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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469화 (468/1,559)

제 469화

연금술사건 마법사건, 상반되는 이념을 연구하는 자들인 주제에 비슷한 성질머리를 지니고 있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실제로 회랑의 영웅 이바 반 호엔하임은 그래도 온화한 편이지만 미치광이다운 발언을 한 번씩 하곤 했다.

[자, 연금술을 배우기에 앞서 몸을 정갈하게 씻고 와라.]

[씻고 오라구요? 지금 완전히 얼음물인데? 얼마나 차가운지 알아요?]

[적어도 물이 차가운 게 몸이 차가운 것보단 낫지 않겠냐?]

[……]

[심장이 멈추면 육신은 차가워지더라.]

이런 그의 행동거지나.

[데이비, 여기 수식에 필요한 자료들이 있어. 내가 양심상 이것까진 주도록 할게]

[꼴랑 이걸로 뭘 시키진 않겠죠?]

[잘 아네, 이걸로 7서클 썬더 브레이크 마법 수식의 원리를 조정해봐. 내 기준에 맞게 마법 조정하지 못하면 딱 널 헬파이어로 사흘 정도 불태워버릴 거야.]

불에 타죽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지옥 불 3일이면 없던 살심도 치솟는다.

어째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하면 골고다 장로 형제의 말에 따르면 이 에디손이라는 이름의 청색 바위 부족 출신의 드워프 또한 그런 성질머리 더러운 작자라는 점이었다.

정확히는 괴팍하다고 할까.

연금학파는 나름대로 총장을 필두로 여러 직급으로 나뉘어 방대한 분야에서 대륙의 기술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놀라운 점은 그 기술발전에 상당량을 이 에디손이라는 드워프가 발명해냈다고 알려졌다는 점이었다.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그 꼬장꼬장한 영감탱이는 어지간한 협박에는 절대 굴하지 않을 양반이외다. 마지막으로 만난 게 십수 년 전이니 아마 크게 변하진 않았을게요.”

일차적으로 드워프들은 내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드워프의 상징이자, 그들이 신처럼 떠받드는 천일야장, 수르트의 작품인 태초의 섬광을 내가 한차례 수리해버린 전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도 고여서 정체되어있던 그들의 의지에 불을 지펴줄 정도로 드워프와의 관계는 친밀하다.

연금술로 가장 부유한 도시국가.

왕의 위상보다 연금학파의 총장이 가지는 위세가 더 강력한 이 소규모 국가는 그런 기형적인 세력구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발전한 듯한 모습이었다.

일반적인 도시에 비해 압도적으로 연금술의 비율이 높다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그래 본들 지금 대륙에서 가장 이질적인 한 영지만 못하겠지만 말이다.

키이이잉!!!

대량의 마나석이 발현되어 움직이는 이동수단을 보며 페르세르크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고 륀느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곳의 기술력, 륀느가 낮게 평가.”

“맨땅에 쌓아 올린 기술력이야. 이 정도도 대단한 거지.”

누가 초하이테크의 상징 아니랄까 봐 륀느의 표정은 따분해 보였다.

“데이비님, 설계도에 의한 정보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판단하지 않는다고 분석. 가능성은 37퍼센트.”

“기본적으로 그렇겠지.”

골고다 형제가 소개를 해주었던 청색 바위 부족의 드워프.

연금학파의 기술고문을 맡은 에디손이라는 영감은 곧바로 답장을 보내오지 않았다.

그는 제국의 황제와의 만남도 거절한 전적이 있는 유별난 괴짜로 기술력을 제외하면 사교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괴팍한 노친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말인즉 어지간한 방법으론 그의 협조를 받아내기 쉽지 않다는 뜻으로 통한다.

“기술자들 고집은 내가 잘 알지.”

이후 나는 연금학파의 본산 건물이 있는 중앙 공방, 페리홀크에 도달할 수 있었다.

고대 언어로 창조의 공방이라는 뜻을 지닌 이곳은 비 물리 법칙을 연구하는 마탑과 다르게 물리 법칙을 연구하고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거나 기술을 발전시키는 연금술이 극도로 발달해 있다.

물론, 지금에 이르러선 사이가 나쁘다 해도 마탑과의 연계로 여러 물건을 세상에 내놓고는 있지만 말이다.

“어서 오십시오, 무슨 용무로 찾아오셨습니까.”

깔끔한 복장을 한 사내가 입구에서 나를 향해 영업용 미소를 띠어 보였다.

“사람을 만나러 왔습니다만.”

“사람…… 말씀이신가요. 대부분 장인분은 현재 작업 중이시라…… 아, 이름을 적어두시면 제가 확인하고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나는 그가 내민 양피지의 첫 공란에 에디손의 이름을 적었다.

“흐음……”

그 내용을 읽던 사내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에디손 기술고문님을 만나러 오신 겁니까?”

“예.”

“흐음…….”

떨떠름하게 중얼거린 그가 조용히 말했다.

“사실, 이런 말씀드리긴 뭣하지만, 아마 불가능하실 겁니다.”

“륀느, 이유해명을 요구해.”

대신 나선 륀느의 질문에 사내는 륀느의 모습을 보고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륀느는 겉보기에도 굉장히 특이한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

머리 위에 뜬 원 고리부터 등허리에 난 날개.

물론, 이런 요소는 괜히 눈에 띌 생각이 없는 만큼 대충 마법으로 가려버리곤 있지만 륀느가 고집하는 의상은 어딜 가도 쉽게 보기 힘든 의상이었다.

“높으신 귀족가 분들이신가 보군요. 무슨 이유로 기술고문님을 만나려 하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최근 에디손 기술고문께서 큰 프로젝트를 하시느라 대부분의 만남을 거부하고 계십니다.”

“흐음…….”

쉽게 만나주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어지간해선 뇌물을 먹여서라도 만나보는 방법을 추천해드리겠지만……. 그 노친네, 생각보다 깐깐해서 말이지요.”

하하 웃어 보인 그의 말에 내가 조용히 물었다.

“큰 프로젝트요?”

“아, 네. 사실 에디손 기술고문께서 최근 큰 빚을 진 바람에 말입니다. 워낙에 물욕이 없는 분이라 쌓아놓은 돈이 없다 보니 꽤 입지가 난감하신 상황에 있지 뭡니까. 아이고, 이런 이야기는 하면 안 되는데.”

자신의 입을 철썩철썩 때린 그가 허허 웃어 보였다.

“이 이야기는 비밀로 해주십시오. 아, 밑에 방문하신 분의 이름을 쓰시면 됩니다.”

그 말에 나는 깃펜을 들어 내 이름을 써낸 뒤 돌아섰다.

“그럼, 부탁드리죠.”

그놈의 서신으로 만나게 해달라고 했더니 이 게을러터진 노인은 대답을 한세월 뒤에나 줄 모양이다.

삼고초려라고 했던가.

그의 기술력이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지만 내가 만들고자 하는 작업에 필요한 인력을 구하려면 그와 대화를 할 필요가 있었다.

“가만, 이 이름 어디서 본…… 으왓?! 서, 설마!”

뒤편에서 나를 접대했던 사내의 비명과도 같은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느긋하게 페리홀크를 벗어나 광장으로 향했다.

연금학파의 본산답게 중앙 광장에서는 연금술에 필요한 수많은 재료를 사고파는 모습이 보였다.

어지간히 구하기 힘든 재료들도 간혹 보일 정도였다.

실제로 몇몇 항목은 수출금지 꼬리표를 달고 있기도 했고 말이다.

“작은 소국치고는 굉장히 부유하네.”

“괜히 본산이 있는 게 아니니까.”

신전의 본산인 성국이건, 마탑 본지부이건, 연금학파건 어느 쪽이던 이놈의 대륙에선 굉장한 입지를 지니고 있다. 그러니 당연한 결과라면 당연했다.

“보아하니 만나기 쉽지 않아 보이는데.”

내 어깨 위에 앉아 하품하는 페르세르크의 말대로였다.

안 그래도 괴팍해서 사람을 잘 만나려 들지 않는 노인이 빚 때문에 큰 프로젝트를 하고 있으니 아마 그냥 간다고 만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럼 기왕 온 김에 여기서 재료나 구하자고.”

수출금지 품목, 이곳에서밖에 구할 수 없는 주요 재료들이 있다.

유르기안 대륙에서 고안된 설계도를 이 세계의 에너지원과 재료에 맞게 개조하기 위해선 많은 재료와 촉매가 필요했다.

문제는 수출금지 품목으로 팔리지 않는 것들도 다수 섞여 있다는 게 문제였다.

단순 힘으로 빼앗아오면 되지 않느냐고?

굳이 그럴 이유도 없거니와.

사실 연금학파의 본산을 한번 구경해보고 싶다는 의견 때문이기도 했다.

세상을 보고 싶어 하는 페르세르크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 취향이 맞았다.

“어서 옵쇼! 아이고! 훤칠하고 멋지신 귀족 자제분이시네. 무엇을 드릴깝쇼.”

“쇼트만 용액 1.5리터 베르베 영초 3포대.”

내 말에 사내는 의아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촉매제와 재료에 대해 잘 아시는 모양인가 봅니다?”

“꼭 필요한 재료라서 말이죠.”

“하하, 외부에서 오셨나 본데 확실히 그런 재료들은 여기 말곤 안 팔긴 하죠.”

도시국가의 정부는 이런 부류의 물건을 이곳에서만 파는 것으로 기술을 보호하고 관광객을 일정수준 유치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제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 여기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세금이 많이 붙는 품목이라……, 1골드는 주셔야겠습니다요.”

“3골드에 맞춰서 주세요.”

내 말에 사내는 상인의 미소를 띠며 손을 비벼댔다.

“아이고 물론입죠!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아 참, 들고 가기엔 양이 많으실텐데…….”

“그냥 주시면 됩니다.”

내 말에 그가 창고 안에서 낑낑거리며 무언가를 꺼내왔다.

작은 나무통에 보관된 용액과 커다란 자루 포대들이었다.

“여기 있습니다.”

그에게 잔금을 치른 나는 곧바로 재료들을 들어 올렸다.

가게주인으로 보이는 사내는 내 행동에 의아함을 내비쳤지만 곧이어 내가 허공을 열고 아공간 속에 그것들을 던져넣자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오! 손님은 마법사 셨군요!”

마법에 대해 까막눈들은 내가 쓴 게 아공간 마법인지 그냥 마법 도구인지조차 구분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애실트 액기스는 따로 없습니까?”

다른 재료들은 대부분 구매했지만 유일하게 한 가지 중요한 재료가 보이지 않자 내가 조용히 물어봤다.

“애실트 액기스 말입니까? 아아…… 그게…… ”

말끝을 흐린 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이 근방에선 구하기 힘들지요. 워낙에 물량이 적은 데다가 최근 애실트 꽃 재배에 흉년이 들었다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다들 손가락만 빨고 있지요.”

상황을 말해주는 상인의 말에 나는 이런저런 상점을 돌아다니면서도 유일하게 그것만 없는 이유를 알았다.

“손님께는 죄송하지만, 수요가 공급을 압도적으로 넘어선 상황이라 저희도 매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네요. 아 참, 귀족가 분이시라면 경매 쪽에 한 번 참가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그곳에서 소수지만 애실트 액기스가 나온다는 말도 있었습니다요.”

“정보 고마워요.”

내 말에 그가 하하 웃어 보인다.

“아이고, 고객님께 이 정도도 못 해 드릴까요. 또 오십쇼!”

손까지 흔드는 그를 뒤로한 채 나는 고민했다.

“애실트 액기스가 좀 필요하긴 한데.”

애실트 꽃잎은 동부대륙에선 재배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곳 이외엔 수출도 불가능한 품목이라 품귀현상이 일어난 듯 보였다.

“어떻게 할 생각이야, 데이비?”

“직접 꽃이라도 따야 하나.”

인공적으로 꽃을 재배하는 곳에서 사고가 터져서 재배양이 확 줄어든 게 문제라는 모양이니 단순 근처에선 구하기 쉽지 않다.

“허면, 그 경매라는 곳에 참가해볼 생각인 게야?”

“뭐, 필요한 촉매가 있으면 구매도 할 겸, 어디 구경이나 해보자고.”

“구경, 좋지.”

페르세르크가 기대 어린 표정으로 쿡쿡 웃어 보였다.

“자, 그럼 데이비. 이제 이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를 가보는 게야.”

그녀가 힘차게 나를 이끌며 말했다.

“약속했지? 본녀에게 꼭 보여주겠다고?”

“……그래. 가자.”

마침 시간도 남아돌고 있는 실정이니 말이다.

큰일들이 죄다 해결된 만큼 지금의 시간은 내게 상당히 오랜만에 찾아온 휴가와 비슷했다.

“데이비님, 도시의 지도 현황을 모두 입력완료. 륀느가 네비게이팅을 실시해.”

“그래.”

느긋하게, 평범한 이들처럼 여행하는 심정으로 걸어보자.

나는 륀느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도시의 외곽엔 축성용 거대 골렘들이 가득 보였다.

골렘은 주로 연금학파의 꽃이라 불린다.

그런 만큼 이곳만큼 골렘들이 다양한 곳은 잘 없다.

인적이 드문 길을 걸으면서도 저 멀리 보이는 골렘들이 아주 천천히, 느릿느릿 움직이는 걸 지켜본다.

“보통 골렘들은 저 정도 속도가 대부분이지?”

주로, 골렘이 크면 속도가 느려지고 에너지 소모가 심하다. 크기가 작은 골렘은 힘이 약하거나 여러 문제에서 성능이 떨어진다.

단일 개체로 소드마스터급조차 위협하는 디셉티콘같은 깡패 골렘들과는 별개라는 이야기였다.

“어때. 좋아?”

“그걸 이를 말이라고.”

전망대로 향하기도 전에 보이는 주변 풍경들이 마음에 드는지 페르세르크가 쿡쿡 웃어 보인다.

그때였다.

“비, 비켜요! 비켜!!”

어디선가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치익!! 치익!!

동시에 아무도 없던 골목 저편에서 대충 4미터 정도의 덩치를 지닌 커다란 금속 골렘이 나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오는 게 보였다.

“으아아아아!!”

비명을 지르는 소녀의 목소리는 명확하게 들리는데 주변을 둘러봐도 소녀는 보이지 않았다.

반대로 골렘은 마치 나를 치고 지나갈 듯 맹렬하게 달려온다.

“륀느, 부숴버려.”

이에 내가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륀느가 한 손에 빛의 입자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륀느의 손에 쥐어진 것은 흑색의 공구였다.

바로 노루발 못뽑이.

혹은 크로우바나 빠루라고 불리는 물건이다.

“륀느가. 인류의 구원자를 높게 평가. 달려오는 고물을 낮게 평가!”

녀석의 머리 위에 원반이 환영마법을 깨뜨리고 드러나며 맹렬하게 회전한다.

동시에 녀석의 손에 쥐어진 빠루에서 빛이 흘러나왔고 맹렬하게 돌진하는 금속 돼지 골렘을 향해 빠르게 파고들었다.

“비, 비켜!!”

콰앙!!!!

비명을 지르는 소녀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륀느는 그대로 골렘의 정면으로 덤벼들었고, 무식하게 골렘과 몸통박치기를 하더니 그대로 빠루를 들어 골렘의 거대하고 둥근 흉부를 내리찍어버렸다.

콰직!! 소리와 함께 골렘은 한차례 허공을 날았다.

“꺄아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단단한 벽돌벽에 처박혀버린 골렘은 급기야 벽을 무너뜨리고 나서야 추욱 늘어져 버렸다.

제법 큰 덩치, 어딜 봐도 소녀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 내 생각에 맞추듯 골렘의 찌그러진 흉부에서 거친 발길질 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강판이 뜯겨 나가면서 그 안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매캐한 검은 연기 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검댕이가 잔뜩 묻은 검붉은 머리카락의 소녀였다.

놀라운 점은 검댕이가 잔뜩 묻었음에도 그녀의 외모가 정말 아름답다는 점이었다.

나이는 나와 비슷한 연령대 정도 되어 보인다.

울상을 쓰며 기어 나온 그녀가 뒷목을 부여잡고 중얼거렸다.

“이런, 미친 아이고 내 목이야……. 아이고…… 빌어먹을 고철 덩어리, 진짜!”

왈가닥이라는 느낌이 한눈에 확 들어올 만큼 확실한 느낌을 준다.

소녀는 이미지대로 험한 말을 내뱉으며 인상을 찌푸리더니 찌그러진 골렘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내 역작이……”

울상을 지으며 박살 나버린 골렘을 향해 미련을 뚝뚝 흘리던 그녀는 곧이어 골렘과 충돌한 륀느를 향해 천천히 휘적휘적 다가왔다.

“어디 다친 곳은 없어요?”

“륀느, 외부장갑이 매우 튼튼하다고 판단. 저런 고물에게 밀리지 않는다고 명시.”

“고, 고물?!”

당황한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륀느를 보지만 녀석은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윽고 그녀가 뒷목을 붙잡은 채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진다.

“애고고, 일행인가 봐요. 미안해요. 제 이름은 티아라라고 해요. 그 쪽은…….”

“데이비라고 합니다.”

내 말에 그녀가 멈칫했다.

그리고는 나를 이리저리 뜯어보더니 이내 물어왔다.

“흐음……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뭐, 비슷한 이름이야 세상에 널렸겠지.”

고개를 주억거린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어쨌든, 미안해요. 어흠! 뭐, 일부러 노린 것도 아니긴 한데……”

“그 실수 한 번에 자칫하면 사람 둘이 훅 갈뻔했는데 말이죠.”

내 빈정거림에 그녀가 식은땀을 흘렸다.

“그, 그게 말이죠. 분명 시험 가동까지는 완벽했는데 갑자기 오류를 일으켜서…… 후우……”

한숨을 내쉰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눈을 가늘게 뜬다.

“저기요. 혹시 나랑 만난 적이 있어요?”

그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그래요? 왜 이렇게 낯이 익지?”

고민하던 그녀는 곧이어 펄쩍 뛰더니 박살 나버린 골렘을 이리저리 해체하고 그 안에서 작은 코어를 꺼내 들었다.

“이봐요. 이것도 인연인데, 사과할 겸 제 공방으로 가지 않으실래요? 그냥 보내기엔 좀 미안해서.”

“신경 쓰지 마세요.”

“안 돼요. 이래 봬도 일단 귀족가 아가씨 출신이기 때문에 은원은 확실히 맺어야 한다고 배웠단 말이에요!”

스스럼없이 내 팔을 잡는 그녀였다.

요즘 귀족가 아가씨들은 저 정도로 왈가닥 기질을 내장하고 다니는가.

전혀 아니다.

그 어떤 인간을 들이밀어도 그녀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창문으로 침투하던 일리나조차도 말이다.

엄청나게 아름다운 외모를 내려받았으면서 그에 준하는 왈가닥 기질을 받았다.

묘한 일이다.

‘제법 매력적인 여아로구나.’

‘저런 스타일은 피곤할 뿐이야.’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사고를 쳤다 하면 대형사고로 번지는 스타일.

실제로 그녀는 자신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골렘으로 사고를 칠뻔했다.

절대 좋은 이미지로 다가올 순 없다.

그러니 그녀와의 인연은 괜히 엮여서 좋을 게 없었다.

“어어? 이봐요! 어딜 가요!”

“피해자가 괜찮으니 상관없겠죠. 갈 길 가시면 됩니다.”

심드렁한 내 말에 그녀가 나를 제지했다.

“그러지 말고……”

“개수작 부리지 마세요. 저거 부품 같이 들어달라고 하려고 하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았나.”

“에헤, 들켜버렸네.”

장난스레 웃어 보이는 그녀가 내 무표정을 보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미안해요. 장난이에요. 혹시 모르니까 진단이라도 받아보라구요. 공방에 좋은 육체 검진 장비가 있으니까.”

이년이?

그때였다.

갑자기 그녀의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더니 그녀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아마 좀전의 충돌로 인해 혈관이 터진 것이리라.

“아! 피다.”

멍하니 중얼거린 그녀는 한참 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달라진 분위기를 내뿜던 그녀는.

곧 힘없이 뒤로 넘어 가버렸다.

깔끔하게 기절해버린 것이다.

“혈액공포증…….”

뒤이어 그녀를 바라보던 페르세르크가 중얼거렸고 나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진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찌할 거야 데이비?”

“어쩌긴 뭘 어째.”

내 직감은 잘 틀리지 않더라. 그러니까.

“나는 아무것도 못 봤다.”

미련 없이 그녀를 등지고 나는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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