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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414화 (413/1,559)

제 414화

130. 절대자의 이름으로

“아, 아아…….”

숨을 헐떡거리며 고통스러워 하던 에오니샤는 필사적으로 내게 손을 뻗어왔다.

“아이…… 내 아이들…….”

“그래, 여기 있다.”

담담하게 포에 쌓인 두 아이를 보여주자 그녀의 눈에 투명한 눈물이 머금어졌다.

그녀의 눈동자에 어린 감정은 감동, 복잡함, 그리고 안도였다.

“거, 건강한가요?”

“그래.”

건강하다 못해 태생부터 마나와 굉장히 친숙한 아이들이었다.

이윽고 나는 그녀에게서 아이들을 다시 빼앗았다.

“아아……”

그러자 에오니샤의 표정이 검게 죽어갔다.

“애들은 나중에 봐! 너 지금 수술 중이다.”

내 말에 그녀는 자신의 상태를 깨달은 듯 침묵했다.

이후 나는 아이들의 이마에 손가락을 올려 가볍게 마나를 불어넣은 뒤 에이리아에게 두 아이를 건네주었다.

“잠시 부탁드릴게요.”

“네! 맡겨주세요!”

발그레해진 얼굴로 에이리아는 두 아이를 끌어안고 헤실거렸다.

“귀, 귀여워.”

‘그러고 보니 이 녀석들, 내 조카구나.’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 내가 조카를 볼 나이는 아니라는 생각이 뇌리에 전반적으로 깔려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놈의 세상은 10년이나 더 흐른 곳이니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에오니샤에게 윈리나 바리스, 타냐에 대한 정보를 물어보진 않았다.

관조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미 세 사람은 이곳에서 살아있지 않을 테니까.

침묵 속에서 나는 다시금 수술을 시작했다.

아이가 무사히 태어났으나 에오니샤는 아직 위험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여건이 나쁠 뿐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었다.

이보다 더한 지옥에서도 사람을 살려보았고, 이보다 더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수술에 성공해본 바 있다.

“하아, 하아. 저 살 수 있나요?”

그녀의 시야에 비친 나는 평범한 인상의 남성이었을 것이다.

눈물을 머금은 얼굴로 힘겹게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은 그녀가 물어왔다.

“아이들……, 아이들을 혼자 둘 순 없어요…….”

힘겹게 부탁하는 그 모습에 나는 에오니샤가 자라고, 그녀가 아이를 낳아 가지게 된 모성에 옅은 감탄을 내비쳤다.

“그럼 딴 생각하지 말고 한숨 푹 자…….”

내 말에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천천히 손에 힘을 풀었다.

* * *

우렁찬 울음을 터뜨린 쌍둥이 남매는 제 어미의 품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는지 포근한 표정으로 그녀의 품에 파고들어 곤히 잠들어있었다.

확실히 친자식이 맞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곤히 잠든 세 사람의 닮은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보통 티오니스 대륙의 문화를 생각하면, 태명을 정하고 출생신고 때 이름을 확정하는 지구와 다르게 태어나자마자 이름을 지어주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나는 두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줄 자격이 없었다.

그건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자격을 가진 건 친모인 에오니샤 단 한 명뿐이니까.

기절한 듯 잠들었지만 평온하게 모습의 에오니샤 표정 때문일까.

촌락민들은 어느 정도 안심한 듯 보였다.

몇몇은 아이를 순산했다는 사실에 안도했고,

몇몇은 생각지도 못한 수술방식으로 아이와 산모를 모두 살렸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하지만,

몇몇은 아이가 무사히 태어났다는 것에 우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유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애초에 이들은 절망한 자들이었다.

관조자가 단언할 정도로 희망을 잃어버린 자들로 새로 태어난 아이가 겪게 될 미래가 참혹할 거라고 단정 짓고 씁쓸해하는 부류였다.

애초에 밀릴 대로 밀려있는 그들인 만큼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이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팽배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은인께 이런 대접밖에 해드리지 못하여……”

노령의 사내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감자를 몇 개 건넸다.

“식량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아서 대접해드릴 수 있는 게 이런 것뿐입니다.”

그는 겉보기엔 추레한 노인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중부왕국의 한 상위 귀족 가의 가주였다는 모양이었다.

자신이 살던 세상과 완전히 달라진, 암울한 미래를 가진 세상이라는 것을 이미 한 차례 들었음에도 에이리아는 노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괴리감을 느끼는 듯 보였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생각지도 못한 세상이었지요. 비록 완전히 평화롭다 할 순 없었지만, 삼 제국의 황제가 발의한 대륙전쟁 금지 법안이 통과되면서 오랜 대륙에 빈번하던 전쟁이 멈춰졌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조용히 침묵했다.

“하지만 평화에 너무 오래 찌든 탓에 대비하지 못하였지요. 평화에 찌들어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 이들은 어둠 속에서 밀고 들어온 마수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내부에서 분열도 일어났겠죠.”

단순히 인간이 대륙전쟁에서 압도적으로 패했다고 보기엔 시간이 너무 빨랐다.

그 이유는 아마 내부분열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족에 빌붙으려는 자들과,

혼란을 틈타 부귀영화를 꿈꿔보려는 허황한 꿈을 꾸는 자들까지.

그런 이들이 들고일어나니 한마음 한뜻으로 뭉친 마족들에게 대항할 수단이 있을 리가 없다.

“예. 맞습니다. 데이비님이라 하셨습니까? 아직 어려 보이는데 정말 혜안이 깊으시군요.”

그가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이곳에는 과거 귀족이었던 자도, 노예였던 자도, 평민이었던 자도 있습니다. 데이비님이 구해주신 에오니샤는 한땐 작은 왕국의 막내 공주님이었지요.”

“그런가요.”

그녀와 나 사이의 접점을 드러낼 순 없었다.

“가엾은 아이지요. 이곳에 모인 모두가 그렇습니다. 아픔을 간직하고 있기에 외부인을 쉽게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쯤 감긴 눈을 끔뻑이며 그가 조심스레 에오니샤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전란이 터지고 제국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제국이 흔들리니 작은 왕국들도 덩달아 흔들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라운왕국이 전란의 불씨에 휘말려 멸망하고 자신의 딸아이를 피신시킨 리네스 왕비의 안배 덕분에 당장 큰 위기를 벗어난 에오니샤는 몇 년간 도망자 신세로 전란을 피해 고된 여정에 올랐다고 한다.

하지만 왕족 출신이었고 육체 단련을 한 적도 없는 그녀가 마족을 피해서 도망쳐봐야 얼마나 도망쳤을까.

결국, 마족 정찰대의 손에 잡혀 기사들이 눈앞에서 처참하게 찢겨 나가 죽는 것을 본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아 실어증에 걸렸고, 그런 상황에서 마족들에게 끌려가 열네 살의 나이에 모진 고초를 겪었다는 모양이었다.

그런 그녀를 구한 것은 다름 아닌 인류 저항군이었다.

린디스 제국의 불여우 대공 카트린느 카라벨라가 이끄는 게릴라 병단이 마족의 전초기지를 습격하고 그곳의 지하감옥에 갇혀 지옥과도 같은 날을 살아가던 에오니샤를 한 젊은 지휘관이 구해주었다.

당시 그녀의 나이 열아홉으로 그녀에게 한눈에 반한 귀족 출신의 젊은 남성은 그녀를 데려와 온기를 나누어주고 사랑을 베풀었다고 한다.

그런 그의 갖은 노력 끝에 에오니샤는 실어증을 극복하고, 자신을 위해 그렇게 애정을 쏟아부어 준 사내와 사랑에 빠졌다.

몇 년 후 그녀는 그 사내와의 결실을 맺었고 뱃속에 자그마한 생명을 품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아이가 생기기가 무섭게 저항군이 완전히 괴멸당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최후의 희망이었던 신검의 주인마저 마족 최대 전력이라는 닉스에게 패배하면서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이다.

사내는 에오니샤를 도망치게 하려고 피난처의 사람들을 모아 야밤에 요새 밖으로 내보냈고.

그것으로 소식은 완전히 끊어졌다.

사로잡혔는지 처형을 당했는지는 알 방법이 없었다.

그저 에오니샤에게 이제 남은 것은 배 속의 두 아이가 전부였다.

[자네 한 명이 있고 없고가 이만한 차이를 불러온 게지. 인간도 무수히 죽었지만, 마족도 가족이 있는 자들이 아닌가. 마족 젊은이들도 남녀 할 것 없이 많이도 죽었다네. 모두가 소중한 생명이거늘, 안타까운 일이로고.]

관조자의 씁쓸한 목소리에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마족을 몰아내고 다시 빛을 찾을 의욕은 없겠네요.”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유일한 희망이 무너져 내렸고 이제 남은 것은 이렇게 숨어 사는 것이 전부이거늘. 인간 생존자는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아마 지금 남은 인간들은 대부분 노예가 되었거나 아직도 부질없는 희망을 붙잡고 저항하고 있는 소수가 전부이겠지요.”

그의 말에 나는 촌락 전체를 감싸고 있는 우울한 분위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

살아남았다. 축복받을 일은 축복받을 일이지만 그래 본들 미래는 변하지 않는다.

이들은 지금, 인간의 멸망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경지까지 와버린 것이다.

“그런 마당에 당신이 나타난 겁니다. 촌락민들은 솔직히 혼란스러울 겁니다. 마족, 그것도 강력한 힘을 가진 마족을 내쫓아버릴 정도의 힘을 가진 인간의 출현이니까요.”

“내가 구세주가 되리라 보십니까?”

내 물음에 그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이 나이를 먹고 늘어난 건 안목뿐이지요.”

담담하게 말한 그가 조용히 물어왔다.

“당신은 엄청난 힘을 소유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당신의 몸에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네, 이전에 들은 바가 있습니다. 너무 압도적으로 강한 존재는 외려 드러나는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담담하게 말한 그가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당신은 인류의 희망이십니까?”

그의 질문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모든 일은 스스로 하는 겁니다.”

“그렇습니까.”

“누군가가 도와주길 하염없이 기다리는 인간들이라면 차라리 깔끔하게 멸망하는 게 나을 겁니다.”

신랄한 독설에 그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그렇겠지요. 하지만 다시 일어서기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지탱할 지지대조차 없는 게 현 세상의 실정 아니겠습니까.”

잠깐 침묵하던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가진바 없는 이들이라지만, 희망을 잃어버렸다 해도 은원을 잊진 않았습니다. 제가 도와드릴 게 있을는지요.”

그의 말에 나는 조용히 손을 펼쳐 보였다.

“이렇게 생긴 물건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건……”

내가 마나로 형체를 만들어낸 것은 작은 목걸이였다.

그것도 조금 특이하게 생긴 보석이 끝에 달린.

“이 촌락민분들 중 한 분이 가지고 있을 겁니다. 꽤 중요한 물건이라서요. 그걸 양도해주세요. 저와 함께 온 사람을 치료할 유일한 수단이거든요.”

내 말에 조용히 침묵하던 그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이내 찻잔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음, 확실히 조금 특이한 문양이라 기억이 나는군요. 그 물건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유리스, 들어와 보거라.”

“왜요? 영감.”

동시에 바깥에서 기다렸다는 듯 활을 등에 멘 여성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허허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인석이 말은 저래도 참 마음씨는 고운 녀석입니다.”

“에이씨, 외부인에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영……”

“네 목걸이가 필요하다고 하신다.”

그의 말에 여성의 표정이 대뜸 찌푸려졌다.

“이게 뭔 소리래?”

그리고는 나를 노려보더니 조용히 경계심을 담아 물었다.

“제 목걸이가 필요하다고요?”

“그래.”

“이게 당신에게 중요하다고?”

경계심과 의심으로 가득 찬 그 질문은 어찌 보면 당연했지만 단순한 우연을 넘어 마치 누군가가 노린듯한 필연적인 상황을 복잡하게 설명할 생각은 없었다.

“겉보기엔 그래 보여도 제법 중요한 물건 이거든.”

내 담담한 답변에 그녀는 말없이 촌장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어주거라. 아무리 없이 살아가도 은혜를 잊는 망나니로 죽어가고 싶은 게냐.”

“아! 누가 뭐래? 그냥 예뻐서 차고 다니던 건데. 이걸로 빚 갚으면 싸게 먹힌 거지, 줘요. 줘! 안 준다고 했나.”

투덜거리면서도 그녀는 목에 걸린 목걸이를 거칠게 뜯어낸 뒤 내게 건넸다.

“자요. 이걸로 뭘 어쩌겠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에오니샤 언니를 도와줬는데 입 싹 씻기도 뭐하니까……”

퉁명스레 중얼거린 그녀는 내가 목걸이를 받지 않고 침묵하고 있자 성큼성큼 다가와 내 손에 목걸이를 얹어 주었다.

그리고는 손을 말아주고는 돌아섰다.

“그런데 그걸 대체 어디 쓰겠다는 건데요?”

“열쇠야.”

오래된 왕고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열쇠.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목걸이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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