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00화
“좌로 굴러.”
-끼에에엑!!!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불닭이는 피눈물을 흘릴 것처럼 절규했다.
그리고는 곁에서 와들와들 떨며 동공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는 청룡 쿠릉이를 노려보았다.
이게 다 너 때문이다!
녀석의 눈빛에는 그런 감정이 섞여 있었다.
소리치고 싶지만, 말을 할 수 없는 불닭이의 구강구조로는 피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었다.
“느려진다. 우로 굴러.”
탁! 탁! 탁! 탁!
어디서 꺼낸 건지 모를 거대한 솥. 그리고 스탠드형 도마에 채소를 송송송 썰어 넣으며 내가 말한다.
-끼이이이이이익!!!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불닭이는 구르고 또 굴렀다.
혹여 자신의 아버지가 마음이 바뀌어 자신도 튀겨지는 기름 속에 던져지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을 품은 채 말이다.
“세…… 상에…….”
“대체 뭐 하는 거야?”
할 말을 잃은 듯 멍하니 바라보는 세 사람, 윤희령과 곽미영, 그리고 수윤을 제외하곤 모두 익숙한 모습이다.
페르세르크는 그저 침묵하고 있고 륀느는 내가 꺼내놓은 테이블에 앉아 양손에 포크와 나이프를 쥐고
테이블을 탕탕 두드린다.
“륀느. 매우 귀한 식재료, 새로운 미각 데이터를 높게 평가해.”
입맛을 쩍쩍 다시며 혀를 날름거리는 그 모습에 그 흉포하고 위압적이던 쿠릉이가 벌벌 떨었다.
그리고 그런 쿠릉이를 보면서 바닥을 구르던 불닭이가 움찔거리며 더욱 격렬하게 바닥을 구른다.
“저…… 데이비 공자님?”
그리고,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지켜보던 곽미영이 조심스레 나를 불렀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예로부터 신수, 그것도 청룡의 고기와 내단은 불세출의 영약으로 유명하니까.”
“아…… 아니 그게…….”
어찌할 줄 몰라 말을 더듬던 그녀가 어찌할 줄 몰라 하자 윤희령이 혀를 찼다.
“너 뭐해?”
“기다리라니까.”
“아니! 너 지금 저 신수님들을 잡아먹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그녀의 외침에 수윤과 곽미영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눈빛은 모두가 격한 공감을 품고 있었다.
“신수님?”
“그래! 신수님! 저길 봐! 내 눈이 동태 눈깔이라도 된 게 아닌 이상 저분은 불의 신수! 주작 님이시고 저분은 뇌의 신수인 청룡 님이잖아!”
그 말에 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 그리고 저기 주무시는 분은 배…… 백호…….”
확실히. 이 세상에서 사신수는 인간을 이롭게 하는 존재로서 존재 자체가 굉장히 위대하다 알려진 전설의 영물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런 존재가.
한 마리는 내 말에 따라 바닥을 구르고 있고, 나머지 한 마리는 온몸이 묶인 채 벌벌 떨고 있다.
신수를 직접 모시진 않아도 신수에 대해 잘 아는 그들로썬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허…… 황실의 주술부의 재상인 제갈 대신이 봤으면 거품을 물었겠구나.”
기가 막힌 지 옥화 공주 소윤도 한마디 거들었다.
“아니, 그래서 먹을 거야 말 거야.”
“그걸 어떻게 먹어! 천벌 받을 거다 천벌!”
윤희령의 외침에 내 표정이 찌푸려졌다.
“제 정체가 더 천벌 받을 존재인 주제에.”
“뭐?”
“별거 아니다.”
탁!!
무를 썰던 손을 멈추며 내가 쿠릉이를 흘낏 보자 녀석이 와들와들 떨었다.
“그래. 이해는 해. 평소에 내게 짓눌려 살다가 힘을 극도로 올려주는 이곳에 왔으니 기분이 싱숭생숭할 만해.”
와들와들 떨며 나를 바라보는 쿠릉이가 움찔거렸다.
그런 녀석의 목덜미에 손을 올려놓으며 비늘을 살살 쓸어내려 주자 녀석의 파란 비늘이 더욱 파랗게 질린 느낌이 들었다.
“쿠릉아.”
-그르르르르.
분노조절 장애도 분노조절 잘해로 만들고 흉포하고 오만한 갯지렁이도 온순하고 겸손한 실지렁이로 바꿔놓은 게 나라는 걸 잊고 있다.
“여기 공기 좋지?”
빙그레 웃으며 묻자 쿠릉이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너희 몸보신 시켜주려고 이렇게 불렀는데…….”
“…….”
“고작 힘에 취해서 주인을 물려 들어?”
내 눈이 번뜩인다.
미소가 섞인 눈매에 광기가 서리자 쿠릉이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뜨여졌다.
“륀느, 불 지펴라.”
“륀느, 손님은 노동하지 않는…….”
“네가 대신 들어갈래?”
“륀느, 빠른 임무수행을 높게 평가!”
잽싸게 달려와 솥의 바닥에 대고 양손을 모아 메아리치는듯한 자세를 잡는 륀느였다.
화르륵!!
동시에 륀느의 손끝으로 마치 입에서 화염을 뿜듯 푸른 화염이 쏟아져 나왔고 고열의 열기를 내뿜으며 솥을 달구기 시작했다.
“고작 힘이 조금 더 늘었다고 감히 여기서 네 부모를 물어?”
-그르릉! 그르르릉!!
필사적으로 항변하려 하지만 역시 청룡 쿠릉이도 주작 불닭이와 같이 말을 할 순 없다.
애초에 내게서 태어난 이 사신수 녀석들의 힘이 완전히 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힘을 지니고 태어나는 녀석들이지만 성장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어떻게 해줄까.”
내 말에 쿠릉이는 필사적으로 버둥거렸다.
답답해 미치겠다는 듯 몸이 묶인 채 꼴사납게 바닥을 구르는 쿠릉이는 곧이어 제 머리를 땅에 미친 듯이 처박더니 불닭이를 따라 바닥을 마구 구르기 시작했다.
“먹진 말아 달라고?”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을 보며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은 없는데?”
파랗게 질린 쿠릉이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진다.
“좋아. 봐줄게. 불닭이 기상.”
이윽고 내가 돌아서며 말하자 독이 바짝 오른 불닭이가 칼같이 절도있는 자세로 벌떡 일어나 늠름하게 가슴을 폈다.
“저거 깨워.”
그리고 나는 군기가 바짝 든 두 녀석을 향해 바닥에 뻗어 도도한 병신 미를 자랑한 채 잠들어있는 흰둥이를 가리켰다.
“너희들이 해줘야 할 일이 있다.”
이후 솥에 나머지 재료를 털털 털어 넣으며 나는 수윤을 향해 말했다.
“식사는 못 했죠?”
“머…… 먹지 않겠다고 한 것 아니었나?”
신수를 진짜로 잡아먹는 줄 알고 속을 졸이던 그녀였는지 조심스레 물어온다.
그들도 눈치를 챈 듯 보였다.
나는 이 중원에서 신성시되는 사신수를 소환할 능력이 되는 인물이고.
그런 사신수를 개 잡듯이 잡는 미치광이라고 말이다.
“쟤들은 됐고.”
담담하게 말한 나는 아공간에서 특유의 식재료를 꺼내 들었다.
“이걸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고민하듯 말한 나는 고기를 익숙하게 썰어 넣었다.
“그건…… 뭔데?”
“조미료.”
메인 식재료인 고기를 두고 조미료라니.
의아한 표정을 짓는 그들의 모습에 페르세르크가 눈을 부릅떴다.
“데이비, 설마 그걸 먹이려고…….”
“왜 아니겠냐.”
“오…… 프리아 님 맙소사…….”
고기가 솥에서 요리되는 것을 보며 아공간에서 또 하나를 꺼내든 나는 조용히 약을 그대로 부어 넣었다.
치이익!!
동시에 솥에서 기괴한 연기가 흘러나온다.
마치 악귀가 몸부림치듯, 걸쭉해진 탕의 육수에서 마치 귀신의 형상 같은 것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모습을 지어 보였다.
“저…… 저게 뭐야?”
“륀느, 새로운 미각 데이터를 우수하게 평가.”
괴식가 1위인 륀느는 저런 끔찍한 형태의 육수를 보고서도 식욕을 드러냈다.
트롤의 피를 손가락에 찍어 먹는 륀느이니 당연한 반응이다.
“몸에 좋은 거.”
특수한 영약은 맨입에 먹으면 극도로 고통스러우니 고기와 각종 식재료로 중화시킨다.
그것으로도 효과는 충분했다.
“당분간 내가 당신네들을 지켜줄 수 없으니 이거 먹고 버티라고.”
기괴하고 걸쭉한 육수.
그것은 티오니스의 마탑에서 마법사들이 자신의 성취를 높이기 위해 극약처방을 할 때 사용하는 것들이다.
극도로 맛없음을 자랑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여기에 마법을 스며들게 한 뒤 섭취하면 그 효과가 더욱더 오래가고 강화된다.
설사 술자가 멀어진다 할지라도 말이다.
우선은…….
[자애로우신 프리아 여신님. 당신의 은총을 내려주소서.]
조심스레 기도하며 나는 육수에 손을 가져다 대고 신성력을 끌어 올렸다.
[스트랭스]
이후 내 경험에 근거한 마법의 발현을 가속화한다.
[스트랭스]
[스트랭스]
[스트랭스]
계속되는 마법의 중첩.
마법은 중복 사용할수록 그 난이도가 극도로 올라간다.
곱하기가 아니라 제곱 수준으로 난이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수차례 스트랭스 마법을 건 나는 이후 다른 마법도 걸기 시작했다.
[어질리티]
[바이탈 펌프]
[마나컨버전]
[마나실드]
[스톤스킨]
[디바인 프로텍션]
[레노바티오]
극도로 맛없는 약이 불세출의 절대 영약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내 손끝에서 번쩍이는 빛을 보며 이들은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긴장하기 시작했다.
[리인포스 더 마인드]
정신 강화까지.
이후 나는 증폭된 모든 효과들을 추가로 강화한다.
잘 봐라.
이것이, 타 대륙 출신 성자의 힘이다.
[세인트 글로리아]
화아아아아악!!!!
내 손끝이 아닌 내 몸 전체에서 방대한 신성력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며 육수에 한계까지 머금어진 효과를 극도로 증폭시킨다.
“후우…….”
짧게 숨을 고른 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효과 지속시간은 사흘.”
그 효능은 일반인조차 인지를 초월한 괴물급으로 만들어주는 힘을 지니고 있다.
수십차례 중첩된 버프는 골골거리며 오늘내일하던 다 늙은 노인마저 벌떡 일어나 수십 킬로그램의 바위를 집어 던지게 만들 정도로 큰 효능을 지니고 있다.
내가 그들의 곁에 계속 있을 수 있다면 버프를 걸어주는 정도로 끝났겠지만 두 번 다시 이런 무식한 버프는 걸어주기도 싫거니와…….
그들과 나는 따로 움직일 것이기에 이 수가 최선이었다.
내 말에 그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반론은 받지 않는다. 다들 먹어두라고.”
처음 보는 이도 신성하게 느낄 만큼의 힘이 뒤섞인 육수를 컵에 담아 떠올린 내가 가장 가까이 있던 수윤에게 건넸다.
“마셔라. 옥화 공주 수윤.”
“윽?! 무…… 무슨 냄새가!”
끔찍한 냄새에 그녀가 코를 쥐며 움찔거렸다.
“힘을 손에 넣어라.”
마치 음흉한 흑마법사처럼 제안하는 내 모습에 그녀가 파르르 떨며 물었다.
“그렇다면…… 데이비 왕자. 그 대가는 무엇인가.”
“당신의 혓바닥.”
맛은 보장 못 하거든.
“소…… 소녀는 먹지 않겠노라!”
“나…… 나도 안 먹을 거야!”
“저도 저건 좀…….”
눈을 반짝이며 육수를 마실 준비를 하는 륀느와 다르게 세 사람은 어떻게든 거부하려는 듯 보였다.
“이…… 이건 독살이다! 독살인 게야! 소녀가 아직 살아있으니 완전히 죽이려는…….”
“누군 고생고생해서 만들어줬더니 뭐?”
서늘한 내 눈빛에 수윤의 몸이 움찔거렸다.
“포…… 폭군이로구나.”
“마셔. 안 그럼 진짜 죽어도 내가 못 도와준다.”
내 말에 그녀는 울상을 지으며 컵을 받아들었다.
-끼이이이이익!!
마치 절규하는 듯한 환상이 보이는 컵 내의 육수를 보며 수윤이 울먹거렸다.
“아…… 안 먹으면 아니 되겠느냐. 이건 아무리 봐도…….”
“먹고 죽을 리는 없어.”
어느새 반말로 바뀌었지만, 그녀는 아무런 반론도 하지 못한 채 컵에만 시선을 꽂았다.
“대신 죽도록 맛없을 뿐이지. 아마 먹고 나면 일주일 정도는 입맛이 없을 거다.”
이후 그곳에서 누구의 비명인지 모를 처절한 절규가 울려 퍼졌다.
절규하는 이들을 보며 페르세르크가 인상을 찌푸렸다.
“데이비 님. 냉정한 평가. 십 년 묵은 하수구 물맛이라 평가.”
컵을 원 샷 해버린 괴식가, 륀느조차 인상을 찌푸리며 입맛을 평가한다.
그래. 죽도록 맛이 없을 뿐이다.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나와 페르세르크는 지금부터 이 일의 원흉을 잡아 족칠 거다. 윤희령, 넌 나를 따라와.”
“내…… 내가?”
“그래. 넌 나를 따라와라.”
제일 변수성이 높은 널 그냥 둘 순 없으니.
“그리고 도화 선녀께선 옥화 공주를 모시고 유나라 황궁으로 가주세요. 지금 효과면 반나절 정도 달리면 도착할 겁니다.”
내 말에 바닥에 쓰러져 헛구역질하던 곽미영이 나를 바라본다.
“절대 옥화 공주의 정체를 드러내지 말고 조용히 들어가세요. 그리고 유나라 황제를 만나…….”
“소…… 소녀가 황제 대행이니라…….”
바닥에 쓰러져 있던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소녀에게 하시게.”
“그럼, 일이 더 쉽게 풀리네. 믿을 수 있는 이들 몇 명에게 알려서 이걸 준비하라 하세요.”
심연의 존재만 머리를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녀에게 작은 종이를 건네준 내가 입을 열었다.
그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