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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322화 (321/1,559)

# 322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3권 20화

신수의 힘은 깨끗하고 청명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사흉수와 다르게 사신수는 세상의 좋은 기운을 받아먹고 사는 존재이니 말이다.

특히나 신수가 품고 있는 여의주는 그 힘의 집합체라 봐도 무방했다.

신수의 목숨과도 같은 물건이며, 그 힘의 응집체.

그것이 바로 신수의 여의주였다.

주로 청룡 쿠릉이는 입에 여의주를 머금고 있는 탓에 여의주가 가시적으로 보이는 편이지만 주작이는 보통 내면에 품고 있기에 그 모습을 보는 이는 없다.

그것은 당연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나머지 두 신수, 현무와 백호 그리고 중앙 신수인 황룡과 기린 또한 마찬가지였다.

물론 황룡과 기린은 이 땅에선 소환이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결과적으로 여의주는 신수의 생명구이며 그 힘의 근원이라 불릴 만큼 중요한 물건이었다.

부모에게조차 함부로 건네줄 수 없을 만큼 말이다.

내가 여의주를 달라고 하자 쿠릉이와 불닭이는 본능적으로 놀란 듯 움찔거리며 내게서 물러났다.

"어차피 지금 안 쓰잖아. 너희 힘을 꼬박꼬박 적금 들어서 어디 쓸래. 그거 내게 맡겨. 내가 더 불려서 돌려줄게."

그렇게 말해본들. 이미 돈독 오른 아이처럼 쉽게 내어주려 하지 않았다.

내게 굴종해 체면도 버리고 애교를 피우던 주작 불닭이 조차 망설이는 만큼 확실히 여의주라는 존재가 무겁게 다가오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여의주가 없으면 곤란한 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여기 얘 보여?"

내가 품에 안고 있던 레이나를 두 녀석에게 보여주자 거대한 두 녀석의 시선이 레이나를 향해 내리꽂혔다.

"세상을 구한 용사야. 하지만 세상의 규칙 때문에 이렇게 살지도 죽지도 못한 상황이기도 하고."

내 말에 두 신수가 움찔거렸다.

니들이 성질머리는 흉폭해도 괜히 사신수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나는 두 녀석을 다독이며 마치 아이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주는 부모님처럼 조용히 타일렀다.

"세상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끝끝내 존재 자체도 잊혀 사라진 녀석이야. 누구인진 말해도 소용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라는 걸 너희들도 잘 알 거다."

내 말에 쿠릉이가 낮게 울음을 터뜨렸고 불닭이가 부리를 뻗어 레이나의 육신에 대고 킁킁거렸다.

그리고는 의심이 반쯤 섞인 눈으로 나를 보더니 곧 서로 간에 시선을 나누고 조용히 물러났다.

우웅......

먼저 여의주를 꺼내 든 것은 청룡 쿠릉이였다.

사신수 청룡과 주작. 기본적인 성질머리는 흉폭하지만 그들은 숭고한 희생을 한 이에게는 더없는 경의를 보내주는 영험한 신수였다.

아마 세상을 구하고 홀로 사라져 간 존재라는 점에서 그들의 심금을 자극했으리라.

자신의 입에 작은 여의주를 소환해낸 뒤 내게 내미는 청룡 쿠릉이와 품 안에서 황금색의 여의주를 만들어 낸 뒤 부리로 내게 내미는 불닭이, 두 신수의 모습에 나는 말없이 불닭이의 부리와 쿠릉이의 비늘을 쓰다듬어주었다.

"고맙다."

-그르르르......

미묘한 울음소리와 함께 물러나는 녀석들을 뒤로한 채 나는 두 개의 구슬을 허공에 띄운 뒤 레이나의 육신을 마저 허공에 띄웠다.

"쿠릉이, 브레스 장전."

이윽고 내가 쿠릉이를 향해 말하자 녀석이 깜짝 놀란 듯 나를 보다가 이내 입에 새파란 뇌광의 브레스를 모으기 시작했다.

"내가 신호하면 쏴."

이윽고 내가 한쪽 팔을 들며 말하자 쿠릉이의 표정이 복잡 미묘하게 뒤집히더니 이내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윽고 레이나를 허공에 띄운 내가 마지막 마법진을 가동하자 마법진과 두 개의 여의주 즉, 신수의 힘이 어우러지며 레이나의 육신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마치 혼령 같은 것이 주변을 떠돌다가 흡수되듯 레이나의 몸 안으로 오색의 찬란한 빛들이 스며들기 시작하자 그녀의 창백하던 얼굴에 점차 핏기가 돌기 시작했다.

인간이었으나 인간을 벗어난 존재. 이제는 인간조차 되지 못한 그녀를 되살리는 건 어찌 보면 구원이 아니라 억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다시 죽더라도 보여줄 것들이 너무 많았다.

아직 이렇게 죽기엔.

모두에게 잊혀 죽기엔 너무 아쉬운 사람이었다.

[태초의 주신이시여, 그대의 바람에 따라.]

[마지막 할부금 채웠으니 확인하시던가.]

[9위계 성마법]

[구원]

이윽고 마지막 성마법이 발현되며 레이나의 육신이 빛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이후 나는 한 손을 들어 언제든 쿠릉이에게 뇌광의 브레스를 쏠 수 있도록 준비시켰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사라지는 것보다 차라리 육신을 부수는 게 나아."

나도 엄연히 이런 반 금기 연성은 확신할 수 없다.

잘못되면 육신뿐만 아니라 살고 싶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있는 레이나의 영혼까지 망가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조금만 뒤틀려도 당장에 육신을 부수고 그녀의 영혼을 빼내야 했다.

이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말이다.

빛 속에서 유영하는 레이나의 육신과 신의 뜻에 따라 생겨난 날개가 펄럭인다.

신성한 천사의 강림을 직접 목격하는 것처럼 레이나는 눈을 감은 채 마치 강림하는 천사처럼 천천히 몸을 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이어지는 그 작업 속에서 나는 조금의 문제라도 생기면 바로 수정할 수 있도록 이미 수십 수백에 달하는 마법진을 사방에 깔아놓고 대기했다.

이윽고 완성된 것일까.

서서히 빛이 스며들기 시작하자 나는 천천히 팔을 내리며 쿠릉이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됐어. 이제."

-그르르르......

내 말에 쿠릉이가 뇌광의 브레스를 허공에 흩어버렸다.

그때였다.

쿠웅!!!

하늘에서 새하얀 빛이 떨어지며 레이나를 감싸기 시작한 것이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놀랐는지 페르세르크가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레이나의 등에 있는 날개를 만든 건 내가 아니라 주신 프리아 여신이었다.

그녀는 어쩌면 레이나를 구원하며 그녀의 뜻을 퍼뜨릴 진짜 천족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시작은 비록 인공적인 존재로 만들어졌으나.

두 번에 달하는 신의 축복으로 레이나는 완전한 무언가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레이나의 나신을 감싸주던 천들이 일제히 바스러지듯 사라지며 하늘거리는 순백의 의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이마에 신의 상징인 문양이 생겨나는 것을 끝으로 빛은 사라졌다.

성자의 성흔과는 다른 계열의 힘이었다.

이윽고 천천히 그녀가 눈을 뜨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그 모습을 쿠릉이와 불닭이는 뭐가 그리 긴장되는지 침을 꿀꺽 삼켜가며 지켜보았다.

그 느릿느릿한 변화가 일어난 지 한참이 지났을까.

이윽고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한 레이나의 눈은 은빛으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게 하였다.

화아악!!

이윽고 맨발로 바닥에 착지한 그녀가 움직이며 그녀의 등 뒤 날개가 환하게 펄럭였다.

그리고, 빛의 입자가 되어 흩어지듯 사라졌다.

가시화 비가시화 정도는 사실상 놀랄만한 일도 아니었다.

멍하니 나를 포함해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는 곧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고 이내 천천히 한발, 또 한 발 내딛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내게 다가온 그녀는 조용히 나를 올려다보았다.

"저......지금 살아있는 건가요?"

"내가 말했지. 살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 품고 버티라고."

잘도 버텨주네.

내 말에 그녀는 자신의 기억과 내가 했던 말을 떠올렸는지 이내 어깨를 파르르 떨며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그대로 주저앉아 옅게 흐느꼈다.

"정말 그걸로 끝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다시 그 좋은 삶을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전의 널 기억하는 사람은 여전히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널 새로운 육신에 안착시키는 정도야."

이미 말소된 기억을 살릴 방법은 없거니와 그렇게 했다간 지금의 레이나 마저 위험해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괜찮아요......괜찮아...... 당신이 기억하잖아...... 당신이 나를 기억해주잖아요."

"그래?"

"흑......흐흑......고마......고마워요. 당신이 내려준 빛을 절대 잊지 못할 거야."

내가 어깨를 잡아 주자 그대로 품에 머리를 묻고 흐느끼는 그녀였다.

비록 신의 힘에 의해 인공적인 천족으로 태어난 그녀라 해도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가만, 천족은 감정이 없는 거로 기억하는데, 이래도 되는 건가.

"다시 마시는 맑은 공기는 어때."

"너무 좋아요....... 제가 눈을 감은지 얼마나 흘렀죠?"

"한 달 조금 됐나?"

"......"

어림잡아 말하자 레이나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기간이네요."

담담하게 말한 그녀가 내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당신은 아주 작은 빛을 보여주었고 나를 구원했어요. 그에 따라 나는 내가 당신에게 한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나의 손은 당신의 의지가 될 것이오, 나의 발은 당신의 말이 될 테니.

이 목숨 불타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당신을 따르겠나이다.

담담하게 말하며 경건하게 맹세하는 그녀의 말은 곧 힘이 되어 그녀와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끈을 만들어 붙였다.

이래나 저래나 상관은 없다만.

이후.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륙 6대 미녀 중 하나라 불리던 일리나가 성숙하게 자란 모습이다.

당연, 외향이야 조금 변해 동일인물이라 보기 힘들지만 레이나의 외모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게 하고 이성의 마음을 뒤흔드는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의 매력을 개무시로 일관했다.

일하는데 사심을 품는 건 아마추어나 하는 짓이다.

"일단 알다시피 넌 인간이 아니야."

"네....... 스스로도 그렇게 느끼고 있어요. 묘하게 느낌이 다른걸요."

"주신 프리아는 네 몸에 자기 힘을 담아서 널 이용하려 들 거다."

"그게 신의 뜻이라면...... 그리고 당신의 뜻이라면."

"내 뜻은 아니고."

내 말에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럼 필요 없고요."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으니 잘 간직해. 널 지켜줄 테니까."

내 말에 그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몸이 불편한 곳은?"

"없어요. 전혀. 오히려 신기할 정도로 가볍네요."

그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야 할 거야. 아직 완전 조정이 끝난 것도 아니거니와 세상을 이루는 섭리의 눈을 피하려면 당분간은 나와 떨어져 지내야 하거든."

내 말에 그녀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무슨 뜻인가요?"

"별건 아니고, 당분간 여기서 지내라고. 여기 두 녀석이 잘 도와줄 거야."

내가 불닭이와 쿠릉이를 가리키며 말하자 그녀가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게 명령이시라면."

"그 외에 마지막으로 한가지 확인하자."

내 말에 그녀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 미소는 곧 내 입에서 터져 나온 폭탄 발언엔 무참히 일그러졌다.

"네 과거와 직접 대면해보자."

도플갱어 이론에 따라 두 사람이 완전히 같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둘 중 하나는 사라진다.

그건 어떤 경로든 그냥 넘길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반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그녀의 부활은 완벽해진다는 소리였다.

그 마지막 검증은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은 게 내 입장이지만.

현재 이곳의 일리나와 타 세계선에서 넘어온 미래의 일리나가 동시에 존재하기 위해선 필수적인 검증과정이기도 했다.

"저를...... 만난다고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물어오는 그 모습에 내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싫어?"

"아뇨....... 그건 아니지만요. 사실 조금 당황스러워서...... 그런데 괜찮은가요? 제가 당신의 삶에 끼어들어도."

"끼어들긴 뭘 끼어들어, 난 널 살리고 그걸로 끝이야. 앞으로는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해. 하인스 영지를 떠나 팔란제국으로 가던, 여기 뿌리를 박고 살건 네가 정하는 거지 내가 하는 게 아니야."

이미 한번 살렸고 완치 판정을 받는다면, 이후의 일은 본인의 책임이지 내 알 바는 아니다.

일리나를 만나는 건 그 완치 판정을 위한 마지막 검증이 되리라.

"이름은 레이나로?"

"네. 이제는 제법 애착이 가는 이름이니까요. 그리고 당신이 내게 불러준 첫 이름이기도 하고."

뭔가 미묘하게 성격이 뒤틀린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의사는 환자를 살리는 직업이지 환자의 삶을 책임지는 직업이 아니다.

내 말에 그녀의 얼굴에 묘한 고집이 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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