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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436화 (435/1,559)

제 436화

에이리아 알 린디스.

그녀는 전면전이 시작되고부터 머릿속을 감싸는 울렁증에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대체 왜 이러는지에 대해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정체 모를 무언가가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대체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야?”

아마 대부분이 같은 생각일 것이다.

요새를 지키고 있던 저항군들은 모두가 같은 의견인 듯 보였다.

단 한 명의 인간이 만들어놓은 결과는 도저히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범위의 것이었으니 말이다.

처음 그가 토병을 돌려보냈을 때.

저항군 소속의 병사들은 모두가 직감했다.

아, 이제 죽었구나.

그런 마당에 신도 무심하게, 적들은 본 병력을 모조리 이끌고 진군해오지 않았던가.

모두가 죽음을 직감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저항군의 사령관 유리나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바쳐 저항군의 퇴각시간을 벌어주고자 했다.

그런 그녀를 아무렇지도 않게 제압해버린 것은 소년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었다.

소년의 머리는 정말 비상하고 그의 무력을 담당하는 토병은 강했다고.

모두가 그에게 고마워하고 있지만, 그의 갑작스런 변덕은 모두를 혼란스럽게 했다.

“누가 변덕이라고 했냐.”

헬버드를 지팡이 삼아 쥐고 있던 한 노령의 병사가 중얼거렸다.

그랬다.

변덕이 아니었다.

그는 단신으로 토병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애초에 신의 군세라 불리던 토병들이 그를 그리 부르지 않았던가.

위대한 지배자라고.

저항군이 절망을 겪고 있을 그즈음 홀연히 나타나 인간에게 희망을 안겨준 소년.

과연 그는 정말 사람이 맞는 것일까.

“이건…… 이건 신의 기적이야……”

“설마 데이비 저 사람이……”

모두가 굳은 얼굴로 한가지 현실을 직감했다.

그 어떤 생명체도 일검에 대지평선을 가르지는 못한다.

그 어떤 존재도 하늘에서 쏟아지는 거대한 폭음과 뇌운을 쉽게 다루지 못하고 그 누구도 신의 상징인 저 문양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 어떤 존재도…….

하늘에서 어마어마한 운석을 떨어뜨리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 일검에 수십만이나 되는 마족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 적이 없다!

무신.

혹은 파괴의 신.

정말 그는 신이었던 것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 저항군은 소년이 데려왔던 소녀가 눈에 보였다.

정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아름다운 수인 소녀였다.

소년이 신이라면…….

“설마 여신님…….”

“어쩐지…… 생명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끼시고 눈물을…….”

인간을 가엽게 여긴 신께서 드디어!

저항군은 의도하지 않게 에이리아를 마치 신성시하듯 바라보았다.

정작 그런 시선을 받는 에이리아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착각이 불러온 상황이지만 에이리아는 그런 것을 판단할 정신이 아니었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으니 말이다.

‘으읏……’

한 손으로 성벽을 짚고 몸을 웅크린 에이리아는 지독한 통증에 귀를 파르르 떨었다.

대체 왜 갑자기 이런 고통이 찾아오는 것인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고통에 절로 눈물이 쏙 빠질 만큼 정신이 아찔했다.

그러면서도 몸은 어째서인지 계속해서 성벽의 바깥을 보려 애썼다.

머리는 이해가 안 되는데 몸이 움직이는 신기한 경험.

다만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자신은 반드시 죽을 거라는 두려움이었다.

본능적인 감이 그렇게 외쳐대는 상황임에도 에이리아는 이를 악물고 견뎌냈다.

자신이 아픈 것으로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했던 과거의 성격이, 기억이 돌아오지 않아도 다시 습관처럼 머리를 들이민 것이다.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길 줄 모르는 마음가짐은 그 여파가 컸다.

데이비 왕자는 분명 이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다. 이 정체불명의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녀와 같은 고향 사람이며, 언제고 그녀를 지켜주고 웃어주던 따스한 성품의 사람이었다.

이곳의 사람들과 자신을 지키기 위해 지금도 검을 들고 홀로 나섰건만.

그녀는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아무것도 하는 게 없었다.

“뭐라도…… 해야……”

쥐어짜 내듯 중얼거린 그녀가 한발 내디뎠다.

거의 본능적으로 성벽 아래로 내려가 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움직이려던 찰나였다.

문득 묘한 향이 그녀의 코를 찔러왔다.

피 냄새 쇠 냄새로 진동하는 이 끔찍한 전장에서 그녀는 성벽의 한쪽에 자라있는 무언가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포근한 느낌을 전해주던 산수유의 향과.

보랏빛 마법진을 펼치며 벼락을 떨어뜨리던 모습.

에이리아는 머릿속에 잠겨있던 무언가가 깨어져 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어째서 잊고 있었는가.

그토록 소중하고 갈망하던 사람과의 첫 만남을 말이다.

저절로 눈물이 흐르는데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걸렸다.

두통은 사라졌다.

그녀를 괴롭게 하던 것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역시…… 당신은 언제고 저를 지켜주세요.’

포근한 향이 그녀를 감싸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목소리가 정형화되진 않았지만 에이리아는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녀의 인생 자체를 뒤집어버릴 법한 큰 결정이었지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 사람이 없었다면 나는 이곳에 없어. 그 사람이 나를 바라봐 주지 않아도 그 사람은 언제고 나를 지켜주었어.

나는…….

짧게 웅얼거린 그녀가 환하게 미소 지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비록 당신의 곁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나는 당신의 곁에 설 수 없겠지만.

당신을 위해서라면 저는 무엇이든 할거에요. 그것이 당신을 언젠가 구원할 수 있다면.

그 결심을 끝으로 에이리아는 자신의 아랫배에 무언가가 고동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스르륵 잠이 들었다.

* * *

어서 와, 방어무시 데미지는 처음이지?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슬리지아의 변형된 거대 육신이 반으로 갈라졌다.

월석 낙하 마법은 기본적인 메테오스트라이크와 다르다.

하나하나가 강대한 힘을 지닌 두 개의 달이 가지고 있는 위성을 떨어뜨린 것이니 말이다.

그런 붉은 달의 힘을 빌려 위성을 낙하시켰으니.

그 위력이야 뻔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하늘을 가를 듯 나아간 거대한 검기는 곧이어 붉은색과 푸른 잔상을 남기며 범위 내에 있는 모든 것을 베어버렸다.

[그으…… 그으으으…….]

기괴한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꿈틀대는 그 거대한 육신을 보며 나는 말없이 침묵했다.

죽지 않고 살아있을 거라곤 생각했지만, 그녀의 모습은 솔직히 놀라웠다.

[우…… 우우…… 우우]

무언가 말하려 하지만 발성 기관이 망가졌는지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반으로 갈라졌던 그녀는 잘려나간 환부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촉수와 살점 덩어리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대체 심연의 공주는 무슨 존재인가.

심연이 비록 지금의 티오니스에 비해 상당히 상성 우위인 것은 맞지만 그래도 심연 또한 또 하나의 이면 세계라 할 수 있다.

티오니스가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지 보통 한 이면 세계가 이렇게 신의 장벽을 뚫고 들어와 수많은 세계에 난장판을 저지를 정도로 강할 순 없다.

하지만 심연의 공주는 울드와 슬리지아 이외에도 여럿이 존재했다.

울드의 동생이라던 베르단데, 그리고 그 외에 아직 모르는 수많은 심연의 공주들.

그렇다면 못해도 이런 괴물이 다수 존재한다는 뜻인데.

이게 절대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쩌적……

이윽고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슬리지아였던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그 안에서 날카로운 칼날이 달린 사슬들이 나를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카앙!!

순식간에 나를 노리고 파고드는 사슬을 쳐내자 상당한 반탄력이 전해져 온다.

청단이와 홍단이가 융합되어 각성상태가 된 초단이의 힘이 워낙에 사기적인 힘인 탓에 베어내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내 힘이 다시 본래대로 돌아가면 이걸 막기가 쉽지 않다는 뜻으로 통한다.

심각한 문제였다.

물리적인 힘과 비물리적인 힘이 뒤섞인 사슬은 끊임없이 나를 공격해 들어왔다.

그 주체는 살점 덩어리가 되어버린 슬리지아이리라.

말없이 그것을 바라보던 나는 이윽고 메가로드리아가 에이리아를 데리고 떠나고 요새에 남아있던 인간들이 모두 공간 전이 마법에 의해 사라진 것을 본 뒤에 짧게 숨을 들이켰다.

이제 남은 것은 폐허와 슬리지아였던 무언가.

그리고 내가 전부다.

“큰 거 한방 가자.”

나는 제압하듯 가하던 힘을 모조리 풀고는 부드럽게 움직이며 사슬들을 피해냈다.

베어내 봤자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니 괜히 힘 뺄 필요가 사라졌다.

실시간으로 빠져나가던 힘들이 모두 안정화되고 빠르게 다시 차오르기 시작한다.

이에 나는 천천히 눈을 감고 꾸무럭대며 증식하는 살점 덩어리를 바라보았다.

베어도 재생하는 걸 보면 근원이 되는 것을 파괴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금기의 업으로 파고든다면 어렵지 않게 도달하리라.

[우…… 우우…… 우우…… 우리…… 우리…… 우리]

계속해서 무언가를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슬리지아는 마치 구호와 같은 말을 내뱉었다.

[우, 우, 우리…… 우리는 하나…… 하나 하나 하나…….

단일 개체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수백 수천만의 목소리가 뒤섞인 듯한 끔찍한 소리를 들으며 한 가지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심연은 분명 수많은 객체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들이 많았다.

그 말인즉.

심연의 공주라는 건 심연에 존재하는 무수한 의지들이 뒤섞여 만들어진 존재가 아닐까.

그것은 하위 심연의 개체를 제외하고 심연의 공주들이 심연의 전부라는 뜻으로 통한다.

그년들만 깡그리 조지면 해결된다는 뜻과도 일맥상통했다.

거기까지 알아낸 나는 더 이상 그녀에게서 미련을 두지 않았다.

한 번에 끝내자.

이윽고 수십 미터에 달하는 크기로 불어난 살점 덩어리, 아니 혼합개체인 슬리지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덩달아 검은 사슬은 나를 향해 더 빠르고 많이 쏟아져 내렸고 한발, 한발 움직이는 것으로 그것을 피하던 나는 초단이를 역수로 쥐고 남은 손을 빠르게 휘저었다.

손끝을 따라 허공에 검은 마법진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그녀의 핵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정확히 바라본 나는 지금껏 모아온 모든 힘을 풀었다.

더 이상 휘말릴 이가 없다는 건 말이다.

대륙 일부를 증발시켜도 상관없다는 소리잖아.

그렇다면 괜한 힘 조절은 포기한다.

모든 마법은 성공해야 위력이 강한 게 아니다.

때때로 잘못된 수식, 잘못된 방식으로 발현된 마법이 더 강한 경우도 있는 법이다.

어디 한번 처먹어봐라. 오딘표 자연파괴마법.

근 100년은 이 일대에서 마나의 양이 극도로 희박해지겠지만.

내게는 상관없는 일이다.

8서클 폭염 마법인 프로메테우스.

슬리지아가 심어두었던 종양을 불태워버릴 때 사용한 마법이지만 힘 조절은 필요 없다. 오히려 위력을 증폭시킨다.

이쪽도 작정하고 마나를 모조리 쓰기로 결정한 이상 행동에 거침은 없다.

하이퍼 노바 마법이 한순간에 뒤틀리며 스스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나는 저항하는 슬리지아를 향해 그 폭주의 진원지를 고정하고 그대로 마법을 활성화 시켰다.

그러자, 하이퍼 노바 마법이 스스로 주변 수십 수백 킬로미터 내의 모든 마나를 멋대로 빨아먹으며 폭주하기 시작했다.

티오니스 대륙은 어느 시대건 마나량이 풍부한 곳이다.

최적의 마법 장소가 아닐 수 없다.

오딘이 사용한 이 마법을 맞고 영웅 몇 명이 비명횡사했는지 모르지?

네까짓 게 버틸 수 있으면 버텨봐라.

우우우우웅!!!!!

[최종 화력 폭주 마법]

[불의 땅]

엄청난 소음을 일으키며 공명하는 마법을 그대로 부유시킨 채 나는 내장이 뒤틀리는 고통을 무시하고 그대로 한 손을 땅에 내리쳤다.

쩌엉!!

마지막 남은 모든 마나를 사용해 공간 전이 마법진을 사용했다.

쿠웅!

공간을 넘는 와중에 폭주한 마법의 여파가 내 등을 후려치고 나는 공간을 넘기가 무섭게 익숙한 배 위로 나가떨어지듯 처박히며 몇 차례나 굴렀다.

“쿨럭…… 쿨럭……”

[데이비!]

이미 도착해있었는지 메가로드리아가 놀란 얼굴로 내가 처박힌 지점을 향해 빠르게 날아왔다.

[미쳤군! 단단히 미쳤어!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그의 외침에 나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이곳에서도 보이는 거대한 여파를 볼 수 있었다.

“막타 치고 왔다. 돌아가자.”

그 말과 함께 쓰러진 에이리아와 나, 그리고 메가로드리아의 육신이 빛에 휩싸이며 사라졌다.

[거래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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