노인의 출현에 주변에서 경악한 표정들이 난무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인의 정체는 린드홀이라는 이 도시에 사는 자라면 모를 수가 없을 만큼 유명한 노인이었기 때문이다.

대 현자.

7서클 이상급의 마법사, 헬리슨 발레스티아가 바로 그였다.

무심코 지나가던 행인들조차 놀라서 헬리슨 발레스티아를 바라볼 정도이니 이 도시에서 그가 가진 입지가 얼마나 대단한지 정도는 안 봐도 알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래. 이쪽 왕녀님은 율리스 네 녀석이 그리 칭찬을 하던 그 왕녀님이신가?"

"아, 윈리 올 라운입니다. 마법을 익히는 학도로서 대륙의 명망 높은 대 현자님을 뵙다니 영광이에요."

잔뜩 긴장한 윈리의 말에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별 볼 일 없는 노인네를 그리 치켜세워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소."

"아......아니! 대 현자님! 어찌 스스로를 낮추십니까!"

확실히 헬리슨 정도의 인물은 대륙 연합의 특권을 받아 왕족에게도, 설사 국왕에게도 함부로 고개를 숙이지 않을 정도의 입지를 지니고 있다.

-그대가 이상한 수준인 게지. 보통 저 정도 대 현자라면 모든 이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존재이니.

7서클을 떠나 그가 가진 식견은 지혜롭고. 그의 성품은 모두가 흠모할 정도로 넓은 마음씨를 지닌 것으로 유명했으니 말이다.

그런 그가 고작 20대도 되지 않아 보이는 나와 윈리를 이렇게 직접 맞이하니 수행 마법사들로선 기가 막히는 듯 보였다.

'마법사라는 양반들의 고집은 어딜 가나 똑같지.'

고집불통 괴짜 외골수.

마법사라는 족속들은 그런 족속들이다.

"어찌 스스로를 낮추냐니. 그만한 대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이를 직접 맞이하는 게 어찌 잘못된 일이란 말인가."

헬리슨의 말에 그가 눈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그만하시게, 이 이상 무례는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죄송......합니다."

억지로 사과하는 그의 행동 자체는 상당히 불손했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그는 대가를 치렀으니 말이다.

"그래. 게임판을 받으러 왔다고."

"예."

"껄껄, 약속은 약속이지, 좋네. 내 직접 안내함세."

"허면, 대화 나누십시오. 윈리님은 제가 따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네, 잘 부탁드려요. 율리스님."

대 현자 헬리슨 발레스티아를 따라 내가 걸음을 옮기자 말없이 나를 노려보던 수행 마법사의 표정에 상당한 분노가 어리는 게 보였다.

제 감정 잘못 추스르고 앞뒤 안 가리고 덤벼들면 어찌 될지는 더 말해 무엇할까.

* * *

"대륙 유일 성자씩이나 되는 왕자를 초대하기엔 상당히 누추한 곳이네만, 드시게."

현자의 공방은 솔직한 말로 정말 대단한 난장판 그 자체였다.

보통 대륙 최고의 현자라고 한다면 깔끔하게 정리된 거대한 서고와 연결된 방을 연상케 하기 마련이지만.

내가 있는 이 작은 오두막은 적탑의 본부가 있는 린드홀의 건축양식도 따르지 않은 작은 오두막일 뿐이었다.

그가 나를 안내한 곳은 마탑이 아닌 영지의 외곽에 위치한 커다란 정원. 그 중앙에 있는 이 작은 오두막이었다.

"이곳에서 오래 지내셨나 봅니다."

"이 늙은이에게 이곳만큼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곳도 없음이지. 어떠한가."

그의 말에 나는 방 전체에 어질러진 책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어찌나 청소를 안 했는지 책의 겉면엔 먼지가 소복이 쌓여 퀴퀴한 냄새를 풍겼다.

[공전 역학에 따른 마나 분포 이론]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상당히 어려워 보이는 책이다.

뻑뻑하게 굳은 황색의 표지를 걷어 넘기자 그럴듯해 보이는 이론에 대한 설명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음, 그래.

-으음? 이런 이론이 있었는가?

'엉터리 이론이네.'

짧게 일축한 내가 픽 웃어 보였다.

제목만 봐도 답이 나오는 이론이다. 그리고 현재 마법사 학회에서 한 축을 자랑하고 있는 이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솔직히 내 입장에선 모순투성이의 이론일 뿐이지만. 마법사들에겐 이는 뛰어난 이론 중 하나일 뿐이었다.

"이 책은 먼지가 쌓여있네요."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쓸모가 없는 이론이니까 보지 않았겠지요."

"허허, 그 이론에 관해 저술된 책은 책의 내용도 저자도 모두 이름이 고명한 마법사가 쓴 것이라네."

"그걸 떠나서 헬리슨님이 아니라고 판단했으니 방치된 게 아닙니까?"

책 중에 몇몇은 정성과 손이 닿은 것처럼 먼지 하나 없는데. 내가 쥐고 있는 이 책을 포함한 몇몇은 아예 손도 대지 않은 것처럼 먼지투성이였다.

내 말에 그가 끌끌 웃어 보였다.

"하하하 눈치가 빠른 겐지."

껄껄 웃어 보이며 방의 한편에 붙어있는 벽난로에 손을 뻗은 그가 가볍게 읊조렸다.

"구가하거라."

[파이어]

동시에 그의 손끝에서 붉은 화염이 일렁이더니 그대로 벽난로를 지펴 주변의 공기를 서서히 녹여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내가 건네준 책을 보던 그가 벽난로를 보다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엉터리라 느끼는 이론이라도 책을 함부로 태울 순 없는 게지."

고민 끝에 결국 책을 태우지 않은 그는 적당한 책장에 그 책을 꽂아놓고는 손을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무언가 중얼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책더미에 파묻혀있던 의자 두 개가 자연스럽게 허공에 떠올라 깔끔하게 세팅되었다.

그리고, 또 한차례 주문이 이어지자 먼지들이 일제히 허공으로 떠올라 뭉쳐져 그대로 벽난로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대 현자님이 이런 작은 방에서 기거하신다는 사실을 알면 마법사들이 기겁할 텐데요."

"껄껄껄. 실제로 또 그렇지 않다네. 젊은 놈들은 이곳에 내 마법 실력에 대한 비결이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이곳에 초대될 수 있다면 전 재산이라도 쏟아부을 준비가 되어있는 놈들인 게지."

인간이란 뭐하러 효율성 떨어지는 짓을 좋아하는 건지.

담담한 철학을 내뱉으며 그가 익숙하게 찬장을 열고 차를 준비했다.

그리고는 찻잔을 내게 내밀고는 조용히 물었다.

"이 늙은이가 왜 왕자를 이곳으로 초대했는지 알겠는가."

그의 질문에 나는 조용히 침묵했다.

"글쎄요. 저로서는 쉽게 판단이 서질 않네요."

"예끼 이 사람. 왕자께서는 다 늙어서 늘어난 것이라곤 눈치밖에 없는 이 노인네를 놀리는 걸 좋아하는구먼."

"제가 단순히 게임판이나 받자고 찾아온 게 아니라는 걸 눈치채신 거겠지요."

현자라면 세상을 보는 시선도 다를 테고.

그에 따라 그에게 흘러들어오는 수많은 정보도 있을 테니.

단순히 게임판 하나 받자고 내가 이곳까지 찾아올 인간 군상이 아니라는 것은 그도 잘 알 것이다.

그렇다고 인맥이나 쌓자고 하기엔 그 시기가 너무 갑작스럽다.

그렇기에 헬리슨 발레스티아는 내가 그에게 다른 용건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이가 들면 늘어나는 것이라곤 눈치밖에 없네. 그래. 이곳에선 왕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누가 들을 일도 없겠지."

애초에 마탑 내부에서라도 상관없긴 하다만.

"의뢰를 좀 하고자 합니다."

내 말에 그가 멈칫했다.

"의뢰라....... 이 늙은이가 측정할 수도 없을 만큼의 방대한 무언가를 품고 있는 왕자께서 말인 겐가?"

율리스와 다르게 그가 나를 만나는 건 두 번째이지만.

그 두 번째 만남으로 그는 확신한 듯 보였다.

성자이라는 거대한 가면 안에 숨겨진 다른 것들을 말이다.

"적탑에는 오래전부터 많은 마법 매개체를 만들어오셨을 겁니다. 최소 50년 이상 된 봉인석이 최소 두 개 이상 필요합니다."

그 정도는 되어야 세상의 법칙에 간섭하는 물건의 레플리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군."

내 제안에 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50년이라....... 이 늙은이가 가진 것이라곤 시간뿐인 게지. 과거엔 많은 것을 도전하였네. 해서, 그 정도 되는 봉인석 또한 만들어 둔 바가 있지. 솔직히 사용할 구석을 찾지 못해 창고에 처박혀 있지만 말이네."

그의 말에 내가 조용히 침묵했다.

"두 개. 내어줌세. 단, 조건이 있다네, 어떠한가? 들어보겠는가?"

그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 * *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들여서 만들어야 하는 물건들은 많다.

시간 가속 마법을 사용해버리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신을 모시는 입장에 있는 내가 해선 안 되는 짓 중 하나이기도 했다.

큰 힘을 가진 자는 그 책임 또한 짊어지리라.

거대한 신성력의 힘을 지녔기에 마법에서도 내가 하지 않는 분야가 있다.

"아! 오라버니! 여기에요!"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드는 윈리에게 가까이 가자 녀석이 헤실거리며 제 옆자리를 가리켰다.

"오라버니의 자리를 마련해 뒀어요."

일단은 신성한 학회장이다.

그렇기에 누가 귀족이고 왕족이라는 이유로 특별석을 지정해주지 않는 게 마탑의 특징이기도 했다.

마탑들의 공통적인 지향점은 실력에 따른 인정이었으니 말이다.

제아무리 잘난 황족이 와도 신성한 학회장에서는 일반인과 같다는 조금 불편한 마인드를 지닌 이들이기도 했다.

물론, 그 불편함의 기준은 태생부터 선민사상에 물들어있는 이들에게 적용되는 불편함이겠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태생부터 왕족인 윈리가 이런 시스템에 아무런 불만을 느끼지 않는 건 녀석이 얼마나 올바르게 자랐는지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꽤 복잡하고 번잡했을 텐데."

"그보다 곧 있을 이론 발표회가 너무 기대되는 거 있죠?"

륀느의 경우 그녀의 날개나 원반 때문에 쓸데없이 시선을 모을 것 같았기에 따로 데리고 나오지 않았다.

아마 지금쯤이면 홍단이나 청단이에게 신나게 시달리고 있으리라.

"그런데 오라버니도 학회 자체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녀석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재롱잔치 봐서 뭐하나."

현자 헬리슨 발레스티아가 7서클의 대 마법사라 불린다고 이곳의 마법사들이 모두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이들인 것은 아니다.

적어도 이 학회라는 곳에 참석하는 쟁쟁한 마법사라는 양반들의 평균 수준은 4~5서클이나 높게 처야 6서클 초입이 대부분이리라.

6서클이라면 마스터급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윽고 사람들이 모두 모였는지 웅성웅성하던 장내가 일순간 조용해졌다. 마탑답게 사일런스 마법이 전개된 것이다. 그리고 고요해진 장내의 중앙으로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율리스였다.

"반갑습니다. 올해 마법이론 학회의 진행을 맡은 중앙 장로회 마지막 장로인 율리스 5급입니다."

담담한 그의 발언에 주변에서 무언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 조용하게 만들기 위해 펼쳐졌던 사일런스 마법이 사라진 탓에 다시 주변은 웅성웅성하는 소리로 가득 찼다.

"허면 곧바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청탑 콜로네드의 장로님이신 브램 6급께 먼저 발표권한을 양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 말한 율리스가 단상 위로 올라오는 깐깐한 인상의 노인에게 손에 쥔 원통형 막대를 건네자 그가 조용히 그것을 받아들고는 고개를 숙여 보였다.

까마득히 어린 율리스에게 저런 예를 취할 정도로 율리스의 위세는 확실히 대단하긴 했다.

"만나서 반갑소. 늘 그렇듯 질문은 언제든지 환영이오만......, 만약에 비판을 하고자 한다면 그에 걸맞은 근거를 제시해주길 먼저 부탁하는 바요."

얼토당토않은 근거부족의 비난은 에너지 소비일 뿐이니.

메마른 말투로 중얼거린 그가 천천히 손에 쥐고 있던 서류뭉치를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는 말했다.

"이번 청탑의 산하 마법 연구기관인 헥스에서 초점을 두고 맞춰온 연구는 바로 이것이오."

그 말과 함께 브램의 등 뒤로 몇 가지 글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8서클 고리의 실존 여부와 그에 따른 생명체가 가지는 한계 역학.]

제법 복잡해 보이는 이론이지만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별거 없는 내용이었다.

8서클 이상부터는 한 인간에게서 실존할 수 없는 이론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즉, 인간이 감당하기에 8서클이라는 경지는 도달할 수 없는 종의 한계가 존재하는 이론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오라버니는 8서클 이상의 마법사이시잖아요?"

"그렇지."

"그렇다면 저건......"

"전제부터 틀려먹은 이론이지."

마법이라는 학문에 입문하고 저 정도 수준이 되면 으레 떠오르는 계산식 의문이다만. 세상 모든 일이라는 게 단순 예측과 계산을 넘어서는 변수를 보일 때가 많다.

여기 산증인이 있는데 8서클 이상의 마나 고리는 인간의 연산력과 마나량으로 감당할 수 없다니.

망언도 그런 망언이 없다.

내 말에 윈리가 키득키득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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