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84화
172. 이실디
실질적인 시간 조작을 할 순 없지만 사고 가속 정도는 어려운 마법이라도 분명히 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
물론, 그것을 사용하는 건 내가 아닌 페르세르크.
그녀의 마법이 펼쳐지고 8서클 커스텀 스페이스 마법으로 공간을 확장시킨 곳에서 이미 두 사람은 녹초가 될 때까지…….
내게 두드려 맞았다.
[지금부터…… 끅! 아이고 취한다. 속성 과외를 해줄 테니 잘 보라고…… 끅!]
[속성과외요? 어떻게요?]
[끅! 으어어…… 그래. 내가 지금부터 널 팰 거다. 끅! 넌 거기에 맞춰 피하거나 반격하면 되는거다. 끅!]
뛰어난 영웅이라고 가르치는 데에 모두가 재능이 있는 건 아니다.
천마, 독고준은 그야말로 가르치는 일에 한해서 최악의 인간이었고.
나는 그에게 천마신공을 포함한 대부분의 무공을 배우는 데에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구타의 시간을 보냈다.
똑같이 받은 은혜. 10배로 쳐서 갚아드리리다.
물론, 독고준과의 인연에 곽 씨 남매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철저하게 선을 긋고 오로지 한자성만을 죽도록 굴렸다.
곽 씨 남매의 경우 간단한 지도 대무를 해준 게 전부였지만 무공에 관해서 내가 잘 하는 건 쥐어패서 가르치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신혼여행을 끝내고 돌아가기 전 절대보옥에 대한 정보를 얻거나 가능하면 회수하기 위해 동부로 향하는 행렬 내내 나는 한자성을 거의 시체가 될 정도로 쥐어패고, 또 쥐어팼다.
차라리 죽여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과격한 공격이다.
“걱정 마라. 사람은 쉽게 안 죽어.”
매번 한자성의 몰골을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천지희에게 내가 매번 해주는 말이었다.
물론,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악마가 따로 없다며 혀를 내두르는 녀석이 있긴 했지만, 주먹은 만국 공통어라고, 입을 다물게 하는 데엔 죽빵이 최선이렷다.
거의 죽기 직전까지 몰리면 신성력을 이용해 그를 치료한다.
간단한 치료 정도는 신성력이 없는 이곳에서도 어느 정도 발현이 가능했다.
그렇게 죽은 듯 산 듯 한자성을 굴려댄 결과.
단전이 파괴된 그의 육신에 새로운 내공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이미 파괴된 단전이 아닌, 새로이 구현된 천혼지체의 단전에.
새로이 모이는 내공은 그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속도로 모여들었고, 고작 하루 만에 그는 몇 년간 그가 노력해오며 쌓았던 내공 이상의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물론, 기초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가는 행렬에서 나는 이제야 내공을 익히기 시작해 내공에 심취하는 기색을 보이는 자성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했다.
“지금부터 너는 운기조식을 통해 내공을 모으는 건 그대로 하되, 동부 대도시에 도착하기 전까지 내공을 쓰지 마라.”
그대로 녀석의 중요 혈도를 짚어 그대로 내공의 흐름을 묶어버렸다.
“외공수련은 아예 빼먹으려고?”
자성과 곽 씨 남매에게 대련을 해주고, 본능적으로 천열신공의 극의를 몸 안에 담고 있는 천지희를 살펴보다 보니 알게 되었다.
현재 무림의 무인들은.
외공을 상상 이상으로 등한시하고 있다.
“지금부터 넌 외공을 익힐 겸 대도시에 도착할 때까지 맨몸으로 간다.”
그렇게 말한 뒤 나는 묵직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4개의 팔찌와 발찌를 꺼내 그에게 채워버렸다.
“커헉?!”
단순한 금묵환이라 가볍게 여기던 그는 내가 그래비티 마법을 인첸트한 환의 무게에 기겁하며 휘청거렸다.
상상을 초월하는 무게에 기겁한 그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그 외에 준성이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음? 무슨 금묵환에 그렇게 기겁하는…….”
중얼거리며 자성의 팔을 잡아 들어보던 그의 눈이 부릅 뜨여졌다.
“이거…….”
“너도 채워주랴?”
“…….”
강해지고 싶다지만 움직이지도 못하게 만들 정도로 무거운 것을 몸에 주렁주렁 달 순 없었다.
“근육파열은 걱정 마라. 대도시에 도착할 때까지는 내가 봐줄 거니까.”
“하지만 외공은…….”
“이 새끼가 정신을 못 차렸네.”
현재 이 무림의 큰 문제점은 사실 여러 방면에 있지만 나는 이것도 큰 이유로 꼽았다.
“외공을 등한시하고 내공만 익히면 뭐든 해결되나?”
내공과는 다르게 외공은 그 효율이 극도로 떨어진다.
그 뿐일까.
외향적으로도 굉장히 근육이 우락부락하게 자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재 이 천 중원의 무인들은 외공을 상당히 천시하고 있다.
물론 외공을 중시로 익힌 고수가 없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극도로 밸런스가 나쁘다.
“배우기 싫으면 여기서 관둬도 좋아.”
말 안 듣는 놈 때려서라도 끌고 가겠다는 마음가짐은 아니었으니까.
“선택은 네 몫이다.”
내 제안에 그는 침묵하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금묵환을 앞으로도 계속 차고 다녀라.”
천마신공을 익힌 이상 그 힘에 휘둘리게 두는 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보는 사람이 안쓰러울 정도의 수련이 다시 시작되었다.
가는 길 내내 자성은 비 오듯 땀이 쏟아지는 행렬을 계속했다.
엄청나게 높은 산도 맨몸으로 오르고 보통사람이라면 물집이 터져 고통스러울 정도로 긴 행렬을 걸었다.
꼴에 무인이라곤 하지만 외공수련을 등한시한 대가는 톡톡히 치르는 그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대도시에 도착했을 때.
자성의 몸에서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걸 나는 눈치챌 수 있었다.
* * *
잘그락…… 잘그락.
나는 이 대륙으로 오기 전 케인이 건네준 물건을 조작했다.
때는 늦은 시각. 대도시에 도착하자마자 적당히 좋은 객잔을 소개받아 숙소를 잡은 뒤 나는 며칠간 그에게 수련을 멈추고 금묵환만 차고 다닐 것을 명령한 뒤 내공을 흩어버리던 점혈을 다시 풀어주었다.
당연히 내공이 본래대로 돌아와 편해질 줄 알았던 자성은 금묵환이 그의 내공을 잡아먹고 그래비티 마법의 효능을 끌어올려 버리자 더욱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금묵환이 내공을 사용함과 동시에 더 무거워져 버렸으니 말이다.
보통 인간이 할 수 있는 운동을 통한 근육을 성장시키는 방식과는 다르게 단기 속성으로 그의 육체능력을 강화시켰다.
그 탓에 금묵환에 조금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그의 표정은 다시 죽을 것처럼 흐려졌다.
“데이비.”
이불을 몸으로 가린 채 나를 불러오는 페르세르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정도 수련으로 충분해?”
“아마…… 힘들겠지.”
내가 그에게 제공하는 것은 기초가 전부였다.
“비급의 내용은 간단하게 풀어서 전부 넘겼어. 이제 경험과 깨달음은 알아서 풀어야지.”
그 두 가지는 재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당연 좁은 시간 내에 그를 당장 성장시킬 건덕지도 없었다.
일리나처럼 대련 한 번에 괄목할 성장을 이루어내는 천재가 아니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이 전부였다.
“지금 수준이라면 오랫동안 수련하면 잘 대성해봐야 4성 정도.”
“흐음?”
“대충 마스터 급.”
마스터 급. 이곳에선 화경이라 부르지만 동일 선상의 화경과 마스터가 충돌하면 화경이 상당히 우세한 게 무공이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마스터 급 초입이라면 초절정과 화경의 사이라고 할 수 있다.
무공은 경지를 밟는 게 극도로 어려운 대신 리턴이 좋은 편이니까.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상당히 약하던데.”
“그래. 지금 무림은 그런 무공의 메리트가 없어.”
페르세르크의 말대로 지금은 그런 비교법이 먹히지 않는다.
“외공을 천시한 이상은.”
찰칵!!
이윽고 아티펙트의 조립을 끝마치자마자 내가 손에 쥔 기이한 브로치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브로치의 위에 박힌 보석에서 빛이 흘러나오며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잘 도착하셨습니까.]
“그래. 그쪽 상황은?”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그 나쁜 소식에 내가 예상한 게 섞여 있다면 당장 돌아가서 네 목을 꺾어버릴 거다.”
[좋은 소식부터 말씀드리지요. 일단 큰 문제는 없습니다. 심연 쪽에서 저를 너무 쉽게 봤더군요. 당분간은 티오니스 대륙을 침공하지 못하게 경로를 틀어막는 데 성공했습니다. 직접 싸워 이길 순 없어도 길을 막는 정도는 어렵지 않죠.]
넬타리드의 힘을 이용해 소식을 전해오는 케인, 아니 케인 내부의 다른 인격의 보고였다.
“또 없나?”
[당신이 맡긴 연가시의 흔적을 지우는 데엔 성공했습니다. 그래 봐야 완전히 죽을 놈도 아니긴 하지만요.]
“나쁜 소식은.”
[심연이 당신의 목적을 찾았습니다. 절대보옥을 찾는다는 걸 깨닫고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는 겁니다.]
케인의 말에 내 표정이 가라앉았다.
티오니스도 그렇지만 이곳 또한 자립하기엔 너무 미약한 곳이다. 심연이 침공을 시작한다면 이깟 차원이 박살 나는 건 한순간.
“애초에 심연의 공주가 와서 한바탕 안 한 게 놀라울 지경이긴 하다만.”
그렇게 중얼거리는 나였다.
[무슨 소리입니까?]
“뭐?”
[그곳 또한 심연의 공주가 존재합니다.]
“…….”
[이실디. 그게 그녀의 이름입니다. 조심하십시오.]
“계약 파투내고 싶나?”
[…….]
“한 번만 더 이런 정보를 숨겼다간 그땐 넬타리드와의 모든 약속을 캔슬할 거다. 알아들어.”
이 새끼가 숨길 게 있고 아닌 게 있지.
[그녀는 조금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그렇게 말한 케인은 정황을 내게 물어왔다.
[절대보옥의 수색은 어찌 되었습니까?]
“대도시 쪽에 도착한 지 얼마 안됐어. 일단 장물아비가 흔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
케인의 설명대로라면 절대보옥은 힘을 발산하는 것만으로도 흔적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흔적은 아름다운 벽옥색을 띠는 고체로 만들어지기에 모르는 이가 본다면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보일 수도 있다.
장물아비가 정말 진짜 절대보옥을 가지고 있을지는 의문스럽지만 조사해볼 가치는 있었다.
[위험하다 싶으면 곧바로 돌아오십시오. 당신이 잘못되면 저도 곤란합니다.]
“내가 알아서 해.”
아티펙트의 작동 버튼을 가볍게 눌러 꺼버린 나는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케인의 말대로 이곳에서 절대보옥의 원본이 없다는 것이 확실해지면 굳이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었다.
심연의 공주는 조금 걸리긴 하지만 말이다.
* * *
자성은 무림맹에 천열문의 대사저가 있다고 했다.
별호와 이름은 수룡검희 윤희령으로 현재 맹에서도 제법 이름을 날리는 사신수단에서 현무대의 단장을 맡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지희와 자성은 곽 씨 남매와 함께 천열문의 소식과 악림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러 간다면 이른 시각부터 떠났다.
그리고.
그들과 헤어진 나와 페르세르크는 곧바로 뒷골목 개방거리에 들어섰다.
장물아비에 대해 알려주었던 곽미영은 그때 당시 무림맹이 한차례 장물아비들을 탈탈 털어버린 탓에 그곳에서 위치를 옮겼을 거라고 조심스레 예측했다.
그러니까.
직접 캐내는 수밖에.
빈민들이 모인 개방거리에 완전히 들어서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놈의 하통은 어느 세상을 가나 존재한다.
노점들이 많고 행인들도 많지만, 본능적으로 눈치챌 수 있었다.
여기 상인들은 돈만 되면 사람도 가져다가 팔아버릴 놈들이고, 이곳의 행인 또한 마찬가지라고.
실제로 정체불명의 향을 풍기는 고기를 파는 이들도 더러 존재했다.
툭!
“어이쿠, 미안합니다.”
번잡한 거리를 지나며 나와 부딪힌 사내가 움찔하더니 내게 고개를 숙이고 떠난다.
“데이비. 또?”
“아이고, 이번엔 수익이 두둑하네.”
나는 금전이 가득 든 주머니를 보며 씨익 웃었다.
반대로 내 허리춤에 채워진 주머니는 언제 있었냐는 듯 깔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극한의 손재주.
무공도 익히지 않은 자의 소매치기 짓이지만 재능과 경험이 남다르다.
물론, 상대를 잘못 골랐지만 말이다.
“이번엔 뭘 넣어놓은 게야?”
“뫼 산 자가 그려진 돌멩이.”
엿이나 먹으라고.
그는 두툼한 주머니를 털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주머니 속에든 건 돌멩이요. 내게 소매치기 짓을 했던 그놈의 주머니는 내 손에 들어왔다.
남는 장사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아이고, 돈이 많아서 좋네.”
“있는 놈이 더하다는 말을 알아 데이비?”
“알지. 그 말은 진리야.”
더하니까 있는 놈이 된 거다.
세상은 약삭빨라야 살아남는다.
특히 이놈의 하통은 당연한 진리를 모토로 존재한다.
물론, 소매치기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으아아아아악!! 내 팔! 아이고 내 어깨!!!”
나와 부딪히고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구는 거구의 사내.
“어…… 어어?! 형님! 이 자식이 형님을?!”
자해공갈단 또한 존재한다.
“아이고! 사람들! 여기 보쇼! 여기 이 인간이 사람 치네!!”
수많은 이들의 시선을 끌어모은다.
당연히 시선이 모이면 이쪽에서 당황할 거라 여기는 듯 보였지만…….
“끄으으…… 끄으!”
바닥에 쓰러진 사내의 표정이 심상찮다.
“어? 어쩔거야! 형님의 어깨가 빠졌잖아!!”
비명을 지르는 그의 사내를 가리키며 거구의 사내가 위협하듯 말해온다.
“그래? 많이 아프겠네. 원하는 게 있나?”
“흥! 우리가 돈이면 다 되는 줄…….”
“얼마 필요하냐고.”
“…… 가진 돈은 다 주셔야겠는데. 그리고, 같이 오신 그 여인네도 우리와 함께 가줘야…….”
뿌드드득!!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턱뼈가 기괴하게 돌아간다.
이놈의 하통은 변하는 게 없다.
지저분하며, 치사하고, 더럽고, 위험하다.
그리고.
그 위험한 곳에선…….
“헉…… 사…… 사람이…….”
턱뼈가 뭉개져 그대로 쓰러져 버리는 그를 보며 내가 빙그레 웃어 보였다.
“이 정도는 돼야 깽값이 나오지.”
그렇게 말하며 좀 전 소매치기에게서 털었던 주머니에서 나온 금전을 꺼내 그에게 몇 푼 던졌다.
“목숨값에 깽값을 변재한거다. 다음부턴 상대 잘 보고 덤벼라. 그리고 저놈 탈골 계속되면 평생 불구가 될테니까 알아서 빨리 의원으로 데려가.”
애초에 자해공갈단이라는 걸 모를 리 없는 주변인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나는 한차례 경고를 심어 넣은 것이다.
개 짓을 할 거면 각오하라고.
다 죽이는 건 어렵지 않다지만 경계를 심어주면 필요한 놈이 도망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