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1화
-그우우우우우우…….
온몸이 마그마로 덮어 씌워진 거대한 거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크기는 척 봐도 20미터는 넘어 보이는 사이즈였다.
본래 휴화산이었지만 종양이 지면을 건드리고 화산을 자극함으로써 극도의 불지옥으로 변해버린 이 일대는 슬리지아가 심어둔 종양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각 종양을 지키는 심연의 괴물들도 가득하고 말이다.
대부분의 심연의 생명체들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내 힘이 압도적으로 강해져 있어서인지 금기의 업보를 활성화할 것도 없이 힘으로 찍어눌러 버렸다.
“전신에 용암을 처바르면 피부미용에 도움되던?”
퍼엉!!!!
마치 딱밤을 때려 넣듯 손을 뻗어 머리를 날려버린 나는 머리통을 잃고 서서히 쓰러지는 놈의 거대한 육신을 가볍게 짓밟고 몸을 웅크렸다.
“이것들은 건져낼 파편도 없네.”
처음 닉스와 싸웠을 때 만난 촉수 생명체나, 이후 뱀파이어와의 전쟁에서 봤던 생명체는 캐낼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 모두를 유용하게 사용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놈들은 아무리 봐도 제대로 건질만 한 게 없었다.
무력 수준도 형편없었고, 심연의 힘도 미약했다. 말 그대로 관조자의 표현처럼 신생아 같은 모습이었다.
[대체 그녀는 이 땅에 왜 그런 종양을 심어둔 거지?]
반대로 종양의 경우는 상당한 내구성을 지니고 있었다.
홍단이가 없었다면 상당히 곤욕을 치러야 했을 정도로 말이다.
짧은 시간 안에 나는 수많은 종양을 파괴하고 그것들이 침식하고 있던 지면을 바라보았다.
혹시.
이 아래에 유전이라도 있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 일대 영역에 종양을 저토록 많이 박아놓는 건 말이 안 되는데 싶었다.
목적을 알 수 없기에 일단 닥치는 대로 제거하고 있는 게 전부였다.
[이제 마지막 하나. 이것만 베어버리면 끝날 걸세.]
관조자의 말에 나는 눈앞에 있는 살점 덩어리를 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당히 보기 흉한 살점이 두근두근하며 박동한다.
나는 말없이 그 살점을 노려보다 홍단이를 빠르게 그어 올렸다.
카앙!!!!!
그때였다.
새파란 기검 같은 것이 홍단이의 검로를 막아서더니 그대로 나를 향해 반격까지 가해온 것이다.
생각 이상의 깔끔한 반격에 몇 발자국 물러나 나를 공격해온 존재를 훑어본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거 참 많이도 남아있네.”
내 앞을 막아선 건 새빨간 용암으로 만들어진 갑옷을 입은 기사였다.
그는 용암으로 만들어진 검을 늘어뜨린 채 내가 종양을 베지 못하도록 막아서고 있었다.
[이곳은 지나갈 수…… 없……]
그 목소리에 내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이놈은 대화가 통하는 모양인데요?”
[그렇군. 죽이지 않고 제압해서 목적을 알아낼 필요가 있겠어.]
물론, 묻는다고 답해줄 심연의 생명체가 아니다.
놈들은 하나가 여럿이고 여럿이 하나라는 기괴한 말을 하곤 했으니 말이다.
하이브 마인드.
아마 저런 심연의 괴물들을 유지하는 시스템은 그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볼 뿐이다.
[대화가 되면 더없이 좋겠지만.]
“하게끔 상황을 만들어야지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아공간에 손을 밀어 넣었고 이내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 그게 뭔가?]
“대화 1호입니다.”
기깅…… 기이이이이잉!!!!!!
내 말과 함께 금속으로 만들어진 톱날이 빠르게 회전한다.
대화가 안 통하는 놈에겐 대화를 여는 최고의 아이템, 전기톱이 필요하다.
순식간에 존재감을 흩뿌리며 맹렬하게 회전하는 톱날을 보며 관조자가 핼쑥해진 듯 질린 목소리를 냈다.
[흉악하기 그지없는 무기로군…….]
“효과는 최고일 겁니다.”
가볍게 마나로 겉면을 코팅하여 용암에 녹아내리지 않게 보호한 나는 파르르 떨리는 톱을 한 손으로 잡아 늘어뜨린 뒤 기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기사의 몸이 아주 잠깐 움찔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야.”
이에 내가 비릿하게 웃으며 물었다.
“너 방금 쫄았지?”
“……”
내 물음에도 놈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대답 안 해? 그럼 직접 그 몸에다가 물어보는 수밖에.
나는 순식간에 파고들었다. 놈에게 접근하기 위해선 용암 온도를 어떻게 할 필요가 있다.
보통이라면 그렇게 생각해야겠지만.
나는 용암의 온도 정도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육신을 활성화하고 있다.
단순 무식하게 놈의 육신에 손을 뻗어 맨손으로 틀어잡고 다리를 걸어 넘어뜨려 버린 나는 내 머리통을 날려버리기 위해 휘둘러지는 용암으로 만들어진 오러블레이드를 왼손으로 쳐내버렸다.
마치 금강불괴라도 발현된 듯 내 손목을 후려친 검이 오히려 튕겨 나가는 기괴한 현상이 벌어진다.
“아, 뭐 말하지 않아도 돼. 조금만 즐기자고.”
기잉!! 기이이이이잉!!!!!
내 오른손에 쥐어진 대화 1호가 맹렬하게 회전하며 제 존재감을 드러내자 갑옷 기사의 검은 눈이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리…… 는…… 하나……]
“니들이 하나로 뭉치는 건 나도 알고,”
[초월의 의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라!”
기이잉!!! 카앙!
그 말과 함께 놈의 한쪽 팔을 전기톱으로 잘라버리자 놈이 몸을 바들바들 떨며 버둥거려댔다.
슬리지아가 만들어놓은 마지막 흔적이다.
그나마 대화가 통하니 이렇게라도 하지 그게 아니었다면 잽싸게 베어버렸으리라.
“슬리지아가 너희들을 이곳에 보낸 이유는?”
내 물음에 그는 답하지 않았다.
카아앙!!
동시에 그의 다리 한 짝이 날아간다.
“다음부터는 발가락부터 서서히 갈아서 잘라낼 거다.”
어차피 안 죽잖아? 안 그래?
내 미소에 기사의 몸이 또 한차례 파르르 진동한다. 하지만 아직까진 말하지 않았다.
“무서워하지 마. 나 그렇게 무서운 사람 아니야.”
빙그레 웃으며 부드럽게 말하는데 안광이 더욱 크게 떨리기 시작했다.
기이이이이잉!!!
동시에 맹렬한 기세를 내뿜던 전기톱이 놈의 육신을 또 자르기 위해 움직이자 놈이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 그아아아아!! 그아아!!]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던 놈이 이상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연막! 자,잠식! 시,식량!]
당최 뭔 소린지 알아먹을 수가 있나.
격하게 소리 지르는 심연의 기사를 깔고 앉은 채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나는 문득 그의 기세가 한순간에 변하자 그대로 몸을 튕겨 벗어났다.
동시에 방금까지 바들바들 떨며 격변하던 기사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갑옷 이음새 사이사이에서 거대한 촉수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며 그 육신이 더욱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어머나, 여길 어떻게 찾았데?”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슬리지아의 목소리였다.
이에 내가 반쯤 박살이 난 기사의 육신을 보며 물었다.
“적당히 싸지르고 다녀야 눈치를 못 채지 이렇게 대놓고 영역 표시를 하면 모를 수가 있나.”
“벌레답게 그 주둥이가 천박한 건 여전하구나?”
마치 장난기 가득한 아이처럼 그녀가 키득거렸다.
육신은 그녀가 아니지만, 정신은 현재 그녀의 제어하에 놓여있었다.
“뭐, 솔직히 네가 내 종양을 찾아낼 거라곤 생각지 못했어. 덕분에 조금 돌아가야겠지만, 이것도 나쁘진 않네.”
깔깔 웃어 보인 그녀가 섬뜩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제법이더라. 설마 그렇게까지 우스꽝스럽게 저항해올 줄 몰랐거든. 나약한 존재가 말이야.”
“……”
그녀는 나를 한껏 비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렇게 된 거 상으로 한가지 진실을 말해줄게.”
“넌 대체 뭐냐?”
솔직히 궁금하긴 했었다.
심연의 공주가 대체 뭐하는 존재들인가 하고 말이다.
그런 내 질문에 슬리지아는 흥미가 동했는지 짧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구나. 너희 벌레들은 우리 존재를 이해하기 힘들겠구나.”
“그건 내가 판단하니까 입이나 놀려보시지.”
죽일 때 죽더라도 협조적으로 정보를 불어준다는데 건드릴 순 없다.
내 말에 그녀는 생각보다 놀라운 사실을 내게 건네주었다.
“뭐, 본래라면 내가 죽이려고 했지만, 그곳에 간 이상 아까워도 별수 없네. 어차피 넌 거기서 죽을 테니까.”
“그건 내가 판단하고.”
“네 앞에 있는 그 기사가 뭔지 모르는구나? 하긴 그걸 알면 그렇게 여유롭지도 못할 거야. 아! 그래. 어차피 죽을 목숨, 선물로 궁금증이나 풀어주도록 할게. 나도 마침 심심했거든.”
그곳에 있는 종양은 말이야.
네 말대로 일종의 영역 표시야.
그녀의 말은 조금 놀라웠다.
심연은 닥치는 대로 세상을 찾아 잡아먹으며 자신들의 힘을 키워나간다. 그리고 그렇게 타 차원까지 넘어가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슬리지아의 힘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녀가 이렇게 세상을 찾아내고 도달하여 잠식을 시작하면 그곳과 심연 사이엔 아주 미약한 통로가 생긴다. 그것으로 심연의 존재들이 눈독을 들이고 들이닥치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티오니스, 룩스 대륙, 유르기안, 베르델, 지구까지 그 외에 수많은 세상.
이미 슬리지아는 수많은 세상에 그녀의 영역 표시를 남겨놓았고 심연의 생명체들은 그녀가 만들어놓은 길을 따라 움직인다.
“그러니까.”
그녀의 말을 듣고 난 나는 변화하는 괴물을 보며 중얼거렸다.
“결론은 너를 쳐 죽이면 심연의 존재가 더는 다른 세상으로 못 넘어온다는 거 아냐.”
이건 개이득인 부분이 아니던가.
“꺄하하하하하하! 너 정말 재밌구나? 그래. 뭐 내가 죽으면 그렇게 되겠지.”
담담하게 말한 그녀의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런데 심연의 공주 사이에서도 상위 존재인 나를 네까짓 벌레가 헤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고작 눈앞에 있는 아이도 처리 못 할 것처럼 보이는데.”
거대한 촉수에 둘러싸인 기사는 곧이어 빠르게 변태를 시작했고 이내 내 눈앞에서 종양과 합쳐지며 하반신이 땅속에 박힌듯한 거대한 덩치의 괴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 그아아아아아!!]
[우리는…… 하나……]
[하나는…… 우리 모두……]
정체 모를 목소리로 주변을 침식하며 변화를 시작하는 놈들의 모습은 겉보기에도 고통스러워 보일 만큼 끔찍했다.
콰앙!!! 쾅!!!
그 위풍당당한 변신장면에 나는 말없이 청단이와 홍단이를 다시 뽑아 들었고.
묵묵히 그 변신장면을 보다 한발 내디뎠다.
나는 변신장면을 기다려주는 매너플레이 따위 모른다.
“뭐, 아쉽지만 넌 거기서 죽을 수밖에 없겠는걸?”
“정리해야지 죽긴 왜 죽어.”
“정리? 아하하하하 거길 정리한다고? 반경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공간을 통째로 날릴 힘도 없는 빈약한 인간이? 게다가 네 앞에 있는 그 아이가 어떤 존재인지 모르니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이미 마족 본대는 전면전을 위해 요새로 오고 있다.
나는 변화를 하는 괴물을 향해 한 손을 뻗었고 이내 그대로 마나를 끌어 올렸다.
동시에 주변의 마그마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온의 푸른 화염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마그마 지대에 산다고 불에 면역이 있는 건 아니거든.
[9서클 역회전]
[8서클 폭염계]
[프로메테우스]
8서클의 프로메테우스의 규칙을 뒤틀어 역회전 마법으로 바꾼다. 그래 그 크기 제법 거대하신 듯합니다만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보자.
변신 중에 공격하지 않는 건 멍청이나 하는 짓이다.
이윽고 내 손에서 일렁이는 화염이 이내 벼락처럼 날카롭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나의 폭탄이다. 대 행성 폭발을 모방한 초소형 폭발, 그 모형은 초신성의 대폭발에서 따왔다.
닿는 즉시 지옥을 보여주리라.
[하이퍼 노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