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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573화 (572/1,559)

제 573화

녹림도들이 도망친 후.

나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 청년과 소녀를 한자리에 모았다.

“이 검은 기류는…….”

“뭔지 모르겠지만 별로 좋은 힘은 아니네.”

천마공의 마기와 비슷한 힘이지만 역겹기 그지없다. 심연의 힘과도 비슷한데.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 정순한 점 때문에 그 범인을 특정하기 쉽지 않다.

물론 범인을 잡아줄 이유는 없었다.

“잊지 말자. 우린 신혼여행 온 거야. 괜히 피 뿌리지 않기로 했고.”

내가 찾아야 할 건 절대보옥, 그뿐이다. 이곳 세상이야 내 검술 스승 중 하나인 천마 독고준의 고향이라 할지라도 내가 지금 이곳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이곳에 온 김에 만년 한철이나 천년 영약 같은 것들도 한번 찾아는 보자고.”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다.

“일단은 이놈부터 살리고.”

그렇게 말하며 간단한 응급조치 도구를 꺼내 빠르게 수술을 시작했지만, 여건 자체가 너무 좋지 않았다.

세균이 득시글거릴지 모를 숲의 한복판이라는 것도 있고, 필요물자도 조금 부족해 보였다.

청년이 누구인지, 또 왜 살려야 하는지 사실 이유는 없다.

그저 눈앞에 환자가 있으니 살릴 뿐.

이 청년이 희대의 살인마라 할지라도. 그때 가서 머리통을 똑 따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의원으로서의 본분은 다할 생각이었다.

결국, 큰 조치는 끝났지만 자잘한 치료를 위해선 추가적인 물자가 필요했다.

“어디 뉠 때가 없나?”

“왜 없어. 있잖아.”

내 말에 그녀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곧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데이비. 그대 설마…….”

“녹림도는 큰 도적단체야. 뭐, 말이 좋아 도적이지 살인자 놈들 집단이긴 한데.”

그놈들이 재물 욕심이 많단 말이지.

아마 좋은 물건들이 가득할 것이다.

“일단 그리로 가자.”

그렇게 말하며 청년을 둘러매자 페르세르크가 한숨을 내쉬며 쓰러진 소녀를 등에 업었다.

“그래, 그대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가자.”

그렇게 말하며 나는 그녀와 함께 녹림도들이 사라진 숲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곳도 공기가 참 좋아. 티오니스와 다르게.”

“그래.”

중원, 무림.

아니. 정확히는 천 중원

이곳은 과거 지구였으나 이제는 한 차원이 된 세상이다.

무슨 뜻이냐면, 독고준이 활동하던 당시 무림세계 자체가 대륙째로 뜯기듯 복사되어 하나의 차원으로 독립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처음 내가 중원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독고준이 지구의 선조 중 하나인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내 주술스승이던 우치가 있던 세계처럼 중원 또한 하나의 차원으로 독립되어 복사되듯 떨어져 나갔다.

당연히 힘을 잃은 지구의 중원 무림은 이제는 무예를 갈고닦는 그저 수행원 같은 곳으로 변해버렸고 정말로 무림인들처럼 하늘을 날고 강을 달리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퍽 웃긴 일이다.

마치 지구에 이능의 힘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길 잠시. 나와 페르세르크의 시선에 커다란 산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멈춰라! 누구냐!”

당연히 초소를 지키던 녹림도는 나와 그녀를 발견하기가 무섭게 놀라 소리쳤다.

당장이라도 화살을 쏠 것처럼 구는 그 모습에 나는 녹림도 놈에게 받은 증표를 보여주며 말했다.

“여기로 오면 된다던데. 틀렸나?”

놈들이 떠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일부러 빙빙 돌아가는 길을 가르쳐준 탓에 나와 그들이 도착한 시간에 텀이 클 테니 알 놈들은 다 알 텐데.

내 행동에 녹림도는 말없이 그것을 바라보는 듯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녹림왕께서 기다리신다. 들어가라.”

* * *

데이비와 페르세르크를 떠나 먼저 녹림채로 돌아온 형제 우고와 부고는 곧바로 제 상관을 통해 녹림왕을 만났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고수로 보이는 청년과 소녀가 하늘에서 나타났다고.

그리고, 그들에게 송곳을 빌려주고 이곳의 위치를 알려주었다고.

당연 녹림왕은 그 자리에서 우고와 부고의 머리통을 부숴버리려 했다.

하지만 곧이어 우고와 부고가 필사적으로 외친 말에 생각을 고쳐먹었다.

[처…… 천상선녀와는 비교도 못할 만큼 아름다운 소녀였습니다요! 녹림왕께선 저희가 약을 먹인 그 남정네 놈만 처리하신다면 대륙 제일미를 손에 넣으시는 것! 하늘에서 내려온 진짜 선녀를 손에 넣는 것이야말로 녹림왕께서 72채 녹림왕들을 누르고 절대자가 될 수 있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요!]

우고와 부고의 외침에 녹림왕은 제 거칠거칠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오지 않으면 네놈들의 목을 잘라 산채의 입구에 효수시켜버리겠다.”

그리고는 위협하듯 으르렁거렸다.

우고와 부고 형제는 당연히 어떻게든 그들이 방문해주길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리고, 그런 형제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을까.

두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곳을 찾아 왔다.

녹림도라는 것을 알면서도 찾아왔다는 건 자신이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하늘의 사자라는 것만 믿고 뻗대는 것인지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뭐가 되었건 그들이 찾아왔기에 살아남은 우고와 부고는 하하 웃으며 두 사람을 맞이했다.

“사실 치료에 물자가 좀 필요해서 말이지. 조금 도와줄 수 있나?”

산채로 들어와 수많은 녹림도들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청년은 느긋하게 말할 뿐이었다.

“물자라 하심은…….”

“천과 물, 그리고 비상약 정도.”

“아이고 있습죠 있구말구요! 제가 안내해드립죠! 기왕이면 식사도 하심이 어떠하올는지. 산해진미가 이곳에 있습니다요! 하늘에서 오신 분들께 그 정도도 못 할까요!”

[그거 먹는 순간 네놈은 끝이다. 이놈아!]

속으로 그리 외치며 우고가 하하하 웃어 보였다.

“그래. 하늘에서 온 게 도움이 될 때가 있네. 그럼 곧바로 치료할 테니 준비해줘. 치료부터 좀 해야 할 것 같으니까.”

“아이고 걱정 마십시오, 이놈 부고야! 어서 안내해드리거라!”

“예 형님!”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안내하는 그들의 모습에 두 사람이 다시금 걸어가기 시작했다.

녹림왕이 청년의 긴장을 풀 때까지 절대 괜한 소란을 일으키지 말라 한 덕분이다.

평소라면 미색이 고운 여인이 찾아왔다며 온갖 음담패설과 시선을 보내올 녹림도들이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직 약도 먹이지 않았는데 그의 진노를 일으켰다간 큰 사달이 날 것이리라.

그렇게 두 사람을 안내한 녹림도 형제, 우고와 부고는 내력을 막는 약을 뿌린 음식을 준비하며 행복한 상상을 펼쳤다.

“형님! 우리도 이제 한자리 꿰찰 수 있는 거요?”

“당연하지 이놈아! 얼마 전에 천가 놈이 백인장 차고 얼마나 거드름 피웠더냐. 이제 우리도 할 수 있다 이 말이야. 아니지! 백인장이 대수냐?! 이백인장도 되겠다!”

우고의 말에 부고가 음흉하게 웃음 지었다.

“그나저나 정말 예쁜 년이네요. 녹림왕께 바치기엔 좀 아쉽긴 한데…….”

“쓰읍…… 쓸데없는 걱정 마. 녹림왕 그 인간 워낙에 거칠어서 손에 닿는 여자들 곱게 놔두는 꼴을 못 봐. 망가지면 또 버리는 버릇도 있고. 한 나흘 정도만 내버려 두면 완전히 정신이 망가져서 우리한테 올 거다. 우린 그때 즐겨도 돼.”

“하기야. 정신이 망가지는 거지 얼굴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요. 하하하.”

껄껄 웃던 부고가 입을 찰싹찰싹 때리며 시선을 두리번거렸다.

“어이쿠 입조심.”

반대로 2미터가 넘는 거구에 140키로가 넘는 거구의 사내, 녹림왕은 녹림왕 나름대로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세상에…… 전에 봤던 천상선녀의 뺨은 가볍게 후려친다는 말이 사실이었구만!”

멀찍이서 천막에 들어가는 은발의 소녀를 보며 그가 침을 꿀꺽 삼켰다.

붉은 머리를 가진 천상선녀도 천하제일미, 혹은 최고의 기재라 불리지만 저 하늘에서 내려온 진짜 선녀와는 비교할 것이 못 되었다.

너무도 아름답지 않은가.

이렇다면, 그동안 여자들을 거칠게 다뤄온 것과 다르게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허허…… 그놈들 일이 잘 풀리면 내 오른팔로 두고두고 써야겠구만.”

그들을 불러와 준 우고와 부고 형제를 떠올리며 녹림왕이 흐흐 웃어 보였다.

녹림도 한 산채와 신혼부부 사이에 동상이몽이 현재 이어지고 있었다.

* * *

“으리으리하구만.”

녹림도들이 가져다준 물자를 이용해 청년을 치료하는 데에 성공한 나는 침묵한 채 잠들어있는 청년의 품에서 작은 호패를 꺼내 들었다.

한자성.

조금 바뀌긴 했지만 중원어였다.

“한자성이라…….”

“이 아이는?”

“천지희. 행색을 보니 곱게 자란 아가씨 같은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몸 안에 남은 검은 기운은 최대한 억눌러놓았으니 아마 이제 날뛸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우고와 부고가 가져다준 음식을 입에 슬쩍 집어넣었다.

“오 맛있네.”

“그건 뭐라고 하는 음식인 게야?”

“오향장육, 한번 먹어볼래?”

“됐어. 본녀는 약 탄 음식은 먹지 않아.”

“맛만 좋은데.”

냉큼 오향장육을 먹어치우면서도 나는 느긋하게 말했다.

“괜히 피 뿌리지 않겠다고 했으니 이 정도 애교는 넘어가 주지 뭐.”

“선을 넘으면?”

“너 먼저 보내고 생각해보자.”

내 말에 그녀가 픽 웃어 보였다.

이윽고 음식을 모두 먹어치웠을 때.

기다렸다는 듯 우고 부고 형제가 나타났다.

“아이고, 하늘 공자님.”

“하늘 공자는 뭐야.”

“하늘에서 오신 공자님이시니 하늘 공자님 입지요.”

“그래. 뭐, 마음대로 부르고, 무슨 일이야?”

“그것이…… 저희 산채의 주인께서 손님들을 한번 뵙고 싶어 하십니다.”

그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 녹림.”

“예.”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애먼 짓 하지 않는 게 좋아.”

“…… 무…… 무슨 말씀이시옵니까요! 하하하 저희가 하늘에서 오신 사자분들께 위해를 가할까요. 아무리 막돼먹었다 해도 저희 녹림은 경우를 아는 산적입지요.”

“사람 죽이고 약탈하는 놈들이 경우를 따지고 자빠졌네. 가자.”

내 말에 우고와 부고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찌푸려진다.

생각보다 인내심이 강하네.

목숨이 중하긴 한가 보지.

그래 봐야 손바닥 안.

나는 픽 웃으며 페르세르크와 함께 녹림도 산채의 장인 녹림왕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쓰읍…… 이놈들 털어먹으면 얼마나 나오려나.’

동상이몽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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