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366화 (365/1,559)

제 366화

어두운 곳에서의 대화는 일순간 끊어졌다.

네 명의 질병 관리단 의회원과 관련 귀족들은 자신들의 말에 불쑥 끼어든 불청객의 존재에 눈을 부릅뜨고 파르르 떨었다.

자신들의 대화가 새어나갈 시 절대 좋은 꼴을 못 보리라는 것을 본인들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었다.

“누, 누구냐!!”

기겁하며 소리치는 발티스 백작의 외침과 동시에 네 명의 귀족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예장검을 빠르게 뽑아 들었다.

스르륵……

하지만 무학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그들에게 어둠 속에 녹아든 인영을 찾아 구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어, 어어!”

주변은 불이 꺼진 것처럼 완전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사, 살수다! 살수로구나!”

그제야 자신들이 느끼는 이 본능적인 위기감이 무엇인지 깨달은 류티스마 자작이 버럭 소리 질렀다.

스릉……

동시에 어둠의 고요한 허공 속에서 섬뜩한 쇠 울림소리가 들려왔다.

“으, 으아아아악!!!”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 결국 패닉 상태에 빠진 귀족, 포플리스 후작이 사방에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 이놈! 물렀거라! 내가 누군 줄 알고!”

“으, 으악! 포플리스 후작 거, 검을 아무렇게나 휘두…… 커헉!!”

피아 구분 없이 휘둘러지는 검에 당할뻔한 다른 귀족들이 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패닉 상태에 빠진 포플리스 후작의 검에는 제동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큰 비명이 울려 퍼지며 뜨거운 무언가가 튀었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포플리스 후작이 바들바들 떨며 한발 두발 물러났다.

스르르륵……

동시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어둠이 서서히 걷히며 주변의 상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바닥에 주저앉아 덜덜 떨고 있는 류티스마 자작과 겔리만 백작 그리고 어깨에 검을 관통당한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발티스 백작이 있었다.

“바, 발티스 백작……”

“끄윽……”

그제야 자신의 검이 침입자가 아닌 발티스 백작을 찔렀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가 화들짝 놀라며 한발 두발 물러났다.

빠악!!

하지만, 그렇게 물러나던 그의 뒤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그의 오금을 걷어차 버렸다.

쿠당탕!!!

처참한 소리와 함께 바닥을 뒹군 그는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이를 확인하기 위해 급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의 시야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누구냐!! 치졸하게 숨지 말고 모습을 드러내라!”

모습을 드러낼 리가 있나.

어둑어둑한 실내 천막은 분명 좁은 장소였다. 어딘가에 누군가가 숨기엔 너무 부적절한 곳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침입자는 어떤 흔적도 보여주지 않았다.

오로지 이 네 사람을 공포로 몰아넣겠다는 듯 시시각각 날카로운 살기를 보내왔다.

“도, 도망치시오! 밖으로!”

그제야 자신들이 있는 이 어둠이 천막 밖으로 향하면 해결되는 일이라는 간단한 사실을 인지한 류티스마 자작이 먼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뒤도 보지 않고 천막 밖으로 도망쳤다.

스르릉……

하지만 그는 결국 빛을 보지 못했다.

천막의 입구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새카만 연기 같은 것이 한번 흩날리더니 동시에 그의 다리에서 감각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꾸억!!”

꼴사납게 쓰러진 그는 그제야 자신들의 목숨줄이 모조리 저 살수의 손에 걸렸다는 끔찍한 판단을 내렸다.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다.

“대, 대체 왜 이러는 겐가! 누구인지 모습이라도 드러내 주게! 얼마인가! 그래! 의뢰자의 두 배를 주지! 아니! 세 배…… 네 배를 주겠네!”

뻔한 협상이지만, 사실상 암살자들에겐 어떤 의미로는 가장 잘 먹히는 제안이었다,

물론,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말이다.

“네 배라……”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를 그 목소리가 아주 짧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했다.

“내가 볼 때 당신들은 그만한 대가를 치를 능력이 없어.”

번쩍!!

동시에 순간 은빛이 번뜩이며, 네 명의 귀족들은 자신의 육신이 제어를 벗어나 멋대로 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암살자도 그 정도로 인간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진 않아.”

싸늘한 목소리가 선고하듯 이어졌다.

어둠 속에서 검은 무복을 입은 한 여성이 언 듯 보인 듯싶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새카만 무언가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안개화되어 그녀를 보호하듯 지키고 있었다.

‘어두운…… 엘……프……’

“단언컨대 네놈들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다.”

* * *

“이게…… 다 무엇입니까?”

“베트로 버섯입니다.”

“아…… 예, 그건 알고 있습니다만……, 그게 뭐가 문제라도……”

의아한 듯 나를 보는 고르네오 남작의 질문에 나는 바짝 마른 버섯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남작님.”

“예……. 왕자님.”

“이거 독버섯이에요.”

내 말에 그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예?”

그리고 가장 깔끔한 반응을 보였다. 머리의 사고가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그, 그럴 리가요. 베트로 버섯은 오래전부터 이 지방에서 유행해온 유명한 명물입니다. 이 일대 요스크 강의 특이한 생태조건으로 인해 자생하는 버섯으로 맛이 기가 막히죠.”

“아…… 예. 맛이 좋은 건 먹어봐서 압니다.”

“실제로 오랜 시간 이곳 주민들은 그 버섯을 먹어왔습니다만……, 그게 독버섯이라고요?”

“뭐, 맛 자체는 좋아요. 문제는 이게 다른 무언가와 섞이면 치명적인 맹독이 된다는 겁니다.”

기생충 내부에 숨은 병균과,

베트로 버섯이 만나 두 가지가 하나로 뒤섞이고, 그것이 끔찍한 질병을 만들어냈다.

“운이 없었어요. 이곳 사람들은.”

아마 평생 버섯을 먹고 싶은 대로 먹고살아도 이것 때문에 문제가 생기진 않았을 겁니다.

내 말에 그가 침음성을 흘렸다.

“세상에…… 주식으로 먹던 버섯이…… 독버섯이었다니……”

“별로 좋은 일은 아니죠. 원래 위험한 사냥꾼일수록 은밀하게 사냥감을 노리니까요.”

버섯도 어떤 의미로는 균의 일종이다.

마냥 맹신하는 게 옳은 일은 아니리라.

고르네오 남작 이외에도 그와 뜻을 함께하는 의원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버섯을 바라보았다.

“믿기 힘들면 직접 보여드릴게요.”

담담하게 말한 내가 버섯을 가볍게 북북 찢어냈다.

그리고는 페니실린 수석연구원을 바라보자 그가 굳은 얼굴로 항원 샘플을 내게 건네주었다.

“두 가지 요소가 위에서 소화되지 않고 만나면 치명적인 독연을 만들어냅니다. 백흑담은 공기 중으로 전염되는 게 아니라 타액이나 혈액을 통해 감염됩니다. 실질적으로 보균자와 입을 맞췄다는 이유로 감염된 사례도 제법 있죠.”

내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시험관에 항원을 담은 시험용액을 뿌린 나는 그 버섯을 가볍게 담근 뒤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치익……

아주 미약하지만 새카만 연기 같은 것이 주변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흐읍!”

“세, 세상에……”

워낙에 미약한 양이라 크게 위험하진 않았지만 이게 체내에서 퍼졌다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허, 허면 당장 이 일대 구역을 통과하는 중앙센터에 연통을 날려 이 사실을 알려야겠군요.”

벌떡 일어난 한 의원의 말에 대부분 동의했다.

“어차피 민물고기 자나르의 기생충이 원흉인 것을 알린 뒤로 추가감염자는 속속히 줄어들고 있어요. 중요한 건 이놈의 치료법입니다.”

“흐음……”

그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하, 하지만 치료법을 알기 위해선 장기간의 시간이……”

“시간이 왜 필요합니까. 원인을 찾았으면 재빨리 치료해야지요.”

당신들의 앞에 있는 나는 이미 이 병을 치료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니까.

“베트로 버섯이 원흉이었으면 차라리 운이 좋았습니다. 다른 이유였으면 못해도 몇 주는 더 끙끙 앓았을 테니까요. 고르네오 남작님.”

내 부름에 그가 벌떡 일어났다.

“시켜만 주십시오. 직접 나가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겠습니다.”

“기사들을 시켜서 수박을 대량 공수해주세요. 거참……, 다른 재료는 다 있는 데 설마 과일이 필요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수, 수박 말입니까?”

“독소제거엔 역시 과일이죠.”

내 말에 그들은 더 의심할 것도 없이 빠르게 움직였다.

어차피 지금 나를 의심한다고 해서 병자들의 병이 낫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들이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 * *

며칠이 지났다.

모두가 긴장하고 있는 표정을 지은 채 치료소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이번 약이 효과가 있냐에 따라 이 끔찍한 질병을 이겨낼 방법을 찾는 것이다.

갈피도 잡지 못하고 있던 그들에겐 이번 시도는 굉장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이 일을 주도한 나는 느긋한 표정이었다.

이 병을 치료한 횟수는 네 자릿수가 넘었다.

어지간한 사태에 대비해보았고, 내가 생각지도 못한 뒤통수도 여러 번 맞아보았다.

그런 경험에서 추측하건대.

티오니스 대륙의 병은 사실 애들 장난 수준이나 다름없었다.

역시 신의 축복을 받은 대륙.

대륙 곳곳에 마나가 풍부할 때부터 알아본 일이지만 정말 티오니스 대륙은 신의 축복을 받은 땅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사, 사라지고 있습니다! 차도가 있어요!!”

환자의 눈에 시뻘건 핏줄이 사라지고 망막에 서린 흐릿한 것들이 조금씩 걷히기 시작한다.

효과가 이렇게 단번에 드러날 리 없지만.

나는 의원이면서도 신성 마법을 쓰는 성자다.

병에는 신성 마법이 먹히지 않는다 할지라도.

약의 효과를 증폭시키는 데엔 충분하다.

손가락 끝에 라이트 마법을 붙이고 환자의 동공을 확인한 나는 약이 제대로 차도가 있음을 확신했다.

“됐어!! 이거면 모두를 살릴 수 있다!!”

“우와아아아아!!”

치료소에서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것도 잊었는지 서로 얼싸안고 좋아하는 의원들의 모습에 나는 문득 이 사태에 별로 관심도 없어 보였던, 아니 사태가 악화하기만을 바라는 눈치를 가지고 있던 몇몇 귀족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류티스마 자작을 필두로 한 몇몇 귀족들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들이야 있건 없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작자들이었으니 말이다.

서로 얼싸안고 기뻐하던 고르네오 남작이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손을 꼭 잡으며 좋아했다.

“역시 대단하시오! 데이비 왕자께서는 정말 대단하시다 이 말입니다!!”

“제가 한 건 별로 없습니다.”

“아니오! 죽어가던 환자를 손 대중 감각으로 수술하여 살리신 것부터 빠른 대처와 원인 파악! 그리고 이렇게 단시간에 차도를 보이는 약재까지! 당신은 이곳의 수많은 사람을 구한 진짜 영웅이외다!”

어찌나 기뻐하는지 그의 외침에 나는 아니라고 말했지만, 속으론 비릿한 미소만을 지어 보였다.

당연하지. 누가 끼어든 치료현장인데.

이 정도로 끝나지 않으면 이쪽에서 섭할 지경이렷다.

그때였다.

“윽?”

갑작스런 현기증이 밀려오자 나는 서 있던 채로 그대로 비틀거렸다.

“데, 데이비 왕자님!!”

그 모습에 깜짝 놀란 고르네오 남작이 나를 붙잡고 소리쳤다.

동시에 내 주머니 속에서 상황을 몰래 지켜보던 페르세르크가 급히 몸을 본래 모습으로 돌리며 나를 안아 들고 무어라 소리쳤다.

하지만.

나는 육신의 구조가 뒤틀리는 느낌과 함께 의식이 다른 곳으로 튕겨 나갔다.

그곳에서 본 것은,

급하디급한 주신의 메시지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