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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514화 (513/1,559)

제 514화

옅은 안개 너머에서 강렬하고도 이질적인 에너지가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굳어있는 내 표정에 일리나의 얼굴에 걱정이 어린다.

“뭐야. 벌써 죽은 줄 알았는데 운이 좋은 거야? 게다가 인간이라……. 제법 농밀한 맛이 날 것 같은데.”

안갯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면사로 얼굴을 가린 이들을 대동한 채 나타난 뇌쇄적인 미녀였다.

다른 이들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분홍빛 면사를 쓰고 있지만 유일하게 가장 선두에 선 여인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모든 매력을 드러내겠다는 듯 한치의 가림없이 나타난 그녀는 복장부터가 요염하기 그지없는 의상이었다.

“마, 마르카님.”

잔뜩 굳은 얼굴로 중얼거리는 리리네의 반응을 보아하니 저 상위몽마가 내가 찾던 그 대상이라는 것을 모를 수없었다.

“흐음……. 뭐, 좋아. 없어졌으면 좋겠지만, 굳이 멀쩡한 목숨을 구했다면 그 또한 자기 운명인 거지.”

담담하게 말한 그녀는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넘기며 또각또각 걸어 나왔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말했다.

“인간이 이곳까지 온 줄은 몰랐는데.”

“마족도 대륙에 멋대로 나오는데 인간이라고 마족 땅에 못 들어갈까.”

“쿡쿡……. 아하하하하하하 정말 겁이 없는 인간이로구나. 그래. 폭식견 켈베로스는 운이 좋아 자리를 비운 건가? 뭐 상관없지. 인간. 리리네를 내놔. 그리고 지금 당장 꺼지면 목숨은 살려주도록 할게.”

선심 쓰듯 말하는 그녀의 행동거지에 일리나가 발끈한 듯 뭐라 말하려 했다.

하지만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있던 내가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흐음…… 좀 더 모아볼까…… 아니면 달릴까…….”

“뭐?”

“아, 별거 아니야. 거 재미있네. 목숨은 살려주겠다고?”

“인간, 지금 내가 너 같은 미천한 인간 하나에 신경을 쓰고 있을 틈이 없거든. 마나가 하나도 없는 네 녀석이 어떻게 내 힘을 쳐냈는지는 몰라도 그 뒤의 인간 여자를 믿고 있는 모양인데 충고하자면 상대는 봐가면서 덤비는 거야.”

그녀는 정말로 내게 관심이 없다는 듯 말했다.

정황상 그녀가 향하려 한 곳은 아마 지하산맥의 안쪽에 숨겨진 신을 믿는 리치, 이오의 마을이리라.

“무슨 짓을 당했기에 그렇게 열이 받으셨나?”

“내 동업자의 기척이 사라졌어. 그리고 내가 아끼던 수하의 목숨도 끊어졌지. 부탁이니 인간 꼬마야. 내 인내심이 바닥나 너희들을 찢어발기기 전에 비켜주지 않겠니?”

그녀의 말에 나는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사령왕 데이안.”

내 말에 그녀의 몸이 우뚝 굳는다.

“그리고, 몽마 라피스.”

“인간.”

“설마 찾는 게 그 둘인가? 이미 목숨 끊어진 둘을 찾아서 뭐하게?”

“너……”

“아, 시신이라도 찾으시게? 미안한데 데이안은 물처럼 녹아내렸고 네 부하는 좀 전에 죽었어. 이거 어째, 육개장은 나중에 먹어야 할 거 같은데.”

“……”

“아 물론, 조의금이 아니라 축의금을 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너처럼 제정신 아닌 몽마를 모시고 있었을 부하나, 손을 잡은 동업자의 입장에선 완벽하게 탈출한 셈이니까.”

담담한 내 말에 그녀의 전신에서 분홍빛 기류가 스멀스멀 흘러나온다. 소드마스터급의 상위 몽마의 힘에 이질적인 기류가 감돈다.

“애꿎은 데에 가서 화풀이 하지 말라고.”

서걱!!

내 말이 기폭장치라도 된 듯 그녀의 손이 섬광처럼 휘둘러졌다.

동시에 분홍빛의 칼날이 내 목을 날려버리기 위해 날아들었다.

카앙!!!!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일리나가 칼디라스를 뽑아 들고 내 앞을 막아섰다.

“……”

웅웅 소리를 내며 파르르 떠는 검신을 바라보던 일리나가 인상을 찌푸리며 마르카를 노려보자 마르카가 완전히 표정이 없어진 얼굴로 내게 물었다.

“확인 차원에서 묻겠어, 인간. 라피스를 죽인 건……”

“내가 죽였어. 좀 전에.”

카앙!!!!!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분홍빛 칼날이 또 한 번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공격은 일리나가 휘두른 검에 막혔다.

“데이비. 그런 자극적인 도발을 꼭 이런 상황에서 할 필요가 있을까?”

그녀의 물음에 나는 그녀가 순간적으로 선보인 마나의 흐름을 흘끗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충분하겠다. 일리나. 네가 대신 좀 해라.”

“뭐?”

“면담 좀 해야 할 것 같으니 네가 좀 치워버려.”

내 말에 멍하니 나를 보다, 희고 작은 손으로 자신을 가리킨다.

“내가?”

“그래, 네가.”

그녀의 당당한 말에 내가 빙그레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새애애앵!! 카앙!!

그 사이에 몽마 마르카의 분홍빛 칼날이 또 한 번 날아들었지만 일리나의 칼디라스가 또 한 번 은빛을 번뜩이며 그것을 잘라내 버렸다.

“비싼 거 먹었지? 옆에서 흡수하게 도와주기까지 했지?”

내 말에 일리나의 표정이 묘하게 찌푸려진다.

“치사한 자식……”

“천년환……, 그거 골드로 환산하면 못해도 수천에서 수만까지 호가할 텐데.”

먹는 거로 벽을 넘어설 계기를 얻는다면 눈을 뒤집고 천년환을 사려 드는 인간들이야 대륙엔 널리고 널렸다.

“……누, 누가 안 한데?!”

기겁한 그녀가 성큼성큼 걸어나가며 마르카의 앞을 막아섰다.

그 모습에 마르카의 얼굴에 균열이 생겼다.

“일리나.”

“왜.”

“내 전생의 세계에서 그런 말이 있었어.”

“……”

“과유불급. 과한 건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뜻이야.”

“과한 건 모자란 것만 못하다라……”

“지금 네 상황이 그래. 조심해.”

사령왕 데이안은 그녀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적이다.

비록 천년환을 흡수했다 할지라도.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말없이 침묵하던 일리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들어 올렸고 그런 내 발언을 듣고 있던 마르카의 얼굴에서 미소가 한순간 완전히 사라졌다.

“수호대.”

“예, 여왕님.”

“명령을……”

분홍빛 면사에 요염한 복장을 한 여성들이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죽여, 아니. 살려서 데려와. 내 직접 저 연놈들을 죽지도 살지도 못한 꼴로 만들어줄 테니.”

섬뜩한 표정을 지은 그녀가 이를 빠득 갈며 스산한 말을 씹어뱉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여왕님.”

동시에 그들이 마치 합을 짠 것처럼 빠르게 일리나를 향해 파고들었고,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일리나의 몸에서 폭사 되던 기류가 더더욱 존재감을 강하게 터뜨리기 시작했다.

명백히 힘 차이가 나지만 차륜진이라는 것은 그런 강적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진법이다.

몽마검수들은 그런 일의 전문가, 그렇기에 일리나가 첫 공격에 반격을 가하거나 피할 것으로 판단했으리라.

콰앙!!!

하지만 선두에 서서 공격을 퍼부은 몽마검수의 검을 일리나는 피하지도, 반격하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맨손으로 낚아채 튕겨낼 뿐이었다.

“내가 데이비 검술을 본 기간이 얼마인데.”

일리나의 얼굴에 몽마들조차 얼굴을 붉힐 만큼 예쁘고 화사한 미소가 걸렸다.

반대로 면사로 얼굴을 가린 몽마들은 표정을 보지 않았음에도 당황함을 느낄 수 있었다.

검 한 자루도 맨손으로 못 튕겨낼 줄 알았어?

세상에는 여러 천재가 존재하지만.

내가 아는 선에서 일리나급의 천재는 회랑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천마 독고준, 그리고 검신 하레스가 그녀와 같은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면 회랑영웅들의 그 자존심 싸움 혈전에서 중간에 떨어져 나갈 일 따윈 없었으리라.

간단히 말하자면.

그녀의 재능은 단순히 천재의 영역을 넘어서서, 몇 번 본 것을 자신의 것으로 점점 만들어버리는 재앙에 가까운 재능을 지니고 있다.

시간은 그녀의 편이고, 경험은 그녀의 양식이 되리라.

일리나의 미래모습인 빛의 용사, 레이나의 경우 그 꽃이 완전히 피기도 전에 망가져 버린 케이스이지만 말이다.

놀라울 정도로 상큼한 어조를 유지한 채 몽마의 검을 튕겨낸 그녀가 남은 손에 쥔 칼디라스를 거대한 중력에 실어 내리그었다.

[중검]

[한 손 태산 가르기]

쩌억!!!

어마어마한 중력의 검이 그녀의 팔 전체에 실린 스냅에 따라 내리그어지며 거대한 섬광을 만들어냈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강자를 상대하기 위한 진인 차륜진을 펼치며 파고드는 몽마의 검수들을 향해 맹목적이고 위압적인 일검을 내리꽂았다.

복잡한 기술을 개 무시하는 압도적인 힘의 차이.

그것이 지금 내 눈앞에서 펼쳐졌다.

* * *

몽마의 여왕 마르카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오만하고 여유롭게 그저 팔짱을 끼고 몽마검수들을 상대하는 일리나를 싸늘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흘끗 본 나는 관심을 아예 꺼버린 듯 다시 상태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르카 또한 메인 위협은 내가 아니라 일리나라고 판단한 듯 보였으니 말이다.

말없이 차원 열쇠를 꺼내 든 나는 고민에 빠졌다.

‘돌려? 말아?’

환골탈태 스택 5개.

칭호 해금을 두 번 시도할 수 있는 기회다.

‘아니, 정신 차리자. 지난번에도 해금 한 번 하는데 수십 번 도전했잖아.’

게다가 중요한 건 당장 해금이 아니었다.

해금보다 중요한 것.

정체 모를 신이라 판단되는 존재. 넬타리드가 또다시 접촉해왔다는 점.

주신 프리아 여신은 용납하지 않는 존재가 자신의 영역 안에서 활동하는 걸 그냥 둘 만큼 마냥 자애롭진 않을 텐데.

자애의 여신인 주제에 자애가 부족하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그것은 어찌 보면 진리이기도 했다.

검게 변색한 차원 열쇠는 넬타리드 신의 흔적과 같다.

대화가 통하는 신이라면.

직접 대화를 할 수도 있는데.

중요한 문제에 직면한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중요한 건 지금 넬타리드 신이 내게 접촉해왔다는 것.’

멍청이도 아니고 지구의 인간을 유입시키면 이런 혼란이 생길 거라는 걸 모를 존재가 아니다. 그런 주제에 이런 사태를 주도한 넬타리드가 이제는 내게 도움을 주고 축복을 내렸다?

이 신은 과연 아군인가, 적인가.

복잡하게 생각하던 나는 결국 몇 가지 생각으로 좁힐 수 있었다.

뭐가 되었건, 직접 접촉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중요한 선택요소는 단 하나.

‘질러? 말아?’

환골탈태 스택 5개. 칭호 해금을 두 번 시도할 수 있다.

확률은 어차피 반반이다. 되든지, 안되든지.

확률은 50%.

‘아니야. 조금만 더 고민해보자.’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릴 수 있는 최적의 선택은 딱 하나일 뿐이다.

당장 도움이 안 되는 프리아 여신은 내버려두고, 어디 한번 당신의 힘이나 한번 체감해봅시다.

짧게 숨을 고른 나는 말없이 양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오오, 넬타리드 신이시여. 이 미련한 개돼지에게 어디, 맛난 사료한 번 내려주시기를.]

-삐릭.

-칭호 [가리지 않는 소환자]의 2차 해금을 시도하시겠습니까. 필요자원-환골탈태 스택 2개.

경건한 마음으로, 신실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린 내가 짧게 숨을 들이켠 뒤 해금을 시도한다.

그리고. 찬란한 빛이 내 눈을 감쌌다.

* * *

콰앙!!!

오랜 시간 합을 맞춰온 서큐버스 몽마들의 공격은 매서웠다.

비록 하나하나의 무력은 일리나 그녀에게 비할 바 못 되지만 그들의 협동능력은 실로 놀라울 정도였다.

천년환을 먹기 전이었다면 제법 애를 먹었거나, 크게 당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방대한 마나가 그녀의 내부에서 용솟음치며 그녀에게 끊임없이 활력을 불어넣는다.

데이비가 풀어준 혈도라는 것을 이용하여 퍼진 엄청나게 정교한 진을 따라 마나가 회전하면서 그녀를 끊임없이 강화했고 그녀를 더욱더 집중하게 했다.

‘조금만 더!’

데이비는 자신을 믿고 부탁을 남겼다. 그 이유가 자신의 몸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그녀는 아닌 척하면서도 마음을 쓰는 데이비의 배려에 고마움을 느꼈다.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자신이 아무것도 못 하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인 법이다.

“크윽?!”

몽마 검수들의 차륜진중 일부를 강제로 돌파해 뚫어버린 그녀는 적 중 현재 가장 위험하다 판단되는 존재.

저들의 우두머리인 저 마르카라는 여성을 노리고 검을 겨누었다.

동시에 몽마 검수들이 급히 그녀의 앞을 막아섰지만.

‘차륜전에서 가장 해선 알 될 짓은 함부로 진형을 이탈하는 것.’

마음을 읽는 게 아니고서야 수십 수백 년 합을 맞춰온 이들이라도 속마음을 완전히 읽을 순 없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진형이탈은.

“윽?!”

“너무 성급했어.”

진형 전체의 붕괴를 불러일으킨다.

촤악!!!

칼디라스가 자비 없이 늘씬한 몸을 가진 몽마를 베어버리자 붉고 뜨거운 피가 사방에 튀었다.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한 저들의 차륜진은 이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계속해서 힘을 소모 당할 바에야 가장 큰놈을 노리는 게 옳은 일.

그녀는 팔짱을 낀 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마르카를 바라보며 몸을 낮췄다.

그그극…….

동시에 그녀가 딛고 있는 지면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뒤틀렸고 한계치 이상의 힘이 가해졌을 때 그녀는 마치 스프링처럼 몸을 튕기며 마르카를 향해 파고들었다.

‘단번에 끝내야 해!’

그녀는 약하지 않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녀보다 강한 존재가 많다.

그렇기에 적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선 망설여선 곤란했다.

콰아앙!!!!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무너진 진형 넘어 마르카를 향해 일리나가 섬광처럼 파고들었다.

그 과정에서 몽마 검수들이 제 몸을 던져 막아냈지만 일리나의 저돌적인 돌진을 막아낼 순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검 끝이 마르카에게 거의 닿았을 즈음.

그녀는 갑작스레 확 치고 올라오는 뜨거운 감각에 눈을 부릅떴다.

정신을 차린 그녀가 몸을 멈췄을 때 본 것은 붉은빛과 검은빛이 뒤섞인 기이한 에너지의 송곳이 그녀의 어깨를 관통한 직후였다.

‘아뿔싸……’

너무 안일한 공격라인이었다. 조심하라던 데이비의 말을 제대로 곱씹지 않고 다 이겼다는 안도감에 긴장을 어느 정도 풀어버린 게 화근이었다.

“크윽……”

맡겼는데. 자신에게 부탁했는데. 고작 적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이렇게 치명상을 입은 자신에 대한 씁쓸함이 빠르게 몰려왔다.

“건방진 것.”

말없이 손을 뻗어 기이한 에너지를 쏘아 보낸 마르카는 몸을 비틀거리는 일리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는 한 손에 일리나의 어깨를 관통한 것과 같은 에너지 구체를 다시 만들어내며 말했다.

“미련하고 미련하구나, 먹잇감이 날뛰어봐야 먹잇감일 뿐이지. 내가 왜 그냥 구경한 줄 알았니?”

“으읏…… 쿨럭!”

입에서 울컥 올라오는 힘에 일리나의 몸이 휘청거렸다.

칼디라스가 소리치며 회복마법을 발현하지만, 마르카의 힘은 그녀의 회복을 방해하는 요소를 발산하고 있었다. 완전히 당했다는 생각에 그녀가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우선은 네년의 팔을 뜯어주마. 그리고 그것을 네년의 눈앞에서 마수들에게 먹게 할 것이다. 사지 하나하나 고통 속에서 찢어발겨 네년의 육신을 마수들이 집어삼키는 걸 보게 할 것이다!”

광기와 분노가 서린 목소리.

일리나의 목을 틀어잡은 그녀가 눈을 섬뜩하게 번뜩이며 소리 질렀다.

그리고.

“크윽…… 끅……”

점차 목에 힘을 가해오는 그 모습에 일리나의 시야가 흐려지려던 찰나.

퍼엉!!!!

엄청난 소리와 함께 마르카의 상반신이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순식간의 일에 리리네는 물론이요, 아직 숨이 붙어있는 몽마검수들 조차 숨을 크게 들이쉬는 소리가 멀리 퍼져왔다.

본적이 있는 공격이었다.

분명, 펠리스티 공국에서 뱀파이어에게 의해 변해버린 볼티즈왕국의 왕자를 해치울 때 데이비가 보여주었던 신비한 방식의 장법이었다.

그 방식이 신기하여 그에게 물어보고 이름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분명…….

[천마공 혈마폭쇄장]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물론 위력은 그때 당시에 데이비가 보여주었던 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마왕의 권능을 집어삼킨 상위 몽마를 저렇게 일격에 날려버리는 게 불가능할 테니 말이다.

놀라울 정도로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마르카의 모습에 일리나는 한쪽에서 멍한 얼굴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작은 소녀, 리리네 올로와쥬를 바라보았다. 그녀 또한 이런 상황은 예측하지 못한 듯 보였다.

그리고, 잠시 뒤 데이비의 울컥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번 다 실패했다. 총 세 번 실패다. 기도했는데도 실패했다.”

“뭐?”

뜬금없이 이건 무슨 소리인가.

당황한 일리나를 향해 데이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연패했다고, 지금부터 자잘한 거 다 무시하고 직진한다. 그러니까……”

갑자기 이 녀석이 왜 이러나. 그 생각이 들기도 전에 데이비의 서늘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그곳엔 일리나를 향해 기습공격을 가하려 했었는지 뒤쪽 포지션을 잡고 있던 몽마 둘이 데이비의 양손에 머리를 틀어 잡힌 채 버둥거리다 추욱 늘어지는 게 보였다.

“질문 안 받는다.”

동시에 데이비의 몸에서 주변을 짓누르는 어마어마한 마나가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좀 전까지 그녀에게 맡겨두려 했던 데이비였지만 지금 그는 데이비의 표현대로 말해서 꼭지가 제대로 돌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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