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8화
쿵!
반사적으로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친 프란시스는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뜬 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 아아아……”
덜덜 떨리는 손은 그의 의지를 벗어나 어김없이 학술서의 내용을 짚고, 또 짚었다.
“세상에…… 세상에……”
무엇이 그리 믿기지 않는지 그는 연신 ‘세상에’라는 말만 반복하며 허겁지겁 학술서를 모두 훑었다.
그리고는 마치 홀린 사람처럼 낙서가 된 설계도를 보고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멍한 얼굴로 주저앉아 테이블 위에 놓인 설계도를 잡아당긴 그는 바닥에 떨어진 설계도를 미친 사람처럼 훑었다.
“놀라워…… 놀라워!!”
거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 끝에 그가 벌떡 일어났다.
놀라운 일이라 생각하는 프란시스였다.
그는 본래 이 격리구역에 들어올 이유가 없었다.
수많은 갈래로 나누어진 연금학파에서 그는 골렘학파의 중요 장로 중 한 사람이었다.
골렘학파 중에서도 그는 묵직하고 각진 골렘보다는 인공적으로 자아를 가진 인간,
즉, 금기와 금기가 아닌 것의 아슬아슬한 선 안에서 완벽한 인공적인 생명을 만들어내는 것에 평생을 바쳐 연구해온 이이기도 했다.
실제로 연금학파 내에 존재하는 골렘 학계에서 그가 내놓은 수많은 논문은 단순히 환상으로만 치부되던 인공지능 골렘에 관해 수많은 업적을 남긴 바 있었다.
인형의 아버지.
인형사 프란시스.
학계에선 그를 그리 부르며 어떤 이는 인형에 미친 이라 부르며 시기하거나 새로운 계통을 개척해낸 놀라운 연금술사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과 매우 흡사하지만, 연금술사의 금기를 어기지 않는,
신검 칼디라스처럼 자아를 손에 넣은 사람과 흡사한 골렘을 만드는 것.
그 관점에서 이미 금기를 범한 것이나 다름없지만, 그 누구도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
그는 적어도 생체 골렘을 연구해온 연금술사이지만 가장 중요한 목적인 탄생과 수명에 관해서는 일절 손을 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수석연구원 페니실린은 그런 프란시스에게 정말 매력적인 연구 인재였다.
인체학을 전공한 연금술사인 페니실린은 엉뚱하고 기발한 발상을 자주 하기로 유명했는데 학계의 특성상 인체학 전공의 연금술사와 마주칠 일이 많았던 프란시스는 페니실린의 그런 재능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가 생체 인형의 연구에 제대로 몰두하게 되면 엄청난 무언가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페니실린은 그를 돕는다 할지라도 어느 정도 선을 그어놓고 최소한의 것만 제공할 뿐, 그 이상을 나서지는 않았다.
오늘도 당연히 자신을 피해 도망치듯 이곳으로 온 페니실린에게 자신이 몇 년간 고심해 만든 설계도를 보고 코멘트를 남겨달라는 이유로 찾아온 것이었다.
우물쭈물 피하려 드는 그의 행동에 조급함이 들었지만, 그는 신중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학계 내에 그를 따르는 연구 랩에서 올라온 보고를 확인하고 돌아온 그가 본 것은,
그가 수십 년간 노력해온 고정관념과 몇 년간 고생해서 만든 설계도에 대해 근본적으로 부정하게 하는 몇 마디 글자들이었다.
심드렁하게 쓰인 코멘트.
그리고 성의 없이 그어진 체크표.
모르는 이가 봤다면 당장에 이 귀한 설계도에 무슨 짓을 했냐고, 이게 돈으로 얼마짜린 줄은 아느냐고 격노했겠지만.
그는 분노하지 않았다.
오히려.
“음? 프란시스 장로님 왜 바닥에……”
덥썩!!
뒤이어 고르네오 남작을 도와 필요한 약품 지원을 하고 돌아온 페니실린이 바닥에 주저앉아있던 프란시스에게 말을 걸다 움찔거렸다.
마치 광인처럼 그를 올려다본 프란시스가 거의 먹이를 노린 맹수처럼 달려들어 그의 양팔을 부여잡은 것이다.
“놔, 놔주십시오! 저는 남색은 취향에 없습니다!”
“이보게 페니실린! 정말 자네는 대단해! 내 눈은 역시 틀리지 않았어! 자네는 정말 신이 내린 천재야!”
격하게 반응하는 그 모습에 당황스러워하던 페니실린이 움찔거렸다.
그리고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예? 그게 무슨……”
멍한 얼굴로 중얼거린 그가 곧 바닥에 떨어진 설계도에 시선을 돌렸다.
“세상에! 누가 저 귀하고 비싼 설계도에 낙서를……”
“낙서라니! 당치도 않아! 이건 혁명일세! 놀라운 견해야! 내 오랜 시간 이 학계에서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해왔지만 이런 역발상은 세상 처음일세! 고정관념이 근본부터 뒤틀렸다 이 말이야! 알겠는가?!”
“아…… 예.”
떨떠름하게 대답한 페니실린을 보며 프란시스는 거의 광인처럼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자네! 나와 함께 가세! 자네만 도와준다면 정말 우리는 역사에 길이 남을 대역작을 만들 수 있을걸세!”
“이, 이것 좀 놓으십시오. 장로님!”
“페니실린! 자네가 원하는 건 모두 주겠네! 대신 자네의 지식을……”
“아니 대체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장로님!”
결국, 참다못한 페니실린이 억지로 그의 손을 떼어냈다.
“대체 장로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
“이 코멘트! 이 지적! 그리고 놀라운 이 견해들! 내가 자네에게 부탁한 것들이지 않은가! 자네에게 맡겨두었던 것이고! 자네는 그 짧은 시간 안에 내가 만든 이론과 설계도의 문제점, 그리고 보완점을 모조리 찾아내고 지적했네! 이게 정말 놀라운……”
“그거…… 제가 아닌데요?”
그 말에 프란시스의 움직임이 멎었다.
“뭐라?”
“누가 했고 자시고……, 그 설계도…… 장로님이 가져오신 것이지 않습니까. 저도 장로님이 떠난 직후에 곧바로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럼……, 그럼 이건 누가……”
기겁한 얼굴로 그가 부들부들 떨었다.
“그럼 누가 이 같은 놀라운 견해를 남겨놓고 사라졌단 말인가! 말해보게! 자네 천막에 들어와서 이런 지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적고 갈만한 사람이……”
“글쎄요……. 솔직히 제 천막은 도움이 필요한 분은 누구든 들어오라고 했습니다만……”
담담하게 중얼거린 그가 천천히 걸어나갔다.
그리고 천막 입구를 지키고 있던 질병 관리단의 평기사에게 물었다.
“기사님. 혹 저와 프란시스 장로님 이외에 이곳에 들린 분이 계십니까?”
그 말에 무표정으로 입구를 지키고 있던 기사는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니요. 데이비 왕자님…… 음 맞나? 갑자기 모습이 변해버리셔서 저도 헷갈리네요. 어쨌건 데이비 왕자님이 아까 들리셨던 것 이외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데이비 왕자님이 떠나신 것도 수석연구원님이 자리를 비우고 몇 분 안 돼서 금방 나가셨구요.”
그 말에 페니실린은 벤시가 곡할 노릇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벤시가 곡할 노릇입니다. 장로님.”
그 말에 프란시스가 눈을 크게 떴다.
“잠깐. 자네, 방금 누가 왔다고 하지 않았나.”
“데이비 왕자님이요? 아, 예 오셨죠. 저와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모르십니까? 요즘 대륙 최고의 영향력을 자랑하는 왕자님이잖습니까. 게다가 이곳 격리구역에 만연한 지독한 병을 무슨 옆집 친구 감기마냥 때려잡으신 분이고요. 성자로 유명한 분입니다.”
“그런……”
“솔직히 장로님은 인형제작에만 몰두하시니 세상 소식을 너무 등한시하시네요. 스승님의 얼굴을 봐서라도 몸 관리는 하셔야지요.”
그런 잔소리에 평소라면 쓸데없이 기어오르지 말라며 타박했을 프란시스였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른 곳에 미쳐있었다.
“그다……. 그가 분명해.”
이윽고 그가 눈을 번뜩이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홀린 사람처럼 뛰어나갔다.
“데, 데이비 왕자!!! 데이비 왕자아아아!”
진중한 성격의 프란시스가 저토록 허둥지둥거리는 모습을 보는 것도 퍽 우스운 일이라 생각하는 페니실린이었다.
“허…… 거참……뭐 잘못 드셨나?”
* * *
“신은 세상을 만드시고.”
고요한 지하 통로로 자박자박하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은 생명을 잉태한다.”
담담한 중얼거림 끝에 통로 속에서 누군가의 신음 같은 것이 들려왔다.
우웅……
동시에 옅은 빛이 사방에 감돌며 목소리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름 아닌 내 발소리였다.
“생명은 서로 나뉘어 독자적으로 진화하고 발전하여.”
자박……자박……
“으으……으으읍……”
“으읍……”
“공생하고 발전하여 진화하리라.”
담담한 목소리와 함께 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 구절이 어디서 나온 건지는 알고 있나?”
담담한 질문에 신음소리가 격하게 들려왔다.
“류티스마 자작.”
내 부름에 빛 너머로 팔다리가 묶이고, 입이 천으로 묶여있는 사내가 두려운 눈으로 나를 보는 게 보였다.
-데이비, 폼 잡는 건 굳이 필요할까?
‘……넌 좀 조용히 해 봐. 콱 씨! 뿔에 접착제 발라서 붙여놓기 전에.’
페르세르크의 장난기 어린 의념에 괜히 분위기가 식어버리자 내가 불평하듯 전음으로 되받아쳤다.
그리고는 짧게 헛기침을 두어 번 한 뒤 다시 스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성경의 첫 장. 창세기 1절의 내용이다.”
담담하게 말한 내가 빙그레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화르륵!
“끄읍!!”
동시에 틀어막혀있던 사내들의 입이 한순간에 자유를 되찾았다.
“흐윽! 이, 이 보십시오. 데이비 왕자!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 겝니까!”
“마, 맞소! 우리 말로…… 말로 합시다. 예?”
이렇게까지 상황판단 못 할 이들이었다면 지금까지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충분히 상황판단 못 하고 날뛰다가 이 꼴이 난 것일 테지만 말이다.
암살자에게 제압당해 이 정체 모를 지하로 끌려들어 온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공포뿐이었다.
이곳에선 누가 죽어 나가도 모를 것처럼 은밀함만이 감돌았고, 당장 그들을 구해줄 이도 없었으니 말이다.
“제법 따르는 사병들이 많던데.”
내 말에 류티스마 자작이 움찔거렸다.
“말해보지. 류티스마 자작. 그들에게 무엇을 시켰나.”
내 물음에 그가 부들부들 떨었다.
촤악!!!
“끄아아아악!!!!”
동시에 붉은 잔상이 번뜩이며 그의 손가락 두어 개가 잘려나가자 그는 비명을 지르고 바닥을 뒹굴었다.
그 참혹한 모습에 곁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남성들은 기겁하며 벽을 파헤칠 듯 발버둥을 쳤다.
섬뜩한 살기에 놀란 탓일까.
내가 걸어둔 탈모의 저주에 머리가 원 형태로 빠져버린 겔리만 백작은 오줌까지 지리며 벌벌 떨었다.
“대답해보지 그러나.”
심드렁한 내 물음에 내 곁에 있던 륀느가 손등에 포신과도 같은 것을 만들어낸다.
“데이비님. 다리를 날려?”
“기다려봐.”
“륀느, 매우 조준 실력을 높게 평가. 생명활동 정지의 바로 전까지 아슬아슬하게 조절 가능하다 분석해.”
“기다려.”
“륀느, 기회박탈을 낮게 평가.”
이런 일로 손을 더럽힐 이는 네가 아니야.
내 말에 륀느는 묘하게 불만인 표정으로 물러났다.
“말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아이나.”
내 부름에 검은 어둠 속에서 흑색의 복장을 한 다크 엘프가 스르륵 나타났다.
내게서 숨겠다는 일념 하나로 노력했는지 은신 능력이 이전 이상으로 노련해졌지만.
“제가 여기 있는 게 보여요?”
“네가 그 어둠에 숨어서 무슨 짓을 했는지 읊어주길 바라면 원하는 대로 해줄게.”
“그 입 닥쳐요.”
왜, 잘만하더니.
싸늘하게 말한 그녀가 검을 뽑아 들었다.
“자백은 내 전문이에요.”
그녀의 본직은 암살자, 빛을 등진 그리고 어둠 속성의 정령에게 사랑을 받는 다크 엘프 중에서도 특수한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