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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521화 (520/1,559)

제 521화

럭니스 자작의 행패를 바라보며 굳어 있던 이들은 갑자기 나타난 일리나가 자작의 어깨를 뚫어버린 채 위협하자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세상에!”

“대체 무슨 짓을?!”

귀족을 습격하면 그 장소에 있던 이들까지 모조리 휩쓸릴 가능성이 있다.

“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 하는 럭니스 자작의 모습은 퍽 웃긴 상황이었다.

“데이……”

[사일런스]

순식간에 사일런스 마법이 그의 말을 막아버리자 보리스가 눈을 부릅뜬다.

하지만 금방 내 의도를 눈치챈 듯 입을 다물었다.

일단 상벌문제를 떠나 이 사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에 돌았으리라.

[모른척하세요. 공사 구분도 봐가면서 하는 겁니다. 흑마법사들에겐 소용없을지라도 일반인들에게 저희가 면식이 있는 걸 들켜본들 아무런 득이 없어요.]

라스트 위스프 소속 리인포스 알파 기사단은 이것이 문제였다.

말이 통하지 않고 본능대로 움직이는 마물과 싸우는 이들인 탓에 사람과의 격전에 굉장히 취약하다.

정치는 물론이요, 정보전에서도 특히 밀리는 모습이었다.

쉽게 말해서 같은 인간을 상대로 효율 좋게 나오는 법을 전혀 모른다는 뜻과 같았다.

보리스 역시 뛰어난 힘을 지닌 존재였지만 그것은 단순 무력의 기준일 뿐 그 또한 정치판에선 어린아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보리스가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럭니스 자작의 수행원들이 더 빠르게 반응했다.

“자작님!”

“미친년! 감히 이분이 뉘신 줄 알고!”

검을 잃어버린 수행원들은 일단 어떻게든 일리나를 떼어내려 마음을 먹었는지 그녀에게 빠르게 접근했다.

하지만 그들은 채 두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그들이 움직임과 동시에 내가 거침없이 수행원 하나의 정강이를 걷어차 뼈를 박살 내버린 뒤 나머지 한 사내의 뒷덜미를 낚아채 관절을 비틀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뼈 곳곳이 탈골된 수행원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콰앙!!!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바깥에서 몇 명의 경비병들이 들이닥쳤다.

“누구냐! 감히 콘타스 제국의 비호를 받는 이 영지 내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놈은!”

핼버드를 든 병사 둘과 경비단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씩씩거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그리고는 바닥에 쓰러진 럭니스 자작의 얼굴과 그의 가슴께에 달린 귀족을 상징하는 브로치를 한번 보았고 이내 그의 몸에 검을 꽂아넣어 제압하고 있는 일리나를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

“멈춰라!! 당장 멈추지 않으면 경을 칠 것이다!!”

주변 분위기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병사들은 순식간에 달려와 나를 먼저 제압하려는 듯 내 팔에 손을 뻗었지만, 그보다 먼저 일리나가 모두를 얼어붙게 했다.

스르륵…….

“이놈들을 전부 포박해! 내 직접 누구의 사주를 받았는지 심문을…… 허업?! 화, 황녀 저하?! 황녀 저하께서 여긴 어인 일로!”

바닥에 쓰러져 인상을 쓰며 악을 지르던 럭니스 자작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다.

동시에 가만히 그를 노려보던 일리나가 조용히 말했다.

“대제.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대제의 이름으로 허락한다. 어디 마음껏 날뛰어보라.”

입구 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 주인공인 사내에게 향했다.

“누구……”

“짐의 얼굴을 모르는 건 죄가 아니다만, 이런 사태에 일방적으로 럭니스 자작의 편을 드는 건 그리 보기 좋지 않군.”

담담하게 말하며 나타난 구릿빛 피부의 사내가 가면을 벗으며 씨익 웃어 보였다.

“대, 대제!”

동시에 소스라치게 놀란 경비단장의 표정이 싸늘하게 질렸다.

그의 얼굴에 서린 생각은 들여다보지 않아도 훤히 보일 정도였다.

당신이 거기서 왜 나와?

딱 그 꼴이다.

“눈을 낮춰라.”

사내의 곁에 있던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가 투기를 끌어내며 위협하자 경비단장이 기겁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나와 일리나를 뒤따라 들어온 사내.

그는 다름 아닌 삼 제국 중 서부대륙의 패권국가인 콘타스 제국의 대제였다.

* * *

콘타스 대제와의 만남은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실제로 길거리에서 제국의 황제를 만날 확률이 높아 봐야 얼마나 높겠는가.

그런데, 짜잔.

세상에 절대라는 말은 없더군요.

그와의 만남은 의도하지 않았던 말 그대로의 우연이었다.

말 그대로였다. 이오에게 지하 던전의 감시를 부탁한 뒤 기사단과 합류하기 위해 이 소영지로 일리나와 함께 도착한 나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번화가에서 한 사내와 부딪혔다.

문제는 그 사내가 내 품에 있던 돈주머니를 소매치기하려 했다는 사실이었다.

당장 기사단의 일도 있기에 소란을 피울 수 없는 처지였던 나는 안에 돌덩이만 가득한 주머니를 슬쩍 내어주고 그가 가진 돈주머니를 역으로 날름 털어먹었다.

설마 그게 황제의 돈주머니일 줄 생각도 못 했지.

콘타스 대제와는 제법 일면식이 있지만, 그는 특이한 마나 파장을 이용해 자신의 특유파장을 흐리고 아무런 장치가 되지 않은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반대로 나 또한 일리나와 함께 가면과 로브를 덮어쓰고 있었으니…….

우연이 거듭되면서 이런 웃긴 사태가 벌어져 버렸다.

비록 황제의 돈주머니를 소매치기한 꼴이지만, 이 사태에 대해선 나로서도 할 말이 많았다.

아니, 제국의 대제씩이나 되는 인간이 왜 돈을 직접 들고 다니고, 왜 남의 돈주머니를 소매치기해가냐는 말이다.

그렇게 헤어졌는데 그가 대제인 줄 어떻게 알았는가.

그건 간단했다.

그놈의 돈주머니 안에서 콘타스 대제를 상징하는 옥새와 백금화들이 나와버렸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속았음을 깨달은 그 또한 나를 잡기 위해 직접 행차했고 인적이 드문 곳에서 그렇게 나와 대제는 다시금 만나게 되었다.

[건방진 놈, 감히 제국 대제의 주머니를 배수 짓 해간 것이냐?]

[말은 똑바로 하셔야지요. 대제. 먼저 소매치기한 건 대제이십니다.]

내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그의 수행원들이 내게 역정을 냈지만 곧이어 후드를 넘기고 나를 확인한 수행원들은 얼어붙고야 말았다.

중아 귀족도 없는 이 작은 영지에서 한 제국의 황제와 현재 대륙의 최강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대륙의 성자가 서로 소매치기할 거라곤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후 대제가 암행을 위해 이곳으로 왔고 온 김에 조금 거친 방식으로 치안 능력을 시험하려 그런 짓을 했다지만…….

내가 보기엔 이 미치광이 젊은 황제는 그냥 재밌어 보여서 과격하게 일을 저지른 것이 분명했다.

[있는 놈이 더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대제.]

[그 말은 네놈이 오늘 한 짓을 보고 깨달았네. 그만 주머니를 돌려주겠는가.]

[보아하니 대제께선 소매치기에 제법 실력이 있으시던데. 나름대로 그 바닥의 룰도 알고 계시겠지요.]

[허허, 맹랑한 놈. 네놈은 어찌 그걸 알고 있느냐.]

[하인스 영지에 왜 왈패조직이 없는지 압니까?]

[그렇군, 유별 날 정도로 하인스 영지는 깨끗한 편이었지.]

정확히는 정복왕이자 위대한 황제.

신창술의 대가라 불리던 팔라디아의 황제 아스트레아에게 배운 방식을 써먹은 것이지만 말이다.

이미 손에 넣은 돈주머니는 가져간 놈의 것이다.

그게 어디든 빈민가에 들끓는 소매치기들의 생각이다.

사건의 전말은 그러했다.

결국, 작은 실랑이 끝에 돈주머니를 돌려준 나는 황당해하는 일리나를 데리고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하지만 대제는 내게 흥미를 느꼈는지 암행을 하다말고 내게 달라붙어 버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럭니스 자작은 말 그대로 정말 재수가 너무 없었을 뿐이었다.

푸욱!!

“크아아악!!”

수축한 근육을 다시 찢어발기며 일리나가 거검을 뽑아내자 럭니스 자작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와들와들 떨었다.

그로선 기절초풍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작은 영지에서 자국의 황녀와 제국의 황제를 동시에 만난다는 건 상식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것도 일개 하급귀족이라 왕의 알현조차 쉽지 않은 이들에게는 더더욱.

여기서 내가 직접 나서면 더 재밌어질 듯 했지만, 지금은 그저 기다렸다.

“이, 이자들이 저를 위협하여!”

럭니스 자작의 외침에 일리나의 표정이 더욱 싸늘하게 변했다.

“럭니스 자작.”

"화, 황녀저하! 소신은 억울하옵니다! 소신은 그저 피해를 입었을 뿐이고 저들이 저와 제 수행원들을 겁박한 것입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세요!!”

“닥쳐라. 이년!”

듣다 못한 샤이르가 화가 난 듯 소리 지르자 럭니스 자작이 순식간에 움직여 그녀의 뺨을 치려 했다.

물론, 보리스가 순식간에 나서 그 손을 막아냈지만, 그는 당황한 채 상황을 모면하려 했다.

“황녀 저하! 대제! 신을 믿으셔야 하옵니다! 팔란 제국과 대륙의 평안에 충성을 바쳐온 저를 저런 더럽고 야만적인 용병들과 비교하시면 아니 되시옵니다!!”

그 외침에 268기 기사단원들이 이를 부득부득 갈지만 일리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타국에 와서, 이런 행패를 부려놓고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 그것이……”

그는 피가 울컥울컥 쏟아지는 환부를 짓누르며 급히 소리쳤다.

“그, 그러하옵니다! 설사 신이 실수를 하였다 할지라도 적절한 절차 없이 이리 위협하실 순 없는 일이옵니다! ”

그의 외침에 일리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각 국가는 국가 나름의 규범이 있다. 팔란 제국의 경우, 일리나의 직급을 생각하면 당장 그를 처벌할 명분이 없다.

거기까지가 일반적인 경우였다.

차갑게 그를 노려보던 일리나는 짧게 혀를 찼다.

“……”

“헤, 헤헤. 비, 비록 상처를 입었사오나 황녀 저하께 제 어찌 항의하겠사옵니까. 허니 이 일을 눈감고 물러나 주신다면…….”

이에 럭니스 자작은 일단 큰불은 껐다고 생각했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오래가지 못했지만 말이다.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데이비 왕자님.”

“팔란제국의 내부사정에 간섭할 권한은 없지만 처음 보는 귀족이 저를 팔아 멋대로 기세등등하게 나서는 꼴, 별로 보기 좋진 않네요.”

그녀의 의도를 눈치챈 내가 빙그레 웃으며 후드를 넘기자 럭니스 자작의 눈이 더욱 크게 뜨여진다.

안 그래도 놀라있던 그의 눈은 이젠 거의 찢어지기 직전이다.

“끄억?! 무, 무슨?!”

대륙의 패자들이 이 작은 음식점 내부에 모조리 몰린 이 웃긴 상황 속에서 나는 냉정하게 말했다.

“설마 팔란제국에서 이런 식으로 제 이름을 멋대로 파는 줄은 몰랐습니다. 라운왕국과 팔란제국은 경제면에서나 무력 동맹 면에서나 서로 믿고 맡길 수 있는 동지인 줄 알았는데요.”

내 말이 이어질수록 럭니스 자작의 표정은 더욱 창백해진다.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제 이름 꽤 비쌉니다. 멋대로 남의 위세를 사칭한 팔란제국의 귀족 럭니스 자작의 처벌을 요구하지요.”

“처벌이라.”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 새로 계약하던 사업.”

내가 말을 끊고 빙그레 웃는다.

“다 갈아엎으시던지.”

“아, 안돼!”

기겁한 그가 내게 달려오려 한다.

그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된 것이다.

단순히 정치문제에서 국제문제로 번지는 건 사람의 혓바닥 놀림 몇 번이면 일어날 일이다.

그가 먼저 내 이름과 영지를 팔아넘겼다.

문제는 허위사실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국제문제의 정세가 변한다는 점이었다.

팔란 제국은 현재 하인스 영지에 많은 물자를 파는 것으로 전쟁의 손해를 메꿔놓고 있다.

동반자이자 든든한 아군인 팔란제국을 건재하게 만들기 위해 내가 살리반 황자와 협의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딴 사태가 벌어져서 내가 거래를 중단해버리면?

팔란제국의 입장에서 국가가 흔들릴 만큼 큰 타격이야 당연히 없겠지만, 별것도 없는 자작위 귀족 하나를 살리자고 나와 사이가 틀어지는걸 방치할 만큼 팔란제국이 마냥 선한 국가가 아니었다.

이런 경우 팔란 제국에서 내릴 결단은……

럭니스 자작을 버리는 패로 사용하는 것.

그것으로 충분했다. 럭니스 자작 또한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았는지 창백하게 질린 채 일리나에게 매달려 애걸복걸했다.

“죄, 죄송합니다. 저하!! 시, 신이 잠시 미쳤나 보옵니다! 제발 자비를!”

“무엇을요. 저는 당신을 이 이상 처벌할 수단이 없지요. 그러니 그 자비는 내가 아니라 데이비 왕자에게 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불과 1년도 안 된 시간에 라운왕국과 하인스 영지가 얻게 된 영향력은 지금 이런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낼 정도였다.

일리나의 말에 럭니스 자작이 내게 엉금엉금 기어와 내 바지춤을 붙잡았다.

“서, 성스러운 대륙의 성자시여. 부디 하해와 같은 자비로……”

“이봐요. 럭니스 자작.”

이에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친 채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부딪힌 주제에 상대를 억압하고 굴욕을 주고, 음해하려는 거침없는 행동 잘 봤습니다. 죄 없는 사람에게 갑질 잘하시던데, 그거, 재밌어 보이네요. 나도 한번 해봅시다.”

그 갑질이라는 거.

기사단의 문제를 넘어 그의 발언을 듣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차후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당연히 그냥 넘길 순 없거니와 넘길 수 있다 해도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감히 누구 동기에게 더러운 시선을 보내.

감히 누구 선생님에게 그딴 짓을 저지르나.

기사단의 규율을 생각하면 이런 행동은 좋지 않기에 268기 단원들이나 보리스 선생의 경우 이 악물고 참았지만.

나는 내가 가진 권리를 최대한 이용할 생각이었다.

불필요한 계급과 위세를 이용한 갑질은 의미가 없지만 필요할 때조차 사용 못 할 이유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내 웃음에 럭니스 자작의 몸이 우뚝 굳었다.

그리고, 그 공포심을 드러내듯 그의 가랑이 쪽이 축축하게 젖어들어 가기 시작했다.

“대제. 병사들을 빌려주시지요.”

“그렇게 하라. 그래, 뮤크 네가 직접 가거라.”

“대제의 뜻대로.”

“이 자를 당장 제국 금부로 전이하여 압송해주세요. 그리고 이곳에서 있었던 국제문제로 번질뻔한 일을 상세히 전달하여 제국의 법대로 판결받게 해주세요.”

그가 하인스 영지와 대륙의 성자를 들먹이고 사칭한 것을 하필이면 본인이 눈앞에서 보았으니 단순한 문제를 넘어섰다.

그 말에 뮤크라 불린 구릿빛 피부의 사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제국으로 끌려간 그에게 내려질 처분은 간단하다.

내가 어떤 입장인지 팔란제국에서 모를 리 없기에 솜방망이 처벌은 당연히 불가.

머리끝까지 화가 난 살리반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는 공적으로 처형당하지 않더라도 비공식적으로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대륙의 평온과 일리나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피를 묻히고도 남을 위인이 바로 살리반 황태자였으니 말이다.

비록 그가 아닐지라도.

고작 하급 관리 하나와 국가 간의 문제를 저울질하는 능구렁이 같은 이들은 빌미를 제공할 수 있는 이 사태를 그냥 두고 보지 않고 꼬리를 잘라낼 것이다.

“아, 안돼! 이, 이건 모함이다!! 살려주시옵소서!! 저하!! 황녀저하!! 황녀저하아아아!!!”

질질 끌려가며 소리 지르는 럭니스 자작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진다.

“이래서 정치판에서 말 함부로 했다간 골로 간다는 거지.”

“그러는 그대는 이전 전쟁 때 짐의 면전에 대고 선전포고도 하지 않았나.”

“설마 제가 아무 생각없이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요.”

내 대답에 그가 재밌다는 듯 킥킥 웃어 보였다.

“하하하하하하!! 재밌구나. 그 오만함. 실로 광오하지만 강자의 특권임을 그대는 잘 인지하고 있다.”

수행원 중 하나가 사라진 탓에 나머지 수행원이 불안한 듯 그에게 귓속말을 한다.

“짐이 고작 호위 하나 없어서 아무것도 못 하리라 여기는가. 쓸데없는 걱정 말고 주변을 안정시켜라. 이곳의 백성들이 혼란에 빠져 일과를 마치지 못한다는 건 있어선 안 될 것이다.”

그렇게 말하자 수행원은 마지못해 고개를 숙이며 사라졌다.

순식간에 사태가 정리되고 모두가 빠져나간 음식점엔 268기 기사단원 4명과 보리스, 그리고 일리나와 나, 그 외에 콘타스 대제만이 남았다.

아주 조용한 침묵 속에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배고프니 배부터 채우죠.”

내 말에 콘타스 대제가 씨익 웃어 보였다.

“듣자 하니 그대는 아주 주당이라고 하더군. 어떤가. 짐과 한번 붙어보겠는가?”

“빈손으로는 안 합니다.”

“데, 데이비?!”

갑작스런 분위기 전환에 일리나와 리인포스 알파 기사단원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아니, 굳이 무리하게 이런 상황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속물적이군, 허나 내기에 보상이 있어야 흥이 돋는 법. 좋다. 강자를 예우하는 의미에서 짐이 그대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마. 짐을 이기면 이것을 주도록 하지.”

황실의 보물로 보이는 목걸이를 풀어 내놓는 그 모습에 일리나의 눈이 번뜩였다.

“저건!”

무엇인지는 모르나 꽤 좋은 물건이렷다. 그렇다면 이쪽도 그에 준하는 걸 내놓을 수밖에.

“제가 만든 건틀릿입니다. 듣자 하니 대제께선 격술에 제법 조예가 있으시다던데.”

“호오……”

“보면 아시겠지요. 이거 어디 가서 못 구합니다.”

“상당한 귀물이로군. 그야말로 짐의 보고에 자리를 차지해도 좋을 정도로 상등의 건틀릿이로다!”

그 말과 함께 일리나가 자신의 팔찌를 꺼내 내밀었다.

“어머나, 저도 끼어도 될까요?”

그나마 눈치 빠른 일리나가 씨익 웃으며 판에 끼어든다.

“어떤가. 용병들. 그대들의 배짱과 용기를 짐은 높게 산다. 어디 한번 해보는 것은?”

“조, 좋아요!”

“루시아! 금욕 기간에 술은 금지라고 했잖아!”

“이미 늦었어요. 아아, 다프네님 이 죄 많은 저를 용서하소서.”

“내가 쟤 저거 성공하는 꼴을 못 봤다.”

필디르가 제압하지만 이미 눈이 반짝반짝하는 루시아 쉘만을 말린 순 없는 듯 보였다.

반면 보리스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데이비 단원.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오는 길에 덫을 좀 쳤습니다. 그러니 낚일 때를 기다리면 되는 겁니다.]

내 전음 마법에 보리스가 이해할 수 없는 듯 눈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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