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00화
“문제가 생겼습니다.”
좁고 어두운 동굴 속에서 검은 로브를 입은 몇몇이 모여들었다.
“무슨 일이지?”
“뻐꾸기가 발각되었습니다.”
그 말에 주변에서 몇몇이 숨을 크게 들이 삼켰다.
“뻐, 뻐구기가 발각되었다고? 대체 어떻게!”
“마인드 토크 마법이 발현된 이후 그의 몸에 새겨둔 문양이 소등되었습니다. 필시 혼이 빠져나갔을 테니 사망했을 테지요.”
사내의 말에 몇몇이 침음을 삼켰다.
“아직 할 일이 많거늘 벌써 꼬리를 밟히다니……”
“이럴 게 아닙니다. 빨리 이곳을 속히 벗어나야 합니다.”
“대체 누구란 말인가. 누가 이런 사태를.”
“데이비 올…… 라운. 대륙의 성자입니다.”
사내의 말에 주변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를 냈다.
“누, 누구라고?”
“대륙의 성자입니다.”
“빌어먹을!!”
콰앙!!
격한 분노에 휩쓸린 사령 마나가 거칠게 주변을 후려쳤다.
“그 괴물 같은 인간 놈이 이곳에 나타났다고?!”
“젠장!”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다. 데이비 올 라운이라는 인간이 얼마나 위험한 변수인지를 말이다.
실제로 그의 무력은 호사가들 사이에서도 미스터리 그 자체로 남아있었다.
신성력을 다루는 성자가 검을 쓰고 마법을 부리고 있으니까.
혼란에 빠진 로브인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지둥하고 있던 찰나.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한 명이 조용히 로브의 후드를 넘겼다.
검은 피부의 남성이었다.
“어차피 늦든 빠르든 부딪혀야 할 일이었습니다. 성자는 리인포스 알파와 연관이 있었으니까요. 라스트 위스프를 말살하기 위해선 그와의 충돌은 결국 다가올 현실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와 대적하는 건 자살행위요!”
한 명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소리쳤다.
“나, 난 보았소이다! 그가 전장에서 어떻게 적들을 유린하는지 말이오!”
“빨리 이곳을 탈출해야 합니다.”
적이 적당히 강해야 어떻게 해볼 생각이라도 하지 그는 어찌할 방도가 없는 괴물 그 자체가 아닌가.
당황해 도망쳐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을 보며 흑빛 피부의 사내는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어떻게 도망칠 겁이니까. 정말 그라면, 내가 아는 그 성자라면 그는 이미 이곳으로 오고 있을 것이오.”
“그가 이곳을 어떻게 알고 찾아온단 말입니까.”
“그는 인간의 자백을 받아내는 데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자가 아니외다! 분명히 벌써 이곳의 소재를 듣고 이곳으로 찾아오고 있을 것이오!”
“그를 우습게 보면 안 됩니다. 일단 이곳에서 근거지로 피신한 후……”
“아니요. 우리는 이곳에서 나가지 않습니다.”
조용히 있던 흑빛 피부의 사내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움직여야 해요!”
로브를 입은 흑마법사의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마침 저희를 따르는 이방인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을 방패 삼아 우리는 아래로 향할 겁니다.”
그가 말하는 아래가 어디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타르타로스 지하 산맥.
이 땅에 존재하는 생지옥.
겉보기엔 말 그대로 땅속에 만들어진 거대한 산맥이다.
마치 이 지하 내부에 거대한 세상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지하에 만들어진 산맥이라면 그것을 두고 인계의 생지옥이라 부르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단순히 지하 산맥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이곳 미로에 한 번 갇힌 이는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지요.”
“마법 사용을 방해하는 특이파장에 끝없이 펼쳐진 촘촘한 미로, 그리고 그곳에서 서식하는 끔찍한 괴물들.
“확실히 지하 산맥이라면…… 게다가 지금 시기엔 용암 세례가 일어날 시기로군요.”
“용암 세례, 그렇군. 그 정도라면 놈의 발목을 잡을 수 있지.”
“제아무리 날고기는 성자라 할지라도 그곳에 갇히면 당분간은 빠져나오지 못할 겁니다. 그동안 우리는 준비해온 비원을 이루는 겁니다.”
그리고 거기에 쐐기를 박듯 검은 피부의 사내가 음산하게 말했다.
“게다가 기다렸다는 듯 던전이 근처에 있습니다. 던전의 함정을 이용하면 그들을 효과적으로 가둬놓을 수 있지요. 빨리 이방인들을 연구하여 그들의 힘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빠르게 움직이시지요.”
“흐흐……”
흑마법사 중 한 명이 천천히 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사방에서 전염된 듯 웃음소리가 퍼져 나온다.
“흐흐흐흐.”
“흐흐흐흐흐!!!”
음산한 그 웃음이 지독한 하모니가 되어 울려 퍼졌다.
그들은 모르고 있다.
* * *
추적대는 간단하게 꾸려졌다.
팔라딘인 필디르와 그의 파트너인 루시아 쉘만.
그리고 뒤이어 쌍둥이 자매인 샤이르와 펜디르.
마지막으로 일리나와 내가 파견되었다.
남은 인원들은 모두 기사단 본부에 남아 근처 가까운 라스트위스프 기사단에 연통을 띄워 지원을 요청한다는 모양이었다.
“흔적이야. 얼마 전까지 그들이 이곳에 있었어.”
바닥에 난 흔적을 바라보던 일리나는 동굴 한쪽에 있는 모닥불에 손을 가까이 대며 말했다.
“그러네. 흑마법의 잔향이야. 이토록 지독한데 어찌 몰랐던 건지.”
“흑마법은 은밀함이 생명이야. 흔적은 안쪽으로 이어져 있으니 어서 가자.”
내 말에 필디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검과 방패를 빼 들었고 루시아 쉘만이 짧게 숨을 들이켜며 양손에 메이스를 꼭 쥐었다.
뒤편에선 정령사 쌍둥이 자매인 샤이르와 펜디르가 각기 정령들을 소환해냈다.
그러더니 샤이르가 나를 쏘아보며 낮게 말했다.
“데이비. 한 번만 더 그러면 정말 화낼 거야.”
“그래. 미안하다.”
“최면마법의 힘을 입증시키기 위해서라면 좀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 텐데.”
“신경 쓸게.”
심드렁한 내 말에 샤이르가 울상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흑…… 나 시집 다 갔어…….”
“정신 차려 언니. 한솥밥 먹은 가족에게 속옷 한번 알려졌다고 세상 무너지는 거 아니야.”
“넌 아무것도 몰라 이 기지배야!”
“어휴 시끄러워.”
투닥거리는 자매들의 행동을 보고 픽 웃은 내가 걸음을 옮겼다.
“잠깐, 데이비.”
그때였다.
흔적들을 살펴보던 일리나가 눈을 찌푸렸다.
“이거…… 함정 같은데?”
“함정이라고?”
일리나의 의문에 샤이르가 의아함을 담아 의문을 던졌다.
“그렇잖아? 그토록 위장능력이 좋던 흑마법사들이 이렇게 흔적들을 덕지덕지 흘려놓고 도망친다고? 그리고 그 방향도 문제야. 너 이 뒤에 뭐가 있는지 몰라?”
일리나의 말에 모두가 멈췄다.
“마경…… 타르타로스 지하 산맥…….”
그들의 중얼거림에 일리나가 의견을 강하게 피력했다.
“데이비 네가 강한 건 알겠는데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 너도 사람인데 안 다치는 것도 아니고.”
“아니. 속행하자.”
내 결정에 일리나가 눈을 크게 떴다.
“함정일지 모르는데 그냥 들어가겠다고?”
“유인해준다는 말은 함정이 있다는 말이긴 하지.”
“그러니까.”
“반대로 생각하면 그놈들이 거기 있다는 말이기도 해.”
내 말에 일리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네.”
“그러네요.”
낭랑한 얼굴로 신관린 루시아와 성기사인 필디르가 중얼거렸다.
“와. 이게 사고의 반전인가? 데이비 너 기가 막히는구나?”
필디르가 기가 막힌다며 내 어깨를 툭 쳤다.
“하지만 함정은 분명 위험 요소가 있어.”
이어지는 내 말에 필디르가 손사래를 쳤다.
“아아 그래 위험하다고? 알지. 우리도 목숨을 걸고 추적을 하는 건데. 당연히 모를 리가, 넌 그 말을 해주고 싶었던……”
“다만 쫄지 마라. 내가 있다.”
내 말에 그가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내가 손에서 꺼내 든 것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그…… 그건?!”
그래. 니들이 공포에 떨었던 그놈이다.
내가 손에 쥔 큐브를 가볍게 던졌다가 받아내자 샤이르와 펜디르가 오한에 몸을 떨었다.
“아…… 저 골렘.”
“나 그때 그 메스꺼움이 다시 살아나는 거 같아…….”
견습생 동기들에게 잊을 수 없는 녀석이었다.
디셉티콘 편대장 골렘. 메가트론.
거대한 드릴과 전기톱으로 압박하며 거리를 벌렸다 하면 끔찍한 CS 멀미탄을 난사하는 괴랄한 골렘.
그게 지금 내 손에서 번뜩이며 다른 이들의 사기를 극도로 증폭시켰다.
“그거…… 이제 소드마스터급과 싸울 수도 있지?”
“쉽게 이기진 못하겠지만 쉽게 지지도 않지.”
골렘이 소드마스터와 비견되다니 그건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이윽고 동굴의 안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뒷길로 빠져나온 나는 마치 급하게 지운 것처럼 보이는 흔적들을 따라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생각해보니 이 근처에 있었는데…….
제법 느긋한 걸음으로 걷는 나와는 별개로 다른 이들은 경계 어린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흑마법사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동굴을 지나 빠져나온 나는 험준한 산길을 빠르게 걸어가며 그들이 슬쩍슬쩍 남겨놓은 흔적들을 쫓았다.
과거 같았다면 이딴 귀찮은 것 없이 나를 향해 부나방처럼 놈들이 들이박았을 테지만.
내 무력이 어느 정도 알려진 후부터는 사실 그런 요행은 바라기 힘들어졌다.
강하다는 게 알려지면 좋은 점도 있지만, 이토록 귀찮은 점도 생기는 법이다.
이런 오지를 이동하는 데에 특화된 훈련을 받은 이들답게 펜디르가 앞장서서 빠르게 길을 뚫고 나머지가 보조한다. 마치 오래전 단체 훈련을 할 때와 같은 느낌이 들자 괜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찾았다. 이 동굴로 향하고 있어.”
울창한 숲 속을 서너 시간 파고들었을까.
필디르는 거대한 동굴의 입구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젠장. 살다 살다 다른 지역의 오지까지 오게 될 줄이야.”
“게다가 타르타로스 지하 산맥은 오지 중에서도 극히 위험한 곳이잖아. 기사단에서도 초입 입구만 지킬 뿐 내부로 진입하진 않는다 했어.”
판도라 영역이 얼어붙은 대지라면 이곳은 폭염의 지하동굴이다.
이곳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래, 맞아. 이쯤 부근이었다.
기억에 딱 맞는 지형이 보이자 내 눈에 이채가 띠었다.
이거 온 김에 곗돈이나 긁어가야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긴장하고 있는 다른 이들과 다르게 느긋하게 동굴 내부로 들어간다.
천천히 들어간 지 한참 되었을까.
“이곳에 정말 그놈들이 있는 거야? 흔적이 끊어졌어.”
마치 이곳까지 유인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하듯 흔적들이 끊어져 있다.
그 모습에 필디르가 긴장 어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확실히 사람과 싸우는 건 이들도 거의 처음일 테니 긴장할 수밖에.
굳은 표정으로 주변을 조사하기 시작하는 이들을 바라보던 나는 동굴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모두가 어느 정도 거리까지 들어왔을 즈음.
변화가 일어났다.
구구구구구구궁!!!!!
거대한 울림과 함께 갑자기 일행들이 들어왔던 좁아진 통로가 거대한 바위로 틀어막혀버린 것이다.
“뭐, 뭐야!”
“출구가 닫혔어!”
“비켜!”
깜짝 놀란 필디르와 샤이르는 비명을 질렀고 일리나는 괜히 소드마스터라는 게 아니라고 시위하듯 거검 칼디라스를 뽑아 들고 찌를듯한 자세로 검을 당겼다.
그리고는 소드마스터의 상징. 오러블레이드를 피워 올리며 그대로 바위를 향해 칼디라스를 내질렀다.
그거, 안 부서질 텐데.
카아앙!!!!
“꺅!”
어마어마한 반탄력에 의해 튕겨 나온 일리나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뭐야. 오러블레이드로도 잘리지 않는다고?”
당황한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오러블레이드의 위력을 잘 아는 이들이기에 그런 힘을 쓰고도 바위를 베지 못했다는 결과를 충격으로 받아들인 일행이었다.
“데이비! 저게 대체!”
“아다만티움을 코팅했어. 쉽게 안 잘릴 거다.”
내 말에 일리나가 당황한 얼굴을 했다.
“아다…… 뭐?”
“아다만티움. 살수왕 헤르메이샤가 자신의 비고를 만들 때 주로 쓰는 방식이야. 그 여자 오리하르콘과 아다만티움을 어디서 그렇게 구했는지 모르겠다만.”
내 말에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열을 올리며 움직이던 다른 이들과 다르게 내가 왜 처음부터 느긋하게 행동했는지 그들은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데이비 너 그럼 이곳이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던 거야?”
“그래.”
“어째서? 어째서 말해주지 않은 거야?”
황당하다는 듯 필디르가 질문을 던져오자 나는 담담하게 벽면을 이리저리 짚으며 말했다.
“저쪽은 우리가 함정에 빠진 줄 알거든. 이 함정은 말이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뒷문으로밖에 나갈 수 없어. 그런데 그 뒷문은 지하 산맥의 하층이거든. 꽤 재밌는 놈들이 서식하고 있을 거다.”
내 말에 일리나를 제외한 다른 녀석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다만티움은 어지간해선 부서지지 않으니 결국 그곳으로 가야 하는데 그렇게 했다간 보통 개죽음을 당해.”
“흑…… 그, 그럴 수가.”
“물론 그게 일반적인 도굴꾼들의 거름망이긴 하지.”
담담하게 말한 내가 벽면에 손을 짚었다.
동시에 마나가 스멀스멀 흘러간다.
“보통 대부분 비고를 뚫기 위해 들어온 놈들이 여기 갇혀서 끙끙 앓다가 결국은 저 동굴의 안쪽으로 들어가고 그렇게 비명횡사하는 거야.”
동굴은 한쪽만 틀어막혀있다.
하지만 뚫린 쪽으로 나가면 위험한 장소가 기다리고 있다.
아마 이곳도 수많은 트레져 헌터들이 왔다가 죽어 나자빠졌으리라.
“그, 그럼 탈출할 방법은……?”
“보통은 없어.”
“데이비. 그냥 베어버리면 안 돼?”
일리나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 출구를 막고 있는 돌에 흠집이라도 나는 순간 일대가 날아가 버리도록 설계가 되어있을 거다.”
내 말에 샤이르가 파랗게 질린 얼굴을 했다.
힘이 마냥 세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소리니 나를 믿어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세상에 한쪽은 죽으러 가는 길이고 한쪽은 막혔어. 살수왕의 비고가 세상 각지에 있다곤 들었지만, 하필 이곳에 있을 줄은…….”
필디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때였다.
그그그그그극!!!
갑자기 동굴의 벽면이 뒤틀리기 시작하더니 형태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으악! 데이비, 뭘 건드린 거야!”
이에 다른 녀석들이 기겁하며 무기를 집어 들고 혹시라도 작동할 함정에 대비한다.
하지만 나는 느긋하게 기다렸다.
그그그극 쿵!!!
그리고 곧이어 아래로 이어진 통로가 나오는 커다란 문이 열리자 경계를 하던 녀석들 모두가 황당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 뭐야?”
통로 안쪽은 꽤 가까웠다. 커다란 공동으로 이어진 통로 내부엔 저 멀리 서도 보일 만큼 화려한 금빛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보고가 열렸…… 다고?”
살수왕의 비고는 역사상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눈앞에서 그 비고가 아무런 저항 없이 열리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기겁한 듯 일리나가 중얼거렸다.
“아니 그보다! 살수왕의 비고는 열고자 하면 수많은 기관장치의 방해가 있다고 들었는데?!”
기가 막힌 듯 필디르가 중얼거렸다.
“내가 봤어! 분명히 봤다니까? 비고 회귀록이라는 책에 분명 그렇게……”
“자기 집 들어가는 데에 경보 울리는 멍청이가 어딨냐. 들어 와. 온 김에 하나씩 집어가. 선물로 그 정도는 줄게.”
이곳의 물건들은 살수왕 헤르메이샤의 유품들이다. 그녀가 생전에 훔치거나 구한 물건들이 잠들어있다.
그리고 살수왕 헤르메이샤는 회랑에서 내게 이 비고들의 대략적이 위치와 기관장치에 대해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해주었다.
그림 실력은 형편없었지만 말이다.
결과적으로 이게 무슨 말이냐고?
이 안에 있는 보물들 다 내 거라고.
다른 영웅들은 내게 폭력과 무력을 선사했지만 살수왕 헤르메이샤는 내게 폭력과 무력 그리고 모욕을 선사하는 대신 상상을 초월하는 다이아 수저를 입에 물려주었다.
하나하나가 역사적 가치가 높은 귀한 보물로 경매장에 내놓는 순간 난리가 날 물건들이 한가득하다.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일어서는 일행을 무시한 채 나는 보물이 싸인 공동으로 걸어 들어가며 입맛을 쩍쩍 다셨다.
“뒤편으로 가면 나가는 길이 있어. 그곳을 통하면 흑마법사 놈들을 빠르게 잡을 수 있을 거다.”
그놈들은 자신들이 이곳의 지리에 빠삭하다 생각하겠지만 한가지 착각을 하고 있다. 수백 수천 년 동안 변하지 않는 이곳의 지리는 나보다 잘 아는 놈 따위 없다.
뛰어봐야 손바닥 안이라고. 그놈들 머릿속이 훤하니 이쪽에선 역으로 이용해주면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