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619화 (618/1,559)

제 619화

스팡!!!

데이비의 손짓에 배경이 변했다.

부상을 입었으나 순식간에 치유되어버린 백염검성 곽도영은 멍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는 다른 이들을 모두 확인했다.

그의 손녀인 유화 선녀 곽효영.

천열문의 막내이자 이제는 살아남은 생존자 중 하나이며 말도 안 되는 힘을 각성해버린 청년, 자성.

그 외에 흑도무림맹의 사천당가의 아가씨인 당유린과 현화 공주 예현화.

이외에 몇몇 남녀까지.

하나같이 제각각의 이유로 악림문으로 납치되었던 이들이다.

물론 곽도영 혼자라면 어떻게든 도망쳤을 테지만 태초 마을을 습격당하고, 감옥에서 탈출한 여인과 더불어 여러 문제점이 그의 발목을 잡은 케이스였다.

결과적으로 위험천만한 상황까지 갔으나.

눈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의 신비를 보고야 말았다.

“고…… 공주마마!!”

그때 누군가의 깜짝 놀란 듯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던 이들은 환나라의 황실 관복을 입은 무장이 뛰어오는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세상에…… 공주마마!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두…… 두룡…… 당신이 어째서 여기에?”

“무슨 말씀이신지요. 저 두룡. 당연히 폐하가 계신 궁을 지키는 게 임무입니다.”

“그…… 그럼 여기가?!”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겝니까? 게다가 이자들은…… 헙?! 이자는 백염검성이라 불리는 백도 무림맹의 무인이 아닙니까!”

두룡의 외침에 모두는 의아한 얼굴로 현화 공주 예현화를 바라보았다.

“예 소저…… 이게 무슨…….”

그나마 면식이 있던 당유린이 의아한 듯 물어오자 예현화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이제 와서 뭘 숨기겠어요. 맞아요. 저는 황실의 사생아. 살아남기 위해 황궁에서 도망친 공주…… 그게 바로 저예요.”

그 발언이 충격적이었던 것일까.

당유린은 입을 쩍 벌린 채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놀랄 수밖에.

현재 환나라의 왕족은 거의 없다시피 한 수준이다.

현 황제 월곤이 과거 피의 숙청으로 대거 떨쳐낸 전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차기 황제는 월계우로 내정되어있는 이 상황에서 그가 사망했다.

그렇다면?

여왕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유나라 환나라 모두의 풍습을 생각할 때 내려질 결론은 단 하나였다.

“차기 황제는.”

예현화가 된다!

즉 눈앞에 차기 황제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흑도무림맹에서도 이렇다 할 세력이 없는 작은 문파의 아가씨였던 예현화가 실제로는 황제 내정이라니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자성아!!”

그때 두룡의 뒤로 세 명의 소녀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특이한 원고리 같은 것이 머리 위에 떠 있는 륀느와 천열문의 대사저 윤희령과 천지희였다.

“사저!!”

그녀를 본 자성은 반자동으로 몸을 일으켜 그녀에게 뛰어갔다.

그리고는 그대로 그녀를 부둥켜안고는 물었다.

“사저! 다친 곳은 없으세요?!”

“자성 오라버니…… 전 안중에도 없는 건가요?”

토라진 얼굴로 물어오는 지희의 모습에 자성이 움찔거렸다.

“희아야…… 네가 어떻게 여기에…….”

“륀느 소저가 저를 데려 와주셨어요. 백도 무림맹에 따로 있는 것보단 이곳이 안전할 거라고.”

그 말에 자성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는 륀느를 직시했다.

무표정인데 묘하게 표정이 읽히는 느낌이었다.

“지희를 계속해서 지켜주셨다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자성의 말에 륀느가 빈약한 가슴을 펴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륀느, 호위능력, 매우 우수하게 평가.”

여전히 특이하기 그지없는 말투였다.

“그런데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듣기론 네가 악림문에 잠입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네…… 잠입했죠. 부끄럽지만 그들에게 붙잡혀 죽을 뻔하기도 했고요.”

자성의 대답에 윤희령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자성 오라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디…… 어디 다친 곳은 없어?”

놀란 두 사람의 외침에 자성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네…… 일단은 은인께서 직접 오셔서 구해주신 덕분에…….”

“그 녀석은…… 어디 있는데?”

“무엇 때문인지 그곳에…… 남으셨어요. 기이한 힘으로 정신을 차렸을 땐 이곳에…….”

“워프.”

륀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데이비 님의 힘. 장거리 공간 도약.”

“그게…… 가능해? 주술로도 그런 게 가능하단 말은…… 아니다. 애초에 너희는 그런 단순한 존재가 아니었지…….”

윤희령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일단 드시지요.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폐하? 설마 환나라의 황제 폐하?!”

놀란 이들의 외침에 두룡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곳으로 오는 이들을 보호하라. 그것이 그분께서 폐하께 내거신 조건이었습니다. 가시지요. 금의위가 모실 겁니다.”

마치 계획대로였다는 듯 말하는 두룡의 모습에 자성은 괜히 오한이 돋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구출되고 여기로 날아오는 것까지 모두 계산되었던 모양이네요.”

“그럴 수밖에. 그 녀석 보통 녀석이 아니니까. 가끔 인간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어.”

“…… 대체 은인의 진짜 정체는 뭘까요.”

“내가 알겠니?”

윤희령이 륀느에게 시선을 돌려 설명을 요구하는 눈치를 보낸다.

하지만 륀느는 근처의 나무에 앉은 나비에 관심이 팔려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

말없이 나비를 노려보던 륀느가 입을 슬쩍 벌렸다.

“좋은 미각 데이터. 하지만 살아있으므로 기획을 파기. 이것을 륀느가 낮게 평가.”

아쉽다는 듯 손가락 끝을 잘근잘근 씹으며 륀느가 물러났다.

“데이비 그 사람이 데리고 다니는 이들은 다들 그래, 쟤도 가끔은 인간이 아닌 거 같아.”

바로 맞췄다.

“그런데…… 환나라는 분명…… 은인을…….”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그 인간이 치료도 해줬다지만 사저로써 직접 확인해봐야겠어. 어서. 곽 사부께서도 드시지요. 도화 선녀께서 노심초사 기다리고 계시니.”

“미영이! 미영이가 이곳에 있는가!”

“예. 현재 유나라의 옥화 공주님과 동행하고 있어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분명 환나라와 유나라는 적대적인 사이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토록 서로 협력하고 있다니 쉬이 믿기지 않았다.

그런 그들을 다독이듯 데려가던 윤희령은 쓰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끈!

그때였다.

“읏…….”

뒤따라가던 윤희령이 몸을 살짝 비틀거렸다.

“사저?”

“…… 아무것도 아니야. 기분 탓인가 봐. 어서 가자. 선계의 존재가 곧 우리를 돕기 위해 내려올 거야.”

그렇게 말한 그녀는 복잡한 표정을 지운 채 다시 걸음을 옮겼다.

* * *

두 심연의 공주의 힘은 잘 쳐줘 봐야 울드 한 명, 혹은 울드의 반 정도.

실상 제대로 된 전력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들의 능력은 제법 성가시기 그지없다.

“콜록…… 콜록…….”

벌써 페르세르크에게 영향이 가기 시작한 것일까.

나는 새하얗던 그녀의 팔이 보랏빛으로 변질된 것을 보고 눈을 번뜩였다.

“사연 없는 무덤은 없다.”

내 말에 멜트가 특유의 험악한 인상을 한 채 나를 노려본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유언은 듣지 않으마.”

그 말과 동시에 나는 어마어마한 마나를 유지코스트로 빼앗아가는 초단이를 한 손에.

나머지 한 손에는 방화광, 이프리트가 가진 신물인 레바테인을 꺼내 들었다.

아무리 무학이 만류기원이라지만 사람인 이상 내겐 가장 잘 맞는 무기가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다른 영웅들과는 다르게 쌍검을 주로 다루는 편이었다.

마치 엿가락이 휘는 것처럼, 혹은 정전기를 받은 머리카락이 붕 뜨는 것처럼 열기의 선이 일렁이는 레바테인을 왼손에 쥐고 청적색의 고유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내는 초단이를 쥔 내가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이미 델라는 치명상을 입었지만, 아직 멜트는 제대로 된 힘을 끌어내지 않았다.

그렇기에 여기서 끝을 봐야 했다.

무슨 이유인지 멜트는 자신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는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만약.

델라의 질병이 피아를 가리지 않는다면.

멜트의 힘 또한 어쩌면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무슨 목적으로 이 땅에 와서 이 난리를 쳤는지는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다.”

“너!!”

거친 목소리로 멜트가 으르렁거렸다.

분하다는 듯한 얼굴이다.

짧게 말한 내가 한 발 내디뎠다.

스스스슷…….

쿠웅!!!

동시에, 슬리지아를 상대할 때와 같은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투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컥?!”

슬리지아는 자신의 입으로 자신이 심연의 공주들 중에서도 최상위의 존재라고 언질을 놓은 바 있었다.

그 말인 즉.

그녀를 죽인 지금의 나를 위협할 수 있는 심연의 공주는 극소수 정도.

그게 몇이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두 명은 그 사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

[마령검]

[81초식]

[혼검합일 무념무상]

[천체원동검]

스스슥.

부드러운 잔상을 남기듯 두 자루의 검 끝이 정확히 델라를 겨눈다.

“아…… 안돼!!”

반사적으로 멜트가 델라를 보호하려 하지만 이미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로 부상을 입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질병을 뿌리는 것밖에 못 하는 델라에겐 방어수단이 없었다.

“돼.”

싸늘하게 일갈한 내가 입을 꾹 다문 채 내디딘 왼발을 박차듯 몸을 튕겼다.

스스스슥!

마치 내 혼과 일대 영역이 전부 나의 일부가 된 것처럼.

마치 두 개의 검이 흉포한 이빨이 된 것처럼.

멍하니 내 접근을 바라보던 델라는 내게서 시선을 떼고 멜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무언가 무언의 의지를 남기고.

마치 톱날처럼 전신이 찢기며 무너져 내렸다.

쿵!!!

물론, 작정하고 사용한 힘의 여파가 일점에 국한되진 않았다.

델라의 방어력을 그대로 돌파하고 베어버린 검은 마치 별의 원운동을 보여주듯 일대 영역 전체에 거대한 잔상을 남기기 시작했다.

직경 수 미터에 달하는 원 형태로 검기가 바닥을 갈라낸다.

마치 평행하듯 움직이기 시작한 두 줄기의 검기는 정확히 하나의 원을 그려냈다.

쩌저저저저적!!!

두 줄, 세 줄. 이윽고 수십 수백 줄에 달하는 거대한 줄이 마치 지면에 그림을 그리듯 나와 내가 베어버린 델라를 기준으로 수백 개의 원운동을 그려냈다.

그 범위는 내가 있던 지옥도가 되어버린 석실의 폐허를 모조리 없애버렸고 끝내 수백 미터에 달하는 영역 전체를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대 유성우가 떨어지며 만들어낸 크레이터와 레바테인이 만들어낸 불지옥. 뒤이어 빙하기 마법으로 인한 초저온의 공기.

마지막으로 두 번째로 발현한 80번대 위의 검술까지.

최대한 여파를 억눌렀음에도 일대를 완전히 파괴해버린 검술의 여파가 끝이 났고 나는 검을 빠르게 거둬들인 뒤 거리를 벌리고 도망친 멜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델라…… 델라…… 델라!!!”

비명을 지르듯 쉰 목소리로 멜트가 악을 써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심연의 공주가 으레 그렇듯 정체불명의 고깃덩어리가 되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절규를 터뜨렸다.

“이 찢어 죽일 놈!!!”

그제야 억누르던 것을 모조리 풀어헤친 것일까.

멜트는 좀 전까지 보여주지 않던 일대 영역 전체를 침식하고 부패시키기 시작했다.

지면이 부패하고 화염이 부패한다.

급기야 공기와 아무것도 없는 허공까지 부패시키기 시작하는 그녀는 말 그대로 폭주하는 기관차와 같은 모양새였다.

“찢어 죽여주마!! 반드시 널 찢어버리겠다!!”

피눈물을 흘리며 악다구니를 쓰는 멜트의 목소리는 급기야 여성의 쉰 목소리에서 수백 수천의 목소리가 뒤엉킨 것처럼 기괴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역시…….”

그녀들을 보며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던 생각이 확신으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

스릉…….

그리고.

그녀의 힘이 내게 닿기 전.

나는 미련 없이 레바테인의 화염을 꺼뜨려 사라지게 만든 후 초단이를 다시 청단이와 홍단이로 분리해냈다.

스릉…….

피할 틈 없이 나를 향해 몰려드는 거대한 부패의 안개가 축소되어온다. 그리고 피눈물을 흘리던 멜트가 직접 내게 덤벼들어 왔다.

하지만.

나는 계속 하던 대로 청단이와 홍단이를 검집에 밀어 넣었다.

마치.

이미 전쟁은 끝이 난 것처럼 말이다.

“80번대 초식이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거든.”

독고준의 오의 천마신공의 마령검 88번대의 검술에서 80번대 이상의 검술은 하나같이 괴랄하기 그지없다.

이전 사용했던 80 초식이었던 [필사즉생 생즉필사(必死卽生 必生卽死)] 도 그러했지만. 하나같이 그의 생에 담긴 무학의 정수가 녹아든 오의라 할 수 있다.

정작 80번 이상은 거의 그랜드마스터는 우습게 아는 심득을 요구하는 만큼 회랑에 올라오고 나서 그가 만들어낸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미 경지에 오른 내가 발현하기 위해선 그에 걸맞은 신체 스펙 또한 요구한다.

하이리스크. 그리고.

쩌억!!!

하이 리턴.

촤자자자자작!

두 개의 검기가 만들어낸 수백 개의 원운동.

그 거대한 흉터 속에서 마치 톱날처럼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양의 검기들이 비산하듯 터져 나온다.

그리고 나를 향해 덤벼들던 멜트의 육신을 마치 크레모아 지뢰 폭발처럼 파고들어 뚫어버렸다.

이미 끝난 줄 알았던 공격이 마치 연쇄 반응하듯 수많은 검기의 폭풍으로 이루어지자 멜트는 그 기습에 저항하지 못했다.

델라에 비하면 전투 경험이 상당히 미숙해 보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온몸에 검기를 관통당한 그녀는 심연이 가지는 저항력이 무색할 만큼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나를 덮치던 부패의 안개는 결국 내게 닿지 못했다.

그녀의 특수한 힘은 공기 화염, 지면, 가리지 않고 모조리 부패시켰지만, 압도적인 힘이 밀집된 검강의 폭풍을 순간 부패시키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게다가 내가 휘두른 검이 레바테인과 초단이라는 점이 크게 한몫했다.

형체가 제대로 없는 비물리 법칙계의 힘이든 물리 법칙계든 베어낸다는 의지가 뒤섞이는 순간 베이게 된다.

단순히 잘라내는 것이라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심연의 공주가 만들어낸 폭주한 힘이. 검기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커헉!! 컥…….”

피를 울컥울컥 쏟아내며 그녀는 바닥에 쓰러진 채 필사적으로 델라가 사라져버린 곳을 바라보았다.

뒤틀리고 잘려나간 신체 부위에서 제어되지 못한 심연의 고깃덩어리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녀를 굳이 끝내지 않았다.

“우린…… 하나야.”

심연의 존재들이 버릇처럼 내뱉는 단어.

슬리지아도 베르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멜트가 내뱉은 저 단어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마치.

내게 하는 말이 아닌 이미 죽어버린 델라를 향해서 하는 말처럼.

묘한 기분이었다.


0