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1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3권 19화
서부 대륙.
활의 국가 '현' 국의 성소라 불리는 수호신의 숲 일부는 얼마 전 있었던 일로 주인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 주인이 바뀌며 숲에는 숲의 수호신인 괴석거인을 제외하고 두 마리의 존재가 자리를 텄다.
신수 주작인 불닭이와,
청룡 쿠릉이가 바로 그 둘이었다.
화르륵......
주작, 불닭이는 태어난 이래로 더없는 평화를 즐기고 있었다.
-끼이이익!
그야말로 이곳은 부모가 늘 말하던 지상낙원이 아닌가 싶었다.
퍼더덕!
화염을 일으키지 않아 단순 붉기만 한 깃털을 펄럭이며 숲을 뛰어다닌 불닭이는 나무에 매달린 열매 과실 하나를 보고 눈을 반짝였다.
저건! 코모로 과실!
분명 이곳에 간혹 조공을 하러 오는 인간들이 올리는 음식 중 가장 맛난 과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순식간에 날개를 펄럭여 뒤뚱거리는 몸을 띄워 올린 불닭이는 곧 과실 하나를 부리 끝에 집어 따낸 뒤 강렬하게 포효했다.
-끼이이이이익!!!
과실 하나에 이렇게 포효를 할 정도인가.
애초에 신수는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존재이지만 불닭이에게 맛난 과실이나 고기는 엄연히 기호식품에 해당하는 문제였다.
그리고 불닭이에게 코모로 과실은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할 만큼 달고 시원한 과일이기도 했다.
다만 안타깝게도 이 숲에서도 코모로 과실은 정말 보기 힘들 정도로 잘 나지 않는 과일이기도 했다.
콰작! 콰작!
거대한 체격의 불닭이와 비교하면 코모로 과실 하나는 정말 작은 크기였지만 그 작은 과일 하나라도 오랫동안 씹어 삼키겠다는 듯 불닭이는 몇 번이고 부리로 과일을 으깨 과즙을 마시고 과육을 씹어 삼켰다.
꺼억!
헥,헥헥헥!
든든하게 먹은 것도 아닌데 속에서 만족감이 차오르자 대놓고 트림을 해 보인 불닭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날개를 펄럭이며 헥헥 웃어댔다.
이곳에서 불닭이를 거스르는 존재는 없다.
'현' 국의 인간들은 불닭이를 신성시하듯 바라보았고 불닭이를 주로 괴롭히던 부모는 불닭이를 이 숲에 둔 이후로 한동안 찾아오지 않았다.
부모가 관심이 없다 하여 비뚤어질 만도 하지만 불닭이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영광스러운 신수 주작이다!
-끼에에에엑!!!
강렬한 포효를 터뜨리며 전신에 화염을 일으킨 불닭이가 몸을 뒤뚱뒤뚱 움직였다.
몇 주간 놀고먹는 것에 익숙해진 탓에 몸에 살집이 붙은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지만 상관없었다.
-끼이이익!!!
겁을 집어먹은 야생 몬스터 한 마리가 불닭이를 발견하기가 무섭게 기겁하며 물러나 고개를 숙여 보였다.
보통 위협적인 몬스터도 불닭이와 마주치면 본능적으로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나는 약하지 않다!
나는 강한 신수 주작이다!
그제야 자신의 존재가 비정상이 아님을 새삼스레 실감하면서 불닭이는 겁을 먹은 몬스터를 가지고 놀 듯 신이나 날개를 펄럭였다.
내가 왕이다!
자랑스레 포효를 터뜨린 불닭이는 곧 잔뜩 겁을 먹고 움츠러든 몬스터를 부리로 콕콕 찌르며 괴롭히기 시작했다.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 어?
콕콕.
-끼이잉......
흉폭하기 그지없는 몬스터가 앓는 소리를 내며 물러나건 말건 불닭이는 집요하게 몬스터를 괴롭히며 즐거워했다.
콰르르릉!!!
그때였다.
하늘 높은 곳에서 벼락이 낙하하더니 그대로 몬스터에게 내리꽂혀 통구이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새카맣게 익어버리는 몬스터를 보며 불닭이가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방금, 자신의 장난감이 벼락에 휩쓸려 사라져 버렸다.
멍한 얼굴로 몬스터의 사체를 날개 끝으로 톡톡 건드려본 불닭이는 곧 이 사태의 원흉인 청룡.
쿠릉이를 노려보았다.
-끼에에에엑!
-크르르릉......
잔뜩 화가 난 듯 자신을 노려보는 쿠릉이의 존재에 불닭이의 몸 안에서 맹렬한 분노가 일기 시작했다.
부모가 사라진 후 저놈의 청룡 쿠릉이는 자신을 제어할 존재가 사라졌다고 여겼는지 겁도 없이 이곳저곳을 들쑤시면 다니기 시작했다.
감히 이 숲의 제왕인 자신이 있는데!
불닭이는 맹렬한 분노에 그대로 몸을 맡기며 새빨간 화염을 일으키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내가 비록 게으르게 살고 있지만, 네까짓 놈에게 먹힐 정도로 추락하진 않았어 임마.
그렇게 말하듯 노려보는 주작이와 본래부터 흉폭한 청룡 쿠릉이가 서로를 노려보며 당장에라도 싸울듯한 모습을 보였다.
화염의 신수와 벼락의 신수가 싸우면 그 여파는 숲으로, 그리고 숲 밖의 국가인 '현' 국에 고스란히 미치지만, 자존심에 미친 두 신수에게 그딴 건 상관없는 문제였다.
오늘 너와 나 둘 중의 하나는 죽고 서열정리를 한다.
이런 마음을 동시에 품은 불닭이가 이윽고 거대한 화염을 터뜨리며 쿠릉이를 향해 덤벼들려던 찰나였다.
"니들 장난하냐?"
기다렸다는 듯 거대한 몸을 움직이는 쿠릉이와 화염을 터뜨리며 맹렬한 분노를 일으키던 주작 불닭이의 몸이 일순간에 굳어버렸다.
"잘하는 짓이다. 그치?"
느긋한 목소리에 불닭이의 고개가 마치 녹이 슬어버린 금속 문처럼 뻑뻑하게 돌아갔다.
동시에 청룡 쿠릉이도 자신의 길고 가는 수염을 바짝 세우며 긴장한 듯 고개를 미친 듯이 돌렸다.
그리고 두 신수 모두 동시에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발견했고 그곳에 담담하게 서 있는 악마를 볼 수 있었다.
끼, 끼익!!
본능적으로 화염을 꺼뜨린 불닭이는 알 수 있었다.
지금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바로 애교다!
끼잉......끼잉......
위풍당당하고 긍지 높은 숲의 제왕이고 나발이고 저 부모의 앞에서 괜히 개기다간 남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다.
기름에 튀겨진 닭 신세.
반사적으로 전신의 화염을 꺼뜨리고 소년에게 다가간 불닭이는 몸을 그대로 발라당 뒤집으며 배를 보이고는 부리를 이용해 소년의 손에 마구잡이로 비벼댔다.
"아이고, 우리 불닭이. 눈치 참 빨라요?"
분노조절장애라는 별명을 지닌 신수라 해도 저 인간의 앞에선 오로지 분노조절 잘해가 될 뿐이다.
눈치 빠른 불닭이의 그런 행동에 소년은 만족스러운 듯 품에 안고 있던 하늘빛 머리카락의 여성을 고쳐 안았다.
-그르르르르르릉......
반대로 이 겁도 없는 청룡 쿠릉이는 바짝 경계하는 얼굴로 소년을 볼 뿐이었다.
저 멍청한 지렁이 놈.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 주작이는 곧 벌어질 일 따위는 안 봐도 뻔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년이 건네주는 하늘빛 머리카락의 여성을 조심스레 받아 품었다.
"쿠릉이가 요새 안 맞았더니 겁이 없어졌구나."
-크르르르르릉!!!
시간이 흐르며 자신도 어느 정도 강해졌다고 시위하고 싶었던 건지 결국 청룡 쿠릉이는 굴종보다는 반발을 택했다.
순식간에 벼락이 떨어지기 시작하며 숲 전체에 여파를 미치기 시작하자 불닭이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쿠릉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이어 소년의 손에서 옅은 스파크가 튀기는 걸 본 불닭이는 곧 들려올 애처로운 비명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머리를 땅에 처박아버렸다.
* * *
[번외]
[자연재해 시리즈]
[날벼락 부르기]
이전 바리스와 윈리가 살던 영지인 오르뎀 영지에서 링튼 백작이 만들어 낸 키메라들을 대량으로 쓸어버렸던 벼락 제어마법이 다시 한 번 실현된다.
이미 쿠릉이가 자신의 힘을 이용해 억지로 뇌운을 만들었다면 거기에 편승해서 이용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리라.
겁도 없이 개기는 쿠릉이의 모습에 나는 망설임 없이 벼락의 제어권을 강제로 강탈한 뒤 녀석의 전신에 벼락을 쏟아부어 버렸다.
-크라라라라라라라라!!!
생각지도 못한 변화에 깜짝 놀란 쿠릉이가 비명을 지르며 벗어나려 하지만 보랏빛의 마법진은 사정없이 쿠릉이를 겨냥해 벼락을 유도했다.
단번에 수십 가닥의 벼락이 쏟아진다.
수억 도에 달하는 벼락이지만 일단은 벼락의 신수인 만큼 쿠릉이에게 큰 타격이 되지 않는다.
다만 타격이 없다뿐이지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역시 게기는 건 잘못됐다!'라고 외치듯 비명을 지르며 추락해 버둥거리는 녀석을 끝없이 혼내주던 나는 곧 녀석이 한참을 반항하다 추욱 늘어질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혓바닥을 추욱 내밀고 눈을 감고 쓰러져 버린 쿠릉이의 행동에 마법을 멈출 수 있었다.
-데이비! 저 아이 저러다가 죽겠어!
페르세르크의 기겁한 외침에 나는 혀를 추욱 내밀고 눈을 감아버린 쿠릉이를 바라보았다.
사정없는 공격에 죽은 듯 보였다.
하지만.
"수염을 뽑아서 수염차를 만들어볼까."
나는 그딴 건 관심 없다는 듯 쿠릉이의 앞에 다가가 중얼거렸다.
"아니면 신수 청룡의 비늘로 공예나 해볼까. 그것도 아니면......"
고기를 썰어서 수육이나 해먹을까.
-그르르르릉!!!
"어디서 건방지게 죽은 척이야. 콱씨."
내 위협에 쿠릉이가 바들바들 떨며 온몸을 동그랗게 말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위풍당당한 청룡?
사신수이자 인간을 지키는 위대한 신수?
그딴 건 모르겠고 내 눈앞에 있는 건 숲을 지키라고 했더니 신나게 벼락을 떨어뜨리며 즐거워하다가 들킨 뒤에 반항하고 죽은 척하는 괘씸한 갯지렁이일 뿐이다.
"5초 안에 고개 든다 실시."
그르릉!!
반사적으로 고개를 빳빳하게 든 쿠릉이의 거대한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리자 나는 만족스레 웃으며 쿠릉이의 비늘에 손을 올렸다.
거대한 체격의 쿠릉이가 움찔 떠는 듯 보였지만 나는 부드럽게 녀석의 비늘을 쓰다듬어주었다.
"우리 쿠릉이. 아직 내가 상황 파악하는 법을 안 가르친 모양이구나."
그리 말하며 주작이를 보자 배를 까뒤집고 누워있던 불닭이가 비굴할 정도로 몸을 땅에 비비며 애교를 피워왔다.
쿠릉이의 얼굴이 거무죽죽하게 죽어가는 것과는 별개로 불닭이의 얼굴은 의기양양함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멋대로 해석해보자면.
애교와 비굴함은 이런 것이다! 세상 살아가는 지혜도 모르는 멍청한 놈!
정도로 해석할 수 있으리라.
바들바들 떠는 쿠릉이의 비늘을 다시 쓰다듬으며 내가 빙그레 웃었다.
"불닭이는 눈치가 빠른데, 우리 쿠릉이는 아직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눈치가 부족한가 봐."
-끼......끼잉......
"잘못했어?"
내 질문에 쿠릉이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못할 짓을 왜 하나."
-끼잉!
당황한 듯 쿠릉이가 앓는 소리를 내며 낑낑거렸다.
"아니라고?"
내 물음에 녀석이 고개를 다시 끄덕인다.
"여기가 안이냐? 밖이지."
-끼잉!!
속이 터져 죽겠다는 듯 마구 버둥거리면서도 녀석은 절대 내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미안하면 신수 생활 끝나나? 겁도 없이 덤벼들면 내가 용서하고 끝나는 일인가?"
-끼잉......끼이잉......
결국, 쿠릉이는 자신의 모든 지혜를 끌어올리기 시작했고 지금껏 봐온 모든 경험을 되살려 내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체격도 잊은 채 몸을 까뒤집고 콧잔등을 내게 마구 비벼오기 시작한 것이다.
작은 크기도 아니고 거대한 청룡이 이러고 있으니 모양이 빠지긴 한다만. 이만큼 교육을 잘해놨으면 차후에도 큰 문제를 만들진 않으리라.
아니 생긴다 해도 수습의 난이도가 쉬워질 거라는 것은 분명하다.
갈구는 데에 큰 기술은 필요 없다. 뫼비우스의 띠마냥 돌리면 될 뿐이니까.
나는 이 숲에 들어선 뒤로 급속도로 활성화되는 레이나의 육신에 담긴 힘을 보며 역시 장소를 잘 골랐다는 생각을 했다.
"됐고. 둘 다 여의주 있지? 좀 내놔봐."
얘 좀 깨우게.
내 말에 두 신수는 불만 없이 그대로 몸을 빳빳하게 굳히며 내 근처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