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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511화 (510/1,559)

제 511화

푸른 잔상이 데이안의 몸을 사선으로 베어버렸다.

청단이는 비 물리 법칙계를 베는 능력을 지닌 검으로 이름부터가 사자(死者)를 베는 푸른 검이라는 이름을 지닌 검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청단이의 예기가 떨어지는가 하면 사실상 그건 아니었다.

홍단이가 워낙에 두서없이 닥치는 대로 베어버리는 탓이지 청단이 또한 어딜 내어놔도 경악을 금치 못할 예리도를 지닌 검인 것은 사실이었다.

“이전에도 그렇게 도망쳤지.”

사령왕 데이안은 내게 잡힌 채로 성화포를 직격으로 맞고도 살아서 도망친 녀석이다.

리치들의 생존방식이 워낙에 다양한 편이라 그때 당시엔 놓쳤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청단이는 집요하게 놈의 불사 근원을 찾아 파괴했고, 결국 놈이 도망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부숴버리고 난 후에야 멈췄다.

부드럽게 청단이의 푸른 검신을 검집에 납도 하자 청명한 소리와 함께 주변의 풍경이 멈춰있다 다시 움직이는 느낌마저 들었다.

청단이에게 베인 데이안은 도저히 금속으로 된 검에 베였다고 볼 수 없을 만큼 전신이 액체처럼 흐물흐물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아마 그의 불사를 유지해주던 힘이 사라지면서 그의 육신이 멋대로 변환된 것이리라.

말없이 쓰러진 그는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한참 동안 침묵한 채 나를 바라보았다.

“믿을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 대체, 무엇을 숨기고 있는 것이냐……. 무엇이 너를 이토록 괴물 같은 힘을 내도록 만드는 것이냐.”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마나도 아니다. 사령 마나도 한 줌 느껴지지 않는다. 헌데 어디서 그런 힘을 낸 것이냔 말이다.”

그의 물음에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

무언가를 격하게 찾아 헤매는 듯한 그 모습에 나는 그에게 숨겨두었던 힘 일부에 파장을 일으켰다.

그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벽에 파장을 일으키면서 그 편린을 보여준 것이다.

“크…… 크흐흐흐, 경악할 정도로 섬뜩한 힘이군.”

그는 마치 해탈이라도 한 것처럼 말을 이어나갔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기다려왔건만, 네놈 때문에 모든 것이 무너졌구나.”

“뿌린 대로 거두는 거고 사연 없는 무덤은 없어. 네가 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죽였으면 반대로 네가 짓밟힐 거라는 생각도 했었어야지.”

내 말에 데이안은 침묵했다.

오로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괴인이지만 죽음을 앞둔 자의 모습은 대개 비슷한 법이다.

잠시간 침묵하던 놈의 안광에 광기가 서서히 도사리기 시작한다.

“흐흐…… 흐흐흐흐흐흐!! 이대로……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이렇게 죽어야만 한다면 가더라도 한 놈이라도 더 끌고 가겠노라!!”

사령왕이라던 놈이 참 치졸하기 그지없다.

그는 남은 모든 힘을 쥐어짜 내며 내게 저주를 퍼부었다.

“네놈을 저주한다 인간이여! 네놈의 존재를 내 영겁토록 저주하리라!”

“거참. 저주 면역이라고 말했는데 겁도 없이.”

담담하게 말한 내가 녀석의 머리를 짓밟았다.

딱딱한 감촉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마침 나도 심심찮게 재밌는 저주를 좀 얻었거든.”

“뭐, 뭐라?”

“가시는 길 심심하지 마시라고.”

그렇게 말하며 나는 미련 없이 놈에게 힘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까지 겪어본 것 중 가장 강력한 저주의 힘을 지닌 개체.

물론, 로 아이아스라는 절대적인 존재가 있지만, 대륙으로 내려온 이후 발견한 저주에 관한 최고위 괴물의 힘이다.

“네 혼은 억겁의 시간 동안 여기 묶어두마.”

“무, 무슨?! 그만…… 그만둬!!”

놈의 남은 혼령에 베르샤의 저주가 뒤섞인다.

저주를 다루던 심연의 공주, 베르샤의 힘이었던 감각증폭을 재밌게 써먹긴 했지만 베르샤의 힘은 감각증폭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녀의 힘은 엄연히 저주라는 개념으로 그 영역은 보통의 수준을 넘어섰다.

[아귀화]

“윽…… 으윽?! 대체 무슨?! 카아아아아악!!!!”

상상을 초월하는 공복에 놈이 비명을 지른다.

“네 업을 청산할 기회다. 좋지?”

담담하게 말한 나는 놈의 혼을 방생하듯 녀석의 머리를 짓밟아 부서뜨려버렸다.

투웅!!!

동시에 부활하지 못한 사령왕의 모든 힘이 한 갈래의 파장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진다.

쿠웅…… 쿵!!

동시에 녀석의 지배를 벗어난 이 지하산맥의 수많은 마물들이 혼란에 휩싸여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녀석은 용의주도하게 자신을 해친 존재를 끝까지 말살하도록 세뇌를 걸어두었다.

그리고, 그 영향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마물들이 지하산맥의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나를 향해 덤벼들어 왔다.

지하산맥의 마물은 라스트 위스프의 기사들이 오랜 시간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지키고 감시해왔다.

그 종류는 끝도 없이 다양했고 강했으며, 어떤 것들은 힘은 약할지라도 그 능력들이 하나같이 치명적이다.

비록 볼케닉웜이라는 마물왕을 메가로드리아가 찢어버렸지만 한두 마리도 아니고 수백 수천 마리가 동시에 달려오는 모습을 보면 어지간해선 질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정도에 질려버릴 존재는 이곳에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담가버려!”

여기 놈들이 어떻게 날뛰건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지만 이대로 두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곳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폭주한 마물들이 대륙으로 나가던지.

아니면 다른 길을 찾아 마계로 흘러들어 가던지.

어느 쪽이건 내게는 이득은 없는 만큼 여기서 이 망할 지하산맥의 마물들의 기를 팍 죽여놓을 필요가 있었다.

콰앙!!!!

-끼이이이이이이이!!!!

이윽고 가장 먼저 벽면을 뚫고 거대한 락샌드웜 하나가 나를 한입에 집어삼킬 듯 덤벼왔다.

전신이 마치 바위처럼 울퉁불퉁하고 단단한 모습을 지닌 마물이었다.

하지만 놈이 내게 닿기도 전 내 앞을 막아선 메가로드리아의 단단하고 거대한 손이 놈의 아귀를 그대로 틀어쥔다.

[죽어라, 벌레 같은 놈!]

콰드득!!!

바위처럼 단단한 놈의 육신이 순식간에 찢겨 나가는 것을 시작으로 대규모 격돌이 일어난다.

기다렸다는 듯 기어 나오는 수백 마리의 마물들의 공세에 정면으로 부딪친 것이다.

지형의 이점, 진형의 이점, 협동의 중시.

그들은 그런 것 하나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닥치는 대로 찢어발길 뿐이다.

그 과정에서 아군이 방해하면 미련 없이 아군을 미끼로 삼아 전투를 시행해 나갔다.

노아스는 제법 효율적인 성격이라 이런 짓을 잘했다지만 엘라임은 아니었을 텐데.

[꺄하하하하! 죽어! 죽어버리라고!]

저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다음부터 공사에 동원하는 건 조금씩 줄여줘야 할 듯싶었다.

중요한 것은 한 기사단이 수백 년간 진입조차 못 하고 그저 경계하고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것에서 그쳤던 지하산맥의 마물들을 지금 내가 쓸어버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흐어어어……”

“넌 또 언제 온 거야.”

“지름길로 왔습니다.”

흐어어어어…….

넋 나간 얼굴로 기이한 소리를 내던 이오의 안광이 번뜩인다.

“대체 당신의 정체가 뭡니까. 대체 뭐길래 저런 어마어마한 존재들을……”

“말 시키지 마. 저 효율 나쁜 놈들을 단순히 굴리는 게 나도 쉬운 일은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며 상태창을 활성화한 나는 혹시라도 칭호가 붙지 않았을까 손을 움직여 확인했다.

“실화냐.”

그리고.

나는 칭호 중 하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가리지 않는 소환자](new)

(닥치는 대로 소환하는 깡을 지닌 자에게 내려지는 칭호)

[소환된 존재에게 실시간으로 들어가는 유지비 30% 절감]

-1차 해금완료.

-환골탈태 2스택을 이용하여 2차 해금완료.

“오……”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칭호의 곁에 new가 붙은 것으로 보아 이번에 대규모 소환을 시행하면서 새로이 얻은 칭호인 듯 보였다.

애초에 이 칭호들은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있는 편이다.

내가 보유한 칭호는 이미 세자릿수를 넘었고 아직 확인하지 않은 것 중 이처럼 효율이 높은 것도 다수 존재한다.

물론, 꽝도 있지만 지금 이건 확실히 좋은 칭호였다.

소모 유지비 30퍼센트 절감.

이게 뭘 뜻하냐면…….

“메가로드리아. 권능 마음대로 발현해봐.”

[계약자. 지금 상황에서 권능을 계약자의 마나에 치명적……]

“괜찮으니까 일단 해봐.”

[……알았다.]

더는 거부하지 않을 생각인지 양손에 쥔 마물들의 늘어진 머리를 미련 없이 버린 메가로드리아가 눈을 번뜩였다.

동시에 놈의 주변으로 푸른빛을 띤 바람이 모여들며 폭풍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오오……”

효능은 최고수준이었다.

정령왕에 신수를 부리면서 그랜드마스터급 환수왕의 권능까지.

무식한 소모전이지만 칭호의 효능 적분에 눈에 띌 정도로 그 소모량이 줄어든 게 느껴졌다.

“그런데 또 2차 해금이라…… 게다가 이번엔 두 개씩 받아 처먹는다고?”

빌어먹을 2차 해금. 운빨 x망겜 같으니라고.

효능은 확실한데 이전 별 부수미 칭호의 2차 해금을 완수하기 위해 몇 번을 시도했었는지 생각하면 절대 좋지만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2차 해금이 가능한 칭호들은 효과가 하나같이 좋았단 말이지.’

별 부수미도 이렇게 잘 써먹지 않았던가.

2차 해금의 효능을 전부 본 것은 아니지만 내 예상이 맞는다면 2차 해금이 있는 칭호들은 2차 해금을 하는 것을 통하여 칭호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그 점을 생각하면 분명히 이 칭호가 원하는 진짜 능력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는 뜻이리라.

내가 보유한 환골탈태 스택은 총 2개.

말없이 칭호를 바라보던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허공에 손을 뻗었다.

“뭐…… 하십니까?”

“신경 끄고 피난 준비나 해. 너희들이 속세와 연을 끊고 살아갈 만한 곳을 소개해줄 테니.”

“……”

내 말에 이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내가 보유한 환골탈태 스택은 2개.

그리고 해금에 필요한 시도 횟수는 최소 2개다.

확률은 체감상 10퍼센트 내외.

끔찍하디끔찍한 확률이 아닐 수 없다.

10퍼센트면 높은 수치가 아니냐고?

자기 목숨을 걸고 10퍼센트 확률로 도박하여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하면 과연 몇 명이나 납득할까.

게임과 현실은 다르다.

환골탈태 스택 100여 개에 이미 한차례 환골탈태를 성공한 나였기에.

또 그 환골탈태 한 번으로 얼마나 많은 힘을 회복했는지 직접 겪어본 나였기에 환골탈태 스택은 생각보다 소중하기 그지없었다.

“뭔가 고민 중이십니까?”

“눈치 빠르다?”

“주신 프리아 여신님을 모시는 신도로서 눈치가 느리면 안 되지요.”

확실히 프리아 여신의 계시는 좀 까탈스러운 면이 있다.

실제로 기적을 받은 기괴한 존재인 리치 이오는 다른 사제나 신관과는 다른 면모가 있었다.

“차근차근 모아서 적금할까. 아니면 당장 필요한 곳에 쓸까.”

심드렁하게 상태 칭호창을 바라보던 내가 묻자 이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을 던져왔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거, 저대로 둬도 상관없는 겁니까?”

콰아앙!!!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뒤쪽 벽면이 박살 나며 불타는 8개의 다리를 지닌 괴이한 괴물이 튀어나왔다. 길게 뻗은 주둥이로 나를 한입에 집어삼킬 듯 덤벼들었다.

“으억!!”

그 마물의 출현에 이오가 놀라 소리 지르며 급히 사령 마나를 끌어 올리지만 내 시선은 오로지 칭호창에 향해 있었다.

“위, 위험!!”

놀란 녀석이 급히 소리치려던 찰나.

푸른 물방울들이 마치 칼날처럼 날아들어 괴물을 토막 내버리자 이오의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왜.”

“아…… 별거 아닙니다. 이 또한 주신 프리아 여신의 은총이시기를.”

“뼈다귀가 그런 말 하니까 진짜 시답잖네.”

담담하게 말한 나는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적금이냐. 충동 도박이냐.

답은 정해져 있지만 어느 쪽도 마냥 손해 보는 입장은 아니었다.

“그래. 확률론 같은 거 믿지 말자.”

어차피 몇 퍼센트 확률이건 모든 일의 확률은 50%일 뿐이다.

되거나.

안되거나.

어차피 2개 가지곤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는 선택은 단 하나뿐이다.

“해금 가즈아!!!!”

생각은 신중하게 행동은 과감하게.

나는 미련 없이 주먹을 들어 2차 해금 시도의 버튼을 후려쳤다.

우우우웅!!!!

동시에 마치 연출이라도 하듯 상태 칭호창 전체가 흔들리며 빛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 오오……”

“뭘 하시는 겁이니까 대체 아까부터, 허공에 대고……”

“신경 쓰지 말고 네 할 일이나 해.”

“예.”

뭔가 불만인 듯 물러나는 이오를 뒤로한 채 나는 눈을 번뜩였다.

감이 왔다.

무려 환골탈태 스택 2개나 모아서 사용한 시도다. 물론 확률이 끔찍하게 낮은 탓에 성공할지 안 할지도 미지수이긴 하지만 한번 시도해서 성공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서서히 절정에 치닫듯 더욱 떨림이 커지고 빛이 강렬하게 새어 나온다.

왔다. 이건 분명히 성공이다.

단차를 단번에 대박 터뜨린 것이다.

절로 내가 가진 행운에 찬양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번쩍!!!

그리고, 빛이 한차례 크게 번뜩인 그 순간.

나는 볼 수 있었다.

찬란하디 찬란한…….

[해금 실패. 환골탈태 2스택을 소모하여 다시 도전 가능.]

“x병.”

실패할 거면 이펙트를 그렇게 화려하게 주질 말던가.

나는 칭호창을 만든 주신 프리아 여신의 머리채를 잡아 뜯고 싶은 충동에서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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