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8화
슈르르륵…….
이윽고 마기에 의해 완전히 제압된 공허 에너지는 다시 내 몸에서 빠져나와 내 손에 작고 붉은 보석으로 결정화되었다.
그 힘이 마냥 무식하게 폭주하진 않지만, 무한 동력기관이자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출력을 생각하면 내가 만드는 대형프로젝트의 원자로의 원료로써 최적이다.
타 세계로 가 원료로써 플루튬을 챙겨오고 그 외에 대륙에서 구할 수 있는 갖은 희귀물품, 그리고 이제는 마왕의 권능을 결정화한 것까지.
거, 심장부 하나 만드는데 더럽게 힘드네.
그 심장부인 원자로 하나만 제대로 만들면 70퍼센트 이상 제작이 진행되는 것과 다르지 않지만.
“아…… 아아……”
자신의 힘의 원천을 다시 내게 빼앗겨버린 마르카의 얼굴엔 체념과 절망이 서려 있었다.
“마왕이…… 어째서 인간이 마왕으로……”
“……”
허망하게 중얼거리는 그녀를 뒤로한 채 공허 에너지의 근원인 결정석을 바라보던 나는 그것을 아공간에 던져넣어 버렸다.
마계에 들리게 된 본래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자 느긋함이 전신에 감돌았다.
‘하필 몽마의 여왕이 데이안놈과 손을 잡고 지하산맥에 손을 뻗고 있었던 게 다행이야, 운이 좋았다.’
자칫 잘못했다간 마계의 중심부까지 밀고 들어가야 할 뻔했으니 말이다.
“볼일 끝났다. 가자.”
“버, 벌써? 뭐 거창하게 하는 듯하더니?”
“애초에 이걸 가지러 온 거야.”
내 말에 가만히 있던 리리네가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는 내 앞에 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도, 도와주세요. 왕이시여!”
온몸을 파르르 떠는 그녀의 외침에 내가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왕이시여, 당신이 말하는 대로 모든 것을 따르겠습니다! 제발!”
“뭐?”
“제발. 제발 도와주세요, 당신이라면! 꺄악!!”
콰앙!!!
다급히 소리치던 리리네는 갑작스러운 폭발에 비명을 내질렀다.
그녀를 공격한 것은 분홍빛의 마기로 이루어진 탄환이었다.
“어처구니없어서 잘했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그쪽도 생명줄 참 질기네.”
리리네를 향한 공격을 걷어내 버린 나는 씩씩거리며 리리네를 노려보는 마르카를 바라보았다.
허망한 얼굴로 눈에 초점이 사라져 가던 그녀는 초인적인 정신력이라도 발휘했는지 흉흉한 안광을 빛내고 있었다.
“더럽고 천박한 년, 분수도 모를 배신자년!!”
그녀는 마치 광기에 들린 것처럼 리리네를 향해 독설을 내뱉었다.
“저주하겠다!! 절대 곱게 죽을 생각하지 말아라!”
“당신은……”
머리를 숙이고 있던 리리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보였다.
그녀의 눈엔 투명한 눈물이 머금어져 있었다.
“닥쳐!! 그 더러운 입에서 목소리를 내지 마라! 네년이 저 인간에게 이곳에 대한 정보를 불지만 않았어도 이토록 많은 몽마들이 죽지는 않았을 거다!”
그녀의 외침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많다고 하기엔 제압만 한 몽마들이 반수 이상인데.”
“닥쳐!! 닥치라고!”
바닥에 쓰러져 넝마가 된 것도 모자라 빛의 십자가로 인해 실시간으로 죽어가는 자신의 몸에 허탈함을 느꼈는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하, 하하하…… 아하하하! 꺄하하하하하!!”
흡사 미쳐버린 것처럼 광소를 흘리던 그녀의 눈에 광기가 돌며 스스로 자신의 손을 물어뜯었다.
콰득! 소리와 함께 그녀의 전신에서 검은 마기가 붉은 피와 함께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녀가 쓰러져 있던 바닥에 기괴하게 생긴 분홍빛 마법진이 생겨났고 그녀의 피와 뒤섞이며 시뻘겋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래, 다 같이 죽으면 되잖아. 다 같이 죽자고.”
그 말에 리리네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마르카! 대체 무슨 짓을!? 설마 그 흉폭한 마수를 깨울 생각인가요?!”
“닥쳐!! 절대 혼자 죽지 않을 거다!”
그녀의 발작적인 외침에 나는 리리네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흉폭한 마수?”
내 질문에 리리네는 온몸을 와들와들 떨며 고개를 숙였다.
“흐, 흐흐흐, 흐흐…… 그래. 그 누구도 모르지. 이 땅 아래에 무엇이 잠들어 있는지 말이야.”
섬뜩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가 나를 노려보았다.
“인간 마왕. 네놈이 강한 것은 알겠다만 세상을 씹어 삼키는 괴물을 상대로 얼마나 버티는지 죽어 혼령이 되어서라도 지켜보겠……. 쿨럭!!”
격하게 소리를 지르던 그녀가 또 한 차례 각혈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녀의 육신이 마치 마비라도 온 것처럼 굳어지며 무너져 내렸고 그녀의 눈, 코, 입, 귀 등등 전신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저게 대체…….”
시뻘건 마법진은 척 보기에도 제법 복잡해 보였다.
단순히 공허 에너지와 몽마의 특성에 취해있을 뿐 마법에는 문외한인 몽마 마르카가 다루기엔 제법 어려운 마법진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건 애초에 하나뿐이었다.
누군가가 그녀에게 가르쳐주었다는 것.
“대체 뭘 소환하려고……”
“그 마수인지 뭔지를 불러내려는 거겠지.”
내 말에 리리네가 눈을 부릅뜨며 고개를 쳐들고 소리쳤다.
“포식의 마수…… 페, 펜릴!”
“펜릴?”
“그, 그래요!”
와들와들 떨며 그녀가 조심스레 설명했다.
“이곳에 몽마의 성이 처음 세워졌을 때 이 성을 만든 몽마의 여제께서는 그, 그런 기록을 남기셨어요. 성의 아래에 지독한 괴물이 잠들어 있다고……. 몽마 중 수천 년에 한 명 나올법한 체질을 지닌 이가 그 괴물의 꿈속에 들어갈 수 있고 그 괴물을 불러낼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요.”
그녀는 괴물을 회상하는 게 고통스러운 듯 이를 악물었다.
그런 그녀의 설명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와 모,몽마 여제 마르카는 그 괴물과 꿈에서 접촉할 수 있는 특수체질의 몽마였어요. 그리고 꿈속에서 봤죠.”
그 괴물 놈이 어떤 놈이고, 또 어떤 생각을 하는 지를 말이다.
그녀의 설명은 제법 흥미로웠다.
땅속에 봉인된 포식의 마수 펜릴이라는 괴물은 본디 마수의 일종이었으나 세계수의 가지를 씹어 삼키고 변해버린 괴물 중에 괴물이라는 모양이었다.
한계 없이 성장하고, 한계 없이 강해진다.
펜릴의 가장 무서운 점은 세상 모든 것을 먹어치우고 자신의 힘으로 바꾼다는 것.
그런 놈이 세계수의 힘을 흡수했으니 공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이전의 세계수라면 어떻게 해볼 방법이 존재했겠지만, 지금의 세계수 알이라면 나도 그녀를 죽일 방법이 마땅찮다.
그그그그극!!!
“으윽?!”
“꺄아악!”
이윽고 마법진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하며 봉인해제에 들어가자 어마어마한 중력이 일대 전역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기막을 펼쳐 몸을 보호한 일리나였지만 완전히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리리네의 경우 힘을 견디지 못해 호흡곤란이 오고 얼굴이 창백해져 있다.
반면 마법진을 말없이 지켜보던 나는 마치 힘자랑하듯 짓누르는 중력을 역중력 마법으로 상쇄시키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죽이리라.]
그때 내 귓가에 누군가의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의 목소리를 듣는 자. 모두에게 이르겠노라.]
봉인이 서서히 약해지며 놈의 목소리가 이젠 꿈이 아니라 육성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겁에 질려 도망쳐봐라. 세계를 포식하고, 대륙을 집어삼키리라. 모든 것을 다 불태우고 나의 먹이가 되리니.]
광오한 목소리는 서서히 목소리 자체에 힘을 담기 시작하며 주변을 짓눌렀다.
[내게 저항하는 자여. 세계수의 힘을 먹어치운 내겐 그 어떤 법칙도 통용되지 않음이니.]
거짓말하고 있네.
놈은 운이 좋았다.
먹은 것을 자신의 힘으로 바꾸며 가리지 않고 먹어치울 수 있다.
그야말로 최적의 특성을 지닌 괴물이었다.
오만하게 중얼거리는 놈의 목소리는 허풍이 아닌 듯 주변을 장악하는 힘이 더욱 짙어지기 시작했다.
마법진 또한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느껴지는 기세만으로 따지면.
이놈이 풀리면 대륙이 되었던 이곳 마계가 되었던 곱게 끝나진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이 미친 나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일리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데…… 이. 비.”
“……”
무언가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짜듯 중얼거린 그녀가 내게 손을 뻗는다.
이에 생각을 마친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 가볍게 머리를 푹푹 눌러 쓰다듬었다.
“꺅! 어…… 어어?”
동시에 비명을 지르고 주저앉아버린 그녀가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에게 가해지던 중력이 완전히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는 서서히 커지며 힘을 더해가는 붉은 마법진을 향해 소리쳤다.
“데이비! 마법진을 막아야 해!! 놈의 목소리가…… 놈의 목소리가 들려와!”
너의 목소리가 들려.
그래, 나도 들었다.
“세계수까지 처먹고 변화한 놈이 사용하는 힘이라 청단이로 베어도 쉽게 파괴는 안 될 거다.”
게다가 마법진 여기저기에 더미 트릭이 깔려있다.
마냥 베었다간 그대로 일대가 전소해버리리라.
몽마의 특성과 공허 에너지만 다룰 줄 아는 마르카가 사용했다고 보기엔 굉장히 심오한 마법진인 만큼 저걸 만든 건 마르카 본인이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럼…… 어떻게 하려고?”
“끝이야. 이제 다 끝이야…….”
세계수급의 존재가 파괴를 시작하면 그건 재앙이다.
마법도 신성력도 사령 마나도 아무것도 통하지 않을 테니까.
아마 일리나나 리리네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그런 말일 것이다.
“저 마법진 아는 게 몇 명이라고 했지?”
그런 그들을 향해 내가 심드렁하게 질문을 던졌다.
이에 덜덜 떨던 리리네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을 제외하곤…….”
“그럼 됐어.”
담담하게 말한 내가 일리나를 향해 빙그레 웃어 보였다.
“마법진은 마냥 파괴하면 안 돼.”
보통 마법진은 청단이로 베어왔었다. 실제로 그렇게 상대의 흐름을 다 끊어버렸으니까.
하지만 세계수의 힘을 일면 흡수한 괴물이 만들어낸 마법진 같은 건 잘못 건드리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어떻게 해야 이 웃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까.”
내 물음에 일리나가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다급히 소리 질렀다.
“내, 내가 어떻게 알아! 지금 농담 따먹기나 할 때야?!”
“거참 성질하고는……”
짧게 혀를 찬 나는 그녀를 등진 채 한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바닥을 쓱 훑어본 뒤 손에 쥐고 있던 신창 롱기누스를 아공간에 넣고 청단이를 꺼내 들었다.
“힘만 세다고 다 똑똑한 게 아니더라고.”
“우리 청단이. 솜씨 발휘한 번 할까?”
부드럽게 다독인 내 눈에 이채가 어린다.
마르카가 살아서 마법진을 구동하는 것도, 마법진에 자체 동력을 심어놓아 그것을 발현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펜릴이라는 이놈은 봉인된 채로 무식하게 스스로 봉인해제 마법진에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건 전원 코드 뽑으면 끝나니까 잘 기억해놔.”
서걱!!
동시에 청단이의 검날이 허공에서 푸른 궤적을 만든 뒤 마법진의 주변을 베어버렸다.
스르르륵……
동시에 피처럼 붉던 마법진의 빛이 사그라진다. 계속해서 힘을 가하던 놈과 마법진을 이어주던 선을 끊어버렸으니.
그 결과는 훤하다.
[……]
“어이쿠, 몇천 년 그 안에서 더 주무셔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