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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64화 (322/1,559)

# 164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7권 13화

정령의 오염은 분명했다.

이것은 숲의 질병과 같다.

몇 가지 우연이 겹치면서 그 시스템에 오류가 생기는 게 바로 이런 오염이었다.

하지만, 내가 확인한 이곳의 오염은.......

'생각 이상으로 빠른데? 이런 경우는....'

그런 느낌을 피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직접 확인해보는 수 밖에 없는 법이다.

마침 곁에 내게 호의적인 괴짜엘프가 있지 않았던가.

"오염 정도가 생각보다 심각한데?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어떤 것을 알고 싶으신가요?"

그녀의 질문에 내가 조용히 물었다.

"하이 엘프는 본래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숲을 정화하는 힘이 있는 거로 아는데."

"세상에, 어떻게 그것까지.."

"적어도 네 성인 헬리샤나가 엘프 신관을 뜻하는 단어라는 것도 알아."

같은 헬리샤나라는 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가 유리아 헬리샤나와 잭을 가족이라는 동일선상에 놓지 않는 이유.

엘프의 성이 가족을 뜻하는 것이 아닌 현재의 직급이나 계급을 나타내는 단어이기 때문이었다.

하이 엘프가 괜히 숲의 구심점이 되는 것이 아니다.

단순 혈통만으로는 모든 엘프들을 통솔하는 데에 문제가 있을 테니까.

상상이상의 정보까지 내 입에서 술술 흘러나오자 그녀는 이제 경악하는 것을 체념한 듯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저는......."

내 물음에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고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세계수의 형벌을 받아 숲을 정화하는 힘을 봉인 당했답니다."

그녀의 대답에 나는 침묵으로 일관한 채 녹아내린 나무의 표면을 건드렸다.

숲의 오염의 근원.

엘프들의 주거지에서 한참 떨어진 숲의 한복판에 존재하는 거대한 나무였다.

나무의 표면에는, 마치 종양이라도 생긴 것처럼 기괴한 살점들이 달라붙어 심장이 박동하듯 두근거리고 있었다.

마치 기괴하게 뒤틀린 듯한 나무의 표면에 정령력을 말없이 끌어올리자 표면안에서 작은 소년같이 생긴 정령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처참한 몰골, 피눈물이 흘러내리는 눈.

아름답고 청결한 정령과는 거리가 먼.

오염된 정령의 모습이었다.

[아파...... 아파...... 살려줘.......]

그 처참한 꼴에 나는 말없이 정령의 뺨에 손가락을 올렸다.

"많이 아프냐?"

[인...... 간? 인간이 우리를 볼 수 있는 거야?]

"그래, 버틸만 해?"

[아파...... 아파...... 너무 아파.......하지만, 괜찮아.]

평소 자연 정령들이라면 순수한 아이처럼 조잘대고 모여들었어야 했건만, 이곳의 정령들은 그런 것을 할 여력도 없다는 듯 곳곳에서 신음할 뿐이었다.

"언제부터 이랬지?"

"오래되진 않았어요. 아주 작은 오염수준이라 자연치유가 가능했지만......."

"예상을 뒤엎고 오염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

"네."

역시, 누군가가 손을 댄 것이 맞다.

마을의 엘프 중 누군가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온 외부인이.

본래대로라면 오염을 정화해야 할 유리아가 존재하기에 오염은 스스로 정화되어야 정상이겠지만.

그녀는 세계수의 형벌을 받은 상태로 숲을 정화하는 힘을 봉인당한 상태.

"고인 물은 썩는다더니."

정령을 보호해야 할 신목, 세계수가 정령이 오염되고 죽어가는 걸 보고 있다니.

웃기지도 않을 따름이다.

"세계수는 여전히 대륙의 서부에 있나?"

"혹시 엘프 아니세요? 어떻게 그런 것 까지 아시는지."

"대답."

"네, 맞아요, 대륙의 서부, 신목의 성지. 그곳에 있어요. 과거엔 녹음과 평화가 넘치던 곳이었지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전해. 눈에 띄면 벌목해버린다고."

미친 나무가 어디 남의 땅에 개 짓거리를 하는 건지.

"남의 땅에 호작질 부렸으면 벌목될 각오도 해야지."

마침 좋은 벌목기구이자 좋은 대화수단인 전기톱도 있겠다.

제 목적을 잃은 신목은 존재가치가 없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한 엘프의 힘을 봉인하고 숲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미 세계수는 스스로 의무를 저버린 셈이다.

그렇게 된다면 당연히 엘프와 척을 지게 되겠지만.

어차피 내 영지민도 아니고, 라운 왕국 국민도 아니다.

나는 드워프와 엘프, 혹은 오크나 수인 같은 다른 종족들을 차별없이 받아들이고 녹아들게 하여 영지를 다양한 방면에서 발전시키려는 것일 뿐.

생판 남인 이종족을 보호한다는 박애주의자가 아니다.

"쿡...... 쿡쿡...... 정말 고용주님은 거침없으시네요."

"거짓말 같아?"

"아무리 그래도 세계수를 벌목한다는 건 조금 웃기지 않을까요? 세계수님은 두께가 수십 미터에 이르는 거목이니까요. 소드마스터들의 오러 블레이드로도 흠집 하나 나지 않는 오래된 거목."

그리 설명하면서도 그녀는 뭐가 그리 씁쓸한지 쿡쿡 웃어댔다.

"제가 나쁜 걸까요."

"어떤 면에서 보면 그렇지 않을까?"

객관적인 시선에선 그렇게 보일 것이다.

한명의 수장이 개인적인 욕심에 의해 수십, 수백 엘프를 위험에 몰아넣고 있는 상황이니.

그녀가 세계수와 반목한 것 때문에 힘을 봉인당했고 그로인해 숲을 정화할 수 없게 되어 이꼴이 난 것은 분명한 사실 과정이리라.

"저는 세계수가 정해준 혼처를 거부했어요. 그래서 신목의 형벌을 받았구요. 그 여파는 당연히 제가 살아가는 이 숲에 드러났고 금방 정화할 수 있던 오염조차 막지 못해 이 사태까지 오게 되었어요."

그저 자신의 고집을 꺾었다면. 숲이 이렇게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니었을까.

그리 생각하는지 그녀의 얼굴엔 죄책감이 어려 있었다.

"마지막 시도에요. 이번 일이 실패한다면 다른 분들을 모두 신목의 곁으로 돌려보낼 생각이에요. 그게 죽는 것보단 나을 테니."

"너는?"

"제 안식처는 이곳이에요. 정말 숲이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오염된다면, 태초의 맹약에 따라 제 혼을 불태워 이 숲을 모두 정화시킬 거랍니다."

그렇게 된다면 오염은 분명 저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리아는 물론, 이곳의 정령들 또한 모두 소멸한다는 결론은 변함없다.

혼약을 거부해 세계수의 벌을 받은 하이 엘프라니.

방식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혼약을 거부한 이유를 물어도 될까?"

"신목의 성자...... 그 남자에게 제 모든 것을 허락할 순 없었어요."

나름대로 사정이 있으시다는 모양인데.

그 유명한 막장 삼각관.......

"그는 과거 제 언니를 꾀여내 타락하게 만들었고, 결국 자연의 품에서 쫓아냈답니다. 그 뒤로 언니를 본적이 없어요. 저는......."

그녀의 얼굴에 보기 드물게 억울함과 분노가 어렸다.

물론 그녀의 얼굴에 어린 음영은 아주 한순간이었다.

-삼각관계 같은 헛소리는 반성해야겠어, 그대.

'쩝.'

"그를 용서할 수 없어요."

-제 가족을 파멸시킨 남자와 혼약이라니, 소설보다 더욱 판타지한 일이로고.

"애초에 멀쩡한 네 능력을 봉인한 세계수가 잘못한 거지 이 숲을 네가 직접 이 꼴로 만든 건 아니지 않나?"

정령의 오염은 숲의 질병과 같다.

엘프가 거주한다면 정령이 몰리게 되고 자연력이 강해진다.

백혈구가 무분별하게 많아지고 뒤틀린 인체가 백혈병이라는 병을 겪는 것처럼.

언제 어디서든 일어나는 엘프가 가진 숙제와도 같다.

그렇기에 각 숲의 하이 엘프들이 수장의 자리를 맡아 숲을 정화하는 것이고.

멀쩡히 잘 있던 이 숲의 수장인 유리아에게 원치 않는 혼약을 강요한 뒤 거부한다고 형벌을 내려 권능을 봉인한 놈들이 잘못일 뿐.

유리아는 피해자에 가깝다.

피해자를 욕하는 사상은 없어져야 마땅하지.

가해자가 우대받고 피해자가 숨어드는 상황이라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이지 않은가.

그 원흉이야 뻔했다.

엘프들 사이에 존재하는 알력싸움.

아마 이 숲의 상태를 알면서도 다른 하이 엘프가 오지 않는 이유는 엘프들 사이에 존재하는 알력싸움 때문일 것이다.

신목의 곁에 있는 다른 하이 엘프들은.

유리아를 이곳에서 점점 말려 죽여 스스로 백기를 들기를 원하고 있을 것이다.

똥자루라 불리는 드워프와 다르게 깐깐한 귀쟁이들은 겉으론 온화한 척하면서 속내는 시커멓기 그지없다.

고일대로 고여 버린 엘프들은 스스로를 세상에서 고립시켜 숨어들면서 우물에 고여 썩어버린 물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 * *

"콘대 장로. 이를 어찌할 겁니까."

"그렇습니다. 유리아 헬리샤나 님 은 하이 엘프들 중에서도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셨지요. 유리아 님의 친언니도 그러했지만 몇 백 년 만에 나타난 최상급 정령과 계약할 수 있는 재능과 친화력을 품고 있습니다."

두 장로의 말에 콘대 장로가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겠지, 순식간에 말라 비틀어졌어야 할 숲의 오염을 20년 이상이나 끌고 온 것도 그 친화력 덕분이니."

"그럼 무슨 수를 써야지요! 지금 유리아 님은 최상급 정령을 소환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저 욕심으로 가득 찬 종족인 인간의 힘까지 빌려서요!"

"하지만 정령 친화력은 진짜요, 정말 터무니없는 무리수이지만...... 유리아 님이라면 정말로 성공할 가능성이......."

분개하는 장로들의 외침에 콘대 장로가 음산하게 웃어 보였다.

"걱정들 마시게. 정말로 성공한다면 그에 걸맞게 오염의 수준을 끌어올려주면 되는 일인 게야. 필사적으로 쌓아올린 시도가 물거품이 된다면 그 반동은 더욱 크겠지."

"그렇다면......."

"그때 우리가 나서는 것일세. 엘프의 존재를 알고 있는 그 인간을 당당하게 처형하고, 유리아 헬리샤나를 압박해 신목의 곁으로 다시 끌고 간다. 아주 좋은 시나리오이지 않은가."

콘대 장로의 말에 다른 장로 두 명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그 인간은 보통 인간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만, 유리아님의 말씀대로라면, 저희가 손을 쓰기전에 당할 가능성도 있지요."

"그렇지, 그러니 함정이라도 파야 하지 않겠는가."

콘대 장로가 품 안에서 작은 구슬을 꺼내 들었다.

"고대 정령의 힘이 담긴 봉인의 구일세."

"세상에...... 그런 고귀한 보물을......."

"본래엔 정령술사의 힘을 증폭시키는 보물이지만, 반대로 다른 힘을 억누르는 효과도 있지, 듣자하니 어린 나이치고는 제법 뛰어난 마스터급 경지 같은데.."

짧게 중얼거린 그가 음산하게 웃어 보였다.

"마스터 급 경지라고 해도 마나와 신성력을 봉인 당한 인간이, 엘프의 위대한 저력인 에이션트 가드의 공격을 어찌 받아내겠나."

끌끌 웃는 그의 얼굴엔 만족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인간은 정령의 친화도 까지 보통이 아닌 모양이더군요. 유리아님이 그렇게 까지 도움을 요청하실 정도라면.."

"어허, 초짜배기가 친화력만 높다고 어디 죄다 정령을 소환할 수 있던가. 정령이란 하급 정령부터 동화해가며 천천히 상위 정령과 계약할 수밖에 없다는 상식을 잊은 겐가?"

콘대의 말에 다른 장로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화, 확실히 그렇군요."

"명심하게, 변하는 건 없어, 우리는 반드시 유리아를 신목의 성자님의 곁에 데려다 놓으면 되는 일일세."

그의 눈이 위험하게 빛났다.

"되도록 정중하게 말이야. 그 과정을 방해받을 수야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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