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85화
바싹 얼어버린 이들을 무시한 채 페르세르크의 손을 잡고 더더욱 안쪽으로 들어간다.
안쪽으로 갈수록 치안은 극도로 나빠졌다.
우드득!!!
앞을 보며 걸어가는 나와, 그런 나를 조용히 따라오던 페르세르크.
그런 그녀의 미모를 보고 돈 생각을 했는지 소리 없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납치하려던 자가 전신이 뒤틀려 바닥에 쓰러진다.
한두 번도 아니고 그런 사태가 계속되니 하통의 이런 왈패들도 뭔가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은 듯 보였다.
그리고, 하수구를 지나 최심부 쪽으로 들어섰을 때.
나는 공기가 변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관과 무림맹에서도 어지간해선 건드리지 않는 왈패들의 근원지.
인간 쓰레기통이며.
하통의 심연이라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이전처럼 소매치기나 인신매매범, 혹은 자해공갈단이 나서진 않았다.
대신 죽음의 향기가 짙게 감돌았다.
하통의 쓰레기들도 함부로 들어오지 않는 곳이다.
[하통 최심부? 이봐, 공자. 내 당신과 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충고하건대, 거긴 들어가지 마. 거긴 돈이 되면 제 가족도 고기로 잘라서 파는 놈들이니까. 어지간한 쓰레기들도 그곳은 얼씬도 하지 않지. 제 잘난 맛에 사는 무림인들이 겁도 없이 그곳에 들어갔다가 다신 살아나오지 못했네.]
[특히 저 뒤의 소저 정도의 미모라면 아주 완벽한 먹잇감이지.]
그들의 전력은 무공이 아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해코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대를 불구로 만들고 뭉개버린다.
남자는 그대로 잘라서 장기를 꺼내 팔고 남은 몸은 고기로 바꿔 통나무 거래를 해버리는 곳.
여인이 잡혀들어가면 단 하루 만에 완전히 망가진 채로 정신이 붕괴되고 끝내 인신매매를 당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곳에 나와 페르세르크가 들어가려 하니 그들로썬 찜찜하다는 기색을 보이는 이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끔찍한 곳을 왜 맹과 국가에서 그냥 지켜보는 게야?’
‘쓰레기들은 쓰레기통에 모아야 하거든. 여길 들쑤셔서 그것들이 풀려나면 거기에 더 큰 손해가 생기는 법이니까.’
알만한 이들은 다 아는 어른들의 더러운 사정이다.
하통의 최심부에 들어서자 거지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개방소속은 아닌데 상당히 눈매에 위험이 서려있다.
“아이고…… 나으리…… 한 푼만 줍쇼.”
그런 그들을 슬쩍 훑어보며 나는 페르세르크에게 눈치를 보냈다.
애초에 이 하통의 최심부까지 들어온 이유가 있었다.
가장 위험한 곳이지만.
가장 정보가 많이 들어오는 곳이기도 하다.
심연이 그녀의 권능을 뚫을 수 있는 게 확실해진 이상 마냥 신뢰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는 권능이었다.
‘저기 왼쪽 끝에 있는 거지.’
그녀의 의지가 전해져 오자 나는 말 없이 품 안에서 소매치기에게서 역 소매치기 짓을 한 주머니의 돈을 모조리 뿌렸다.
“알아서들 주워가.”
그렇게 말한 나는 페르세르크를 향해 다가오는 거지를 향해 빙그레 웃어 보였다.
“주워가라고.”
“흡…….”
내 눈을 마주친 거지가 움찔하더니 물러난다.
이후 나는 페르세르크가 가리켰던 거지에게 다가갔다.
다른 거지와 다르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를 보며 나는 조용히 물었다.
“장물아비 금기유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나?”
내 물음에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거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본다.
“그게 누구요?”
“몰라? 진짜로?”
빙그레 웃은 내가 손에 검은 화염을 일으키자 주변의 분위기가 일순간 싸늘하게 변했다.
“이봐. 공자. 여기서 함부로 강한척하지 않는 게 좋아.”
“강한 척이라. 뭔가 단단히 착각하는 거 같아서 하는 말인데.”
화르르륵…….
“여기 쓰레기통 하나 처리하는 데에 내가 몇 초나 소모할 거 같나.”
내 물음에 거지는 잠시 침묵했다.
눈치가 느려선 먹고살기 힘들다.
“선택해. 네가 속한 왈패들을 모조리 불태울지, 그냥 정보를 알려주고 보낼지.”
내 말에 그는 조용히 침묵하다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쪽 모퉁이를 지나면 창고거리가 나올 거요. 거기에서 붉은 지붕을 한 목창고에 그자가 있소이다.”
“정보 고마워.”
“다시는 들어오지 마시오.”
위험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먹고 체할지 아닐지를 구분하는 능력은 높게 사줄게.”
“당신들…… 소문이 돌기 시작한 그 신룡과 천녀로군…… 괴물과 싸울 생각은 없소. 빨리 꺼지시유.”
신룡과 천녀? 이건 또 무슨 소리냐.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지나쳤다.
그리고 그가 말해준 금기유의 장물창고에 도달한 나는 곧바로 창고의 문을 탕탕 두드렸다.
그러자 그 안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진다.
“뭐요. 남의 창고에.”
“금기유가 안에 있지?”
내 말에 사내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잘못 알고 왔소.”
“천지호라는 추노꾼에게 듣고 왔으니 발뺌하지 말고. 거래를 하러 왔다.”
내 말에 사내는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천지호라는 추노꾼은 페르세르크가 거지들 사이에서 발견한 폐인 같던 사내였다.
“들어오시오.”
이윽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는 나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야 이 새끼야! 자금성은 무너졌냐?!”
“x발 묻고 두 배로 가!!”
내부엔 몇몇 인원이 도박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사내를 따라 들어간 나는 나를 안내한 사내가 어떤 젊은 청년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것을 보았다.
“날 찾아왔소?”
피 냄새가 짙게 밴 사내였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물었다.
“나는 분명 금기유를 만나 거래를 하러 왔다고 했는데.”
내 말에 그들의 표정이 굳었다.
청년은 금기유가 아닌 다른 인물이었다.
“한 번만 더 엄하게 간 보다간 대가를 치를 거다.”
이어지는 내 말에 사내가 허리춤에 채워진 검을 뽑아 들려 했다.
하지만 곧 도박 패를 쥐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노인이 일어난다.
“됐네. 물러나.”
“영감탱이.”
“손님이다. 판 접어.”
그렇게 말한 그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알만한 것 같으니 찾아온 것 같은데. 무슨 일이오?”
그의 질문에 나는 대뜸 본론을 던졌다.
“이걸 찾으러 왔다.”
나는 케인이 맡겼던 절대보옥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동시에.
스르르릉!!! 차앙!!!
기다렸다는 듯 내부의 인원들이 일제히 발검하며 나를 경계한다.
“무림맹의 개였나?”
뜬금없는 말에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뭔 개소리인지 모르겠다만 나는 그걸 찾으러 온 것 뿐이야.”
“흥. 맹에서 흘러나온 장물을 찾으러 온 귀하신 공자라면 의심할 수밖에.”
“그쪽하곤 관계없다.”
“…… 그걸 사겠다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벽옥 조각일 뿐인데?”
“그것보다 더 빛이 강한 건 없나?”
절대보옥의 원본.
그것을 가지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내가 가진 건 당신이 가진 것과 같은 것 뿐이오.”
“그래? 그런데 무림맹과 관련이 있다고?”
“뭐…… 맹에서 흘러나온 물건이니까.”
애초에 맹 내부에 있던 물건이 빼돌려진 것이라는 소리였다.
퍽 웃기기 짝이 없다.
“그래. 일단 그거라도 팔아. 값은 치르지.”
나는 녹림채에서 가져온 보화들을 그에게 던져놓았다.
상당량의 보화가 내 품에서 나오자 몇몇은 놀랐고. 몇몇은 경계했다.
“먹고 체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남의 물건 훔쳐서 파는 버러지가 그딴 것도 따지나?”
평소와 다르게 과격한 언사를 채택한 나는 그들을 끊임없이 몰아붙였다.
“뭐. 값만 쳐준다면 나도 이런 찜찜한 물건은 팔아버리는 게 이득이겠지. 기다리시오.”
그렇게 그는 창고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작은 상자를 가지고 나왔다.
“영감탱이. 전부 진짜야. 이건 녹림채에서 가져갔다던 천화군주의 목걸이인데. 이런 게 굴러들어오네.”
“보아하니 상당히 위험한 냄새를 풍기는군.”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내게 상자를 건네주었다.
“이것에 대해 더 아는 게 없나?”
“아는 것이라…….”
그가 곰곰이 생각하듯 중얼거린다.
“기억이 날듯도 말듯도…….”
챠르르륵!!
그 말에 나는 아공간에서 녹림채의 보석을 더 꺼내 던졌다.
“맹에서 그것을 보관하고 있었소. 듣기로는 일부를 훔쳐 나온 것이라던데.”
“그걸 가지고 있던 자는?”
“모르오, 가지고 있으면 내공의 증진 효과를 본다 하더이다. 그래서 맹에서도 귀하게 보관하고 있었던 모양이오. 뭐. 나야 값만 잘 쳐준다면 누구에게든 팔면 그만이지만.”
“그래.”
그에게서 얻을 정보는 이게 전부였다.
보옥 조각이 모이면 모일수록 그 추적능력이 강해진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천천히 조각들을 모으다 보면 서서히 심연의 목을 틀어쥘 수 있겠지.
그렇게 상자를 챙기려던 찰나였다.
콰득!!
갑작스레 창고의 벽면이 박살 나며 날아든 화살이 나를 지나쳐 금기유의 심장을 그대로 관통한다.
“커헉?!”
동시에 모든 이들의 시선에 경악이 어리며 목제 벽면이 부서지고 다수의 인원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청색의 도포를 입은 남녀의 무리였다.
“맹에서 나왔다! 현무대의 이름을 걸고 맹의 귀물을 탈취한 네놈들을 모두 추포하겠다!!”
청색 무복을 입은 젊은 청년의 외침에 이 안에 있떤 사내들이 경계한 표정으로 검을 빼 들었다.
“빌어먹을! 꼬리를 달고 왔어?!”
“망할!”
그들은 내가 저들을 데려왔다 여긴 모양이지만 애석하게도 그건 아니었다.
내가 미행을 당할 정도로 허술한 편은 아니었으니까.
창고에서 도박을 하는 이들도 제법 한가락 하는 실력가들이었지만 맹의 정예로 보이는 현무대의 전력이라면 애초에 싸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맹의 사신대인 현무대의 수장은 천열문의 대사저라고 들었는데.
이름이 수룡검희라는 별호를 지닌 미녀, 윤희령이라고 했던가.
“모두 제압해. 정의를 방해하는 놈들이다.”
이윽고 청색 도포를 입은 남녀 무인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외향을 지닌 푸른 머리칼의 여성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놀라운 점은 액면가로 봐도 10대 중반 조금 남짓한 소녀라는 점이었다.
물론, 키는 그보다 훨씬 작은 140대.
성인여성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웠다.
무인들이 기본적으로 미남미녀가 많다지만 소녀는 그들 사이에서도 빛이 나는 군계일학 그 자체였다.
실제로 몇몇 멍청이들은 그녀를 보며 음심을 품거나 얼굴을 붉히는 이도 있다.
눈앞에 저 여자가 사신 같은 존재라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힘없는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불법을 저지른 놈들이다. 사정 봐주지 말고 잡아 들여!”
“예! 단장!”
“개자식들! 니들 때문에 내 수련시간이 줄어들었어. 알아들어?! 나는 서류작업이 싫다고!”
화를 내는 그녀는 차가운 인상과 다르게 굉장히 화끈한 성정을 지니고 있었다.
“데이비.”
그때였다.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던 그녀가 인상을 찌푸리며 의지를 전해왔다.
‘무슨 일이야.’
‘그것이…….’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내게 자신이 본 것을 보내주었다.
동시에 내게 남은 심연의 힘이 그녀의 힘과 연동되며 상태창이 드러났다.
내가 아닌.
푸른 머리칼의 어린 여성에 관한 정보였다.
이름은 윤희령.
현무대의 단장.
천열문의 1대 제자이며, 맹의 전력 중 하나.
지독한 수련광. 정의로운 성정을 지닌 여인.
다 좋다.
그녀가 한자성이 찾아 헤매던 대 사저라는 것도 그리 놀라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가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윤희령이라는 이름이 아닌 숨겨진 그녀의 본명 때문이었다.
[이실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